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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 &amp;gt; 해피요기 &amp;gt; 이야기 세상</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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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무술 영화 배우의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86</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military.jpg" align="right" alt="military.jpg" /><p class="font_a">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br />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br />나의 모습과 얼굴 생김새도 좋아졌다.<br />나는 기쁘다. 
</p><p></p>
<p class="font_a">스승님은 나를 다른 인상을 가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그것이 매우 즐겁고 행복하다.</p><p></p>
<p><br />나는 무술 감독 겸 배우로 일하고 있다. 나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무술 분야에서 종사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홍콩의 영화사인 '쇼 브라더스'에서 운영하는 기능훈련학교의 학생이었다. 내 동급생에는 적룡(狄龍: 딜롱) 같은 유명한 배우도 있었다. 얼마 후, 나는 무술 분야로 진출했고, 몇 년 뒤에는 무술 감독이 되었다. 감독으로 일하면서 나는 가끔 TV 연속물인  ‘천잠변(天蠶變)’, ‘대장부’, ‘상해풍운’ 등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나의 성격에 맞는 역할이 있으면 나는 재미삼아 출연을 하곤 했다. </p>
<p>어느날 동료수행자가 나에게 스승님의 견본소책자를 주었다. 나는 그 책자를 읽은 후 어느 날 저녁 가족들과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내일 채식을 시작하자. 당신 생각은 어때?” 라고 물었다. 내가 육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나의 가족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몇 번 채식을 하자 나는 채식이 맛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에는 성질이 급했다. 스승님의 소책자를 읽고 나서 육식이 몸과 마음에 다 해롭다는 것을 이해한 나는 채식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p>
<p>채식을 하는 것 이외에도, 나는 또한 담배와 도박도 끊으려고 시도했다. 사실 나는 그때 별로 희망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에도 도박과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했으나 전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의 동료들에게 다시 시도한다고 했고, 스승님께 도와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채식을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이 계율을 어기지 않았다. 나는 무척 만족하였고 입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p>
<p>입문 후, 내 안의 변화는 더욱 컸다. 나는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같이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비를 알지 못했었다. 나는 영적 수행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자비심을 계발하는지 깨닫게 되었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전에 전혀 자비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다만 나의 개념과 행동이 적절치 않았기 때문이다.</p>예를 들면, 내 아이들이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을 때 나는 즉시 그들에게 그것을 사 주었다. 그러나 스승님의 강연을 듣고 나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주 큰 대가족에 속해 있지만 내 형제자매와의 대화는 아주 적었었다. 스승님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과 말없는 지도 하에 나는 가족들과 만나기 시작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들의 상황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내 친구들에 대해서도 더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p></p><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military-a.jpg" align="left" alt="military-a.jpg" /><p>나의 정신적인 수양은 또한 내 배우로서의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가령 전에는 악당의 배역을 맡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영적인 수행자가 되고 난 후에는 그것이 아주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악당 연기를 할 때, 겉으로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악한 사람이 되어 그 사람 내면에 존재하는 사악함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그러한 감정을 만드는 것이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고통이 되었다. 따라서 입문 일 년 뒤에는, 악당 역할을 맡을 많은 기회를 포기하게 되었다. 개중에는 주연도 있었지만,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비록 비중이 작은 배역이라도 좀더 올바른 성격을 가진 역을 고르려 한다. 나의 영적인 수행이 직업과 잘 조화될 수 있도록, 나는 감독과 상의하여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내용이 담기도록 대본을 각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금 나는 촬영 시작하기 전, 내 에고로 일하는 대신에 내면의 스승님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항상 드리고 있다.</p>
<p>관음법문을 수행한 후, 나의 충동적이고 참을성 없는 성격은 갑자기 바뀌어 상당히 진정되었다. 나는 더욱 참을성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나의 모습과 얼굴 생김새도 좋아졌다. 나는 기쁘다. 스승님은 나를 다른 인상을 가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그것이 매우 즐겁고 행복하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변화에 대하여 놀라며 나에게 묻는다. 그것이 채식 때문이냐고 말이다. 나는 그것이 전적으로 채식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내 마음으로 안다. 채식도 물론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나를 갑작스럽게 바꾼 가장 중요한 이유는 스승님의 강연과 매일의 명상을 통하여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상황을 판단하고 분석하는 데 나의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아주 충동적이고 생각없이 행동하였는데, 이는 결국 나를 속이게 되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온당치 못하고 그들에게 해롭기까지 한 그러한 행동을 취하기도 하였다.</p><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military-b.jpg" align="left" alt="military-b.jpg" /><p>지난 몇 년 동안 스승님을 따르면서, 나는 스승님이 가르치는 것은 스승님이 진실로 수행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스승님은 가끔 가르치면서 스승님 스스로 우리들에게 좋은 지도를 보여주기 위하여 일을 하셨다. 많은 예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이전에 나는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여자들의 일이라 생각하여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들은 후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이 아주 즐겁다는 것을 점차로 알게 되었다. 이는 내가 전에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로 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나의 아내와 함께 집안일을 반분하고 있고, 이전에는 내가 만지기도 원하지 않았던 일들을 즐기고 있다! 스승님 또한 시멘트 일을 하시고, 채소를 심고, 돌을 나르신다. 스승님이 우리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일하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우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하여 일을 경험해야 한다. </p>
<p class="font_a">입문을 한 후 나는 진정으로 편안한 느낌을 즐기고 있다. 나는 평소 아주 행복하다.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나는 명상을 한다. 그렇게 하면 나는 그 일을 빨리 잊어 버린다. 더 좋은 것은,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또한 수행으로부터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스승님에게 충실하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수행에 신실하게 적용하는 한, 나는 내가 올바른 길을 따라 발전하기 때문에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p>
<p>때때로 나는 다른 정신적인 수양에 관한 책을 읽는데, 그때 나는 스승님과 더불어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이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볼 때 훨씬 자유스럽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무런 구속도 없고, 향을 피운다든가 신을 숭배하거나 경전을 암송하는 것과 같은 복잡한 것을 하지도 않는다.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계를 지키고 하루 두 시간 반을 명상하는 것 뿐이고, 스승님은 그 보답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신다. 스승님을 만날 수 있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깨닫고, 이생에서 해탈할 수 있는 것이 진실로 나를 위한 크나큰 축복이다! 
</p><p></p>
<p class="font_b" align="right">- 뉴스잡지 34호 -</p>]]></description>
<dc:creator>김은정</dc:creator>
<dc:date>Tue, 13 Dec 2005 23:51:37 +0900</dc:date>
</item>


<item>
<title>도교 수행자의 전설 -1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85</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구술: 동료수행자 호/ 포모사 난토우 
        <br />        기록: 거주제자/ 포모사 미아오리 </p>
      <p>
        <span class="topic"> <img src="../img/ri.jpg" alt="ri.jpg" /> 본래 갖추어진 지혜와 열려진 천국의 눈
</span></p>
      <p>도교신자인 ‘호(胡)’는 특별한 가정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그 당시 유명한 도사였다. 그들은 풍수지리학과 귀신쫓는 주문을 외고 부적을 그리는데 전문가들이었다. 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도교의 훈련을 받았고 그때 이미 천국의 눈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었고 무형의 중생과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p>
      <p>호는 진정한 스승을 찾는데 전력을 다했다. 20명도 넘는 스승들을 만난 후에 그는 그들 중 단지 세 명만이 진정한 도를 얻었고 실절적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 중 한명은 포모사 최고의 도사이자 곤륜(崑崙)선종의 창시자인 유배충(劉倍忠:류페이쫑)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높이 존경받고 있던 원로 불교승 광흠(廣欽:광칭)이다. (명상 중 삼매에 들었을 때 후는 광흠 노화상의 몸에서 나오는 6인치 정도의 강렬하고 밝은 금빛을 보았다. 그는 진실로 깨달은 자만이 이러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번째 사람은 칭하이 무상사였다. </p>
      <p>1940년에 유배충이 중국본토에서 포모사로 왔을 때 호 도사는 몇십명의 초기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때 겨우 19살이었다. 유 스승은 천문지리, 각종 도술, 기문둔갑, 의술 그리고 독특한 방법의 예언에 뛰어났다. 그는 매우 인자했으며 상하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또한 제자들을 매우 엄격하게 훈련시켰다.</p>
       

 <br /><span class="topic"><img src="../img/ri.jpg" alt="ri.jpg" /> 은거와 중생제도</span><br /><p>호는 약 일 년 동안 유배충 스승 밑에서 배웠다. 늘상 그러하듯이 그들이 모두 모여 있었던 어느날 밤 한 제자가 스승님에게 질문지를 올렸다. 그때 유 스승은 90명에 달하는 모든 제자들을 모이라고 지시했다. 제자들은 정좌한 뒤 쪽지 안에 씌어진 질문에 해답을 찾아 보라는 지시를 들었다. 참석한 모든 제자들 중에 오로지 호 한사람만이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유 스승은 그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돌아가서 너의 짐을 꾸려라! 내일부터 너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스승님, 저의 잘못이 무엇인가요? 왜 저에게 더 이상 여기에 오지 말라고 하십니까?” 유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다. “너를 내보내 새로운 사원을 세우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너는 거기에 머물며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훗날 너는 모든 것을 이해할 것이다.” </p>
      <p>그 당시 곤륜선종은 새 사원을 세우는데 극소수의 제자들을 파견했다. 그들의 계율은 매우 엄격했다. 첫째로 처음 3년 동안은 어떠한 형태의 보시를 받아서는 안되었다. 둘째로 모든 여행 경비는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째, 공양을 받아서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생을 위한 일을 보러 나가기 전에 식사를 했다. 네번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절할 어떤 구실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섯 번째는, 만 3년이 지난 후에는 보시를 받아도 되지만, 일의 댓가를 요구하지 말고 단지 주는대로 받을 것이며 오히려 가난한 이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 스승은 살아 있는 동안 매우 존경받았고 제자들의 수는 계속 불어났다. </p>
      <p>유 스승을 떠난 뒤 호는 산에 머물렀다. 그는 수행하면서 대중에게 봉사했다. 한편으로 그는 여전히 깨달은 스승을 찾으러 여기저기를 여행했다. 그는 20 여 명이 넘는 스승을 만났으며 매번 실망하여 돌아왔다. 결국 그는 더 이상 에너지와 돈을 낭비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15년 동안을 산에 은거하였고 세속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p>
      <p><br /><span class="topic"><img src="../img/ri.jpg" alt="ri.jpg" /> 삼매 가운데 본 특별한 비젼</span><br /><br /></p>
      <table cellpadding="0" cellspacing="0" width="530" style="background-image:url(&quot;../img/whk.jpg&quot;);"><tr><td><p>15년이 지난 어느날 오후, 그가 사원에서 동쪽을 향해 명상하는 중에 그는 갑자기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기도 하지” 그는 생각했다. “이 시간에 해는 서쪽에 있어야 하는데 왜 동쪽에 또다른 태양이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이 커다란 태양으로부터 신비한 밝은 광선이 비추었는데 각각의 빛줄기에 부처님이 나타났다. 태양 가운데 부처님의 형상은 계속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일생동안 도교를 신봉해 왔고 결코 어떤 부처님을 숭배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본 부처님 가운데 한 분도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p>
      <ul><li><ul><li><ul><li><ul><li>

그는 태양 중심의 부처님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칭하이’라는 두 글자가 나타난다. 그는 매우 의아했다. 왜냐하면 ‘칭하이’라는 이름의 부처님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살아 있는 부처가 태어났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중생을 구하러 포모사에 왔다!” 태양은 여전히 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중앙에는 부처의 형상이 계속 바뀌고 있었다. 결국 좌정한 칭하이 스승님의 형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스승님을 만나뵙기 전에 이미 그는 명상 중에 분명히 스승님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li></ul></li></ul></li></ul></li></ul><p>

그는 스승님께 어디로부터 오셨는지, 어느 부처님이신지 알게 해달라고 신실하게 기도했다. 스승님은 고대 부처의 환생이며, 태초 이래로 존재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임을 그가 알게 하셨다. 그리고나서 스승님의 화신이 말씀하시길 “사흘 내에 너를 보러 올 것이다”고 하셨다. 그는 매우 궁금했다. 그는 항상 산에서 지낼 뿐 좀처럼 바깥 세상에 나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칭하이 스승님이 어떻게 이전에 본 적도 없는 그를 찾을 수 있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그를 보러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면의 체험이 너무도 생생하여 그는 그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p></td></tr></table><p><br /><span class="topic"><img src="../img/ri.jpg" alt="ri.jpg" /> 칭하이 스승은 실제로 존재했다</span><br /><br /></p>
      <p>삼매에서 깨어난 후 그는 ‘칭하이’라는 이름의 살아있는 부처가 어디에 계실지 궁금했다. 갑자기 그는 어떤 영감이 떠올랐다. 그는 작은 산촌에 사는 할머니가 기억났다. 그 할머니는 종종 포모사 전역의 사원을 방문하곤 했다. 이 노부인에게 물어보면 어쩌면 '칭하이' 스승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작은 마을로 내려갔고 거기서 그 할머니와 마주쳤다. 호는 그녀 앞에 멈춰서서 물었다. “당신이 사원을 종종 방문하면서 혹시 ‘칭하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왜 그분에 대해 묻지요?” 호는 자기가 본 것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 할머니는 결국 “칭하이 무상사는 나의 스승님이십니다. 나는 내일 그녀를 뵈러 타이뻬이에 가려고 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p>
      <p>
“당신은 스승님을 보러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없어요.” 호가 말했다. “그녀가 3일 안에 나를 만나러 오실 것입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이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나의 스승님은 제자들의 집을 방문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가 호언장담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사흘 동안 기다려 보기로 했다. </p>
      <p>

사흘째 되는 날, 그의 말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스승님과 몇몇 제자들이 이 할머니를 만나러 낡은 트럭을 타고 이 마을에 오셨다. (스승님이 유명해지기 전 스승님의 제자는 소수였는데 이 할머니는 산속 마을에 있던 최초의 제자였다.)
</p>
      <p>
할머니는 완전히 놀랐고 스승님의 출현에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즉시 호 도사에 대해 스승님께 말씀드리고 그의 사원으로 안내했다. 스승님이 사원에 도착했을 때 호 도사는 중생을 제도하러 사바세계에 오신 고대의 부처이신 칭하이 무상사, 즉 그의 일생의 스승이자 최후의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큰 북을 치고 큰 종을 울리며 스승님을 환영했다. 
</p>
      <p>
그는 스승님에게 커다란 감화를 받았고 그들 사이에 많은 특기할만한 초자연적 현상들이 일어났다. </p>
      <p>

 </p><p><br /><span class="topic"><img src="../img/ri.jpg" alt="ri.jpg" /> 세상을 일깨우기 위해 한 선지자가 남긴 예언시</span><br /><br /></p>
      <p>


호 도사는 그가 19살 무렵일 당시를 회상했다. 유배충 스승님이 한번은 그 자리에 있던 10~20 여 명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약 40년 후에 해외에서 한 비범한 여인이 중생을 제도하러 포모사에 올 것이다. 만약 감화를 받는다면 그녀를 따르고 그녀의 제자가 되어도 좋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 진실을 드러내는 한 시를 읊었다. </p><p align="center"><font>“연꽃이 물 위로 떠올라 세상을 가득 채우니 <br />그 빛은 삼천대천세계(온 우주)를 두루 밝히네. <br />매일매일 눈 앞을 지나다녀도 <br />그가 진정한 존재, 진정한 신임을 알지 못하네.”<br /><br />蓮花出水滿世間，照灑三千及大千<br />朝朝打我門前過，不識眞他與眞天.</font>
</p>
      <p>
이제 호 도사가 돌이켜보니 포모사에는 해외에서 온 유일한 비범한 여인이 칭하이 스승님이며 그 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스승님이 진리를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동서남북 할 것없이 포모사 전역을 여행했고, 크고 작은 길을 지나 산으로 바다로 다니셨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 시 가운데 다음 귀절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br />“매일매일 눈 앞을 지나다녀도 그가 진정한 존재, 진정한 신임을 알지 못하네.”</p>
      <p>

유배충 스승이 이 계시의 시를 읊으신 이래로 40년이 넘게 흘렀다. 그 예언은 스승님이 출생하신지 약 1-2년이 지나 예견된 것이다. 이 예언을 들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호 도사가 산 속에서 수행하기 위한 사원을 세우러 떠나갈 때, 유 스승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중에 너는 이해하게 될 것이다.” <br />이제 그는 결국 이해하게 되었다! 40여 년 동안의 신실한 수행 후에 신은 결국 진정한 ‘최고의 깨달은 스승’을 보내심으로써 그에게 보상을 주신 것이다. 
</p>
      <p>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God’s grace</dc:creator>
<dc:date>Mon, 23 May 2005 22:37:58 +0900</dc:date>
</item>


<item>
<title>도교 수행자의 전설 -2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84</link>
<description><![CDATA[<br /><p> 도교 수행자인 호는 낙천적이고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장난기 많고 총명하고 강한 판단력을 가졌으며 누군가 부당하게 대우받으면 
        나서서 도와주기를 좋아했는데 나이 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다. “국가가 통치자를 바꾸는 것은 쉬워도 개인이 그 성격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는 중국 속담처럼. 그가 많은 노력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대가는 보잘것없는 도교 사원을 운영하는 데 한평생을 바친 
        것은 아마도 그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p>
            <p><br /><span class="topic">물귀신과 일해 은전 100냥을 벌다</span><br /><br />
        그가 일생 동안 겪은 많은 사건 중에는 그가 잘 기억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즐겨 이야기하는 사건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어렸을 때 물귀신과 같이 일해서 은전 100달러를 번 것이다. </p>
      <p>그는 양칭(永靖)에 있는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거기에는 ‘물귀신 연못(水鬼潭)’이라는 곳이 있었다. 이 물귀신들이 일으키는 연못 주변의 
        잦은 사고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특히 밤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그곳이 금지 구역이었다. 
        어느 날 저녁 평소처럼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잡담을 하며 기이한 귀신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마을의 부자가 “누군가 ‘물귀신 
        연못’ 옆의 벵갈보리수나무에서 잎을 몇 개 따 가지고 오면 잎 하나당 5센트를 주겠다.”고 말했을 때 물론 아무도 그런 위험한 
        모험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 당시는 일본이 포모사를 통치했는데 5센트는 아주 큰 돈이었다.) </p>
      <p>호는 어렸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자주 만나 귀신 따위는 무섭지 않았으므로 그 부자에게 말했다. “당신 말이 사실입니까?” 
        “물론!” 부자가 조금도 주저 없이 말했으므로 호는 그 ‘물귀신 연못’ 옆의 벵갈보리수나무를 향해 출발했다. 그곳에 도착한 그는 
        나무 밑에 모여 있는 많은 물귀신들을 보았다. 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을에 있는 누가 각 잎마다 5센트를 준다 말하길래 
        오늘 밤에 나뭇잎들을 따러 왔어요. 이 나무는 나 같은 어린애가 잎을 따기에는 너무 크니 나를 좀 도와주세요. 내가 잎을 딸 
        수 있게 가지를 밑으로 내려 준다면 내일 돈을 받은 뒤 당신들에게도 많은 돈과 비스킷, 사탕 등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귀신들과 합세해서 은전 100달러 이상을 벌었다. 특히 그때는 그가 겨우 10대 소년이었을 때이니 이것은 ‘가난한 도교 수행자’인 
        그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수입이었다. </p>
      <p><br /><span class="topic">용감하게 독약 전문가를 내쫓다</span></p>
      <p>호가 젊었을 때 그의 부친은 종종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대접했다. 한번은 중국 본토에서 ‘당산 여행자(唐山客)’라 불리는 사람이 그들과 
        지내기 위해 찾아왔다. 독약 전문가인 이 남자는 거기 머무는 동안 종종 술집에 가서 그곳 접대부들 얼굴에 독을 발랐는데, 수건에다 
        독을 묻혀 놓고 접대부들이 무의식중에 얼굴 닦기를 조용히 기다렸던 것이다. 나중에 그들의 얼굴이 곪고 썩어 가기 시작하면 자신을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 자기가 그 치료 방법을 안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p>
      <p>접대부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예뻐야 하므로 얼굴이 썩어 가자 매우 걱정하며 치료를 위해서는 어떤 비용도 기꺼이 감수했다. 
        나중에 그들은 그것이 ‘당산 여행자’가 돈을 벌기 위해 판 함정이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지만 그가 자신들에게 독을 사용할까 
        봐 말도 못 하고 뒤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p>
      <p>‘당산 여행자’가 호의 집에 묵고 있었으므로 그의 집 평판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하루는 호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부친에게 
        물었다. “우리 집에 묵고 있는 저 아저씨는 아주 나빠요.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다치게 하잖아요. 왜 우리가 저 사람을 계속 
        집에 묵게 해야 하나요?” 부친은 피곤하다는 듯이 “그 사람이 정말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물어보니 사실을 인정하지 
        않더구나. 어떤 증거도 없이 떠나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대답했다. </p>
      <p>그래서 호는 ‘당산 여행자’가 어떻게 약초를 캐고 해독제를 만드는지 비밀리에 지켜보기 시작했다. 해독제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을 때 그는 접대부들이 치료받으러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당산 여행자’에게 충고하는 대신 접대부들에게 공짜로 약을 주었다. 
        ‘당산 여행자’는 그의 비뚤어진 방법으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떠나고 말았다. </p>
      <p>스승님이 전에 농담 삼아 말씀하셨다. “불필요하게 남을 칭찬하는 것 또한 일종의 독입니다. 사람들의 겸손한 마음에 독을 주는 
        것이죠. 따라서 에고와 오만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은 해독제를 찾으러 나에게 와서 성가시게 굴지요.” 그러니 
        스승님은 동수들에게 바깥 사람들이 하듯 서로를 칭찬하지만 말고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때부터 시후 센터의 동수들은 
        서로에게 아첨하며 달콤한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유독한 용연(毒龍潭)의 주인’이라고 농담 삼아 이름 붙이게 되었다. </p>
      <p><br /><span class="topic">스승님이 세 번의 도교 사원 방문을 예고하셨다</span></p>
      <p>1989년 호가 스승님을 처음 뵌 지 몇 달이 지난 후 또 다른 광경을 보았다. 삼매 속에 들어 있는 동안 그는 스승님의 화신을 
        보았다. 그가 스승님께 언제 다시 방문해 주시겠냐고 여쭙자 스승님은 “삼일 안에 당신을 보러 올 거예요.”라고 대답하셨다. 정말 
        이튿날에 스승님은 많은 출가승들과 함께 그를 만나러 오셨다. 그때 도교 사원에는 많은 손님들이 있었는데, 호는 스승님이 갑자기 
        오신 것을 보자 매우 놀라며 스승님과 동행한 서른 명이 넘는 출가승들을 영접하기 위해 서둘러 모든 손님들을 떠나보냈다.</p>
      <p> 그해는 스승님이 공개적으로 강연을 시작하신 해여서 스승님을 따라 수행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렇지만 호는 
        아직 공식적인 스승님의 제자로서 입문을 받지 않았다. </p>
      <p>몇 달 후 스승님이 호의 사원인 ‘밍후광(明湖宮)’을 세 번째 방문하셨을 때 호는 스승님을 보는 순간 스승님께 여쭈었다. “며칠 전 
        명상 중에 화신 스승님이 제게 며칠 내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언제 오실 거냐고 여쭈어 보았지만 화신 스승님께선 웃으며 
        손을 흔드실 뿐 대답은 안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스승님께서 언제 오실지 몰랐습니다.” 스승님이 “당신이 알기를 내가 원한다면 
        당신은 알게 될 것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모를 겁니다. 내가 왜 매번 당신에게 먼저 말해 줘야 하지요?”라고 대답하시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p>
      <p><br /><span class="topic">제자가 되는 때가 무르익다</span></p>
      <p>스승님의 세 번째 밍후(明湖) 사원 방문 후 오래지 않아 최소한의 준비만 된 상황에서 마침내 그는 입문을 했고 정식으로 스승님의 제자가 
        되었다. </p>
<p>        초기에 시후 센터는 동수들만 받아들였고 대중에게는 개방되지 않았다. 스승님은 동수들이 단체명상을 하러 그곳에 왔을 때 명상에 
        집중하고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센터 분위기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 조치하셨다. 스승님은 센터가 관광객을 끄는 바깥의 
        사원과 같이 호기심 많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육식과 음주와 흡연으로 기운이 오염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동수들이 평화롭게 명상할 수 있겠는가? </p>
      <p>하지만 포모사의 일반 대중들은 수행 센터들에 대해서 나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센터들의 평온한 분위기를 별로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후 센터에선 외부인의 방문을 금지하는 규칙을 정했는데, 이것이 동수들의 친구나 친척들 뿐 아니라 그 밖의 외부인들에게까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불가사의한 무언가가 이 센터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스승님은 일요일에 손님들이 올 수 있도록 센터를 개방하셨다.  </p>
      <p>센터를 개방한 어느 일요일, 호는 동수들과 
        함께 시후 센터로 스승님을 뵈러 갔다. 그날은 우연히도 입문식이 있었다. 그래서 한 동수가 그에게 입문 신청을 권했다. 그는 
        전혀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데다 주머니에는 오천 원밖에 없었으므로 동수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오늘 입문을 받을 줄 
        몰랐어요. 저에겐 준비된 돈이 전혀 없는데요.” 그 동수는 웃으며 “스승님은 제자가 되려는 사람을 입문시키는 데 빨간 봉투(돈)는 
        받지 않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들은 것을 믿을 수 없어서 다른 동수에게 그것이 사실인지 재차 물었다. 물론 그가 얻은 답변은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매우 안도감을 느끼면서 입문 신청을 하러 갔다. </p>
      <p>(호에 의하면 그가 따랐던 스무 명도 넘는 스승들 중 곤륜파의 유배충 스승과 칭하이 스승님만이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입문시키는 
        데 빨간 봉투(교습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p>
      <p><br /><span class="topic">다른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하고 스승님을 위해 눈물을 흘리다</span></p>
      <p>그날 입문식 중에 호는 스승님이 도착하시길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앉아서 눈을 감고 명상을 했는데 갑자기 고통으로 눈물짓게 
        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스승님이 제자들을 입문시키면서 그들의 업장을 전부 대신 갚는 것을 보았다. 입문은 그들의 빚쟁이들을 
        나타나게 했는데 제자들의 모진 업장을 떠맡기 위해 스승님의 화신은 시커멓게 멍이 들도록 맞아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호가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어서 도우려고 하자 스승님은 그를 저지시키며 “이것은 내가 제자들을 위해 떠맡아야 하는 거예요. 방해하지 
        말아요.”라고 하셨다. 그래서 호는 뒤에 서서 스승님이 고통 받으시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p>
      <p> 호는 일생 동안 거의 운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명상 중에 그는 한 시간 
        이상 울었다. 끝없이 흐르는 눈물로 그는 스승님이 들어오시고 사람들이 박수로 환영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스승님이 그의 옆을 
        지나가시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왜 그리 슬피 울지요? 이제 더 이상 울지 말아요.” 하고 말씀하셨을 때에야 그는 깜짝 놀라 
        울음을 멈췄다. </p>
      <p>입문 후 스승님은 동수들에게 축복 음식을 나눠 주셨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스승님이 던지시는 축복 음식을 잡느라 바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가피물이 담긴 봉지 하나를 잡으러 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 호는 당황했다. 무슨 축복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달지도 않고 맛도 없는 저런 튀밥 한 봉지가 왜 그렇게 소중한지 이해할 수도 없었으나 호기심이 생겨 ‘조사’를 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순간 손에서 빛을 발하며 사자 등에 탄 채 튀밥 옆에서 음식에 축복을 주고 있는 문수사리보살을 
        보았다. 모든 축복 튀밥이 흰빛을 발했다. </p>
      <p>그때 그는 축복 음식이 무언지, 왜 동수들이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스승님이 그것을 던졌을 때 보물이나 되는 듯 받으러 달려가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군중들 틈에 끼어 축복 음식을 받으려고 달려갔다. 아마도 그에게 큰 초자연적인 
        힘이 있거나 내면의 상상할 수 없는 ‘탐심’의 힘이 나타난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육순이 넘은 노인이 여태 축복 음식을 
        잡으러 가 본 적이 없으면서도 쉽게 두 봉지나 얻을 수 있겠는가? </p>
      <p>입문을 받은 후부터 호는 언제나 성실하게 수행을 했고 또 그의 옛날 스승인 유배충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종종 얘기했다. 만약 
        그 스승의 예언과 산에서 수행하도록 하는 배려가 없었다면 어떻게 칭하이 스승님을 만나고 이런 최상의 관음법문을 얻었겠는가? 그가 
        여태 만난 모든 스승들 중에서 이 두 분만이 진정으로 능력이 있었으며 제자들을 조건 없이 전심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7:15:39 +0900</dc:date>
</item>


