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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칭하이 무상사 상세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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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면서

위대한 스승의 정신 세계는 범부의 언어로써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의 사상과 일생을 잘 묘사한다고 해도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옛날 인도에 한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스승의 전기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스승의 전기를 집필하기 시작한 지 몇달이 지나자
사람들이 모두 완성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영원히 이 일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의 수행이 스승과 거의 동등한 수준에 이르지 않고는
스승께서 하시는 유형,무형의 일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승은 우리들과는 달리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자신의 과거 생활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각지의 제자들은 그분의 일생에 대해 대단히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질문을 했고,
스승은 마지못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은 칭하이 무상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완성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피상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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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하이 스승은 어울락(베트남)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덕망 높은 한의사로 세계 고전을 좋아했는데, 특히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노장 철학을 좋아하여 칭하이 스승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노장 철학이나 다른 동서양의 철학 서적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에 칭하이 스승은 여느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숙제하고 놀 때 그녀는 철학 서적을 읽곤 하였습니다. 이를 걱정하던 부친이 그 책들을 이해하는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해가 안가는 책은 재미가 없어서 읽으라고 해도 못 읽어요.” 부친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의 학업성적이 줄곧 뛰어났으므로 딸의 이런 범상치 않은 관심을 성원해 주었습니다.

칭하이 스승의 부모는 천주교 신자였지만, 불교에도 개방적이었습니다. 칭하이 스승이 함께 지내기를 좋아했던 할머니는 불교 신자였는데 그녀에게 불경과 예불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그녀는 모든 종교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성당에 가고, 오후에는 절에 가고, 저녁에는 설교를 들으러 가곤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녀에게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서로 다른 걸까?’ 와 같은 많은 영적인 의문을 품게 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마을에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하자 그녀는 방과 후에 병원에서 일을 돕곤 했습니다. 환자들을 씻겨주고 변기를 비우며 심부름도 하면서 환자들의 불편을 덜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므로 외국 친구들도 그녀를 ‘생불(生佛)’ 또는 ‘재미있는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속 채식을 해 온 그녀는 다친 동물을 집으로 데려와 돌봐준 다음 다 나으면 놓아 주곤 했는데, 어쩌다 사람들이 동물들을 죽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울면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멈추게 해달라고 신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살아 가는 동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물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칭하이 스승이 어렸을 때, 한 역술가는 그녀가 탁월한 자질과 품성을 지녔으며 매우 비범하고 총명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이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결혼한다면 훌륭한 남편과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와 똑같은 예언이 그후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칭하이 스승이 집을 떠나 히말라야 산으로 들어가자 걱정이 된 그녀의 어머니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절에 기도를 하러 갔습니다. 신실한 신자들의 모든 의문에 답을 준다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모친은 관세음보살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딸은 수십억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아주 귀한 사람입니다. 그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중생을 고해(苦海)에서 구할 사명을 띠고 관음과 함께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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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하이 스승은 한때 독일에서 국제 적십자사의 통역사로 일을 했는데 자신의 건강과 안위는 제쳐두고 어울락 난민들을 위해 오랜 기간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적십자에서 일을 하면서 칭하이 스승은 여러 나라 난민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자연재해로 생긴 불행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분투했지만, 곧 인류의 고통에 대해서는 특별한 방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각으로 인해 그녀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결심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명상수행을 한층 더 진지하게 했으며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수행 서적을 읽고 여러 방법으로 수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방법들이 효과가 없으며 자신이 경전에서 읽은 영적 체험을 하지도 못했고, 깨달음에 도달하지도 못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상황을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독일에 있을 때 칭하이 스승은 2개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독일 의사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매우 친절하고, 자상하며 협조적이었던 남편은 채식가가 되어 부인과 함께 성지 순례를 하는가 하면 부인의 자선활동을 적극 지원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신의 영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칭하이 스승은 출가를 할 수밖에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오랜 기간 남편과 상의한 끝에 마침내 동의를 얻어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참으로 힘든 결정이었지만, 그녀는 이것이 깨달음을 구하기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칭하이 스승은 출가 후 일세해탈(一世解脫)에 이를 수 있는 완전한 법문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런 법문을 아는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해 동안 순례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히말라야의 스승을 만나 관음법문에 입문하였고 그렇게 찾아 헤매던 성스러운 법문을 전수를 받았습니다. 얼마 동안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 칭하이 스승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명상수행을 하여 깨달음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증진되었습니다.

