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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시절 스승님에 얽힌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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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지간의 성스런 사랑>

1985년 10월 2일, 이날부터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날 스승님은 타이베이 용산사의 주지인 혜인 스님의 청을 받고 신도들을 대상으로 설법을 하셨다. 그날 저녁 절에 갔을 때 나는 참 스승이 설법하러 오신 것은 꿈에도 모른 채 갈색 법복을 입은 자그마한 비구니가 관음보살께 배불하는 모습만 보았을 뿐이었다. 내 눈 속에 그녀의 우아한 모습이 들어온 순간 내 가슴과 영혼이 모두 떨리면서 잠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배불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귀하고 경건하여 바로 부처님이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반면 다른 사람의 절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부처님이 저만치 도망가는 듯했다. 나는 혜인 스님의 소개를 듣고서야 칭하이 스승님이 그날 처음으로 법문을 하러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스승님은 영어와 중국어를 병용하셨는데 강연 내내 청중들이 웃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당시 ‘이 스승께서 제자를 받으실까?’ 하는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전날 관음보살에게 화를 내며 “제겐 저를 이끌어 주실 살아 계신 스승이 필요해요!” 하고 요청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다음날 스승님께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네이후에 있는 스승님의 거처를 알아낸 나는 즉시 길을 물어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물어물어 가면서 길을 잃어버리기를 수차례, 하지만 결국 나는 스승님이 계시는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신개발지구로 많은 집들이 번지수도 적혀 있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길을 잃고 오도 가도 못할 때마다 누군가 ‘때마침’ 나타나 길을 알려 주곤 했다. 나중에 나는 그것이 나를 도우러 오신 스승님의 화신임을 알게 되었다. 훗날 들어 보니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그녀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하셨단다.

당시 스승님이 계신 곳에서는 선삼이 진행 중이어서 입문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원래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승님은 내가 멀리서 찾아왔으며 만약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선이 끝난 그 다음날 새벽에 있을 입문식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하시곤 관대히도 입문 전날 밤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다음날 입문식 동안 나는 다양한 내적 체험을 즐기면서 ‘와! 정말이네! 스승님이 말씀하신 건 전부 다 있네!’ 하고 생각했다.

스승님의 처소는 산허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국지적인 소나기가 빈번하게 내리곤 했다. 그래서 단체명상을 하러 나설 때는 날이 쨍쨍하다가도 스승님의 처소에 도착할 무렵엔 큰비가 쏟아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우산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을 한 벌 더 챙겨 가지고 가야만 했다. 태풍을 만났을 때는 스승님을 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더 강렬해지곤 했는데, 한번은 스승님이 ‘채식 삼계탕 속에 든 닭’ 같은 우리 모습을 보시곤 마음 아파하시며 말씀하셨다. “밖에는 태풍이 난리인데, 여러분은 정신이 나간 것 같군요.”

자비로운 스승님은 무슨 물건이건 대중과 나누는 것을 잊는 법이 없으셨다. 때로는 우리가 집으로 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급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면 스승님은 발코니에서 우리를 불러 사랑이 가득 담긴 축복 음식을 비처럼 뿌려 주셨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가피물을 잡으며 스승님의 사랑에 마음이 훈훈해지곤 했다. 길 끝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아직까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시는 스승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스승님의 처소가 멀었던 탓에 매일 단체명상에 올 수 있었던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나는 그곳까지 오는 데 길에서 네 시간을 보내야 했고 때로는 스승님과 30분밖에 명상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몇 시간은 내 평생 동안 가장 보배로운 순간이었다. 명상이 끝난 후 스승님은 우리와 함께 바닥에 앉아 깨달음이 가득한 즐거운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다.

행복했던 시간들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법이다. 스승님은 비자가 다 되어 포모사를 떠나 출국하셔야 했다. 한번 가시면 6개월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우리 동수들은 열심히 단체명상을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스승님의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릴 뿐이었다. 스승님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우리는 새가 되어 스승님께 날아가지 못하는 게 한이었다. 어느 날은 나 혼자 스승님의 처소를 청소하러 갔는데, 문을 여는 순간 탁자에 놓인 스승님의 가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스승님이 나타나신 것 같았다. 그 순간 그리움이 북받쳐 올라 나는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계속 생각했다. ‘스승님! 도대체 언제라야 돌아오시나요?’ 마침내 인도에서 돌아오신 스승님은 도착하자마자 물으셨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끔 누가 그렇게 통곡을 한 거지요?”

스승님께서 외국에 계시는 동안 우리는 스승님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스승님이 이전에 안거하셨던 길상사를 알아내 찾아갔다. 그곳을 찾아갔을 때 우리는 이 절이 정말 고요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지긋한 그곳의 보살님은 스승님의 이름을 듣자마자 즉시 그곳 사람들도 스승님을 대단히 그리워하고 있다면서 스승님이 그 절에 계시는 동안 얼마나 부지런히 수행하시고 겸손하셨는지 말해 주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본채 뒤쪽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곳에 있던 것은 벽돌로 지은 허름한 작은 집이었다. 세면대조차 벽돌 몇 장으로 대충 지은 그 집이 바로 살아 계신 깨달은 스승이 안거하며 수행했던 선방이었던 것이다. 자비로운 스승님, 중생들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위해 이토록 고생하셨군요!

- 뉴스잡지 14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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