<item>
<title>도교 수행자의 전설 -3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83</link>
<description><![CDATA[<br /><p>
        <span class="topic">승천(昇天)하다</span></p>
      <p>입문 후 호 도인은 산으로 돌아와 스승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열심히 명상하고 있는데 스승님의 화신이 와서 그에게 “지금 
        당신 마을에서 살다가 금방 죽은 사저의 남편은 서방정토로 가게 될 거예요.”라고 했다. 도인이 물었다. “스승님께서 몸소 
        그녀의 집을 방문하실 겁니까?” 스승님은 손을 흔드셨다. “그럼요.” “그는 어떻게 구제됩니까?”라고 도인이 재차 묻자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당신은 가서 그녀에게 내 말을 전하기만 하세요.”</p>
      <p> 호 도인은 스승님의 말씀을 그 사저에게 전했다. 그는 집으로 가는 도중 일부러 다시 돌아가서 그 사저의 딸과 사위에게 
        지시했다. “자네들은 오늘밤 주의해야만 하네. 어떤 밝은 빛이나 반짝이는 황금빛이 있는지 보게나. 나의 스승님께서 자네 아버님을 
        서방정토로 데려가실 걸세.”</p>
      <p> 전혀 뜻밖에도 스승님을 본 사람은 그 사저의 네 살배기 손녀였다.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어린애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그녀에게 
        물었다. “너, 뭐하고 있니?” “나는 할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하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관 안에 계신데 어떻게 너는 거기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니?” 그 꼬마는 천진난만하게 스승님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분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늘로 날아갔어요.”</p>
      <p> 그 다음날 사저는 호 도인을 불러와서 그녀의 손녀가 본 믿기 어려운 일-스승님이 그녀의 남편을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신 
        일-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 그는 그녀의 남편이 막 죽어 도와주러 왔을 당시에 시체가 어둡고 추해 보였던 것을 기억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엔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마치 살아서 잠자고 있는 것처럼 건강하고 불그스름하며 아주 평온해 
        보였다. 정말 불가사의했다. 이것은 “입문을 하면 적어도 5대 조상이 천도됩니다.”라고 하신 스승님의 말씀을 확증한 것이었다. </p>
      <p> <br /><span class="topic">영혼이 천국의 호수궁전에 갔다 오다</span></p>
      <p>그는 입문하고 6개월 후 스승님을 따라 출가를 했다. 그러나 그후 몇 개월 동안 매우 아프다고 했던 그의 아내가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자 도인은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집으로 가 봐야 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많은 의사들에게 가 보았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다. 환자는 거의 2주 동안 식물인간인 상태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만 있었다. 도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명상 중에 몇 차례나 아내의 영혼을 찾아보았지만 천국이나 지옥,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보통 
        때 같으면 이상한 문제나 질병으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도울 수 있었으나 그의 아내가 곤경에 처해 있는데도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그는 정말로 좌절했다. 그의 친지들, 심지어 의사들조차 그녀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고 매장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도인은 애정이 깊은 남편이어서 평생을 함께한 사랑하는 아내를 버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운명을 믿지도 않고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남자였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계속 명상을 하면서 스승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p>
      <p>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아내는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여태 어디에 있었소? 왜 내가 어디서도 
        당신을 찾을 수 없었지?”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아주 재미있고 행복한 곳에 갔었어요. 거기서 너무 재미있어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당신의’ 스승님께서 결국 나타나셔서 나에게 돌아가라고 하셨어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이곳에 
        있기로 되어 있지 않아요. 당신은 그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나는 그러기 싫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스승님이 내 손을 
        잡고서 나를 돌려보냈지요. 그 스승님은 몸집은 작을지 모르나 힘은 셌어요! 내가 발버둥쳐도 헛일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깨어 보니 
        여기 있잖아요.” 도인은 스승님이 결국 자기 아내를 돌려보내 주셔서 매우 기뻤다. (그의 아내는 그보다 뒤에 입문했다.) 
         </p>
      <p> 몇 달 후 그의 아내는 그에게 몇 가지 이상한 얘기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내가 죽거든 나를 묻지 마세요. 시체를 
        화장해 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의 이상한 말들을 들으면서 도인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장난기 심한 척하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이 죽으면 나는 꼭 당신을 묻을 거요.” 그녀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후 그녀는 다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화장한 재를 근처 납골 탑에 안치해야만 해요. 
        번호는 XX예요.” 그 무렵 도인은 이 범상치 않은 말 때문에 아내를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p>
      <p> 어느 날 아침 그의 
        아내는 평소 때처럼 문간에 서 있었다. 그는 어떤 특별한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뭔가를 가지러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 밖으로 
        나왔을 때 그의 아내는 사라져 버렸다.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이웃을 찾아다녔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p>
      <p>그는 당장 자식들과 이웃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증발된 것 같았다. 그는 신통력을 이용하고 산신과 지역 
        신들에게도 도움을 청해 봤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p>
      <p> 며칠 후 그는 지역 경찰서에 아내의 실종 신고를 했다. 보통 등산객이 길을 잃었을 때 경찰들이 실종자가 있는 곳을 알기 위해 
        그에게 오면 그는 항상 도와주었다. 그래서 담당 경찰관은 매우 놀라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도와주면서 
        왜 당신의 아내를 찾을 수 없소?” 도인은 좌절한 채 슬픔과 혼란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 그는 혹시 스승님이 아내를 데리고 
        가신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조사차 지옥에 갔었다. 그러나 그곳 문지기는 그의 아내는 여기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인은 지옥을 수색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아내는 깨달은 스승에게 입문했는데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겠는가?” 도인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찾기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세 번째로 지옥에 갔을 때 지장보살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도인이 오직 아내를 찾는 일에 거의 미쳐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와 어떤 시비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들어오도록 허락을 받고 다시 찾아봤지만 결과는 헛일이었다. 그의 아내는 자신이 죽기 전에 이웃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어느 날 사라지면 남편에게 나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세요. 그는 나를 결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그녀가 
        사라질 당시 도인의 사찰을 지나가던 한 여인이 거대한 연꽃이 솟아오르는 것을 봤지만 그녀는 자신의 시력이 나쁘다고만 생각했었다.</p>
      <p> 그가 몇 달 동안 찾아봤지만 그의 아내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후 어느 날 그가 명상하고 있을 때 스승님의 화신이 나타나서 
        “당신 아내는 지금 천국의 호수궁전에 있어요.”라고 했다. 도인은 영체로 즉시 그곳에 갔으며 그 궁전 안에서 다리를 포갠 
        채 앉아 있는 자기 아내를 보았다. 그녀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없었다. 도인은 결국 아내를 찾아서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내가 여기 왔다는 것을 자기에게 말해 주지도 않고 몇 개월 동안 헛되이 찾아 헤매도록 내버려둔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그의 첫 마디는 이러했다. “당신이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이리 오는 바람에 나는 당신을 찾으러 온 사방을 돌아다녔소. 
        심지어 지옥에도 몇 차례나 갔다 왔소.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지옥으로 나를 찾으러 
        갈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내가 거기 있을 리 없다는 걸 당신은 잘 알잖아요.”</p>
      <p> 도인은 물었다. “거참 이상하지! 어떻게 내가 당신을 찾을 수 없도록 숨을 수 있었소?” 그의 아내는 놀리듯 말했다. 
        “당신은 신통력이 많잖아요. 아주 전문가잖아요? 그런데 왜 나를 찾을 수 없었나요? 사실 나는 집에서 몰래 당신의 책 [지멘 
        듄지아(奇門遁甲: 도교 신통)]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나는 ‘은신술(隱身術)’을 사용했어요. 스승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당신은 결코 나를 찾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 비로소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으며 그녀의 시체가 어디 있는지 재차 물었다. 그녀는 “나는 당신이 
        나의 시체를 매장할까 봐 두려워서 지금은 말하지 않겠어요. 시체가 완전히 썩으면 자연히 알게 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p>
      <p> 실제로 아내가 실종된 지 여러 달 후, 어느 날 등산을 하던 한 학생이 도인의 집 근처에서 시체를 발견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경관이 달려와서 그에게 신원 확인을 요청했다.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는 시체를 보았다. 
        시체는 모두 썩었으나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이 있었다. 시체의 손목 부분은 완전히 본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생전에 스승님의 
        사진이 부착된 목걸이와 함께 스승님이 주신 염주를 손목에 차고 있었다. (그녀가 입문하기 전에 스승님께서 주신 염주이다.) 이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얼마 후 찾아온 납골 탑의 직원이 직업상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시체들을 보아 왔지만 
        이런 이상한 일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그는 도인에게 화장하지 말고 대신 도금을 해서 사람들이 숭배하도록 하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도인은 아내가 특별히 화장해 달라고 당부를 했기에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화장한 후 납골 탑에 
        재를 묻었을 때 그 번호는 아내가 언급한 것과 꼭 같았다.</p>
      <p> 시체가 발견된 장소는 도인과 그의 아들이 이전에 이미 조사했고 근처 나무 아래서 쉬기까지 했던 곳이었다. 그들이 시체를 
        그냥 지나쳤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이 아무리 부주의했다 하더라도 부패된 시체의 냄새를 지나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나다니!</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3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6:59:15 +0900</dc:date>
</item>


<item>
<title>도교 수행자의 전설 -4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82</link>
<description><![CDATA[<br /><p>산수가 아름다운 타이쭝(台中) 소재의 우서산(霧社山)에 별로 크지 않고 낡은 민후궁(明湖宮)이라는 도교 사원이 있었다. 사원 앞에는 민후 호수가 있었는데, 
        이 산에 호 도사가 살고 있었을 때 많은 신기한 일들이 있었다.</p>
      <p><br /><span class="topic">물귀신의 출현</span></p>
      <p>몇 십 년 전의 우서는 여전히 외딴 산골이었다. 도인은 입문하기 전에 동네에 사는 다른 사람들처럼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평상시처럼 고기를 잡고 있는데 경찰관이 그에게 벌금을 부과하기 위해 왔다. 도인은 “이곳으로 내려오지 
        마시오. 이 근방은 매우 위험하오. 가끔 물귀신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칩니다.”라며 경찰관에게 겁을 주었다. </p>
      <p>경찰관이 그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는가? 경찰은 “내가 어린애처럼 쉽게 속아 넘어갈 줄 아시오?”라고 대답했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전에는 죽는다 해도 믿지 못하겠소.” 도인은 “나는 당신을 놀리는 게 아니오. 믿지 못하겠다면 내일 저녁 
        물귀신을 잡아 당신 앞에 보여 드리겠소.”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굳게 약속했다. </p>
      <p>약속한 대로 두 사람은 다음날 저녁 호숫가에서 만났다. 도인은 그물을 가지고 왔다. 천천히 배를 저으면서 주문을 외우고 팔괘 
        망을 던졌다. 그는 정말로 물귀신을 잡았다. 그는 경찰관에게 “물귀신에게 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한 후 천천히 물귀신을 
        호숫가로 데려왔다. 경찰관은 물귀신이 어떤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있는 물귀신은 키가 1, 2피트 정도로 몸집만 작을 뿐 사람과 똑같았다. 눈은 붉고 계속해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지’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몸 전체는 짧은 털로 덮여 있었다. </p>
      <p>도인은 그에게 “이곳에서 더 이상 살지 마라. 네가 사람들을 겁에 질리도록 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 않고 그물에 다시 잡히는 
        날에는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그러니 빨리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게다.”라고 했다. 도인은 그를 호수에 풀어 준 후 고기잡이를 
        계속했다. 그날 밤 도인은 특별나게 운이 좋았다. 물귀신이 고기를 그의 그물에 몰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아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p>
      <p><br /><span class="topic">살생으로 번 돈은 쓸모없다</span></p>
      <p>도인은 언제나 고기를 많이 잡아 많은 수입을 올렸다. 그래서 고기 잡는 일이 그의 부업이 되었다. </p>
      <p>어느 날 오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문수보살이 나타나 “그대가 고기 잡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왔소.”라고 했다. 도인은 
        고기 잡는 일로 매일 어렵지 않게 1, 2천 달러를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고기 잡는 일이 뭐 그리 
        나쁜가요? 왜 고기를 잡지 말라고 하십니까?”라고 대답했다. 문수보살은 “그대의 때가 온 것이오. 더 이상 고기 잡는 일을 계속해서는 
        안 되오. 나의 충고를 무시한다면 장님이 될 것이오. 고기 잡는 일을 포기하든가 장님이 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라고 
        했다. 도인은 “내 눈은 멀쩡해요. 내가 어떻게 장님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대답했다. 도인이 말을 듣지 않자 문수보살은 
        사라졌다. 다음날 고기잡이를 하던 중 갑자기 알 수 없는 어둠의 힘이 그의 눈을 덮쳐 왔다. 그는 피할 여유가 없었다. 누군가가 
        그의 눈에 모래를 넣은 것처럼 눈이 말할 수 없이 아팠고 눈물도 나왔다. </p>
      <p>다음날 그는 아내에게 “내 눈이 끝장난 모양이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될 모양이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날 문수보살을 
        보았던 일도 이야기했다. 그의 아내는 즉시 그를 안과에 데리고 갔다. 그러나 두 군데의 다른 두 의사 모두 그의 눈이 극히 정상적으로 
        아무런 이상도 찾아낼 수 없다고 했다. 그때서야 도인은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업장으로 인한 병인 줄 알고는 집에 돌아온 후 
        도교 사원에서 그가 숭배하는 신에게 기도했다. “제발 저의 시력을 회복하여 주십시오. 다시는 고기를 잡지 않겠습니다.” </p>
      <p>다음날 저녁 문수보살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문수보살이오. 나는 그대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갖고 있소. 이제부터 살생의 
        업을 불러오는 고기잡이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중단해야 하오. 그대가 인생에서 배운 기술을 사용하여 이 세상과 사람들을 돕도록 
        하시오.” 도인은 물었다. “저는 매일같이 고기 잡은 것으로 일이천 달러를 벌었습니다. 고기 잡는 일을 그만두면 어떻게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겠습니까?” 문수보살은 “걱정하지 마시오. 생활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저절로 생길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그 당시 도인은 도교 사원으로 도움을 청하러 오는 사람에게 거의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오히려 자진해서 
        돈을 내주었다.) </p>
      <p>그리하여 도인은 문수보살에게 다시는 고기를 잡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한 고깃배와 그물을 치우기 위하여 눈을 낫게 해 
        달라고 빌었다. 문수보살은 그의 입에 금색 환약을 넣어 주며 그것을 삼키고 잠자리에 들어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다음날 그가 
        깨어났을 때 그의 눈은 정말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기쁨에 넘쳐 도인은 호숫가로 가서 고깃배와 모든 고기 잡는 도구를 모아 놓고 
        불태워 버림으로써 어부로서의 경력에 종말을 고했다. </p>
      <p>“살생으로 번 돈은 쓸모없다.”는 것을 도인은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고기를 잡아 번 돈은 거의 다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쓰였던 것이다. 사실 그의 생계는 백합을 팔거나 죽순을 캐는 것으로도 유지가 되었다. 살생으로 번 돈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도인은 말했다. 다행히 문수보살이 그에게 이것을 명확하게 알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가 
        얼마나 많은 업을 쌓았을지 신만이 아실 것이다. </p>
      <p><br /><span class="topic">용감히 경전을 지키다</span></p>
      <p>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그는 아내의 일을 처리해 주기 위하여 산에서 내려왔다. 집에 오는 길에 그는 어느 사원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책을 꺼내 와서 사원 밖에 놓아두는 것을 보았다. 궁금증이 생긴 그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그는 그 책들이 이른바 ‘무료로 나눠 주는 경전’인가를 확인하려고 차에서 내렸다. 몇 권 가지고 집에 가서 
        읽어 볼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그 책들은 스승님의 견본책자였다! </p>
      <p>도인은 뭔가 잘못된 것을 감지했다. 왜 책들을 바닥에다 아무렇게나 쌓아 놓을까? 그는 책을 갖고 나가는 사람에게 이 책이 어디에서 
        났으며 왜 밖에다 쌓아 놓는가를 물었다. 그 사람은 “이 책들은 거리에서 칭하이 무상사 제자들이 나누어 주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 못하도록 그들의 뒷전에서 책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책들을 불태워 버리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도인은 너무 화가 나서 그에게 물었다. “이것들은 나의 스승님의 책이오. 책을 태워 버리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스승님의 책을 당신들이 태워 버리도록 놔둘 수는 없소.” 그는 아내와 운전기사를 불러 함께 책들을 집에 가져가기 위하여 차에 
        실으려고 했다. </p>
      <p>갑자기 한 젊은 청년이 뛰쳐나와 도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뭣 하는 거요?” 도인은 법(法)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뒤에다 대고 “어디 대고 큰소리요? 이것은 우리 스승님의 책이오. 무슨 권리로 이 책을 태우겠다는 
        거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젊은 사람은 “당신의 스승은 악마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도인은 그를 꾸짖기 시작했다. 
        “우리 스승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계를 지키도록 하고 우리의 언행과 생각을 청정히 하도록 매일 명상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누구에게도 
        나쁜 일을 하라고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법을 전하고 한 푼의 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어느 누구도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분이 악마가 될 수 있습니까? 당신이 하는 짓이야말로 악마의 행동이오. 다른 사람의 책을 멋대로 불태우고 다른 사람을 
        비판이나 하고 있지 않소? 도대체 어떤 스승이 당신한테 이런 일들을 하도록 가르쳤소? 제자에게 이런 짓을 가르치는 스승이야말로 
        악마가 아니겠소?” 말을 마친 도인은 책을 차에 싣기 시작했다. </p>
      <p>젊은 사람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도인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다행히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도인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면서 “용기가 있다면 당신의 스승을 불러오시오. 당신은 도무지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오. 
        내가 ‘백성공(百姓公:조상사원)’에서 부적을 써서 태우면 당신의 스승을 삼일 안에 죽게 할 수 있소. 당신 정도라면 하루도 충분하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젊은이는 더욱 화를 냈다. </p><p>근처에 서 있던 한 노인이 그에게 다가가서 “젊은이, 그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아요. 이분은 민후 사원의 도인이십니다. 이분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는 정말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를 화나게 
        하지 말아요. 책을 갖고 가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좋을 게요.”라고 말했다. 노인의 충고에 찔끔한 젊은이는 마치 바람 빠진 
        공처럼 기가 죽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인과 그의 부인은 수천 권의 견본책자를 사원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배포하여 스승님의 참된 가르침을 소개했다. </p>
      <p>매우 감동적으로 도인은 말했다. “사실 그 사람들은 스승님을 시기한 것입니다. 스승님이 유명해지고 제자들의 숫자도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고 어느 곳에서든 스승님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수행자들은 관대해야 하며 서로 평화롭게 지내야 합니다. 수행을 
        오래 함에 따라 더욱 마음을 열고 넓은 아량을 가져야 합니다. 단지 그들은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하지 않고 깨달은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이 부족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극단주의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p><p>그러나 진짜 금은 담금질하는 불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스승님께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던 부처님에 의하여 명백히 입증된 깨달은 스승이 아니라면 
        여자의 몸으로 친척이나 친구도 전무한 포모사 땅에서 아무런 재정적 도움도 없이 그 많은 비방과 공격에 대항하여 어떻게 우뚝 설 
        수 있으며, 각각의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굳건해지실 수 있겠습니까? </p><p>스승님은 포모사에서 유명하실 뿐 아니라, 그녀의 
        명망은 지구상의 모든 곳에 넓게 퍼져 있습니다. 만일 그녀의 제자들이 그녀의 가르침을 통하여 참된 이로움과 영적인 체험을 받지 
        못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중상모략에 모두 겁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여전히 스승님을 그렇게 열심히 지지하고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6:56:08 +0900</dc:date>
</item>