칭하이 스승은 한동안 히말라야에서 은거하면서 수행에 정진하였으나 마침내 칭하이 스승은 포모사(타이완)에 오게 되었습니다. 태풍으로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저녁, 칭하이 스승은 작은 암자 뒷방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여러 명의 불청객들이 찾아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들의 말하기를 “관음보살님이 저희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당신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높은 깨달음을 얻으신 큰스승이시며, 해탈에 이르는 법을 구하려면 당신께 기도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칭하이 스승은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애썼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신실함과 헌신에 감동을 받은 칭하이 스승은, 채식을 철저히 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몇 개월의 정화기간을 거치면 입문을 시켜 주겠다는 대답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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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칭하이 스승은 스스로 제자들을 찾으러 나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입문을 원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녔지요. 그러나 이런 갑작스런 사람들의 방문은 인도와 독일, 포모사뿐만 아니라 작은 암자에서 은둔 생활을 했던 미국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포모사에서 세 번째 ‘발견’되자 마침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스승님은 진리의 메시지를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를 나누고 신실한 제자들을 관음법문에 입문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칭하이 스승의 모든 종교에 대한 비범하고 폭넓은 견해는 “살아 있는 스승이 물질 세계에 있는 한 모든 종교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라는 자신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부처·노자나 다른 성인들의 말씀을 공부해 왔으며 이들 위대한 가르침 사이의 공통점을 일러 주고, 모든 큰스승들이 어떤 식으로 같은 진리를 가르쳤는지 스승의 눈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스승은 종교적 관점들이 다른 것은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경전들을 여러 가지로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종종 지적하곤 합니다. 오늘날에는 여러 종교적 배경을 가진 각계각층의 수백만 명 칭하이 스승의 가르침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고 있으며,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 관음법문 수행자들과 명상 센터가 있습니다.

칭하이 스승은 구도자들의 배경과 문화에 맞춰 다양하게 강연을 하며, 영어, 불어, 독일어, 중국어 그리고 어울락어 등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최근 수년 동안 스승은 아시아, 미국, 캐나다, 중남미, 호주, 유럽과 러시아를 순방하며 가르침을 폈습니다. 칭하이 스승에게서 관음법문을 배워 수행하고자 하는 신실한 지원자라면 누구든지 입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사명과 더불어 칭하이 무상사는 또한 세계 곳곳에서의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인류의 물질적 고통을 덜어 주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활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수로 인한 수재민 구호활동

  • 미국 중서부지역과 오레곤
  • 캘리포니아
  • 말레이시아
  • 필리핀
  • 태국
  • 캄보디아
  • 어울락
  • 네팔
  • 파키스탄
  • 방글라데시
  • 칠레
  • 베네수엘라
  • 네덜란드
  • 벨기에
  • 프랑스
  • 중국 중동지역

화재민 구호활동

  • 필리핀 피나투보 산의 화산폭발 화재민들,
  •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의 화재민들,

설빙으로 인한 재해민 구호활동

  • 캐나다
  • 아프가니스탄,

태풍으로 인한 재해민 구호활동

  • 태풍 밋치에 의한 온두라스와 니카라구아의 집잃은 사람들,
  • 태풍 파울리나에 의한 멕시코의 집잃은 사람들,
  • 태풍 죠지에 의한 플로리다와 카리브의 집잃은 사람들,
  • 방글라데시, 알라바마, 호주의 허리케인 수재민들,
  • 필리핀, 버마의 폭풍 수재민들,