<item>
<title>도교 수행자의 전설 -5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81</link>
<description><![CDATA[<br /><p>
        <span class="topic">우주의 법칙은 만물을 감싸고 인과응보는 피할 수 없다</span></p>
      <p>1955년경에 호 도사는 같은 수행을 하고 있는 몇몇 사형들로부터 타이난에 있는 그들 친구 아버지의 무덤을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친구 아버지의 화장한 유골을 매장하자 곧이어 집안에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유명한 지관과 
        상의해서 이장을 했다. 그런데도 집안의 재앙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는 도사를 초청하게 되었다. </p>
      <p>그날 지관과 함께 무덤에 도착한 호 도사는 무덤을 둘러보고 나서 “이 유골 단지 속에는 개미집이 들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지관은 “이 애송이야! 네가 뭘 안다고? 매장된 지 며칠이 지났는데 어떻게 그 안에 개미들이 들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쥐뿔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고 그를 아주 거칠게 꾸짖었다. 곁에 서 있던 동수는 “논쟁을 해봤자 무얼 
        하오! 무덤을 파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거요.”라고 했다. </p>
      <p>다음날 그들은 삽과 괭이를 가지고 가서 무덤을 파헤쳤다. 땅에 묻힌 단지는 마치 새 단지처럼 보였다. 망가진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단지의 외면은 너무나 깨끗했으며, 개미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찬찬히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지관은 버럭 비난을 해댔다. 
        그때 도인은 “아직은 아무것도 말하지 마시오. 단지를 열어 보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요.”라고 말했다. 단지를 열어 보니 
        과연 개미들로 꽉 차 있었다. </p>
<p>        그날 저녁 친구 집에서 도인은 그 연유를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자네 부친께서는 결혼한 후에 아이 둘을 가진 어떤 부인과 
        관계를 맺었다네. 부친은 그 부인을 내연의 처로 삼으려고 했는데 모친께서 완강히 반대하셨네. 뒤이어 그 부인은 두 아이와 함께 
        바다에 투신자살을 했으나 그들의 원한이 풀어지질 않았다네. 그래서 그들은 복수를 하려고 되돌아왔지. 이것이 자네 두 형제가 미치게 
        된 이유일세. 자네는 모친을 이곳으로 오시게 해서 이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여쭈어 보는 것이 더 좋을 걸세.” </p>
      <p>그의 모친은 처음부터 그 사실을 부인했다. 그래서 도인은 그 모친에게 심각하게 “만약 당신이 그 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면 저는 
        당신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병든 두 자식들도 치유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모든 결과를 감당해야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의 모친은 그 사건을 시인했다. 도인은 계속 말했다. “당신 집안의 돈이 어디에서 났지요? 당신 남편이 그 
        부인으로부터 갈취한 것이었지요? 처음에 그 부인은 가문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바쳤던 거지요. 그러나 
        그후에 부인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당신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돈과 애인 둘 다 잃고서 화가 난 그 부인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자살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귀혼이 늘 당신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후에 도인은 그들에게 그 사건을 처리하는 
        방책을 주었다. 그녀는 그들의 업장을 씻기 위한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 귀혼들을 쫓아내기 위해 선행을 쌓고 채식을 했다. 그러자 
        그후 그 자식들의 병은 치유되었다. </p>
      <p>스승을 따라 오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규칙이 너무 많아 자유가 없다고 불평을 한다. 그들은 엄정하게 계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응보가 찾아올 때 하늘과 땅에 기도하는 대신 일상적인 일에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남모르게 하는 나쁜 일을 괜찮다고 생각지 마라. ‘신께서는 항상 거기에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p>
      <p><br /><span class="topic">덕성은 법을 배우는 근본</span></p>
      <p>사람들을 돕고 하늘의 뜻에 따라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도교 사원을 짓는 것이 호 도인의 일생의 목표였다. 그는 탁월한 신통력으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재난을 해결해 주었지만 상대적으로 그를 괘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사찰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p>
      <p>수년 전 어떤 노부부가 도인의 사찰을 찾아왔다. 그 노인이 사찰 계단을 올라오면서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향로 앞에서 무드라를 행하면서 주문을 외웠다. 도인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 노인은 더욱 강하게 행동했다. 도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그도 탁자 밑에서 무드라를 행하고 조용히 어떤 주문을 외웠다. 도교인은 그 노인이 제일 높은 신전으로 
        걸어 오는 것을 지켜보다가 몰래 그의 손가락을 가볍게 쳤다. 갑자기 그 노인은 아찔해졌다. 그는 도인의 사찰 밖으로 나가 나무 
        아래서 토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가 다시 사찰 안으로 들어오자 도인은 그에게 말했다. “나이 많으신 양반, 어디 아프시오? 
        차멀미를 했소? 왜 그리 심하게 토했소?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을 전혀 모르오. 왜 당신이 나의 장소에 와서 
        이곳 신들을 쫓아내는 거요?” 그러자 그의 노부인은 남편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영감! 할 일 없이 다른 사람 사찰에서 
        말썽이나 부리더니 오늘에야 ‘철판’을 차는 꼴이 되었구먼! 다음에 또다시 그런 짓을 했단 봐라!” 그제야 도인은 주문을 풀어 
        주었다. </p>
      <p>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안 있어 다른 사찰에서 몇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수염을 아주 길게 기른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그들의 차림새로 보아 도사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화가 나서 찾아왔던 것이다. 그들이 사찰에 들어오자 
        도인은 차를 대접하고 용건을 물었다. 긴 수염을 한 노인이 바로 물었다. “며칠 전에 한 노인이 여기로 왔었지요? 도인이 
        “예.”라고 대답하자 그 노인은 덧붙였다. “그런데 왜 당신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를 속이고 상처를 입혔소?” 도인은 말했다. 
        “어찌 이유가 없었겠습니까? 그가 사찰을 들어오자마자 신통력을 사용해 저의 사찰에 있는 문신과 향도신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아주 심하게 공격을 해서 저의 제단에 있는 신들을 쫓아냈습니다. 저는 그가 그만둘 기세가 보이지 않고 심지어 제 
        사찰의 주신도 쫓아내려고 했기에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주 가벼운 주문만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제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도인의 말을 듣고 난 후 그 노인은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오?” 그때 그는 제단 위에 있는 부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아주 친숙하게 느껴져 그 부적을 집어 들어서 보고는 도인에게 어디서 난 것인지를 물었다. 도인은 상세히 답해 주었다. 
      </p>
      <p>그 노인은 웃으면서 물었다. “당신이 여덟 살 때 한번은 내가 가게에 가서 먹을 것을 사 준 것을 기억하오? 당신의 부친과 
        나는 동문 사형이었소. 우린 함께 당신의 할아버지 밑에서 배웠소. 기억할 수 있겠소?” 도인은 말했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 납니다.” 오랜 친구의 아들을 만나 수행의 결실을 맺은 것을 보고 그 노인은 기뻐하며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에게 
        법을 전해 준 것이 잘못된 결정은 아니었군. 만약 보통의 법사였다면 사찰에 와서 말썽을 부리고 신들을 쫓아내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 
        많이 참지도 않았을 것이고 가볍게 처벌하지도 않았을 걸세.”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고 그 노인은 흔쾌히 돌아갔다. </p>
      <p>신통력을 배우는 것은 무술을 배우는 것과 같다. 가장 나쁜 것은 경쟁하고 내보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사소한 경우에는 육체의 
        상처 정도겠지만 심할 경우에는 수행자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고 그의 가족까지 해칠 수도 있다. 신통력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신통력을 사용한다면 한순간의 쾌락은 주겠지만 천리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의 영원한 법칙이다. </p>
      <p>한번은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가 초세계의 힘 또는 신통력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힘을 얻고서 그 힘을 조절하고 
        남용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능력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많은 골칫거리가 생길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과에 
        개입함으로써 무거운 업장을 초래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계속 칭찬하면 우리의 자만과 에고는 점점 커질 것이며, 우리의 
        마음 또한 신통력의 차원에 머물러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것을 잊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신통력은 기껏해야 마음의 수준까지밖엔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거기에 집착해서 놓지 못한다면 우리는 수행 상에 극복할 수 없는 장애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 
        모든 깨달은 스승들은 사람들에게 신통력을 배우라고 권하지 않았습니다.” </p>
      <p>입문 이후 스승님의 지시에 따라 도인은 울컥 하는 성질을 조절하기 위해 힘든 투쟁을 해 왔다. 그는 또한 신통력으로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을 그만두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6:53:04 +0900</dc:date>
</item>


<item>
<title>도교 수행자의 전설 -6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80</link>
<description><![CDATA[<br /><p>도인은 스승님을 만나기 전에 20여 명의 도사들을 찾아다녔는데 그들 중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가짜 부부 도사였다. 그 남편은 
        자칭 미륵불의 화신이라 했고 부인은 관음보살이 자기 안에 계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들의 정체는 밝혀졌고 도인은 화가 나서 더 
        이상 돈과 시간을 낭비해 가면서 스승을 찾으러 다니지는 않겠다고 결심하고 15년 동안 산에서 은거했다. </p>
      <p><br /><span class="topic">가짜 미륵불과 관음보살 협잡꾼</span></p>
      <p>20년 전 그 당시 도인은 구도열에 불타고 있었다. 어디에 진정한 스승이나 수행이 깊은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기만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찾아가 배우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 특별난 부부 얘기를 듣고서 곤륜선종의 몇몇 사형들과 함께 그들을 찾아갔다. 
      </p>
      <p>곤륜선종 사형의 친구 중에 타이난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20세가량의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신들린 지 3년이 넘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아들을 고쳐 보려고 신통력이 있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그들은 포모사에 있는 절이란 절은 다 가 보고 
        향도 사르고 시방 삼세제불께 기도도 드렸다. 그러나 아무런 효험도 없었다. 오히려 아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사람은 아무나 때리기 일쑤였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밝은 빛만을 응시하곤 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팔과 다리를 체인으로 묶어서 방에 가두어 두었다. </p>
      <p>가족들은 자칭 큰스승이라고 하는 이들 부부 얘기를 듣고서 아들의 신병을 고쳐 보려고 그들을 초대했다. 이들 부부는 쾌히 승낙하면서 
        말했다. “우리가 지금 바로 가야겠군요!”</p>
      <p>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그들은 30여 명의 제자를 데리고 귀신을 쫓기 위해 타이난 옌첸으로 향했다.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온 집안에 300여 종의 부적이 붙어 있었다. </p>
      <p>자칭 미륵불이라고 하는 그 남자는 타고 있던 향을 한 가닥 쥐고서 귀신 쫓는 주문을 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주문을 외울 수 없도록 그 신들린 청년은 손에 감겨 있던 체인을 그에게 집어던졌다. 다행히도 가짜 ‘미륵불’은 재빨리 피해서 
        맞지 않았지만 그의 옆에 서 있던 그 청년의 매형이 머리를 맞았던 것이다. 그 매형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자 주위는 혼란스러워졌다. 
        거기 서 있던 모든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관음보살 협잡꾼인 그 부인이 관음 주문을 
        외우면 피가 멈출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주문을 외우면 외울수록 피가 더 많이 쏟아졌다!</p>
      <p> 도인은 혼자 생각했다. “당신이 어떻게 관음 주문으로 피를 멈출 수 있소? 그건 해결 방법이 아니오.” </p>
      <p>그 순간 곤륜선종 사형 중 한 사람이 도인에게 말했다. “후 사형, 상황이 위급하네. 자네가 빨리 손을 써 보게. 안 그러면 
        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걸세.”</p>
      <p> 도인은 상황이 위급한 것을 보고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종이를 가져오라고 해서 
        부적을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마침내 피가 멎었고 주위는 조용해졌다. 그 집 주인은 그때서야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자기 집에서 
        좀 쉬었다 가라고 청했다. </p>
      <p>도인은 자칭 큰스승이라고 하는 그 부부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전히 당당하게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서 너무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그는 거기 앉아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싶지 않아 밖에 나와 혼자 산책하면서 화를 가라앉혔다. </p>
      <p>그때 도인이 밖에 나와 있는 것을 옆집 노인이 보고서 도인에게 말했다. “어쩜 당신들은 그렇게 멍청한가! 당신들이 여기 오기 
        전에 그 청년의 병을 고쳐 보겠다고 했나 본데, 온 집안에 부적이 붙어 있는 걸 못 봤나? 신통력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병을 
        고쳐 보려고 했지만 허사였지. 며칠 전 어떤 사람이 칼을 가지고 와서 귀신을 쫓아 보려고 했다가 그 청년이 오히려 그 칼을 낚아채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 사람이 죽을 뻔했다네. 내 생각엔 당신이 다시 안에 들어가서 이 문제를 어리석게 처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걸세”</p>
      <p> 도인은 이 말을 듣고서 더욱더 화가 치밀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오늘 처음으로 그들을 따라왔던 것인데 그들이 
        아무것도 모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승을 찾겠다는 것은 헛된 노력이야.’ 도인은 집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사형들은 여전히 차를 
        마시면서 떠들고 있었다. </p>
      <p>그때 한 사형이 도인 옆에 와서 말했다. “후 사형, 오늘 우리가 일을 잘 해결하지 못해서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네.”</p>
      <p> 도인은 대답했다. “체면을 잃은 것은 내가 아니고 ‘미륵불’과 ‘관음보살’이오.”</p>
      <p> 그러자 그 사형은 부탁했다. “자네가 할 수만 있다면 내 친구를 좀 도와주게. 그러면 정말 고맙겠네.” </p>
      <p>그 사형 말을 듣고서 도인은 마음이 약해져서 “좋습니다! 해보지요. 하지만 보장은 못 합니다.”</p>
      <p> 도인은 향과 지폐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신들린 청년의 인과를 보기 위해 명상하면서 인과의 신께 도움을 요청했다. 깊은 
        명상 중에 도인은 그 청년이 학급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 청년은 그 친구를 달려오던 트럭 
        쪽으로 밀어 버렸다. 그래서 그 친구의 혼령이 복수하려고 그 청년에게 붙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p>
      <p>이를 알게 된 도인은 그 청년의 부모에게 말했다. “당신의 아들 병을 고칠 방도가 하나 있소만, 당신들이 도울 수 있을는지?” 
        당연히 그 청년의 부모는 기뻐하며 도인을 돕겠다고 했다. 그래서 도인은 명상 중에 본 것을 그 부모에게 말했다. 처음에 그의 
        어머니는 그건 그 친구가 부주의해서 일어난 사고라고 반박하면서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p>
      <p>도인은 말했다. “당신이 나를 믿지 않으면 나도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p>
      <p>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더 이상 말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이르고는 겸손하게 “아들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p>
      <p>도인은 말했다. “아직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우선 당신의 가족들이 향을 사르고 그 혼령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십시오. 그리고 혼령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우리 아들이 아직 어리고 뭘 몰라서 그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의 목숨을 다시 돌려줄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아들을 용서하고 놓아주기 바랍니다. 후에 우리 아들이 건강을 
        되찾아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당신의 자식인 양 잘 돌볼 것입니다.’ 당신의 가족들은 그 죽은 친구를 당신의 자식처럼 여기고 
        혼령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십시오.” 그 청년의 부모가 혼령에게 이 모든 것을 말하고 난 뒤 컵을 던졌는데 혼령이 그 제안에 아주 
        기뻐한다는 표시로 모든 컵이 ‘OK’ 자리로 모였던 것이다. </p>
      <p>도인이 그 7개 컵을 보고서 말했다. “빨리 가서 새 짚방석을 사 오십시오.” 새 짚방석을 가져오자 도인은 짚방석 위에서 지폐를 
        태우고 난 후 부적을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짚방석 주위에 칠성과 팔괘를 던졌다. 그런 후 도인은 말했다. “됐습니다. 
        이제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나에게 청년 방 열쇠를 주십시오. 내가 데리고 나오겠습니다.”<br />
        이 말을 듣자 그의 아버지는 “안 됩니다! 들어가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도인은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제 다 해결됐습니다. 
        아들은 나를 치지 않을 것입니다.” 도인은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무사히 데리고 나왔다. 짚방석을 주자 그는 무릎 꿇고 앉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r />
        도인이 그의 체인을 풀어 주자 그는 부모 앞에 엎드려 대성통곡하면서 말했다. “부모님은 내가 사람들을 때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많은 귀신들이 나에게 사람들을 치도록 했던 겁니다. 음식을 거부한 것도 내가 아니에요. 나는 정말로 배가 고팠지만 이 
        귀신들이 내 목을 조르고 음식을 삼키지 못하게 했어요. 나는 매일매일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죽을 수도 없었고 살기도 힘들었어요!”</p>
      <p> 도인은 이 무거운 업장을 해결해 준 후 자신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부적을 그에게 건네주면서 그 부적을 태워서 재를 물에 
        타서 마시라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게도 그의 몸이 빨리 회복되도록 소화가 잘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라고 당부했다. 
        또한 아들의 이름으로 위령제를 올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도인은 집으로 왔다. </p>
      <p>20여 일이 지난 후 그 청년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면서 그의 아버지가 도인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그의 
        부모님은 귀신 쫓는 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을 초대했던 것이다. 도인이 
        그 집에 도착하자 그 ‘관음보살’과 ‘미륵불’도 30여 명의 제자를 데리고 와 있었다. </p>
      <p>주인은 도인에게 감사의 표시로 600만 NT가 든 빨간 봉투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도인은 곤륜선종의 스승 배중선사의 가르침-수행자는 
        天道를 행하는 것이며 남을 돕는 것은 기본 도리다-을 받들어 그 봉투를 사양했다. </p>
      <p>그런데 자칭 ‘관음보살’이라는 그 여자가 재빨리 그 봉투를 가로채서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도인은 이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 부부를 야단쳤다. “당신들 두 사람은 그 청년에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됐소. 그 문제는 내가 해결했는데 당신들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 빨간 봉투를 낚아채다니! 오늘 당신들의 정체를 똑똑히 봤으니 이제부터는 당신들을 내 선생으로 모시지 않겠소.”</p>
      <p> 곤륜선종의 한 사형이 도인에게 진정하라면서 말하기를 “후 사형, 저들은 신경 쓰지 말게. 지금 내 친척집으로 가세. 그 집 
        딸이 신들렸다는데 좀 해결해 주어야겠네. 집은 타이난 근처라네.”</p>
      <p> 도인은 여전히 화가 났지만 천성이 착해 결국 그 여인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절대 그 아가씨의 부모가 그 가짜 
        도사 부부에게 빨간 봉투를 주어선 안 될 것이란 조건을 내세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돈 낭비며 그를 다시 화나게 할 테니까 말이다.</p>
      <p><br /><span class="topic">옥면선녀 하강기(下降記)</span></p>
      <p>곤륜선종의 사형들과 도인 그리고 가짜 도사 부부는 신들린 아가씨의 집으로 갔다. 가짜 도사 부부가 아가씨를 보자마자 마치 그들의 
        도력이 아주 대단한 것처럼 아는 척하면서 말했다. “이 아가씨는 아주 큰 마장에 걸렸소.” </p>
      <p>그녀의 도력은 더 대단했다. 그녀는 코웃음 치며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들은 내가 신들렸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당신들이 신들린 것 같다! 당신들은 성인의 이름을 팔아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의 돈을 갈취했지. 그리고 당신들은 600만 NT가 
        든 빨간 봉투를 가로채고도 모자라 뭔가 더 챙기려고 여기로 왔구먼.”</p>
      <p> 그녀의 말이 끝나자 가짜 도사 부부와 제자들은 얼굴이 붉어졌으며 곤륜선종의 사형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녀는 
        또한 그들을 가리키면서 “너희들은 전문적으로 사람들을 속여 돈을 갈취했어. 그리고 도덕도 양심도 없어. 반면 이 사람들은(도인과 
        곤륜선종 사형들) 비록 좀 멍청하기는 해도 마음이 착하다.”</p>
      <p> 도인은 이 말을 듣고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군. 가짜 도사 부부가 나를 격분시키더니 이제 여기 와서는 
        ‘멍청하다’는 소리를 다 듣고. 정말 속이 거북하군.’ 그래서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문 옆에서 
        혼자 다리를 꼬고 앉아 무심코 사람들이 하는 대로 지켜봤다. </p>
      <p>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나는 당신들 무리 중에서 다리를 꼬고 문 옆에 앉아 있는 저 젊은이만 두려울 뿐이오. 제발 다리를 
        꼬지 마시오. 알겠소?” 이에 도인은 “내가 다리를 꼬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라고 했다. </p>
      <p>그녀는 대답했다. “그러지 마시오. 당신은 손에 7척이나 되는 칼을 쥐고 있소. 당신의 칼을 보니 무척 불편하오. 제발 다리를 
        꼬지 마시오. 오늘 여기 온 사람들 중에 당신만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소.” 그러고 나서 그녀는 가짜 도사 부부를 가리키면서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참 멍청합니다. 어떻게 저들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소? 저들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돈만 챙길 줄 알았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오. 만약 저들이 내 충고를 듣지 않으면 조만간에 저들과 가족은 죽게 될 것이오. 
        다시는 저들과 어울리지 마시오. 당신들이 도를 찾아 수행하기를 갈망한다면 곤륜선종과 더불어 수행을 해야만 하오. 그것이 현명할 
        것이오.”</p>
      <p>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저기 저 사람(도인을 가리킴) 외에는 아무도 모르오. 내 말이 끝나면 그는 내 문제를 도와줄 것이며 
        당신들에게 내가 누군지 말해 줄 것이오.”</p>
      <p> 도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이 여인은 신들린 것이 아니오. 그녀는 천상에서 사명을 받고 왔소. 그녀의 이름은 ‘옥면선녀’이고 
        타이난 사람들을 돕고자 온 것이오.”</p>
      <p> 그녀는 그 즉시 말했다. “그의 말이 맞소. 나는 ‘옥면선녀’이고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돕는 것이오. 하지만 
        나는 ‘신들린 사람’으로 오해받고 있소.”</p>
      <p> 도인은 계속했다. “지금 우리는 그녀가 거주할 곳을 마련해 줘야 하오.” 그래서 곤륜선종 사형들은 그녀가 중생을 구제하려는 
        그녀의 바람을 이행할 수 있도록 절을 지을 땅을 사는 것을 돕기로 약속했다. 이 선녀가 바로 20년 전 그 유명했던 ‘타이난 
        선녀’이다. 그녀는 5, 6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타이난 선녀’가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짜 도사 부부는 말을 듣지 않다가 
        두 달도 채 못 되어 요독증으로 죽었다. </p>
<p>        그러고 나서 ‘타이난 선녀’는 도인과 곤륜선종 사형들을 칭찬하면서 자신들의 스승을 잘 따르라고 말했다. 도인은 그녀에게 물었다. 
        “내 스승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선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어찌 모르겠소? 당신의 스승과 나는 둘 다 천상에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내려왔소. 당신은 당신의 스승을 잘 따르기만 하면 되오. 그것이 옳은 길이지요.”</p>
      <p> 도인은 가짜 도사와 이별을 한 후 도를 배우기 위해 맹목적으로 스승을 찾아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우서산에서 15년 동안 수행했다. 
        어느 날 그는 삼매 중에 고불(古佛: 처음 이야기했던 바로 칭하이 스승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바로 그는 스승을 찾아 
        입문을 받았다. </p>
      <p><br /><span class="topic">화신 스승님이 5불을 외우시다</span></p>
      <p>10년 넘게 명상을 하고도 도인은 3세계 이내의 많은 천당과 지옥만 가 봤을 뿐이었다. 그러나 관음법문에 입문한 후 그는 더 
        높은 세계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문 후 어느 날 도인은 욕심이 생겨 더 높은 세계에 도달할 생각으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명상했다. </p>
<p>        마침내 어느 날 명상 중에 화신 스승님이 그의 앞에 나타나셨다. 도인은 스승님께 물었다. “스승님께선 대륙(중국)에 가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까?” </p>
      <p>스승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필요하다면 미국도 곧바로 갈 수 있어요.”</p>
      <p> 도인은 어리석게 물었다. “미국에 가려면 비행기로도 10시간 이상 걸린다는데, 어떻게 제가 명상하고 있는데 스승님께서 즉각적으로 
        나타나십니까? 참 불가사의합니다!”</p>
      <p> 그 다음날 그는 더 높은 세계로 가려고 더욱 열심히 명상했다. 하지만 3세계밖에 갈 수 없었다. 나흘째 되는 날 명상 중에 
        전에는 가 본 적이 없는 다른 길이 갑자기 나타났다. 호기심이 생겨 그쪽으로 걸어가 봤더니 동굴 양쪽에 선재동자와 용녀가 서 
        있었다. 그들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동굴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입구가 열렸다. 도인은 
        생각했다. ‘입구가 열리는 걸 보니 들어가도 되겠지.’</p>
      <p> 도인은 무심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발을 들여놓자마나 입구는 재빨리 닫혔다. 주위가 즉시 깜깜해졌다. 손을 뻗어 봤지만 
        손가락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p>
      <p>도인은 암담했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배운 것을 모조리 다 사용해 봤다. 마법, 주문, 무드라 등 온갖 것을 다 해봤다. 
        그가 기억하는 온갖 주문을 다 외워 보고 그가 알고 있는 무드라를 손가락이 꼬일 때까지 해봤다. 하지만 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가망이 없자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불안해졌다. 그의 일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p>
      <p>할 수 없이 스승님께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정하고서 스승님의 이름을 외우면서 자신을 구해 줄 것을 기도했다. 
        스승님의 이름을 40여 차례 외우자 갑자기 수만 마일로부터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그리 멍청한가요. 내가 가르쳐 
        준 5불을 외울 줄도 모르나요?” </p>
      <p>도인은 어쩔 줄 몰라서 “저는 원래 멍청합니다. 입문한 후로 저는 5불 중 하나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제발 저 혼자 5불을 
        외라고 하진 마십시오.”라고 했다.</p>
      <p> 스승님은 긴 한숨을 쉬셨다. “아휴, 정말 멍청한 제자로군!” 그런 후 수만 마일로부터 마지막 2불의 이름이 들려왔다. 스승님이 
        부처의 명호를 다 외우자 동굴 입구는 자동적으로 열렸다. 그리고 도인은 즉시 밖으로 뛰어나왔다. 다시 그 안에 갇힐까 봐 두려웠다. 
      </p>
      <p>도인은 삼매에서 깨어난 후 5불을 진지하게 다시 배웠다. 그는 거의 100가지 주문을 외울 수 있었는데, 그 중의 어떤 주문도 
        5불을 다 합한 것보다 길었다. 그런데 왜 짧은 5불을 기억할 수 없었을까? 참 이상한 일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6:50:00 +0900</dc:date>
</item>


<item>
<title>한 불한당의 개심(改心)-1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9</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3300">타이난 암흑가의 대부 ‘어린 양’의 이야기</font></p>
      <p>‘어린 양’의 성(性)은 우(吳)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주 제멋대로였고 싸우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는 교사를 때려 
        퇴학을 당했다. (수십 년 전의 보수적인 농촌에서 윗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범행이었다.) </p>
      <p>십대 때부터 그는 암흑가에 섞이기 시작했다. 그는 싸움과 살인으로 나날을 보냈다. </p>
      <p>그가 좀더 나이를 먹었을 때, 그의 폭력적이고 과격한 성격으로 인해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술집과 카페 등에서 보냈다. 그는 
        나이트 카페의 보디가드가 되었고 강탈한 돈으로 먹고살았다. </p>
      <p>그 당시에 그와 그의 동료들은 해군 대위 장교를 살해했는데, 그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감옥에서도 여전히 
        회개하지는 않고 종종 싸움을 일으키곤 했으며, 말썽을 부리고 간수의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좋지 않아 그는 결코 
        가석방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타이난, 타이쭝, 기륭, 펑후 등지의 감옥에서 형을 살았다. </p>
      <p>그는 석방된 후 더욱 나빠졌다. 많은 암흑가 친구들의 지원으로 도박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몇 십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는 매일매일 먹고 마시고 윤락가와 도박장을 전전하며 보냈다. 만취와 도박의 삶이었다. </p>
      <p>수십 년이 지난 후 그는 온갖 병에 걸리게 되었고 거의 죽게 되었다. 얼마 후에 한 친구의 소개로 그는 타이난 옌쳉의 ‘완니엔쿵(萬年宮)’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고, 영적 수행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병고에 시달리는 동안 그는 자신의 예전 행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는 부처님께 기도하러 ‘완니엔쿵’을 방문하곤 했고, 나무와 꽃을 가꾸면서 
        주위 환경을 돌보기도 했다. </p>
      <p><br /><span class="topic">관음보살이 나타나 깨달은 스승이 올 것이라 예언하다</span></p>
      <p>몇 년이 지난 후 어느 날 오후 그가 평상시처럼 기도드리러 ‘완니엔쿵’을 방문하러 가고 있을 때 갑자기 그 앞에 하얀 빛이 
        출현했다. 조심스럽게 관찰해 보니 관음보살님의 화신이 그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우 제자여, 요 몇 년 동안 선함과 수행을 
        향해 당신은 신실한 참회를 해 왔다. 아주 기쁘게 생각한다. 오늘 나는 특별히 당신에게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려고 하니 이를 
        명심해서 들어야 한다. 내년에 외국 출신의 한 여자 스승이 강연을 하러 올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스승이며 또한 당신의 미래의 
        스승이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만 한다. 그것을 잊지 마라! 잊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녀는 사라졌다. </p>
      <p>그 당시 이상한 현상을 겪은 후에 그는 감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비웃으며 돌았다고 말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대로 과연 다음해에 스승님이 포모사 전역을 돌며 강연을 시작하셨다. </p>
      <p>그는 ‘칭하이 스승님’이 ‘관음보살님’이 말한 그 깨달은 스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스승님은 타이베이의 스쳰홀(實踐堂講)에서 
        우연히도 강연 중이었다. 아내의 권유로 우 사형은 아이들과 함께 강연을 들으러 갔다. </p>
      <p>강연이 시작될 때 갑자기 일군의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위층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스승님이 매우 화가 
        나셨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승님은 그 사람들을 지적하면서 “마야, 마야, 마야, 당신들 모두는 마야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몇 번 스승님의 손짓이 있었다. 야단을 맞은 후 그들은 곧 조용해졌고 감히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 </p>
      <p>그 당당한 태도와 압도적인 분위기는 암흑가에 섞여 왔었던 절망적인 불한당에게 사실상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러고 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그때 스승님의 얼굴이 갑자기 변하여 석가모니불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스승님이 
        평범한 분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좀더 집중해서 그녀의 강연을 들었다. 그후에도 그는 스승님의 모습이 ‘관음보살’과 
        ‘노자’, ‘문수보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을 보았다. 이 순간에 그는 스승님이 ‘관음보살’이 일년 
        전에 자신에게 알려 주었던 미래의 스승님임을 확신했다. 그때부터 그는 스승님을 따라 수행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p>
      <p><br /><span class="topic">온 가족이 수행을 하고 개도 채식을 하다</span></p>
      <p>초기에 그는 항상 전과 기록이 있는 자신의 과거로 인해 괴로움을 당했다. 공식적으로 스승님을 자신의 스승님으로 감히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입문하면 스승님이 제자들의 업장을 짊어져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감히 입문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나쁜 행위로 
        스승님께 해가 될까 봐 그는 두려웠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입문을 하고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그는 용기를 내어 스승님께 
        여쭈었다. 이처럼 죄가 많은 사람도 입문하도록 허락하시어 제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p>
      <p>스승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수행하기를 진심으로 신실하게 갈망하고 지금부터 오계, 즉 살생하지 마라, 훔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마약을 복용하지 마라)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마라 등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킬 수 있고 평생 동안 
        채식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입문할 수 있습니다.” </p>
      <p>입문 후에 그는 집으로 와서 여러 해 동안 돌봐 왔던 자기 집 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스승님께 입문했고 오늘 이후로 
        채식주의자가 될 거다. 너도 역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매우 이상하게도 이 개는 이전에는 매일 생선과 고기만 먹어 왔고 
        보통 고기가 없으면 먹으려 하지 않았었는데, 그때부터 채식을 하게 되어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때 우 사형은 생각했다. 
        ‘개조차도 그것을 할 수 있는데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개보다 못한 인간이 되겠구나.’ 그때부터 그는 더욱 부지런히 
        수행할 것을 결심했다. </p>
      <p>그 당시 그에겐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여덟 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는데, 그 결과 타락해서 폭력조직 흑사회(黑社會)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녀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일학년 때부터 그는 아이를 도와줄 가정교사를 두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그를 닮아서 공부하는 데는 아무런 흥미도 보이질 않았다. </p>
      <p>1학년을 마치고 나서도 그 아이는 하나부터 열까지도 헤아릴 줄 몰랐다. 매번 시험에서 5점이나 10점을 얻었고 가장 높을 때조차 
        20점을 넘지 못했다. 이것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다른 사람을 부추겨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시켜 많은 가정을 
        파괴했던 것을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아픔을 느꼈다. 이제 그로 인해 그의 아이가 그런 상태가 된 것이다. 이것은 전지전능한 신의 
        응보였다. 그러나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고, 그는 그의 운명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p>
      <p>그러나 그의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갑자기 큰 변화가 생겼다. 학교 시험 성적이 항상 70점에서 80점 사이였고 때로 90점이나 
        100점의 좋은 결과를 보여 주기까지 했다. 우 사형은 갑자기 일어난 변화에 놀라워하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너 시험 볼 때 
        다른 사람 답안을 훔쳐보아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 아니냐?” 그 아이는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우 사형은 “그러면 
        어떻게 해서 갑자기 이렇게 좋은 점수를 받게 되었지?”라고 물었다. </p>
      <p>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 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연이은 시험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우 사형은 속으로 아주 기뻐하면서도 
        아이가 실제로 그런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p>
      <p>어느 날 그는 아이가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좋은 성적을 얻게 된 이유를 묻게 되었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연꽃에 앉아서 나를 가르치시는 부처님(스승님의 화신을 의미함) 덕분이에요.” 사실의 근원은 결국 밝혀졌다. 
        그러나 아이가 그 비밀을 누설한 후에 시험 성적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이 때문에 우 사형은 스승님께 그의 아이를 도우시어 
        이전처럼 좋은 경험을 갖도록 해주시기를 특별히 요청했다. </p>
      <p>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입문할 때에 나는 이미 각별히 지시했어요. 수행을 시작한 후에는 그 어떠한 내적ㆍ외적인 체험을 발설해서 
        다른 사람이 알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에요. 그러면 체험이 없어진다고 했죠. (스승님이 허락하신 경우는 제외하고) 당신은 
        나의 지시에 귀기울이지 않았어요. 이제 어떠한 체험도 없을 겁니다. 당신은 이 결과를 당신 스스로 책임져야 해요. 부처나 보살들이 
        돌보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마세요.”</p>
      <p> 물론 우 사형은 스승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말이 많고 아들의 체험을 확인하고자 했던 자신을 책망했을 뿐이다. 오히려 
        그는 아들을 말없이 잘 돌보면서 스승님께 더욱 감사했다. 그는 아내와 상의한 끝에 암흑가 흑사회(黑社會)의 생활을 멀리하고 수행에만 전념하고자 
        온 가족이 아예 영원히 시후 센터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p>
      <p>시후 센터로 들어온 후 우 사형은 지난날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일자무식인 데다 배운 기술도 없었다. 사실 수십 년 간 그가 배운 거라곤 싸움질하고 도박하고 여자와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뿐이었다. 
        그가 그런 와중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스승님께서는 시기적절하게 해결책을 주셨다. 스승님은 그가 나무 심는 것을 좋아하는 줄을 
        아시고는 그가 무료하지 않도록 그에게 매일 나무와 풀에 물을 주고 가꾸도록 정원 일을 맡기셨다. </p>
      <p>우 사형은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는 뜻에서 아주 신실하고 열심히 정원을 가꾸었다. 그는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스승님을 기쁘게 
        하고 동수들이 명상하기에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다. </p>
      <p><br /><span class="topic">제자의 기도에 응하시어 귀신을 쫓다</span></p>
      <p>그는 처음 시후 센터에 들어왔을 때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서 3시간 명상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밤 생활에 익숙해 있었으며, 잡담하는 나쁜 습관도 하루아침에 고칠 수가 없었다. 또한 산림 속에서 수행하는 생활도 
        익숙하지 않았다. <br />
        매일 아침 동수들이 조용히 명상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그는 20분을 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는 무안해서 
        사람들과 함께 명상홀에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텐트 안에서 명상을 해보려고 애썼다. </p>
      <p>어느 날 명상하고 있는데 키가 10피트나 되는 많은 귀신과 마귀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들은 그를 갈가리 찢고 삼키려고 했다. 
        그가 아무리 흑사회 폭력조직의 대부로 그리고 폭력적이고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지만-경찰과 형사들까지 두들겨 패고 죽였다 -푸른 얼굴에 
        이빨이 튀어나온 거대한 마귀들의 집단을 대하고 보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들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울면서 고함을 쳤다. “스승님, 살려 주세요!” 그러자 흰 광선이 내리비쳤다. 연꽃 속에 앉아 계신 스승님과 곳곳에 서 있는 
        승려들이 하늘에서 천천히 빛을 타고 내려왔다. 스승님이 그 마귀들한테 뭔가를 말하고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시자 곧 사라져 버렸다. 
        이때 깨어난 그는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p>
      <p>이 일을 회상할 때마다 그의 가슴은 후회로 가득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도박장을 쫓아다니며 집안을 몰락시키고 부모와 친지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이제 ‘도살 칼’을 내려놓고 수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악업이 아주 즉각적으로 
        왔던 것이다. 그를 구해 줄 스승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구해 준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금부터 
        더욱 열심히 명상하고 개과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시 명상홀에서 대중들과 함께 명상하기로 
        했다. </p>
      <p>그러나 그의 결심은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명상 습관이 몸에 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조용히 앉아 명상을 
        오래 하고 싶었지만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견디지를 못했다. 5분, 10분 후면 일어나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래서 그는 
        매번 그러기도 창피하고 해서 명상 시간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가서 양동이를 엎어 놓고 그 위에 앉아 있었다. </p>
      <p><br /><span class="topic">스승님이 그에게 과일을 주신 후 엄청난 진보를 하다</span></p>
      <p>어느 날 그가 꽃과 나무를 돌보고 있는데 마침 스승님께서 지나가셨다. 스승님은 아주 큰 오렌지를 하나 따서 그에게 주면서 말씀하셨다. 
        “우 사형, 받아요. 이걸 꼭 먹어요!” 그는 너무나 행복해서 공손하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그러나 오렌지를 손에 
        받아 들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 오렌지는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너무 써서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 
        그는 오렌지를 얇게 썰어서 물과 설탕으로 조리해 즙을 마셨다. </p>
      <p>그날 그는 평소대로 사람들과 함께 홀에서 명상을 했다. 자리에 앉았다가 얼마 후 눈을 떠 보니 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홀을 나오면서 이런 황당한 생각을 했다. ‘아무리 나를 경멸하고 나와 명상하기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다들 딴 데 가서 명상할 
        수 있을까?’ </p>
      <p>그런데 그가 식당을 지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 30분이었다! 저녁 명상 시간은 7시부터 9시까지였다. 견디지를 
        못해 화장실로 도망가서 숨고 하던 그가 아니 웬일인가? 그날 밤 그는 연달아 3시간 반을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p>
      <p>그 다음날 아침 그는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계속 앉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며칠 계속되었다. 그는 정말 기뻤다. 그렇게 
        빨리 명상이 진보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전에는 10분도 채 못 앉아 있었는데 겨우 몇 달이 지난 지금 두세 시간을 
        앉아 있을 정도로 진보했던 것이다. </p>
      <p>그는 이 불가사의한 변화를 몇몇 동수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이 “우 사형, 아직도 모르겠소? 당신이 그렇게 
        빨리 진보한 건 스승님이 주신 오렌지를 먹었기 때문이오.” </p>
      <p>그때서야 우 사형은 깨달았다. 그가 수행을 잘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갖도록 스승님께서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축복을 해주신 
        것이다. 그러나 비록 불보살이 나타나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축복해 주었지만 그의 수행심은 그렇게 강하지 못했다. 한번은 일을 
        하고 있다가 이전의 암흑가 생활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매일 특급 호텔에서 잠을 자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일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이트클럽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산속에서 야영 생활을 하며 조그만 텐트에서 
        잠을 자야 하고 별별 규칙이 다 있어 거기에 따라야만 했다. 그래서 우 사형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뭣 때문에 센터에서 
        이 고생을 해. 바보 같은 짓이야.’</p>
      <p> 우 사형은 다음날 몰래 타이난으로 돌아가려고 계획했다. 그래서 옛날 친구들을 찾아 다시 어울릴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스승님께서 갑자기 언덕을 내려오시어 우 사형을 보시고는 “우 사형, 도망가면 안 돼요!”라고 말씀하셨다. </p>
      <p>우 사형은 어안이 벙벙하여 얼떨결에 “아닙니다, 스승님. 저는 도망가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p>
      <p> 그러자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좋아요! 도망가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말했으니까.” </p>
      <p>우 사형은 머뭇거림 없이 “예, 저는 도망가지 않습니다.”라고 했고, 스승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는 딴 곳으로 바삐 가셨다. 
      </p>
      <p>우 사형은 너무 놀랐다. 마치 뭔가 잘못한 어린애가 부모한테 들킨 것 같았다. </p>
      <p>그러고 몇 달 후 또 다른 일이 있었다. 다른 사형과 오해가 있어서 홧김에 그의 아들을 데리고 짐을 꾸려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 당시엔 스승님이 미국에서 강연 중이셨다. 그래서 짐을 꾸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지난번에는 스승님께서 나를 잡았지만 
        지금은 여기 계시지도 않으니까 지금 도망간다 해도 미안할 건 없지. 스승님이 정말 무소부재하셔서 내가 스승님을 볼 수 있다면 
        몰라도 안 그러면 난 결단코 떠날 거야.’</p>
      <p> 그런데 그의 아들이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보따리를 집어던지고 언덕으로 달아나 버렸다. 우 사형은 아들을 쫓아갔다. 얼마를 
        쫓아갔는데 갑자기 커다란 구아바나무 밑에서 긴 도포를 입고 흰 모자를 쓴 어떤 사람이 부채를 부치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거기서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분은 바로 스승님이셨다. 우 사형은 놀라는 한편 너무나 부끄러웠다. 또다시 붙잡혔던 것이다!</p>
      <p> 그는 정신없이 합장하고는 스승님께 사과를 드렸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다시는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스승님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p>
      <p>우 사형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얼마 안 있어 또다시 흑사회 조직을 배회하며 생사고해에서 허우적거릴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br />
        스승님은 그가지난날에 아무리 많은 죄를 범했을지라도 항상 화신을 나투시어 그를 구해 주셨다.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는 어느 누가 
        그런 사랑과 힘으로 그를 마야에서 구제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그를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p>
      <p>앞으로도 수행을 방해하는 많은 장애들이 있겠지만, 언제나 스승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는 비할 데 
        없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p>
      <p>흑사회에서 수십 년을 몸담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감옥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마약에 중독되지 않은 걸 그는 매우 다행스럽게 느꼈다. 
        그는 감옥에서 마약에 중독된 친구를 하나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마약 때문에 집안이 몰락했는데, 여러 번 마약을 끊으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일단 마약에 중독되면 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살과 뼈를 뚫고 들어와 온몸을 물어뜯는 것 같고, 스스로 
        온몸을 긁어 상처가 나도록 한다. </p>
      <p>그 친구가 한번은 마약을 끊으려고 시도했었는데 마약의 금단 증세(욕지기, 발한, 허탈 등)가 발작하자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고의로 
        2층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팔이 부러졌는데도 그는 마약을 끊을 수가 없었다. </p>
      <p>우 사형은 이 친구의 상태를 지켜본 후 마약 보기를 마치 역병처럼 여겨 감히 손도 못 댔다. 우 사형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단지 호기심이나 영웅심에서 마약에 탐닉해서는 안 된다. 그 대가는 너무 엄청나고 끔찍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6:44:05 +0900</dc:date>
</item>


<item>
<title>어느 불한당의 개심(改心)-2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8</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3300">타이난 암흑가의 대부 ‘어린 양’의 이야기 (2)</font><br /><br />
        스승님은 초기 홍법 시절에 재소자를 늘 방문하셨다. 스승님은 영적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이외에도 비스킷과 사탕도 나누어 
        주셨다. 이 세상의 중생들이 갈구한 까닭에 스승님은 쉴 새 없이 바쁘시고 해외로 끊임없이 여행하며 강연하셨다. 비록 스승님이 
        교도소를 방문할 시간이 없더라도 재소자에 대한 스승님의 배려는 지속되었다. 스승님은 동수들에게 틈나는 대로 당신을 대신해서 그들을 
        찾아보라고 지시하셨다. 한때 재소자였었던 입문자들은 악이 선으로 변화된 그들 자신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재소자들에게 용기를 
        주도록 요청받았다. </p>
      <p>이런 이유로 우 사형에게 이번 여행에 동참하자고 부탁했다. 준비를 담당한 사형이 이번 여행의 취지를 그에게 설명하며 교도소에서 
        강연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뜻밖에도 그는 그 자리에서 딱 잘라 거절했다. 그는 차후의 부탁마저도 계속 거절했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교도소에서 강연한 다음에 웃음거리가 되고 망신을 당해서 또다시 폭력 조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었다. 그는 수줍음을 타서 
        대중 앞에서 말할 수 없다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부탁을 거절했다. 그리하여 책임 맡은 사형은 스승님께 상황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이런 일의 숭고한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스승님은 다음 메시지를 그에게 일러 주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이야말로 
        당신이 살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당신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당신의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러 갈 때는 마음으로 겸손해야 하고 절대 거만해서는 안 됩니다.”</p>
      <p> 우 사형은 스승님의 이런 전갈을 받고는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 일을 완벽히 처리하고 대중 공포증을 없애기 위해 
        그는 아내와 아들을 청중으로 가상해서 그 앞에서 여러 차례 연습했다. 연설에 대한 그의 반응은 언제나 “정말 두렵군.” 하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그는 더 이상 아내와 자식을 괴롭히기가 부끄러웠다. 그는 아무도 없는 한밤중까지 기다렸다. 
        몰래 빠져나가 전봇대에다 대고 연설 연습을 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집에서 스승님께 축복과 감응을 기원하는 명상을 했다. </p>
      <p>어느 날 그는 좌절감을 느껴 아내에게 불평했다. “지금껏 연습한 게 전혀 만족할 정도가 아니라서 갈 생각이 없소!” 그러자 
        아내는 반박하며 말했다. “이건 스승님이 주신 숙제예요. 어떻게 당신이 거절할 수 있어요? 난 당신이 평소에 말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에 말하지 않겠다는 거예요?”</p>
      <p> 이것은 스승님이 주신 숙제였기 때문에 그는 감히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스승님께 도와 달라고 명상에 몰두했다. 
        다음날 그는 준비를 맡은 사형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전했다. “당신 부인도 여자 재소자에게 연설해도 된다고 스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부인은 이 말을 듣고는 새파랗게 질려서 우 사형보다 더 긴장했다.</p>
      <p> 다음날 아침 일찍 우 사형과 작업 단원은 시간에 맞춰 타이베이 교도소에 도착했다. 교도소 간부는 그들을 귀빈실로 안내하며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각각 남자 감방과 여자 감방으로 갔다. 이에 우 사형은 감정이 
        고조되었다. 이전에 교도소에 올 때는 항상 재소자의 신분이었지만 이번에는 귀한 연사의 신분으로 왔다. 세상일이란 변화무쌍해서 
        예측할 수가 없다. 그는 걸어가면서 지난날 교도소에서의 추억을 회상했다. 그런 동안에 그는 어느새 강연장에 이르렀다. </p>
      <p>우 사형이 강단에 올라 말하기 시작하자 재소자들은 적대감과 무관심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박수 소리도 기계적으로 울렸다. 형용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가 강연장을 엄습했다.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말문을 열지 못하게 억누르는 듯했다. 그가 곧바로 
        스승님께 가피를 기원하자 이내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는 재소자들에게 자신의 인생 역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어떻게 폭력 사회에 
        몸담게 되었고 어떻게 해서 수행을 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어떻게 칭하이 무상사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p>
      <p>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위기는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다. 재소자들은 흥미를 가지고 주목해서 경청하기 시작했으며 표정도 한결 누그러졌다. 
        연설을 마치자 그는 모든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것은 그에게 용기를 주고 인정한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였다. 
        어떤 재소자들은 작업 팀을 도와 먼저 자진해서 강연장을 청소했다. 우 사형을 알아본 몇몇 재소자들은 다가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중 한 명은 그에게 달려와서 “안녕하세요. 대장! 나도 석방되면 꼭 칭하이 무상사 센터를 찾아가겠어요.”라고 말했다. 우 
        사형은 환영하겠다고 기쁘게 답했다. </p>
      <p>교도소에서의 첫 연설을 마친 후 우 사형이 받은 은총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그는 이 뜻 깊은 사명을 이렇듯 순조롭고 성황리에 
        마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이번 행사가 믿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스승님의 권유가 없었다면 그는 선행을 하고 남을 
        이롭게 하려는 것을 꺼려하는 나쁜 성격을 바로잡을 용기와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대중 공포증까지 이겨 냈다. 
      </p>
      <p>이번 일로 우 사형이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이라면 이런 사명을 다하는 동안 스승님과 하나 되는 은총을 느끼고 스승님의 헌신적이고 
        전능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타이난 교도소에 연설하러 갈 때 그는 무안할 때까지 차 안에서 줄곧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의아해했다. ‘나는 예전에 교도소에서 허구한 날 심한 벌을 받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처럼 행동하고 있을까?’ 스승님이 언젠가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가 지금 바른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 영혼이 알기 때문에 
        은총이 넘쳐 운다고 했다. </p>
      <p>우 사형이 지아이(嘉義) 교도소에서 연설할 때 어떤 입문자는 그가 연단에 섰을 때 강력한 빛이 그를 씻어 주는 걸 목격했다. 그는 
        빛 속에서 훨씬 젊어 보였으며 스승님의 화신이 그의 뒤에 서 계셨다. 우 사형이 그것을 늘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남을 
        위해 이로운 일을 하면 할수록 그는 심신이 한결 편하게 느껴지고 죄의식이 점차 줄어든다. 그래서 스승님의 화신이 언제나 그를 
        축복하고 그의 업을 씻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남을 돕는다는 건 실제로는 자신을 돕는 것입니다.”라는 스승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다. </p>
      <p>언젠가 우 사형이 화롄(花蓮) 보안 교도소에서 연설했을 때 몇몇 재소자가 그에게 귀띔해 주었다. “대장, 당신은 신쭈(新竹) 소년원을 
        방문해야 합니다. 그곳 상황은 아주 심각합니다. 그들에게도 당신이 오늘 우리에게 해준 말을 하세요. 그들 대부분이 감명을 받아 
        나쁜 길로부터 인도될 것입니다.” 이 사랑의 충고로 말미암아 우 사형은 신쭈 소년원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우 사형이 신쭈 소년원에서 강연 신청을 하려 할 때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 지역의 동수가 장시간 신청했지만 승인을 받지 못했다.  </p>
      <p>신실함이 참으로 작용했거나 아니면 스승님의 놀라운 안배가 보이지 않게 뒤에서 움직였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인 마잉지우(馬英九) 씨는 
        얀카오(燕巢) 교도소를 순시하고 있을 때 마침 그곳에서 연설하고 있던 우 사형과 마주치게 되었다. 마 장관은 그와 악수하며 그를 따뜻이 
        격려해 주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쭈의 동수는 소년원으로부터 연설 신청에 대한 허가서를 받았다. 마 장관이 신쭈 소년원에 
        통화하여 우 사형이 강연할 수 있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다행히 포모사 정부가 현명하여 재소자들을 진정으로 보살핀 나머지 삐뚤어진 
        길로 접어든 소년들을 살아 있는 스승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축복을 허락했다. </p>
      <p>우 사형의 강연이 전국에 있는 교도소에서 연이어 이루어졌다. 우 사형이 차멀미를 하는 관계로 장거리 여행은 그에게 심히 괴로운 
        일이었다. 그의 고질병이 이따금 재발하여 과로가 악화되었다. 언젠가 그는 이란에 강연하러 갔을 때 너무 지쳤다고 불평했었다. 
        그런데 그는 스승님이 초기에 온갖 곳을 다니시며 강연했을 때를 한 사형이 회상하는 것을 들었다. 스승님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야영을 하셨으며, 체류하면서 설법할 센터도 하나 없었다. 그의 두 뺨에는 양심의 가책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 있던 온갖 불평이 순식간에 완전히 사라졌다. </p>
      <p>이제까지 우 사형은 타이베이, 타오웬, 카오슝, 얀카오 교도소, 지아이, 타이난, 이란, 화롄과 녹색 섬과 신쭈 소년원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연설을 마칠 때마다 “나의 죄를 속죄할 다음 기회는 어디가 될까?” 
        하고 궁금해했다. 참다운 행복은 남에게 봉사하고 이로움을 주는 일을 하는 데 있다고 그는 진정으로 느끼고 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8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6:37:08 +0900</dc:date>
</item>