지진으로 인한 이재민 구호활동

  • 칠레
  • 아프가니스탄
  • 이란,
  • 중국
  • 로스엔젤레스
  • 일본·
  • 러시아의 사할린 지방
  •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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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전쟁과 테러, 재난, 기아, 질병, 노숙자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 남 수단
  • 캄보디아·
  • 북한의 기아,
  • 오클라호마시의 폭탄 재해
  • 한국 삼풍백화점 붕괴 재해
  • 체코
  • 보스니아
  • 르완다
  •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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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인 지원과 기타 구호활동

  • 알바니아의 코소보 난민들
  • 아시아 전역의 난민 수용소의 어울락 난민들
  • 브라질 , 인도 극빈 노인들, 아르메니아 극빈 노인들, 몽고의 극빈 노인들
  • 베닌, 아르메니아, 아이보리 해안, 어울락의 고아들과 병원들,
  • 별빛 어린이 재단과 성 유다 어린이 병원,
  • 하와이 말라키와 필리핀 쿨리온의 나환자들,
  • 미국·영국의 에이즈와 암 연구 의학 연구소,
  • 하와이의 정박아 가족들,
  • 인도와 독일, 우간다의 영적 단체들,
  • 미국의 재향 군인들에 대한 지원


이러한 구체적인 활동을 주는 것 외에도 칭하이 스승은 자신의 사랑에 넘친 자비로운 삶을 통해 동료수행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모범이 되었습니다. 전세계 관음법문의 수행자들은 스승이신 칭하이 무상사의 모범을 배워 노숙자들, 빈민들, 불쌍한 노인들 등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칭하이 스승은 어떤 형태의 인정을 바라고 행한 일들은 아니었지만 전 세계의 정부인사들이 그녀의 인도주의적인 업적을 알고 존경을 표했습니다. 예를 들면

  • 하와이 호놀룰루 시장 1993년 10월 25일을 ‘칭하이 데이’로 선포
  • 일리노이, 아이오와, 위스콘신, 캔사스, 미주리, 미네소타 주의 주지사들도
    1994년 2월 22일을 ‘칭하이 데이’로 제정
  • 호놀룰루에서 ‘세계 평화상’을 수상
  • 1994년 2월 22일에는 시카고에서 ‘세계 영적 지도자상’을 수상
    클린턴 , 부시, 레이건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정부 요인들로부터 축하
    ‘미국 명예시민권’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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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 동안 칭하이 스승은 내면에서 향유하는 아름다움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데도 몰두하고 있습니다. 창작품으로는

  • 그림
  • 장식부채
  • 만세등
  • 실내장식
  • 정원설계
  • 의상 디자인

  • 작곡과 노래

등이 있으며, 이들 중 많은 품목들이 인도주의적 활동을 위한 기금조성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1996년 이래로 3년간 계속되어 온 연말 자선 음악회가 1998년에는 로스엔젤레스와 워싱턴에서 ‘평화의 음악으로 하나된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아카데미 수상식이 수차례 개최되었던 로스엔젤레스의 슈라인 강당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헐리우드 예술가들과 국제적인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연주와 함께 조화를 이룬 칭하이 무상사의 매혹적이고도 영감에 찬 시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속 깊이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로써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통해 신과 하나되는 기쁨과 아름다움을 묘사한 칭하이 무상사는 ‘예술을 통해 진리를 나누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mission2.jpg칭하이 스승은 태어나면서부터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칭하이 스승은 세속적으로 평범하게 살았던 경험을 통해 우리의 문제와 고민, 열정, 욕망, 의혹 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신의 왕국의 천상의 경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여기서 그곳까지 어떻게 가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칭하이 스승의 생애에 있어 유일한 역할은, 우리가 이런 고통과 무지의 상태로부터 완전한 신의식의 희열과 절대적 밝음에 이르도록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준비되었다면 칭하이 스승은 여러분을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여기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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