<item>
<title>무림의 고수 VS 당대의 참 스승</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7</link>
<description><![CDATA[<br /><p> <font color="#FF6600">태극권 사범의 실화</font></p>
      
      <p>츄 사형은 태극권 사범인 류석형 선생의 수제자이다. 포모사 경찰들도 그에게 가서 무술을 배운다. 그는 20년 이상 혹독하게 
        쿵푸를 연마한 후 높은 수준에까지 이르렀는데 더 이상 진보가 없었다. 칭하이 무상사를 만나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전까지는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p>
      <p>언젠가 스승님께서 츄 사형에게 무술을 연습하자고 청하셨다. 운 좋게도 츄 사형은 스승님과 몇 가지 동작을 겨룰 기회를 갖게 
        되었다. </p>
      <p>그때 그는 너무나 놀랐다. 스승님은 처음이신데도 ‘기’의 운용과 자세, 스타일 모든 면에서 태극권의 정수를 완전히 터득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p>
      <p>다른 사람들은 수십 년을 열심히 연마해도 그런 결과를 얻기가 어려운데, 스승님은 모든 방면의 스승들 중에 아주 드문 스승임을 
        입증하셨다. 그 이후로 그는 스승님을 더욱 신실하게 따르면서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이 쿵푸의 최고수라고 만나는 사람들한테마다 
        말한다. </p>
      <p><br /><span class="topic">무술을 하는 집안에서 자라다</span></p>
      <p>츄 사형은 태어날 때부터 줄곧 무술을 하는 집안에서 성장했다. 자손 대대로 그의 집안 식구들은 무술을 매우 열심히 연마했다. 
        그가 어렸을 때 여러 가지 무술을 배우도록 그의 부친과 숙부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중국 본토에서 쿵푸의 대가들을 데려오려는 계획을 
        세웠다. 10년 이상 이들의 생활비와 교습비를 대기 위해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거의 다 팔았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숙부들의 의형제들도(그들 역시 같은 선생 밑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재산을 팔아야 했다. </p>
      <p> 이런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그 가족들은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면서 열심히 연마를 했다. 대가족이 사는 중국 전통 가옥에서는 쿵푸 연습하는 소리가 항상 울려서 
        무술 도장을 방불케 했다. 츄 사형의 부친과 숙부들은 서로 자주 연습 경기를 했다. 그들 소유의 집에 조그만 입구 하나만 있는 
        방이 있었음을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의 부친과 숙부들은 무술 사범이나 증조부와 연습 경기하러 그 어두운 방으로 불려 들어가곤 
        했다. 많은 무리들 중에 누가 그 방에 들어갔는지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누구든지 지거나 더 이상 배겨 낼 수 없는 사람은 
        그 작은 구멍으로 나오곤 했다. 훈련은 아주 엄격했다. </p>
      <p>츄 사형은 어렸을 때 약하고 자주 아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는 너무 자주 아파서 한 학기에 2주일은 결석을 했다. 그는 
        너무나 약해서 햇볕 아래 잠시만 서 있어도 쓰러지곤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이후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지칠 줄 모르고 
        무술을 연마했다. </p>
      <p> 어렸을 때는 소림권을 했지만 14세에 가라테로 바꿨다. 일본인 가라테 사범의 혹독한 훈련을 거치는 동안 두 
        달이 채 되기도 전에 5, 6백 명의 학생들 중 절반도 남지 않았다. 18개월 후에는 겨우 50명만이 남았다. 학생들에 대한 
        사범의 요구는 아주 엄격했다. 만일 누군가 용납할 만한 이유 없이 결석하면 다음날 사범에게 나무 막대기로 맞았다. 연습하는 동안 
        한 동작마다 500번을 반복해야 했다. 학생들은 자주 서로 대련해야만 했다. 부러진 코와 부은 얼굴은 흔한 모습이었고 손가락은 
        벽돌 격파와 같은 심한 훈련으로 변형되었다. </p>
      <p><br /><span class="topic">태극권과의 첫 만남</span></p>
      <p>무술 도장에서 연마하는 동안 그는 절대 결석하지 않았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하고 집중해서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성공하기 
        원한다면 어려운 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인내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 결과 수련한 지 몇 년 안 되어 가라테 3단을 땄다. 이런 
        성공을 거두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기량을 시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포모사 전역에 있는 많은 무술 도장을 찾아다녔다. </p>
      <p> 
        그가 20세가 되던 해 어느 날 태극 도장에 가서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태극권 동작을 보니 아주 섬세하고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아 태극권을 다소 깔보았다. 그리고 태극권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사람들이 칭찬하는지 의아했다. 수업이 끝난 후 
        츄 사형은 여전히 납득이 안 돼 무례하게 태극권 사범에게 자신과 기량을 겨루겠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강력한 가라테 동작이 태극권의 
        부드러운 동작 앞에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는 바윗돌처럼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모든 공격은 태극권의 힘에 눌려 효력이 
        없게 되었다. 그는 태극권 사범에게 그 자리에서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p>
      <p> 츄 사형은 대결 이후에 완전히 납득을 했다. 그는 태극권은 
        아주 심오하고 경이로워서 100g 정도의 힘으로 500kg 정도의 힘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시 그는 태극권 사범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p>
      <p> 그 사범은 그가 매우 신실한 걸 보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 사범이 되기를 원하면 우리 
        도장의 관장을 소개시켜 드리겠소.” 이렇게 츄 사형은 태극권 최고 사범인 류석형 선생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p>
      <p>막 시작했을 뿐인데도 츄 사형은 도장 내에서 류 사범과 동급인 사람들과 연습할 수 있는 특별 허락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는 
        매우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빠른 진보를 할 수 있어서 기뻤지만 태극권은 가라테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라서 내심 불안했던 
        것이다. 태극권은 유연함과 부드러움, 가벼움을 강조한다. 반대로 가라테는 힘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며 잔인함과 격렬함, 
        딱딱함을 강조하고 있다. </p>
      <p>이제 그는 태극권을 시작했으니 그가 전에 배운 것을 완전히 버려야 했다. 짧은 시간 내에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러나 배우고자 하는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한 이보다 더 큰 장애도 극복할 수 있다. 츄 사형은 말하기를, 20년 이상을 진지한 
        태도로 가라테 동작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태극권의 심오한 정수를 배우는 데만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p>
      <p> 이는 스승님께서 
        강연 중에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영적 수행에 있어서 여러분은 자유롭게 자신의 이상적인 방법과 스승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여러분이 어떤 길을 가기로 결정하면 거기에 여러분의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거기에서 빗나가거나 
        동시에 양다리를 걸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수행에 있어서 바르지 않은 태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의 힘을 집중시킬 수 없고 
        수행에 있어 진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p>
      <p><br /><span class="topic">고도의 집중과 부지런한 수행을 통해 위대한 제자는 스승을 빛나게 한다</span></p>
      <p>츄 사형은 류 스승의 동료들과 처음 연습 경기를 할 때 그들이 그에게 일부러 심하게 손을 휘둘러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그의 거만함을 없애기 위해 자주 그를 세게 밀어붙이면서 심하게 다루었다. 때로는 그가 화를 내거나 스승에 대한 신뢰를 
        갖지 않고 다른 스승을 찾아 떠나는지 보려고 일부러 그의 스승에 대해 험담하고 그의 기량을 깎아내리곤 했다. 이런 모든 시험은 
        츄 사형에게 더 강한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더 열심히 연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매일 그는 태극의 세계에 빠져서 적어도 
        하루에 13시간 연습을 했다. 그는 모든 세속적 탐닉을 끊어 버렸고 쇼핑하러 가거나 영화관, 음식점에도 절대 가지 않았다. 일년 
        내내 거의 몇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동료, 친구, 친척들은 모두 그가 별나다고 말했다.</p>
      <p>이렇게 열심히 해서 2년 이내에 
        그의 태극권의 기량은 스승의 동료의 기량과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류 스승의 특별한 관심과 코치를 받게 되었다. 
        보통 류 스승은 수업 후에 류 사형에게 남으라고 해서 그에게 개인 교습을 해주면서 동작의 세세한 점과 중요한 부분을 설명해 주었다. </p>
      <p> 
        그것은 다름 아닌 이런 이유였다고 류 스승은 말했다. “나는 진지하지 않은 제자들은 차라리 받지 않는다. 네가 신실하고 연습을 
        열심히 하는 한 내 최상의 것을 너에게 주겠다. 만일 신실하지 않고 열심히 연습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p>
      <p> 이는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과 똑같은 것이다. “여기저기 시끄럽게만 하고 진심으로 수행할 마음이 
        없는 수만 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정말 신실하게 집중해서 수행하려는 몇몇 제자들을 가르치겠습니다.”</p>
      <p><br /><span class="topic">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은 최상의 무술이다</span></p>
      <p>그는 꿋꿋하게 그리고 조용히 20년 이상 무술을 열심히 연마해서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서 
        그 이상의 수준으로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었다. 그때 그는 명상과 영적 수행을 함으로써 이 육체적 수준을 벗어나 더 높은 영적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러 차례 영적 스승들이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했어도 그는 
        이를 거절했다. 어느 날 그의 친척(동수)이 그에게 스승님의 책자를 소개했다. 그 책을 읽자마자 그는 스승님이 자기가 찾고 있던 
        영적 스승이라고 생각되어서 너무 기뻤다. </p>
      <p>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타이베이 국부기념관에서 이틀 동안 스승님 강연이 있었다. 그는 첫날 강연에 갔지만 이틀째는 집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강연을 놓쳤다. 그의 친척은 그에게 “스승님의 법호를 외우면 즉시 감응이 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날 그는 
        스승님의 법호를 신실하게 계속 외웠다. 저녁에 환자에게 침을 놓는 동안에 스승님께서 아주 아름답고 위엄 있는 강당에서 강연을 
        하고 계시는 모습이 갑자기 보였다. 스승님 의상의 색깔이나 스타일까지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일하는 동안에 그런 내적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놀라웠다! 그의 부인이 강연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강당의 장식뿐 아니라 스승님께서 그날 저녁에 입고 
        있었던 옷의 색깔과 스타일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보았던 것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p>
      <p>그는 정식으로 스승님의 제자가 되는 입문식 때 많은 영적 체험을 했다. 그는 영적 수행과 무술 연마를 위한 최고의 법문과 스승을 
        찾게 된 것을 평생토록 다행스럽게 여겼다. </p>
      <p> 그가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어 선칠이 있어서 거기에 참석했다. 3일째 되는 날, 관음을 
        하는 동안에 파도가 치솟거나 혹은 큰 바퀴가 굴러가는 것처럼 강한 힘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머리까지 올라가는 것을 체험했다. 
        그는 다시 젊어졌고 활력과 평안을 얻었다. 20년 이상 무술과 기공을 하는 동안 그는 이런 비약적인 발전을 하지 못했다. </p>
      <p>스승님이 시후 센터에 감로강을 만드시던 첫날 저녁에 그는 스승님과 모든 사람이 강을 만드는 생생한 꿈을 꾸었다. 그 역시 그 
        장소에 있었다. 스승님은 “갑시다. 아름다운 돌을 가지러 갑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그와 몇몇 거주제자들을 데리고 아름다운 
        돌을 찾으러 천국에 있는 어느 장소에 가셨다. 그 돌들 중 몇 개는 특이한 모양이라 완성된 감로강을 보러 왔을 때 그 돌들을 
        알아보았다. 감로강을 만드는 데 쓰인 물건들이 천국의 높은 경지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많은 동수들이 감로수를 집에 가져다 마시고 
        난 후 경이로운 체험을 갖는 게 하나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p>
      <p><br /><span class="topic">쿵푸 스승이 나무 뒤에 숨어서 울다</span></p>
      <p>츄 사형이 입문하러 오기 일년 전 스승님은 갑자기 무술에서도 특히 태극권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다. 일년도 넘게 스승님은 포모사에 
        있는 동수들 중에 태극권을 거주제자들에게 가르치러 올 수 있는 고수가 있는지 물어보셨다. 몇 사람이 그 자리에서 신청을 했지만 
        아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p>
      <p> 츄 사형이 입문한 후 어느 날 거주제자들에게 무술을 가르칠 수 있는지 먼저 여쭈어 보자 스승님은 
        재빨리 허락하셨다! 그후 그는 스승님께 가까이 갈 기회가 많아 스승님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스승님을 뵐 때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부모를 만난 아이처럼 아주 흥분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종종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럴 때는 얼른 나무를 찾아 그 뒤에 
        가서 울곤 했다. 그가 스승님께 드리는 감사는 언어를 초월한 것이었다. </p>
      <p> 언젠가 스승님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 그의 얼굴은 어둡고 아주 심각해서 몇 년 동안 웃지 않았던 것 같았지요. 몇 달 수행한 후에 그의 눈에서 
        잔인한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미소를 짓기 시작했어요!” </p>
      <p> 그는 ‘다 큰 남자는 울지 않는다.’는 걸 잊었다. 그는 수행을 많이 
        할수록 더욱 순진한 아이와 같아졌다. 보통 다른 사람들과 잡담을 하지 않지만 동수들이 그의 집에 와서 스승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그는 끝없이 말할 수 있다. </p>
      <p>스승님이 그에게 시후에서 태극권을 가르치라고 처음 지시하셨을 때 그것은 그에게 거룩한 사명이 되었다. 그는 완전히 집중해서 
        그 일을 잘 해내려고 돈을 받고 가르치던 모든 교습 활동을 그만두고 무조건적으로 그 일에 자신을 바쳤다. </p>
      <p> 츄 사형은 무술을 연마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광폭한 힘을 이겨내는 데 부드러움을 사용하는 태극권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태극권은 폭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무술과는 다르다. 더 나아가 이는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개선되도록 훈련시키고 에너지를 신체에 
        충만하게 해서 명상 중에 쉽게 졸리지도 않고 허리도 아프지 않다. 그래서 더 쉽게 집중할 수 있고 삼매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명상의 
        즐거움과 지복을 더욱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p>
      <p> 입문은 츄 사형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무술의 수준을 높이고 성격도 
        바뀌는 등 그의 기쁨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경전에 언급된 ‘형언할 수 없는’ 영적 체험도 했다. </p>
      <p>지난 몇 년 동안 그가 스승님을 따른 이래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홍콩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승님께 심하게 꾸중을 들었을 
        때이다. 그는 회상하기를 “그때 스승님께 큰소리로 갑자기 꾸중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뒷걸음치며 펄쩍 뛰었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p>
      <p> 츄 사형은 자신이 
        무술을 잘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거구의 남자들이 여럿이 함께 밀어도 그는 끄덕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20년 이상 
        열심히 연마해서 자란 뿌리가 한마디 외침에 뽑힌 것이다. 그에 이어 계속되는 꾸중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평생 동안 
        이렇게 심하게 꾸중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무엇을 하든 아주 진지하게 최선을 다했노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는 스승님을 가장 존경했고 자신을 모범적인 제자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승님께서 왜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혼을 내셨는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믿고 존경하는 스승님께서 아무 이유 없이 꾸중하지는 않으시리라는 걸 마음속으론 알고 있었다. </p>
      <p><br /><span class="topic">진정으로 높은 경지의 고수를 만나다</span></p>
      <p>이처럼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 상태에서 스승님이 절대적으로 옳으시다는 걸 믿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풀리지 않는 갈등으로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 좌절한 나머지 명상하는 
        동안 큰소리로 울기도 했다. 그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때리기까지 했다.</p>
      <p>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스승님의 시자였던 
        사형이 그와 어떤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그에게 왔다. 그들이 대화하는 중에 그 사형은 스승님과의 수행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p>
      <p>“언젠가 스승님께서는 나와 몇몇 제자들을 데리고 핑뚱에 있는 산띠먼으로 안거하러 가셨지요. 스승님께서 다른 사형들을 어떻게 
        돌봐 주시는지를 지켜보면서 나는 질투가 나서 스승님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내 마음속에 나쁜 마음이 들자 그 
        즉시 스승님께 심하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내게 당신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아서 어떤 제자도 왜 스승님께서 나를 질책하는지 몰랐습니다. 오직 나만이 이해했습니다. 사실 나는 질투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번 선(禪)의 조용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스승님께서는 다시 내게 당신 곁에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p>
      <p> 그러나 일단 내가 나쁜 파장을 일으키면 그 즉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매일 그렇게 왔다갔다했어요. 그때 
        나는 스승님께서 초자연적 힘을 사용하고 계시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스승님께서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렇게 분명히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원치 않는 그런 성격을 극복하려고 계속 애썼지만 스승님께서 나를 꾸중하실수록 나는 
        더 질투가 났습니다. </p>
      <p>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나는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바윗덩어리 
        같은 갈등을 안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여러 번 스승님을 떠날까도 생각했습니다.</p>
      <p>더 이상 내 마음속의 혼란을 견뎌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일주일 후 어느 날 밤 나는 평상시대로 명상하고 참회하기 위해 강가 
        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밤 12시가 가까웠을 때 나는 갑자기 깨달아 며칠 동안 마음속에 얽혀 있던 매듭이 순식간에 풀렸습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밝아짐을 느꼈습니다. 나를 억누르던 눈에 보이지 않는 돌덩이가 그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스승님이 가련하다고 느꼈습니다. 왜 아무 이유도 없이 스승님께서는 제자들로부터 온갖 오해와 정신적 학대를 받으며 
        참으셔야만 하는가? 나는 그때 아침에 맨 처음 스승님을 뵙고 사과드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느긋하게 기다릴 수가 
        없어서 동이 트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p>
      <p> 다음날 아침 일찍 동이 터 오기 시작할 때 누군가 내 텐트 밖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갑자기 
        느꼈습니다. 일어나서 보니 스승님이셨습니다. 그 순간 나는 텐트에서 뛰쳐나왔지요. 스승님께서는 가까이에 있는 해먹에 앉아 
        조용히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p>
      <p> 나는 행복해서 스승님께 달려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스승님! 지난밤에 저는 결국 그것을 이해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스승님을 곤란하게 만든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제일 먼저 스승님께 사과드리려 했습니다." </p>
      <p> 스승님께서 
        기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어요. "한밤중에 그 메시지를 받았지요. 당신이 장애를 이겨 냈다는 걸 알고 당신보다 내가 더 기뻤어요. 
        어젯밤에 보러 오고 싶었지만 밤이 너무 늦어서 깨우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온 거예요." </p>
      <p> 스승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당신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걸 내가 몰랐던 건 아니에요. 다만 나는 당신이 참지 못하고 
        이 길을 떠날까 봐 걱정했지요. 그때 내가 당신을 용서해 주고 꾸짖지도 않고 부드러운 말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이 교훈을 절대 배울 수 없었을 거예요. 나는 당신이 전생에서 받은 나쁜 습관을 억누르기를 
        바랐어요. 당신보다 내가 더 불안했어요."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눈물이 가득해서 스승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조차 잊어버렸습니다.” </p>
      <p><br /><span class="topic">‘내면의 힘’이 향상되다</span></p>
      <p>그 사형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츄 사형이 지난 6개월 동안 인내하며 겪었던 내적 갈등이 감정적으로 풀어졌다. 그는 “6개월 
        이상 이런 갈등을 겪고 난 후 어젯밤에야 명상하는 중에 그 일을 이해하고 마음속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야기한 대로 그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어요. 나는 당신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며칠 일찍 왔더라면 나는 그걸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얼마나 우연의 일치인가요!”라고 말했다. 이는 바로 스승님의 안배였음이 틀림없다. 
        지금도 스승님에 대해 말할 때면 눈물이 난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가! </p>
      <p>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처음부터 스승님께서 
        나를 꾸짖은 이유를 찾는 게 잘못이었습니다. 비록 스승님이 내게 잘못을 했다 해도 나는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스승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고 이 일에 대해 내내 떨쳐 버리지 못한 것은 너무 
        나 자신만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명성과 비방, 칭찬과 조소를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 수행자들은 ‘팔풍(八風)’이 
        불어와도 동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드러운 바람이었는데도 나는 6개월 동안이나 흔들거렸습니다. </p>
      <p>나는 자신이 항상 완벽주의자이며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작은 실수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너무 얽어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체가 바로 일종의 불완전함입니다. 이제 나는 진실을 볼 수 있고 
        내가 무용지물이라고 느낍니다. 모든 사람이 나보다 더 낫고 그래서 나는 더 행복하고 자유롭습니다. </p>
      <p>이런 내적 갈등을 극복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려운 임무를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때 꾸중을 듣고 숨어서 
        울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행한 느낌은 바로 없어졌습니다. 스승님께 한번 꾸중을 듣고 나서 나는 면역이 
        되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여러분이 나의 ‘사자 같은 노호(獅子吼)’를 배겨 낼 수 있으면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라고 농담 삼아 말씀하신 것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p>
      <p> 꾸지람을 듣고 츄 사형의 내면의 힘이 많이 커졌다는 게 그 자신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거의 30년 동안 그가 무술에서 
        축적해 얻은 것을 능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류석형 선생 밑에서 태극권을 배울 때를 기억합니다. 때로 그가 가르쳐 준 
        동작을 정확하게 연습하지도 못하고 그 동작의 핵심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류 선생은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나의 잘못된 동작을 고쳐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고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그것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p>
      <p>며칠 후 류 선생은 내게 오더니 몇 가지 알맞은 지도를 해주었고 그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많은 수업을 받으면서 먼저 폭넓게 체험하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깨닫고 배우려고 애써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가 무르익었을 때 선생으로부터 정확한 지도를 받으면 그때 우리는 진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p>
      <p>지난해 태극권의 최고 선생인 황성현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놀랍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는 평생을 태극권에 몸 바쳐 근자에 어느 누구도 올라갈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그의 위대한 이름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갑자기 내 인생의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스승님을 만나 내 인생이 끝나기 전에 수행의 길을 따르게 되었으니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헛된 것을 위해 이 삶을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6:33:26 +0900</dc:date>
</item>


<item>
<title>신통력은 완전하지 않지만 관음법문은 완벽하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6</link>
<description><![CDATA[<br /><p> <font color="#FF6600">도교 수행자-기공 스승의 실화 </font></p>
          <p>
        <span class="topic">영적 수행을 열심히 해야 한다</span></p>
      <p>중국 대륙에서의 입문식 때의 한 일화이다. 한 예비 입문자가 아직 여섯 살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입문을 하러 왔는데 그 아이도 
        입문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관음사자는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몇 달만 더 기다리라고 말했다. 아이는 들으려고 하지 않고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p>
      <p>그때 그 아이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예순 살의 예비 입문자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두들 깜짝 놀라 그에게 왜 그리 비통하게 우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 “아이가 우는 걸 보자 갑자기 우리의 전생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6천 년 전에 
        공통산(崆峒山)에서 쾅천쯔(廣成子)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했었는데 이 어린 사제는 게으름을 피우며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요. 그는 
        명상 중에 자주 잠을 잤어요. 그래서 그는 수행을 계속하려고 이생에 다시 왔지요. 이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슬퍼 눈물이 절로 
        쏟아지는군요.” </p>
      <p>이 나이 많은 예비 입문자 류(劉)는 기공계에서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치료라든가 퇴마 능력, 사람의 운명을 읽고 미래를 보는 능력 등 여러 
        가지 신통력도 갖추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역경에 조예가 깊었던 친척 한 사람이 그가 영적 길을 따르기 위해서 현자들의 인도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류 사형은 글을 잘 읽을 줄 몰랐지만 [역경]같이 어려운 고서들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주 훌륭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행에 관한 문학 작품을 계속 읽었고, 자신을 이끌어 줄 훌륭한 선생을 찾고 있었다. </p>
      <p>중국 본토에서 기공이 인기를 얻자 류 수행자도 여러 형태의 기공을 연마했다. 그는 여러 신통력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천년 묵은 무덤 옆에 자라는 기묘한 나무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수행함으로써 신기한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즉시 그곳으로 갔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 그는 거기서 명상을 했다. 그때 흰빛의 후광을 지니고 노란 
        두루마기를 입은 승려가 와서 수행법을 가르쳐 주고 제3의 눈을 열어 주었다. 류 사형은 진정한 스승을 찾았다는 생각에 아주 기뻐했다. 
        하루 종일 그 나무 밑에서 수행을 하는데 남동쪽으로부터 검은 옷을 입은 도인이 뿔 한 개가 달린 괴물을 타고 오며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에게 엉터리 법문을 가르쳤지?” 노란 옷을 입은 중이 재빨리 도망쳤다. </p>
      <p>류 사형은 또 한 번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외뿔 짐승을 탄 도인은 6천 년 전에 그를 가르쳤던 쾅천쯔 
        스승이었다. 그때부터 매일같이 그는 류 사형을 가르치러 왔다. </p>
      <p><br /><span class="topic">명상 중에 비전을 보다</span></p>
      <p>어느 날 류 사형은 명상 중에 세 개의 태양을 보았는데 그 중의 2개는 서서히 가라앉더니 결국에 사라져 버렸지만 나머지 하나는 
        남동쪽에서부터 솟아오르더니 점차로 가까이 다가왔다. 태양 안에서 거울이 나타나고 그 거울 속에 차츰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점점 뚜렷해지자 용좌에 어의를 입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 당시에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p>
      <p>그러던 중에 우연히 류 사형은 스승님의 견본책자와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보았다. 그날 밤 그는 어떤 사람이 그의 가슴에 빛의 
        원을 그리는 꿈을 꾸었다. 그는 아주 이완되고 편안함을 느꼈다. 그후로는 그가 앓고 있던 가슴의 통증이 씻은 듯이 나아 버렸다. </p>
      <p>류 사형이 가장 어리둥절했던 때는 동수가 그를 만나러 왔을 때였다. 류 사형은 자기의 신통력이 대단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는 
        누군가가 그를 방문하러 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방문객이 누구라도 알아맞힐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였다. 그는 이 일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찾아온 동수가 그가 깨달은 스승을 열렬히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p>
      <p>우연찮게도 그 동수가 그에게 건네준 뉴스잡지의 표지에는 어의를 입고 계신 스승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즉시 태양 가운데 
        나타났던 사람이 스승님임을 알아차렸다. </p>
      <p><br /><span class="topic">신통력을 연마한 것이 끝없는 장애를 낳다</span></p>
      <p>그때부터 그는 입문을 학수고대하며 법열에 잠겨 있었다. 그는 3일 후에 입문식이 있다고 알려 왔을 때 아주 기뻐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알려 준 동수가 떠나자마자 끔찍한 일이 생겼다. 가족들이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의 얼굴은 온통 비틀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오른쪽 몸이 마비가 되었고 왼쪽은 무겁고 둔해졌다. 그는 가까스로 왼쪽 손을 쳐들어 스승님의 견본책자를 놓아 둔 
        명상실을 가리켰다. 그의 가족은 두려움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다행히 그의 아내가 그가 원하는 것을 알고 스승님의 견본책자를 
        갖다 주었다. 그는 ‘칭하이 무상사’를 암송했다. 스승님의 이름을 외자마자 뒤틀린 눈과 입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마비를 일으켰던 
        몸이 다시 풀렸다. </p>
      <p>이 모든 것이 신통력을 사용한 결과였다. 류 사형은 한때 어떤 종류의 신통을 배우고 아수라 세계에서 아수라의 몸을 빌려 왔는데, 
        그로 인해 지금 최상의 해탈법문, 관음법문을 수행하려는 데 장애가 생긴 것이다. 만약 그가 스승님의 길을 따른다면 또다시 윤회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에 그 아수라는 그가 입문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를 가지 못하게 묶어 놓으려고 했다. </p>
      <p>류 사형은 바라던 입문을 했지만 그후에도 아수라의 방해는 여전했다. 심지어는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다행히도 스승님이 가르쳐 
        주신 호신법이 있었다. 그가 오불을 외우자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마침내 아수라는 사라졌다. 깨달은 스승의 보호 
        없이는 온 힘을 다해 싸워도 아수라의 성가심을 피할 수는 없다. 류 사형은 스승님을 따라 수행하게 된 커다란 행운에 매우 감사했다.</p>
      <p> 입문 후 명상하던 중에 한번은 스승님과의 전생 인연을 보았다. 전생에서 스승님은 세 번이나 그를 해탈시키려 했으나 신통력을 
        좋아했던 그는 매번 스승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다. 만약에 이번 기회를 다시 놓친다면 수천 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제 
        그는 끝없는 윤회에 지쳤고, 신통력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것들은 모두 환상일 뿐이며 관음법문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하며 
        완전무결한 방법인 것이다. </p>
      <p><br /><span class="topic">깨달은 스승의 힘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span></p>
      <p>또 다른 사건을 통해 류 사형은 스승님의 경이로운 힘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집안일만 하며 늘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대부분의 시골 아낙네처럼 자신을 잘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서로 다른 음식도 잘 구분하지 못했으며, 얼마짜리 돈인지도 분간하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히 돈을 쓸 줄도 몰랐다. 그녀는 일년 내내 고작 몇 마디 말을 할 뿐이었다. 방문객이 오면 그녀는 집안에 
        숨어 있었다. 류 사형은 그녀의 등급이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입문 후에 그녀는 좀더 개방적으로 되었고, 언어 
        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p>
      <p>어느 날 류 사형은 지혜의 눈에 의식을 집중하고 눈을 감은 채 스승님의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다. 그는 테이프를 3, 4분 동안만 
        듣다가는 다른 걸로 바꾸는 것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가 세 번째 테이프를 틀었을 때 그의 아내가 옆방에서 달려 나와 화가 난 
        목소리로 “뭐하는 거예요? 왜 계속 테이프를 바꾸는 거지요?”라고 했다. </p>
      <p>그녀는 옆방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류 사형이 테이프를 틀 때마다 그녀는 어떤 영상을 보았는데, 어떤 때는 스승님이 
        노란 장삼을 입은 수많은 승려들에 둘러싸여서 아주 아름다운 곳에서 설법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고, 또 다른 때는 온몸 가득 빛을 
        내는 흰옷의 사람들이 스승님의 강연을 경외심을 가지고 듣고 있었다. 매번 그녀가 천국의 경지에 몰입해 있는데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고 테이프가 바뀌면서 그녀의 영상이 중단되었다. 이런 일이 세 번째 일어났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뛰어나와 
        그를 나무랐던 것이다. </p>
      <p>류 사형은 그녀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입문한 지 채 몇 달이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여러 해 동안 수행한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는 감격에 겨워하며 스승님의 위대한 힘 아래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는 더 높은 경지로 들어올려졌다. 그는 누군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이렇게 말하는 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네가 
        보고 있는 것이 아직 최고의 진리는 아니다.”</p>
      <p><br /><span class="topic">영적 수행의 개념이 정확해야 한다</span></p>
      <p>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류 사형은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스승님이 강연을 하실 때에는 지상의 인간들만을 대상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차원의 우주에 있는 중생들이 함께 듣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떤 경지를 본다는 것은 아직 
        절반에 불과합니다. 진정 높은 차원은 모양도 형태도 없습니다.”라고 하신 스승님의 말씀은 분명 사실이라는 것이다. </p>
      <p>이제 그는 스승님이 내적 체험을 갈망하거나 이에 집착하지 말도록 가르치셨음을 이해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그러한 장애에 
        걸려 진보하지 못하고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는 스승님의 시기적절한 주의에 감사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이상 
        체험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6:15:09 +0900</dc:date>
</item>


<item>
<title>어떻게 내가 신을 발견하고 진정 풍요로워졌는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5</link>
<description><![CDATA[
               <p class="caption_2" align="left"><font color="#006699">1993년 백여 일에 걸친 스승님의 전세계 순회강연 동안 특별한 일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영광을 누렸던 동수들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저마다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 속에는 한결같이 진리의 단면들이 엿보인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또한 깨달은 스승의 위대함과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다.</font><font color="#006699">그리고 영생을 추구하는 영혼의 참다운 길을 알 수 있다.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만을 기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중생들에게 진리의 메시지를 전하시는 스승님의 수고스럽지만 고귀한 노력들이 약간이나마 인식되기를 바란다. </font> </p>
          <p align="left"><font color="#006699">그리고 우리 모두가 스승님의 사심 없는 희생정신을 배우는 한편 수많은 이들의 피땀을 통해 자신이 수행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알고 그에 감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font></p>
          <p><font color="#006699">동수들의 체험이 우리로 하여금 더 성실히 수행하게 하고 해탈을 향한 이 여정을 중단 없이 전진하게 하는 격려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gt;이야기는 '64.부적절한 개념에서 얻은 교훈'~'80.어떻게 내가 신을 발견하고 진정 풍요로워졌는가'까지 이어짐.)</font></p>
          <p> </p>
          <p class="caption_2" align="right"><span class="caption_2">캐롤린 슈비름 사저/ 독일 뮌헨(원문 독일어) </span></p>
      <p>1993년 초에 나는 신을 찾아야만 한다고 마음먹었다. 내게 1992년은 실망과 환멸로 가득 찬 불행한 한 해였다. 나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심지어는 아무런 꿈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꼈다. 믿을 수 없는 인간관계나 세찬 바람에 허물어져 버리는 공중누각 같은 것보다는 좀더 안정적인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신에게 의지해 보기로 하고 어린아이처럼 그저 긴 수염을 기른 하얀 머리의 나이 든 남자가 나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전에 한 친구가 간단한 명상법을 소개해 준 바가 있어 1993년 1월에 나는 그것을 매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어렸을 때는 나를 이끌어 주고 보호해 주는 어떤 강한 사랑의 힘이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쩌다 보니 그런 힘과 내면의 자아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지난 몇 해 동안에는 신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명상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p>
          <p>그런데 재미있게도 그게 정말 도움이 되었다! 지혜안에 집중하는 것을 포함한 이 명상법을 수행한 이후로는 마치 눈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벗겨진 듯 세상에 대한 이해가 날카로워졌다. 나는 겨우 2주 만에 삶이 변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선악에 대한 판단이 더 명확해져서 예전처럼 헷갈리거나 혼란스럽지도 않았으며 점차로 차분해졌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삶 가운데 신이 존재하심을 문득 느낀 것이었다. 단지 하루에 한 시간만 명상하는 것이었는데도 나는 축복받고 있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나를 저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바라지도 않는 일들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의 사랑에 보답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내 기분을 상하게만 만들었다. 그러나 신은 내가 잠시 동안 그를 생각했을 뿐인데도 너무도 관대하게, 그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내게 보답해 주셨다. 나는 결국 위대한 신에 대한 확신에 찼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 신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그리고 만약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그럴 수만 있다면 성인이 되고자 노력하겠다고 기도했다. 그즈음에는 더 이상 육식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닭고기를 먹었을 때 마치 독이 든 음식을 먹은 것처럼 메스껍고 기분이 영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p>
          <p>그후 4월 말경에 어떤 학우에게서 녹색 표지로 된 작은 책 한 권을 받았다. 표지에는 ‘즉각 깨닫는 열쇠'라고 적혀 있었고, 관음법문이 최고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정말로 최고라면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료로 입문시켜 준다는 것이 다소 놀라웠으며 수강료가 비싼 명상 강좌에 등록할 수 없던 나로서는 이 점이 무엇보다 감사했다.</p>
      <p> 강연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강연장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강연 장소였던 호텔이 어찌나 휘황찬란하던지! 그런 비싼 장소에서 열리는 강연이 전부 무료라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입구에서는 키가 큰 어떤 중국인이 또 다른 종류의 무료 견본책자를 나눠 주고 있었는데, 그가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듯 완전한 헌신의 태도로 방문자들에게 그 책을 나누어 주는 모습 속에서 나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저토록 강하고 완고해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부드럽고 사랑 어린 태도로 다른 이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p>
          <div align="left"><img src="../img/1993_germany.bmp" align="right" alt="1993_germany.bmp" /> 강연장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한 친절과 관대함에 나의 마음은 마치 따스한 햇살에 꽃이 피듯 그렇게 열렸다. 마침내 위아래 모두 흰 옷을 입으신 스승님이 도착하셨을 때 기쁨에 넘친 모습으로 스승님을 호위했던 호법들의 모습은, 그들이 스승님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도 남았다. 감기가 걸리셨음에도 젊고 건강한 모습을 보이신 스승님이 너무도 좋았다. 너무도 편안해 보이고 유머로 넘치는 스승님의 모습에 금세 매료되었다. ‘이분이 바로 내가 늘 상상해 왔던 스승님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div>
          <p> 강연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내가 질문지를 넘겨주려고 손을 들었을 때, 호법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얼른 내게로 달려왔다. 그들은 질문지들을 매우 귀중한 것을 다루듯 거두어 갔다. 무료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p>
          <p> 저녁때까지 질문이 계속되는 바람에 입문식을 할 때 난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내와 입문 관련 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여전히 생기 있고 활력에 넘쳤다. 그들 중 일부는 쉬는 틈틈이 명상을 했는데, 그런 그들의 얼굴이 너무도 아름답고 고요해 보였다. 장시간 동안 일하고도 이처럼 활력이 넘치는 것을 보니 그들이 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자들이 이처럼 남다르니 칭하이 무상사는 아주 훌륭한 스승임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p>
          <p> 입문식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너무도 피곤해서 거의 체험에 압도되었다. 스승님이 우리와 함께 명상을 하셨는데, 그때 나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너무도 크고 명확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p>
          <p>입문한 직후 며칠 동안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새로 배운 방법으로 명상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똑바로 앉아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리고 오불을 기억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이 법문이 아주 강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 했던 명상법이 망망대해에서 나를 신의 왕국으로 싣고 가는 작은 보트와 같다면, 관음법문은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초호화 여객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박쥐가 햇살 밝은 곳으로 나온 것처럼 관음법문으로 인해 내 인생은 예전의 부정적인 영향들을 모두 떨쳐 냈다.</p>
          <p> 처음에는 부모님들의 걱정이 대단했다. 아마도 늘 해 왔던 그런 정신 나간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신부님에게 가서 내가 하는 명상이 해로운 것은 아닌지 묻기까지 하셨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스승님은 이미 모든 걸 안배해 놓고 계셨다! 신부님은 명상이 전혀 해로울 게 없고 자신 또한 명상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나를 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견본책자를 읽기 시작하셨는데, 나중에는 어머니 스스로 채식을 하겠다고 전화를 하시기도 했다. 내가 채식을 권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더욱 신기한 것은 어머니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들으신 후에 입문을 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입문 후에 너무도 좋은 체험을 하고 계신다!</p>
          <p> 내가 입문한 지도 5년이 넘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미 신성의 경지에 올랐을까? 난 나의 불완전함과 에고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칭하이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지금까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모든 것을 얻었고, 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것은 이 법문을 수행함으로써 내가 진정으로 새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전에는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보고 나 자신을 알지 못한 채 이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사는 반은 장님이었는데, 이제는 삶이 너무도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이해되었으며 이치에 맞고 완벽한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사실 어떤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내면 깊은 곳에 항상 존재해 왔던 뭔가를 지금 막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게 위대하고 진정한 나임을 확신할 수 있다.</p>
          <p> 그렇다면 관음법문 수행자가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 삶은 그저 안락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해탈로 가는 관음 여객선 위에서 호화판으로 즐기는 것만도 아니다. 나는 전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고통과 우리 지구가 직면한 문제들을 더 잘 느끼고 있다. 내일 당장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천국에 쌓아 놓은 나의 보물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고, 어떤 도둑도 훔쳐 갈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난다고 좀먹는 일도 없다. 그러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처한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매일 내면으로 홀가분하고 웃을 수 있다.</p>
          <p> 지상에서의 의무를 다할 때 내가 이 육신의 옷을 벗어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매일 천상의 감로수를 마실 것이다. 영원토록 배우고 발견해야 할 것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나는 신의 왕국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조건 없이 인도해 주는 친구가 항상 내 옆에 있을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59:26 +0900</dc:date>
</item>


<item>
<title>새 출발</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4</link>
<description><![CDATA[<br /><p>돌이켜보면 1993년은 정말로 특별한 한 해였다. 나는 그 해를 ‘신이 그의 양들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나팔을 분 해’라고 
        부른다. 그 시기에 나는 최고의 스승인 칭하이 무상사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영적 세계 순회강연에 대해 들은 바도 전혀 없었지만, 
        그해 얼마 전에 하와이 공영 TV 프로그램에서 스승님이 강연하시는 것을 보고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때 스승님은 영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 정신적인 것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설명을 해주셨다. </p>
      <p>무엇보다도 스승님은 강연 내내 “내가 거기에 있었고, 그것을 해보았습니다. 나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말하는 것입니다.”라는 
        말로 스승님 자신의 앎이 명확한 것임을 겸손하게 드러내 보이셨다. 거만하지 않게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시며 그 많은 질문들에 
        저마다 다른 답을 주셨다. 진리가 스승님의 말씀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스승님의 존재 그 자체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스승님의 
        자연스럽고 쾌활한 유머 감각으로 인해, 이전에 한번도 뵌 적이 없었지만 스승님을 뵙는 것이 마치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안에 있는 뭔가가 열리면서 나는 그 모든 놀라운 체험들을 하게 되었다.</p>
      <p> 그때까지 나는 여러 다른 명상을 시도해 보았고, 철학 서적과 영적인 서적을 수도 없이 읽었다. 그리고 주로 꿈과 느낌을 통해 
        내적인 체험을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자료도 조금씩 모으고 있었는데, 이것은 신에게로 가는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스승님의 강의를 한 시간만 들었을 뿐인데도 스승님은 내가 느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다. 잘못된 관념들을 
        바로잡아 주고 진리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채워 주셨다. 강연이 끝나 갈 무렵 내가 혼잣말로 ‘이 놀라운 분을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TV에 감사의 인사말이 나오고 주소가 나왔을 때, 주소가 ‘포모사(대만)’로 되어 있어서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p>
      <p> 그로부터 4개월 후, 나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며 일했다. 그 당시 파사데나에서 ‘완전한 삶 박람회’가 열렸는데, 
        나는 그곳에 가서 칭하이 무상사의 전시대를 방문했다. 제자들은 너무도 친절했으며 내게 비디오테이프를 무료로 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나는 그들의 방편법 제안을 거절하고 완전 입문을 원했다. 그들은 내가 운이 좋다면 1주일 후에 스승님이 애너하임에 오실 때 스승님께 
        직접 입문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들은 내가 그때부터 완전한 채식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좀 엉뚱한 이유로 인해 내게 그건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p>
      <p>강연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바로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진실로 신을 깨달은 사람이 확실하게 빛을 발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 아닐까 한다. 나는 뭔가 질문할 만한 것이 있나 생각해 봤지만 어떤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듣기만 
        했다. 스승님은 조각의 대가처럼 질문하는 사람의 신실함에 맞게 적절한 대답들을 조각해 내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훌륭한 예술적 
        재능을 그냥 바라보고 듣기만 하면 되었다.</p>
      <p> 강연이 끝난 후, 우리는 입문을 받으러 작은 홀로 장소를 옮겼다. 나는 그때까지도 너무 들떠 있었고, 기대와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결국은 기대했던 체험을 하지 못해 실망했다. 그러나 신념을 버리지 않고 혹시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더 시간을 갖고 명상해 보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p>
      <p>입문한 지 오래된 다른 입문자들은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들이 크게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입문식에서 나는 팝콘 두 봉지를 받았다. 
        별로 먹은 것이 없던 나로서는 먹을 것을 준다기에 아주 놀라운 마음으로 팝콘을 받아서 먹었다. 내가 한 봉지를 절반 넘게 먹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막으며 “사형, 이건 축복 팝콘이에요. 명상할 때 축복이 더 필요할 경우에 한두 개씩 먹는 거예요.”라고 했다. 
        난 너무 민망했다. 그래서 먹다 말고 남은 것을 집으로 가져갔다.</p>
      <p> 그날 밤 나는 난생처음으로 아주 생생하고 선명한 체험을 했다. 그 체험이 나의 신실함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축복 팝콘 때문이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p>
      <p> 1993년 4월 3일, 그렇게 내 삶은 새로 시작되고 있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50:16 +0900</dc:date>
</item>


<item>
<title>알람시계로 인한 발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3</link>
<description><![CDATA[<br /><p>평범한 알람시계가 내가 입문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학창 시절의 절친한 친구를 이국땅에서 
        만나게 해주었으며, 또 아무런 장애도 없이 스승님께 입문할 수 있게 해주었다.</p>
      <p>1993년 5월 1일 이른 아침, 나는 스승님께 입문하여 오랜 기간 염원했던 진리를 찾으려는 굳은 결심으로 영국을 떠나 독일의 
        뮌헨으로 갔다.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나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겁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할 것이라고 자신을 상기시켰다.</p>
      <p> 어릴 적부터 가족의 영향을 받아 나는 비관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는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고통 받으셨고, 
        어머니는 몸이 약해 자주 아프셨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를 돌보며 가족의 경제적인 문제도 도와야 했다. 나는 교사가 되어 포모사의 
        해안 지방에서 산간 지역 그리고 서구 평원으로까지 옮겨 다니는 생활을 했다. 최근 몇 해 동안 나는 수많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때 결혼을 해서 몇 년 후에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는 유학길에 오르는 남편을 따라 오랜 소망이었던 영국으로 갔다.</p>
      <p> 그렇게 늘 옮겨 다녔기 때문에 나는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어머니를 돌봤던 경험으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 깊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나를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했다.</p>
      <p> 비행기가 착륙하자 나는 이런 생각들 가운데서 깨어 현실로 돌아왔다. 내게는 멀고 낯설기만 한 도시 뮌헨이 눈앞에 있었다. 
        마음속에는 오로지 ‘입문’이라는 말만이 있었기에 어떻게 세관을 통과하고 공항을 나와 기차를 탄 뒤 목적지로 향하는 택시를 타게 
        되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승님의 안배였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어도 짧은데 모든 일들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잘 풀렸을 리가 없다.</p>
      <p>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바람 한 점 없이 온 사방이 고요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나 홀로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스승님의 견본책자가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그 지역 연락인의 주소가 들려 있었다. 갑자기 외로움과 망설임이 엄습해 왔다. ‘정말 
        입문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자 불안해지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 두려움이 커 갔다. 공포 
        영화를 볼 때보다 더 두려운 느낌이었다.</p>
      <p> 그러다 마침내 나는 그 지역 연락인이 사는 곳에 당도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문득 희망이 솟구쳤다. 계단을 황급히 내려오는 
        여성이 보였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주저함도 엿보였다. 
        나 또한 어색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드디어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시공간이 멈춘 듯했다!</p>
      <p> 그는 내가 수년간 만나지 못했던 동창이었다! 스승님의 순회강연을 도우러 이곳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믿기지 않는 
        것은 그의 알람시계가 한 시간이나 늦게 울려서 그가 나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움과 기쁨에 겨워 우린 서로를 껴안았다. 
        이날 이때까지 신의 사랑을 그토록 깊게 느껴 보지는 못했다. 나는 스승님이 늘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고 계시다는 걸 완전히 믿게 
        되었다. </p>
      <p>그것이 벌써 5년 전 이야기다. 스승님 덕분에 나는 다시 태어났다. 감상적이고 비참했던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즐겁고 낙관적인 
        모습으로 거듭났다. 관음법문을 수행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영겁의 세월 동안 돌고 돌았던 윤회의 사슬을 끊게 되었다.</p>
      <p> 천국이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지금 황금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모두 더 열심히 수행하며 이 지상의 낙원에서 진선미를 
        서로 나누어야 함을 끝없이 상기하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스승님!</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41:24 +0900</dc:date>
</item>


<item>
<title>입문 후 힘으로 넘치는 나날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2</link>
<description><![CDATA[<br /><p>나는 1993년 4월 27일 비엔나에서 입문을 했다. 스승님의 강연이 열리기 이틀 전, 포스터에 실린 사진을 보자 꼭 가서 
        봐야 한다는 흔치 않은 내면의 확신이 들었다. </p>
      <p>다음날 여자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탔을 때 좌석에 견본책자가 두 개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 친구가 두 개를 모두 집어 
        들더니 하나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가져!” 그녀가 자기와 강연장에 갈 의향이 있는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이미 가기로 했어, 몰랐어?”</p>
      <p> 강연이 열린 날, 강연장으로 들어오시는 칭하이 스승님은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사랑이 넘치는 밝은 분위기였다. 나는 스승님을 
        계속 주시했다. 여러 이유에서 스승님이 마음에 들었다. 목소리와 말하는 방식, 몸짓 그리고 옷차림 모두가 좋았다. 내 마음은 
        점점 더 열렸고, 스승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강해져만 갔다. 잠시 내면의 비전이 보였다. 내가 아주 오래전에 스승님을 만난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스승님은 “다시 오겠어요.”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스승님을 따라오기로 결심했던 것이다.</p>
      <p> 투시력이 있는 내 여자 친구에게 칭하이 스승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려고 얼굴을 돌리자 내면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여자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삼매에 빠진 그녀를 깨우자, 그녀는 그렇게 아름다운 오라와 온통 황금빛의 위대한 능력을 지닌 대천사들과 
        빛의 존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p>
      <p>말씀으로 충만했기에 그 밖의 다른 것은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는다. 나는 오직 스승님이 발산하는 엄청난 사랑에만 몰입해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제가 지구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적은 질문지를 제출했다. 
        지구를 살리는 데 동참하기 위해 그린피스의 회원이 될까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스승님은 한마디로 짤막하고 분명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답하셨다. “입문하세요. 그것뿐입니다!”</p>
      <p> 입문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입문 후에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에 기운이 펄펄 넘친 나는 한밤중에 집으로 달음질쳤다. 처음 
        명상했을 때는 20분 정도 고요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정도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하루 전만 해도 단 2분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명상은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p>
      <p> 칭하이 스승님께 입문을 받았을 때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 주어졌는지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외부의 삶이 그다지 험난하지 않고 내 안에 약간이나마 평화가 있을 때면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p>
      <p>존경하는 스승님! 살아남는 삶에서 영위하는 삶으로 나를 이끌어 주심을 진정 감사드립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39:23 +0900</dc:date>
</item>


<item>
<title>건강 지수에 나타난 기적</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1</link>
<description><![CDATA[<br /><p>입문으로 이어진 스승님과의 만남은 가슴 깊은 곳의 간절한 염원에 대한 응답으로 뜻하지 않게 내게 다가왔다. </p>
      <p>30대 후반은 내 인생에 있어 최대의 침체기였다. 성공적으로 잘 나가던 직장을 정부의 정책 변경에 따라 그만두게 되었을 때 
        건강마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위기가 사실 나를 수행의 길로 몰아붙였기에, 나는 영원토록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할 것이다.</p>
      <p>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그 당시 나는 불가지론에서 무신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삶을 표류하고 다녔다. 이 침체기에 나는 ‘기적의 
        코스’와 영매를 통한 여러 다른 가르침들 그리고 교회를 통해 내 삶에서 잃어버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불만족스러웠다. 
        어느 일요일 아침 카리스마적인 침례교회에서 나는 나 자신이 그때까지 겪어 보지 못한 최고의 침체기에 있음을 느꼈다. 그날 상당히 
        감동적인 변화의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에게 구원을 염원하는 찬송가를 부를 때 대단한 힘(성령)의 존재를 느낀 것이었다. 
        나는 아기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했다. “신이시여, 저 나름대로 시도해 봤지만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발 제게 길을 보여 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당신의 도구가 되게 해주십시오. 충실히 따르겠습니다.”</p>
      <p> 그 다음주에 신문을 읽다가 내 시선을 끄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브리즈번에서 스승님의 대중 강연이 열린다는 광고였다. 
        내가 아내에게 “여기에 가 봐야겠다.”고 말하자 아내는 그 이유를 물었다. 난 그저 “나도 몰라. 아무튼 가야겠어!”라고 대답했다.</p>
      <p>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내면으로부터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것이며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강연이 있던 
        날 밤에 입문식이 있었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입문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당시 난 입문이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그걸 
        원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p>
      <p><br /><span class="topic">늙은 몸 </span></p>
      <p>입문식이 있기 3주 전, 나는 내 병에 대해서 다른 진단을 받아 보기 위해 평판이 높은 동종요법 의사를 찾아갔다. 그 의사는 
        베가 시스템이라는 정밀한 독일제 진단 장비를 사용하여 진찰을 했다. 검사 결과 나는 세 종류의 바이러스가 합성된 M.E.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고, 또 다른 바이러스에 뇌가 감염되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나의 몸에, 특히 혈액 속에는 수많은 기생충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픈 원인을 알게 되어 기뻤고, 진단 결과 나의 건강 지수가 76으로 나왔어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76이라는 수치는 나의 신체 건강이 76세 노인의 평균적 건강 상태와 같다는 것을 뜻한다.) 난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성실히 
        복용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p>
      <p><br /><span class="topic">내 영혼이 씻겨지는 비전</span></p>
      <p>입문식에서 나는 마음이 산란하여 깊은 명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입문식이 끝나 갈 무렵, 스승님이 나의 지혜안을 만져 주시자 
        아주 강력한 내적 체험을 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 내게서 음울하고 더러운 갈색 물질을 끌어당긴 후 그것을 소용돌이 중심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내 과거의 잘못을 씻어 주는 것임을 알았다. 후에 나는 이것이 진정한 세례이며 그로써 이전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
      <p><br /><span class="topic">새로운 삶</span></p>
      <p>비록 늦은 밤이었지만 입문식이 끝난 후에는 매우 고양되고 에너지로 충천한 느낌이었다. 무거운 짐이 내 어깨에서 내려진 것만 
        같았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다!</p>
      <p> 그날 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내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려고 해봤지만, 아내가 입문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한밤중에 집으로 뛰어 들어와서 잠을 설치게 해 놓고는 앞으로 채식을 하고 술과 담배도 끊고 계율을 지킬 것이며 매일 
        명상도 하겠노라고 선언하는 내가 아내에게는 아주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p>
      <p> 아내는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적잖게 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생기와 활력으로 넘치는 새 남편을 얻게 된 것에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언젠가 농담으로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아니, 이 남자가 누구야? 우리 남편에게는 말하지 마세요.”</p>
      <p><br /><span class="topic">몹시 놀란 의사</span></p>
      <p>입문을 한 지 1주일 만에 그 동종요법 의사에게 가서 정기 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다시 그 복잡한 베가 검진을 실시했는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건강 지수가 1(갓난아기의 건강 상태)로 나왔다. 이에 깜짝 놀란 의사는 간호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어!” 그는 내가 이렇게 극적으로 회복된 것을 기뻐해 주었다. 나도 이것이 정말로 기적적인 
        회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입문한 다음해에는 내 몸에서 나던 냄새(종종 악취가 났음)도 사라졌다! 이따금씩 
        수행에 게으름을 피울 때면 조금씩 나타날 뿐이었다.</p>
      <p><br /><span class="topic">우리는 스스로 성장해야만 한다</span></p>
      <p>입문 때 이처럼 믿기지 않는 체험들을 한 후에도 스승님은 나의 모든 바람을 돌봐 주셨다. 초기에는 직장 일이 바빠서 수행할 
        시간이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시켰지만 이젠 수행이 자연스럽게 된다. 1년이 경과해 갈 때 나는, 내가 입문 당시의 높은 경지에서 
        다시 세속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시기에 나를 계속 지탱시켜 준 것이 바로 단체명상의 힘이었다. 나는 단체명상에서 
        얻은 힘으로 한 주일을 버텨 나갔다. </p>
      <p>내가 좀더 수행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연락인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국제 선에도 참석하고 몇 달 동안 평소와 
        같이, 하지만 좀더 오래 명상을 하자 생활이 눈에 띄게 변했다. 지혜도 늘고 이해심도 커져 힘겹게만 느껴졌던 일도 보람되고 즐거운 
        것으로 변했으며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도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다.</p>
      <p> 영적인 수행을 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이로움을 얻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변화를 원한다면 수행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수행이란 것이 영감을 주는 비전과 체험으로 가득 찬 것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수행을 통해 내가 끊임없이 
        도움을 받으며 나의 삶을 변화시켜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명상이 지루하고 진보가 없는 것 같아 초조하게 느껴졌을 때에도 수행을 
        계속해 왔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p>
      <p> 국제 선에 참석하면 황금시대의 삶이 어떠할지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이처럼 국제 선은 정말 굉장한 체험이기에 모든 동수가 
        적어도 한 번은 참석해야 한다. 비록 국제 선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사는 건 아니지만 매일 수행을 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의 
        한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힘을 한데 모으면 우린 정말로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37:03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은 최고의 교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0</link>
<description><![CDATA[<br /><p>스승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그곳 동수들에게 그 지역의 문화와 관습을 물으신다. 스승님은 아주 조심스레 행동하시고, 그 지역 사회와 
        지방 정부를 존중하며 그들과 화합을 이루신다. 심지어는 세세한 절차에까지 신경을 쓰시는데, 예를 들면 강연 시간으로는 언제가 
        가장 좋으며 언제 끝내는 것이 적절한지를 물으시거나 강연으로 인해 주민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늘 세심한 주의를 쏟으신다. 스승님은 
        언제나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 발아래 놓으시고, 그 지방의 관습을 따르시며,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다. 
      </p>
      <p>스승님과 함께 있으면 늘 봄이 찾아온 듯 유괘하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스승님은 또 불행에 처했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궁금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이 필요치 않은지 물으시며 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그래서 이 같은 
        스승님의 무아의 자비행에 감동받지 않는 이가 없다. </p>
      <p>스승님은 때로 우리에게 엄격하시지만 스승님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하시다. 그럼으로써 모든 일에서 우리의 모범이 되신다. 스승님은 
        모든 일을 완전한 집중으로 하시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실 수 있다.</p>
      <p> 1993년 스승님이 세계 순회강연을 시작하셨을 때 그 출발지는 인도네시아였다. 우리가 그 나라를 방문했을 당시에 인도네시아는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었다.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어서 강연을 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많은 제약이 따랐다. 스승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구도자들을 보이지 않게 축복하고 위로해 주셨으며, 그 속에서 제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교훈을 배우게 하셨다. 
        스승님이 아무런 사심 없이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때로는 눈물로써 제자들의 가슴속에 있는 먼지를 털어 내시는 것을 보며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신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주 작은 여자이지만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물며 
        당신은 큰 남자인데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스승님이 지니신 불굴의 용기와 긍정적인 힘이 나를 일깨웠다. 나는 31년 동안이나 
        무술과 가라테, 태극권을 연마했고 만 번도 넘는 크고 작은 경연 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두려움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스승님의 몇 마디 말씀이 나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결코 울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스승님은 최고의 교사이십니다! 스승님의 눈길과 동작, 태도, 움직임 
        하나하나 그리고 스승님의 분위기마저도 우리를 가르치고 일깨웁니다.”</p>
      <p> 나는 어려서부터 무엇을 배우든 집중해서 했다. 또한 스승들을 매우 존경했다. 하지만 칭하이 스승님을 가장 존경한다. 스승님은 
        진정으로 깨달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무술을 연마한 나는 성격이 강하고 너무 진지하다. 그러나 부드러운 무술인 태극권을 
        연마한 후로는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게다가 입문까지 한 뒤로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생활이 변했다. 
        이제는 질병과 굶주림, 여러 불행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 나도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마음 아파한다. 나는 스승님께 
        입문한 것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p>
      <p> 1993년 스승님이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하실 때 나는 3개 나라의 홍법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영적으로도 
        큰 진보를 이루었다. 생활이 전반적으로 변했고, 태극권 수련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이제 태극권은 마음과 생각을 내면으로 통제하고 
        영적 수행과 건강을 조화시키는 운동이 되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29:04 +0900</dc:date>
</item>


<item>
<title>자신감을 되찾은 기쁨</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9</link>
<description><![CDATA[<br /><p>스승님의 1993년 세계 순회강연 중 한국 강연 일정은 서울이 5월 8일, 부산이 5월 15일로 잡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임신 5개월째였으며 건강도 좋지 않았다. 마음은 스승님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으나 자신감이 없어서 서투른 영어로 오히려 
        중생들에게 해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고 건강이 안 좋다는 핑계로 도망가고만 싶었다. </p>
      <p>첫날 부정적인 생각으로 결국은 청중 가운데 한 명이 통역을 했다. 나는 옆에서 그를 도왔다. 다음날 아침 관음사자가 나의 일이 
        신통치 않은 것을 나무랐으며, 혼자서 통역을 하라고 말했다. 눈물이 나왔다.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왜 그런 어려운 
        일이 내게 주어지는가?’ 나는 한쪽 구석에서 명상을 하며 울었고 스승님의 도움을 간절히 기원했다. 동수들과 만나시는 자리에서 
        스승님은 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축 처져 있는 걸 보시고는 “죽진 않아요.”라고 하셨다. 스승님의 무한한 축복과 인도로 하루를 
        보낸 후에 나는 혼잣말로 “스승님, 저를 크게 꾸짖어 주세요.”라고 했다. </p>
      <p>며칠 뒤에 부산에서 강연이 있기 바로 전날 단체명상 중에 스승님은 문수사리보살의 지혜의 검과 포효하는 호랑이를 이용하여 구제되지 
        않은 나의 아집을 공격하셨다. 스승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나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스승님의 말씀을 통역했다. 단체명상이 
        끝나고 스승님의 숙소로 향하는 길에 아무런 까닭도 없이 나는 공중을 걷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알 수 
        없는 압박감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종종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아픈 마음으로 눈물을 떨어뜨리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짐들을 벗어 버리고 구중천(九重天)에 오른 느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깔깔거리며 웃었다.</p>
      <p> 내가 도착했을 때 스승님이 나를 쳐다보셨다. 나는 유치원생처럼 인사를 드리며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 이렇게 말씀드렸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러자 스승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당신은 항상 내게 말썽만 안겨 주는군요.”라고 하셨다. 나의 
        아집과 두려움을 없애고 나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으시려고 모든 걸 감내하셔야 했던 스승님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나는 나 자신이 그걸 제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후로는 스승님을 위해 내 일생을 헌신하기로 했다.</p>
      <p> 다음날 스승님의 끝없는 가호가 있었기에 나는 부산 강연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통역을 할 수 있었다. 일을 마쳤을 
        때 스승님은 내게 윙크로 축하해 주셨다. 내가 모르는 단어가 약간 나오기도 했지만 난 내가 모든 것을 올바르게 통역했다는 것을 
        알았다. 스승님의 무한한 은총과 가호로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p>
      <p> 그때 이후로도 스승님의 일을 하면서 이따금씩 자잘한 실수를 했다. 그때마다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했다. 그런 일이 있긴 해도 이젠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거나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게 무한한 사랑과 
        자유를 주셨기에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승님께 내 삶을 바칠 뿐이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27:45 +0900</dc:date>
</item>


<item>
<title>마음을 뛰어넘어 성장하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8</link>
<description><![CDATA[<br /><p>하와이에서 스승님이 우리의 업장을 씻어 주셨다. 나도 스승님께 문제를 안겨 드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당시 나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잘 몰라도 스승님이 우리에게 화를 내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참회를 했는데, 참회한 효과가 있었다. 스승님이 화내시는 것을 곧바로 멈추신 것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놀라운 체험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에고가 상했다. 나는 평정을 되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스승님의 처소에서 
        있은 단체명상에 참석했다. 처음에는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래서 나는 뛰는 가슴을 
        안고 차에 올랐다. 가는 도중에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가 스승님 처소 약 2미터 전방에 도착했을 때, 아주 강렬한 사랑의 
        느낌이 나를 감싸며 나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날려 보냈다. 나는 전신이 편안하고 침착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마치 스승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 “이봐요, 걱정하지 말아요! 모든 것이 다 괜찮으니까.” 나는 마음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이곳에 
        온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어찌 나를 향한 스승님의 사랑이 이토록 깊은 것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p>
      <p>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스승님은 내 자만심 때문에 안 좋은 평판까지 감내하시며 나를 교육시키려 하신 것 같다. 지금 나는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며, 내 삶의 모든 면에서 나를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26:00 +0900</dc:date>
</item>


<item>
<title>고통 받는 거리의 천사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7</link>
<description><![CDATA[<br /><p>1993년 어느 날, 영등포역에서 홍법을 할 때 우리 일행 중 일부는 견본책자를 나눠 주는 일을 했고, 나머지는 바닥에 떨어진 
        걸 회수하는 일을 맡았다. 그곳 역 주변에는 노숙하는 부랑민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견본책자를 수거하기 
        위해 그들 앞을 지날 때, 그들 중 한 명이 스승님의 견본책자를 읽고 눈물을 흘리다가 우리를 보고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손을 잡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눈물이 앞을 가려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고 하며 이처럼 마음에 와 닿는 책은 
        생전 처음 본다고 했다.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아 수용소에서 회복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이 책을 가져다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p>
      <p>그들에게 견본책자와 스승님의 강연 소식을 전해 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스승님의 방문을 준비하는 일에 더욱 열심히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처럼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해 우리는 밤낮을 잊고 더 많은 지역에 견본책자를 배포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24:39 +0900</dc:date>
</item>


<item>
<title>하나가 된 사랑</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6</link>
<description><![CDATA[<br /><p>나는 동수들의 도움으로 스승님의 1993년 세계 순회강연 여행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처음에 참가 여부를 물어 왔을 때는 돈이 
        없어서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있던 리 사형이 이 사실을 알고 “내일 해결 방안을 말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자기가 내 비행기표 값을 치르겠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돈이 있는 
        동수들은 보시를 하고 시간을 낼 수 있는 동수들은 작업 팀에 참여를 하며 모두가 스승님의 일을 도왔던 것이다. 스승님을 향한 
        동수들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나는 13개국 순회강연 여정을 도울 수 있는 크나큰 영광을 얻었다.</p>
      <p> 세계 순회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전력을 다해 일했다. 그래서 이 3개월 동안 육체적으로는 다소 지쳤어도 영적으로는 수십 
        년간 홀로 수행한 것보다 더 큰 진보를 얻었다. 내가 작업 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건 나의 영적 진보를 위해 이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명상을 할 때 큰 변화가 느껴졌다. 수행에서 엄청난 진보를 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나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나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22:55 +0900</dc:date>
</item>


<item>
<title>1993년 세계 순회강연 동안 지갑이 얇아질수록 야위어 가는 스승님과 제자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5</link>
<description><![CDATA[<br /><p>우리 팀의 구성원들은 1993년 세계 순회강연의 모든 일정에 참가했다. 우리 팀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다른 
        팀을 만나 보면 우리가 다른 팀의 멤버들보다 더 야위고 지쳐 있는 듯 보였다. 우리는 농담 삼아 우리 팀은 해병대이고 통통한 
        사람이 많은 다른 팀은 위문단이라고 말했다. </p>
      <p>하지만 스승님은 우리보다 훨씬 더 지치셨으며 쉬실 시간이 극히 부족했다. 스승님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시면서도 중생들의 
        업장을 짊어지셔야 했던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 수십만 NT 달러를 썼다. 재가자로서 직장 생활을 해서 봉급을 받아 왔었기에 
        다행스럽게도 여행 비용을 스스로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승님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보시를 전혀 받지 않으신 채 예술품을 
        판 돈으로 스승님 자신과 관음사자들의 여행 경비를 충당하셨다. 그래서 세계 순회강연을 한 후에는 스승님의 지갑이 얇아졌고 스승님과 
        제자들의 몸도 많이 야위었다. 그래서 스승님이 언젠가 “중생들은 너무 비싸!”라고 농담을 하신 것도 이해할 만은 하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모든 중생들이 이로움을 얻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여행을 하는 동안 스승님과 제자들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p>
      <p>태국에서 우리는 스승님의 자비행 가운데 하나를 목격했다. 스승님이 어느 가난한 삼륜 자전거 운전수를 보시고는 한 동수더러 그에게 
        줄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하셨을 때, 그 동수는 한 뭉치의 돈을 들고 그에게 얼마를 줘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스승님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재빨리 그 돈을 몽땅 그에게 주셨다. 마음과 행동에 있어서 솔직하고 관대한 스승님의 정신이 진정으로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19:08 +0900</dc:date>
</item>


<item>
<title>최선을 다해야만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4</link>
<description><![CDATA[<br /><p>1993년 세계 순회강연 도중 홍콩에서의 강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우리에겐 스승님의 그림과 등을 전시할 별도의 방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강연장에 전시했다. 그러나 강연장이 매우 혼잡스러웠고 스승님의 예술품들이 진열대에 걸려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건드리지 못하게 할 수 없었다. 오며 가며 건드리다 보니 그림이 자꾸 흔들렸다. 강연이 끝난 뒤에 드디어 스승님이 
        그 일로 훈계를 하셨다. 그림과 등은 예술적인 가치를 살려 전시되어야지 그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전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다시는 강연장에 전시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 스승님은 앞서 몇 차례의 강연 동안 우리들이 형편없이 일하는 것을 꾹 참고 계셨던 
        것이다. 마지막 강연까지 세 차례나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가 전혀 진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승님이 나서서 우리를 일깨워 주셔야만 
        했던 것이다.) </p>
      <p>스승님의 훈계를 듣고서 강연장에 예술품 전시하는 일을 맡고 있던 천 사저와 나는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스승님이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계신 것에 놀랐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스승님의 작품을 좀더 훌륭하게 전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런데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해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천 사저는 수년 동안 수출입 업무에 종사해 왔고 가끔 타이베이 
        국제 전시장에서 상품들을 전시해 왔기 때문에 전시장 꾸미는 일을 아주 잘한다. 그리고 나 또한 10년 이상 인테리어 디자인을 
        가르쳐 왔으므로 스승님의 작품 전시를 훨씬 더 잘했어야 마땅했다. 천 사저와 나는 먹고살기 위해 세속의 일은 아주 열심히 했으면서도 
        세계 순회강연 동안 스승님의 예술품을 전시하는 일은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건성으로 했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연단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만 함으로써 예술품을 통해 스승님과 인연 있는 사람들이 해탈의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간과했다. 
        스승님의 말씀이 게으름에 빠져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순회강연 초기에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이 나와 함께 홍법을 
        하는 것은 나와 사무실을 같이 쓰는 겁니다.”라고 하셨다. 이처럼 우리가 스승님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어떻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신이 우리에게 내리신 공덕을 낭비할 수 있단 말인가?</p>
      <p> 말레이시아가 다음 강연지였다. 이번에는 스승님의 예술 작품을 완벽하게 전시하겠다고 우리는 서로 다짐했다. 우리는 전문 전시 
        회사에서 진열대와 빛을 쏘아 주는 전구와 같은 몇몇 전문 도구들을 임대했다. 마침 전기 기술자 동수가 있어 그가 우리를 도와 
        전구를 설치하는 등의 일을 해주었다. 콸라룸푸르에서의 강연장은 중국 스타일의 ‘신전’이었는데, 스승님의 작품이 사원 주위의 복도에 
        전시되었다. 날이 어두워 전구를 밝히자 모든 그림이 더욱 입체적으로 보였고 색채도 더욱 밝고 선명하게 보였다. 천상의 신전을 
        둘러싼 전 복도가 수준 높은 갤러리를 방불케 했다.</p>
      <p> 이런 경험을 한 뒤로는 수없이 많은 강연을 준비할 때마다 스승님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일도 진리를 전하는 일의 한 부분이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명심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해탈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전심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1993년 세계 순회강연 중에 스승님의 가르침을 통해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17:06 +0900</dc:date>
</item>


<item>
<title>잠을 자지 않는 장군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3</link>
<description><![CDATA[<br /><p>스승님의 1993년 세계 순회강연 중에 한 사형은 거의 ‘잠을 자지 않는 장군’이 되었다. 그는 낮이면 강연장을 빌리거나 홍보물을 
        배포하는 일을 했고, 밤이면 계획을 세우거나 다음 강연지와 연락을 취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보름 동안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여행을 가까스로 마친 후에 그는 스승님이 이러한 기회를 통해 자신이 육체적 한계를 돌파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는 것과 자신이 돌파해야 하는 한계는 사실상 자기 마음이 만들어 낸 에고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헌신이 삶의 목표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이해에 도달했다. </p>
      <p>스승님은 사람을 훈련시키실 때 일을 주시고 그 일이 마감되어야 할 시간을 정해 주신다. 그러한 경험들로 그 사형은 많은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관념이 생기고 그래서 그 관념을 깨뜨려야 할 필요성도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면 관념도 없으므로 장애를 뛰어넘기가 훨씬 쉬운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진정으로 
        놓는다’는 의미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13:05 +0900</dc:date>
</item>


<item>
<title>위대하고 사려 깊은 사랑</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2</link>
<description><![CDATA[<br /><p>1993년 유럽에서 강연을 마친 후 우리는 즉시 한국으로 갔다. 중량 초과로 스승님의 물건과 비디오, 오디오 장비를 제외한 
        모든 짐들을 배편으로 보냈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한 직후에 우리에게는 담요와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그러자 우리의 자비로우신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스승님의 담요와 관음보, 베개 등을 주셨다. 내가 받은 건 스승님의 하얀 스카프였다. 나는 너무너무 행복해서 
        아직까지도 그것을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다. </p>
      <p>스승님은 언제나 사려 깊게 모든 이들을 일일이 보살펴 주신다. 스승님은 선이나 강연을 마치신 후에는 언제나(세계 순회강연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문객들이나 동수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신다. 그런 다음 맨 나중에는 작업 팀을 둘러보시며 당신의 
        사랑을 전하신다. 스승님은 당신을 곁에서 모시는 시자들도 잘 돌봐 주신다. 가까이에 있는 시자들을 살펴보신 후에야 비로소 휴식에 
        들어가신다. 스승님은 당신의 무아의 헌신을 통해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 주신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08:25 +0900</dc:date>
</item>


<item>
<title>단체의 높은 진동</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1</link>
<description><![CDATA[<br /><p>1993년 나는 순회강연 여행에 처음 참가했는데, 그 과정에서 결코 부술 수 없다고만 여겨 왔던 나의 에고가 단체의 높은 진동에 
        의해서 쉽고 자연스럽게 무너져 버렸다. </p>
      <p>호주에서는 인구 밀도가 낮은 관계로 전단을 배포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래서 첫날은 많은 전단을 가지고 되돌아왔다. 이를 보고 
        책임을 맡은 사형이 그날 우리에게 할당된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단을 배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지만,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매일의 과제를 완수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꿋꿋하게 일했다.</p>
      <p> 호주에서 전단을 배포했던 경험은 내게 일에서의 자기 훈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가르쳤다. 작업 팀의 구성원들과 관음사자의 
        관계는 놀랍고도 감동적이었다. 작업 팀은 훈련이 잘되어 있었고 명령에 절대 복종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신속하게 대처하고 용감하게 
        일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용기 있는 모습이 나로 하여금 개인적인 자아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래서 
        이번 강연 여행은 내가 진리와 진아를 찾는 여정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스승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소아(小我)를 
        내버리십시오. 그러면 성장할 겁니다.”</p>
      <p><br /><span class="topic">게으름을 피우지 말 것</span></p>
      <p>아시아로 돌아오자 일정이 그리 빡빡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는 두 개의 작업 팀이 함께 일했다. 우리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졌다. 두 작업 팀의 책임자가 같이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의지를 하게 되었다. 강연 후에 스승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파티에 부르시는 것으로만 여기고 갔으나 스승님께 심한 꾸중을 들었다. 스승님은 우리가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고, 신에게 
        의지하는 대신에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우리는 힘든 일을 성공적으로 해 온 것에 자만해 있었다. 스승님의 
        날카로운 경고가 우리의 태만하고 부주의한 태도를 신속하게 변화시켰다. 우리는 다시 신의 지시에 주의를 집중했다. 스승님은 제자들을 
        교육시키실 때 절대 외면적인 성공이나 실패를 보지 않으시고 내면의 성품을 강조하신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5:04:35 +0900</dc:date>
</item>


<item>
<title>대형 강연장</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0</link>
<description><![CDATA[<br /><p>1993년에 스승님을 따라 세계 순회강연 길에 올랐을 때, 우리가 겪게 될 믿지 못할 난관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는 그냥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그 여행에 동행했던 동수들에게 정말로 크나큰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해낼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해냈고 참기 어려운 일도 잘 견뎌 냈다. </p>
      <p>스승님은 한국에서 두 차례의 대 강연을 기획하셨다. 그래서 두 개의 대형 강연장이 준비되었는데, 특히 부산 강연은 4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체육관에서 열렸다. 돔 형태로 된 천장은 10층도 넘는 높이였으며, 원형 경기장 안은 중앙을 바라보며 
        좌석이 둥글게 배치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 무대 방향인지 분명치도 않았고, 연단이나 무대 배경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목공 일을 
        하는 동수가 연단을 만들어야 했다. 더군다나 한국말을 몰라 손짓으로 한국 동수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p>
      <p>무대 배경은 천장에 매달아 설치해야 했다. 천장까지 닿는 길고 좁다란 철제 계단이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천장으로 가는 
        계단이라기보다는 구름 속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같았다. 건축 담당 동수가 이 일을 자원했다. “나는 모형을 짓기 위해 10층도 
        넘는 곳을 올라 다니곤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그 일은 무량광 속에서 벌어지는 곡예였다. 
        그 동수가 꼭대기에서 목청껏 노래 부르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지만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 사형은 지상에서 높이 떨어져 
        있는 좁다란 층계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연속해서 작업을 해야 했기에, 고소 공포증을 극복하려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신에게서 
        오는 것처럼 하나씩 둘씩 밧줄이 내려왔다. 계획한 대로 밧줄이 다 준비되자 일이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대 배경의 
        중량 때문에 그것을 지탱하고 있던 밧줄이 여러 번 끊어졌다. 그래서 몇 번을 시도한 끝에야 간신히 성공할 수 있었다. 다른 동수가 
        자원해서 도우려 했으나 계단을 중간쯤 오르더니 공포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다. </p>
      <p>강연이 열린 날, 홀은 구도자들로 가득했다. 무대의 배경이 웅장하게 보였다. 스승님은 무대 장치가 한국 스타일로 단순하면서도 
        창조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칭찬하셨다. 설사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무대 장치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스승님이 작업 팀에게 
        보상을 주시는 뜻에서 일부러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이 있은 다음 5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입문을 했다. 힘들고 
        고된 작업이 기쁨으로 바뀌면서 내가 강연 여행에 참가해서 이 일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스럽게 여겨졌다. 그때 함께 일을 
        했던 동수들과 그때의 일들을 회상하면 우리 모두가 감사함으로 벅차오른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 아닐까 한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4:59:51 +0900</dc:date>
</item>


<item>
<title>부적절한 개념에서 얻은 교훈</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9</link>
<description><![CDATA[<br /><p>스승님의 1993년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린 사저 팀이 스위스로 먼저 떠났다.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그 사저에게 즉시 중요한 
        일들이 맡겨졌다. 그 중 하나가 강연의 주제와 시간, 장소를 알리는 포스터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스위스 사람들이 주로 불어를 
        사용하고 있고, 또 스위스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체류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포스터에 불어와 영어를 넣어 제작하기로 했다. 유럽 
        동수 한 명이 인쇄소를 찾는 작업을 도우러 왔다.</p>
      <p> 일정이 빠듯해서 빨리 포스터를 제작해야 했다. 린 사저는 인쇄업자와 문안을 상의한 뒤에 숙소로 돌아가려고 차에 올랐다. 그때 
        강연 주제를 영어로만 썼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불어가 그곳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말인데 불어로 쓰는 것을 잊은 것이다. 
        린 사저가 즉시 인쇄소로 돌아가 문안을 수정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동수가 말하길, 그 일의 책임을 맡고 있는 동수가 불어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인쇄소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므로 다시 가서 수정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강한 신호를 무시하고 그 동수가 말하는 대로 했다. </p>
      <p>이틀 뒤에 포스터가 나왔다. 그런데 책임자가 유심히 불어로 쓰인 내용을 영어로 쓰인 내용과 비교하여 검토하더니 가장 중요한 
        부분인 주제에는 영어로만 쓰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린 사저를 심하게 나무랐다. 린 사저는 꾸지람을 들은 것보다는 포스터를 
        다시 인쇄하느라 이틀을 소모해야 하는 것에 크게 미안함을 느꼈다. 이 때문에 강연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더욱 안 좋게 만들었던 것은 자신의 잘못된 개념이었다. 포스터는 무수한 대중들을 위한 것이지 책임을 맡고 있는 동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신에게 봉사하는 일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할 수 있었단 말인가? </p>
      <p>이 경험으로 그 사저는 엄청난 교훈을 얻었다. 그녀는 신속히 일하는 것을 배웠으며 일을 하는 데 있어, 특히 진리를 전파하고 
        해탈을 가져다주는 일에 있어서는 절대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거나 운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체득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4:41:45 +0900</dc:date>
</item>


<item>
<title>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8</link>
<description><![CDATA[<br /><p>1989년 출가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운이 좋게도 스승님을 모시고 몇 개국을 다닐 기회를 얻었다. 나는 아주 운이 좋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매우 초조하고 두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누군가를 돌보고 보좌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과보호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 내가 이제 갓 출가하여 요리나 빨래를 하는 등 일상사를 처리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는데, 
        완전무결하고 꼼꼼하고 고상한 스승님을 보좌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내가 스승님의 시자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 가운데 하나였다.</p>
      <p> 그러나 그날이 되자 스승님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염원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스승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하려는 
        나의 열망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 스승님이 행하시고 받으시는 노력과 고충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의 이런 노력과 고충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이었다! </p>
      <p>오랜 생각 끝에 나는 자신의 많은 부정적인 면들을 없애고자 하는 염원 때문에 내가 스승님의 시자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 염원 때문에 나는 출가했다. 그리고 출가하기 전에 이런 결정이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기 위해 일부러 몇 달을 
        기다리기도 했다. 내가 혐오하는 부정적인 성격들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출가하는 것임을 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는 기분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출가를 하자 곧바로 스승님이 나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나의 소망을 이루게 
        도와주신 것이다.</p>
      <p> 이미 발을 내딛은 이상 나는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출가 승단에서 어느 정도 훈련을 거쳐서 좀더 나아진 후에 스승님의 시자로 
        불려 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실제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 좀더 나아진 후에는 더 이상 스승님의 시자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실들로 짐작해 보건대 스승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시자를 두시는 것이지 결코 당신 
        자신의 안락이나 즐거움을 위해 그러시는 것이 아니다.</p>
      <p> 1990년 외국에서 머물던 어느 날, 스승님과 나는 산책을 하던 중에 반대편에서 걸어 오는 한 평범한 노인을 만났다. 나는 
        그다지 그 여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스승님은 손을 내밀며 괜찮으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 여인은 힘없이 뒤뚱거리며 오랫동안 
        굶었다고 대답했다. 스승님은 팔을 부축해서 그를 가까운 식당으로 데려가시더니 햄버거와 튀김 감자, 음료수 등을 주문하셨다. 그러나 
        식당 주인은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 여인보고 어서 떠나라고 했다. 전에 여기서 구걸했던 것이 분명했다. 스승님이 단호하게 
        “이 사람은 나의 귀한 손님입니다.”라고 하시자, 식당 주인은 어쩔 줄 모르는 기색으로 사과했다. 스승님은 식사 대접 후에도 
        햄버거를 몇 개 더 사서 그녀에게 주셨다. 그 여인은 힘이 없어서 말도 잘 못했지만 무척 고마워했다.</p>
      <p> 스승님이 사 주신 햄버거는 채식 햄버거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스승님의 즉각적이고 단호한 행동은 이전에 
        좋은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나를 괴롭히던 갈등을 대번에 없애 주셨다. 때로 버스에서 다른 사람에게 좌석을 양보할 때면 주위의 
        시선을 끌까 봐 두렵고 불안했었다. 그 당시 나는 부정적인 사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다. 사람들은 악을 행할 때는 의기양양하면서 선을 행할 때에는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이는 지옥에 갈 배짱은 
        있으면서 천국에 갈 용기는 없는 것과 같다.</p>
      <p> 어쨌건 이 사건으로 난 내 몸에 들러붙어 있던 더러운 흙먼지를 털어 낸 것 같았다. 스승님이 일을 처리하시는 것을 잘 관찰하면 
        빨리 배울 수 있다. 말이 필요 없이 곧바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그를 통해 스승님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스승님은 우리 전생의 무거운 멍에를 벗겨 주실 뿐 아니라 친히 모든 방면에서 산 모범이 되어 주신다.</p>
      <p><br /><span class="topic">가슴속 사랑의 등불을 밝히다</span></p>
      <p>1991년 필리핀 화산 폭발 직후, 우리는 필리핀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긴급 원조 요청을 받았다. 이에 스승님은 즉시 남녀 출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대책을 논의하셨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웠다. 스승님은 밤을 꼬박 새우면서 활동 
        계획과 세부 사항을 논의하셨다. 구호 활동에 인정 있는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신문 광고도 내기로 결정했다. </p>
      <p>스승님은 항상 신속하게 행동하시고, 우리들에게도 신속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하신다. 스승님과 함께 일하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 
        된다. 그런데 스승님이 일을 하시는 방식은 내가 익숙해져 있던 외부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서 지체 
        없이 순식간에 광고와 관련 자료가 준비되었다. 나는 스승님이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내가 매우 자애롭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너무 시간이 촉박하여 스승님은 출가승들을 그곳으로 당장 보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하셨다. 나도 파견대의 
        일원으로 가게 되었다.</p>
      <p> 때마침 필리핀은 한창 더울 때였다. 마닐라 외곽 지역, 온 고장이 화산재로 뒤덮여 있었다.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광경이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생필품과 구호품을 구입하여 그 물품들이 이튿날 재해 지역에 전달될 수 있도록 포장하는 일을 
        했다. 우리는 곧 어느 장군의 도움으로 공군 기지의 실내 체육관을 빌려 거기에 구호물자를 보관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수송 
        시간을 줄이고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공군 부대에서 구호물자를 지키도록 군인을 한 명 보내 주었는데, 처음에 그는 우리를 그다지 
        존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외국인인 우리가 잠 한숨 제대로 못 자며 밤새도록 구호품을 포장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재해 지역으로 
        구호품을 나르고 또 날이 어둑해질 때 돌아와서는 쉬지도 못하는 것을 지켜보았다.</p>
      <p> 얼마 후 인근에 사는 군인 가족들이 와서 우리가 물품을 포장하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서로 친밀감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마닐라로 떠날 수 있었다. 
        거기서 스승님께 전화로 그동안의 성과를 보고드렸다.</p>
      <p> 우리는 한밤중에 체육관에서 철수했다. 그때 경호 군인이 취침을 하고 있어서 내가 그를 깨우러 갔다. 우리가 떠난다고 알려 
        주고 문단속하라고 일러 주기 위해서였다. 막 깨어난 그는 눈을 뜨자마자 내 손을 자기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별빛이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나는 곧 스승님의 사랑이 그의 영혼 깊이 스며들어 그로 하여금 마음속 깊은 감사의 
        표시를 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나는 사랑의 발로에서 이 구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군인의 변화를 통해 마음속 사랑의 등불이 밝혀지는 걸 느꼈다. 지금 나는 이 보잘것없는 작은 등불로써 광명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을 
        비출 각오가 되어 있다. 이 일은 오랫동안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p>
      <p> 만약 스승님이 구호 팀으로 나를 파견하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또 이기심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좁은 세상에 안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일로 
        나는 분명히 알았다. 우리가 성심과 의로운 행동으로 중생의 마음에 밝은 등불을 켤 수 있다는 것을.</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4:33:38 +0900</dc:date>
</item>


<item>
<title>대 자비</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7</link>
<description><![CDATA[<br /><p>1986년에 스승님은 포모사 근해의 펑후 섬에 있는 어울락 난민 수용소를 방문하셨다. 수용소에서 출발하여 긴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스승님은 갑자기 택시 기사에게 방향을 돌려 달라고 하셨다. 길가에 누워 있는 개를 보시고자 했던 것이다. 스승님은 그날 
        아침 수용소로 가시는 길에 그 개를 보셨다. 그래서 개가 괜찮은지 알고 싶으셨던 것이다. 택시에서 내리신 스승님은 개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자 개는 간신히 생기 없는 눈을 떴다. 개는 움직이지도 짖지도 못했으며 무척 고통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택시 기사에게 조심스럽게 개를 차 뒷좌석에 싣게 하셨는데, 기사의 손이 피로 얼룩진 것으로 보아 개가 심하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은 무척 걱정하시며 가능한 한 빨리 수의사를 찾아가자고 하셨다. 이리저리 돌며 마침내 동물 병원 하나를 찾아냈는데 
        공교롭게도 수의사가 왕진을 나가고 없었다. </p>
      <p>수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스승님은 개의 이마를 적셔 주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개를 안심시키셨다. 개가 물을 조금 먹고 조용히 
        누워 있더니 약간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 스승님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한 택시 기사는 자진해서 수의사를 데려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뒤 수의사를 데리고 돌아오는 중에 수의사에게 사랑에서 우러난 스승님의 행동을 들려주었다. 수의사는 도착하자마자 
        개의 상태를 살폈다. 그 개는 깊은 내상을 입고 있었는데 차에 치인 것이 분명했다. 가슴은 부어올라 있었고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수의사가 주사 두 대를 놓자 개는 곧 의식을 되찾았다.</p>
      <p> 다음 문제는 이 개의 보금자리를 구해 주는 것이었다. 거리로 되돌려 보내면 굶주릴 가능성이 높았다. 스승님은 개와 고양이를 
        많이 기르고 있는 어울락 난민 수용소로 개를 데려다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 스승님은 또한 개가 계속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수의사의 전화번호를 받아 놓으셨다. 스승님의 진심 어린 사랑과 친절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를 감동시켰다. 수의사는 
        친절하게도 치료비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스승님은 난민 수용소로 되돌아가시기 전에 그 수의사에게 치료비 대신 줄 과일을 
        사셨다.</p>
      <p> 아무도 개의 주인이 어울락 난민 수용소에 있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날 개 주인은 자신의 형을 만나러 공항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개가 그를 뒤쫓아 오다가 어떤 차에 치었다. 당시에는 개를 돌봐 줄 시간이 없어서 개를 길 한쪽에 옮겨 
        놓고 그냥 떠났는데 공항에서 돌아와 보니 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우리가 개를 수의사에게 데리고 간 후였을 것이다.)</p>
      <p> 개를 주인에게 되돌려 주고 스승님은 안도의 숨을 쉬셨다. 식당에 들어서자 택시 기사가 사람들에게 스승님의 자비와 사랑 어린 
        보살핌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다. 스승님이 택시 기사에게 식사 대접을 하려고 하시자 기사는 사양하면서 기름 값만 조금 받았다. 
        그는 친절하게도, 오전 내내 쉬지 않고 개를 나르고 얼룩진 뒷좌석을 힘들게 청소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스승님은 
        기사에게 사과를 하고 과일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신의 선물입니다.”</p>
      <p> 나중에 스승님은 동수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급박하게 필요할 때는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일분일초라도 
        지체해선 안 됩니다.”</p>
      <p><br /><span class="topic">지혜로운 자비</span></p>
      <p>1986년 7월의 어느 날, 어떤 동수가 부리가 빨갛고 작고 귀여운 하얀 새를 발견했다. 그는 스승님께 그 새를 데려와 축복해 
        주시길 청했다. 그런 뒤 새를 풀어 주었다.</p>
      <p> 새장 문이 열리자 새는 하늘로 날아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왔다. 새는 스승님의 손등에 살며시 앉더니 우리가 아무리 
        날려 보내려고 해도 날아가지 않았다. 새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신 스승님은 새에게 먹이와 물을 주시고는 
        살그머니 숨으셨다. 스승님을 찾지 못하자 새는 제자들에게로 다가왔다. 스승님은 음식을 치우고 그 새에게 너무 가까이 있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 몇몇은 그 새를 되돌려 보내기 어려워했다. 스승님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아시고 설명해 주셨다. 
        “새가 인간에게 익숙하도록 놔두면 어떤 사람이 쉽게 새를 잡을 것이고, 그러면 새는 새장 안에 갇혀 영영 자유를 잃게 될 거예요. 
        진정한 자비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라고 말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14:30:45 +0900</dc:date>
</item>


<item>
<title>세기를 횡단하는 여정-거인의 발자취</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6</link>
<description><![CDATA[<br /><p>유럽 순회강연 내내 우리의 자그마한 스승님은 과로와 곤란을 무릅쓰며 무수한 국가를 여행하셨다. 스승님은 이틀에 한 번 꼴로 
        각기 다른 나라에서 대중 강연을 하셨고 그 지역 동수들의 단체명상에도 참석하셨다. 아르메니아에 이틀 머무시는 동안에는 고아원과 
        양로원을 방문하셨고 여러 도시 시장과 정부 인사들을 만나셨으며 TV 인터뷰와 기자회견에도 응하셨다. </p>
      <p>모든 입문식이 스승님에 의해 직접 진행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음날에 추가로 입문식이 거행될 때도 있었다. 이토록 숨가쁜 
        일정은 인간의 역량을 넘어선 것이었다. 게다가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일세에 해탈시키고 그들의 5대를 천도시키기 위해 스승님이 감당하셨어야 
        했을 업장은 또 얼마나 컸을지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p>
      <p>강연과 입문을 통해서 무수한 영혼들 속에 사랑의 씨앗이 심어졌고 그들의 영적 의식이 한층 고양되었다. 스승님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셨다. </p>
      <p>강연 직후에 국제 선이 개최되었는데, 스승님은 선 동안에 수천에 이르는 참석자 전원을 축복해 주셨다. 강연 여행과 선 기간에 
        스승님이 보여 주신 무아의 헌신은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입증하는 것이었다.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p>
      <p>스승님의 무한한 헌신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 전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을 감동시켰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1:09:46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 곁에서</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5</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3300">♣ 스위스 제네바에서의 에피소드</font></p>
            <p>스승님의 유럽 순회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스위스에서 천상의 보석전이 열렸다. 스승님은 보석전에 참석하시려고 일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하셨는데, 시자를 대동하지 않고 단신으로 오셨다. 연락인에게도 출국하시기 직전에 연락을 주셨다. 우연히 루 사저와 그의 남편이 
        연락인과 함께 스승님을 만나 뵙기 위해 호텔로 가게 되었다. 그들이 도착한 직후에 뒷좌석에 승객 한 명을 태운 택시가 호텔로 
        들어왔다. 바로 스승님이셨다! 루 사저와 그의 남편, 연락인이 스승님을 마중하러 나갔다. 스승님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신 뒤에 스승님이 연락인에게 물으셨다. “사저, 택시 기사의 서비스가 아주 훌륭했어요. 그래서 그에게 팁을 
        좀 넉넉히 주고 싶은데, 이 정도면 충분한 건가요?” 스위스에서는 팁의 비율이 정해져 있던 터라 혹시라도 팁을 적게 주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주 적절한 금액인데요!”라고 연락인이 대답했다. 그러자 스승님은 “아! 그러면 안 돼요! 그의 
        서비스가 아주 훌륭해서 그 정도론 충분치 않아요. 좀더 줘야 해요!”라고 하시며 즉시 그 사저에게 택시를 뒤쫓아 가 돈을 더 
        줄 것을 부탁하셨다.</p>
      <p> 스승님이 짐을 내리실 때 루 사저는 자신이 방까지 그 짐들을 옮겨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가 머뭇거리는 동안 
        어느새 스승님은 주차장으로 가 차에 오르고 계셨다. 차가 출발하려 할 때 갑자기 스승님이 창문을 열고 말씀하셨다. “이봐요! 
        내 짐을 그냥 갖다 놓지만 말고 가방 안의 물건들을 꺼내 정리를 좀 해줘요.” 루 사저는 스승님이 자신의 망설이는 마음을 곧바로 
        알아채신 것에 깜짝 놀랐다. </p>
      <p>방에 도착해서 여행 가방을 열어 보고 루 사저는 다시 한 번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승님은 10분 만에 짐을 꾸리느라 
        모든 게 엉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지품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화장품과 옷, 신발 등이 
        모두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스승님은 물건을 마구 쑤셔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루 사저는 적이 놀라며 자기 같으면 
        두 시간 동안 골머리를 썩이며 짐을 꾸릴지라도 이보다는 더 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p>
      <p> 루 사저의 남편은 바로 작년에 입문했는데 스승님을 어떻게 보필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스승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했다. 그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스승님은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셨다. 잠시 후에 스승님은 
        그에게 목이 마른지를 물으셨다. 마음이 순수한 그 사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승님은 그에게 물을 한 잔 따라 주셨다. 스승님은 
        비행기 안에서 아무것도 드시지 못해서 배가 몹시 고프다고 고백하셨다. 그에게도 배가 고픈지 물으신 후에 스승님은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로 빵을 한 조각 집어 잼을 바른 뒤 냅킨에 싸서 그에게 건네주셨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내가 배가 고프니 
        당신도 당연히 그렇겠지요?” 후에 그 사형이 말하길, 스승님은 누군가와 함께 계실 때면 그를 돌보는 데 완전히 집중하시기 때문에 
        마치 스승님이 이 세상에서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사랑하시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스승님의 사랑은 
        전혀 가식이 없어 너무도 자연스럽다.</p>
      <p> 나중에 십여 명의 동수들이 스승님을 뵈러 호텔로 왔다. 그때 스승님은 방에서 쉬고 계셨지만 제자들이 도착하자 그들을 보러 
        내려오셨다. 당연히 제자들의 기쁨은 형용할 길이 없었다. 등 뒤로 손을 숨긴 채 스승님이 웃으며 물으셨다. “여러분은 내가 언제 
        내려오려나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죠?”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승님이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러니 위층에서 내가 초조할 수밖에요. 
        여러분이 생각으로 나를 자꾸 재촉해서 내가 서둘러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스승님은 등 뒤에 숨겼던 
        캔디 상자를 내보이셨다. 모든 이들이 스승님과 사탕을 나누어 먹었다.</p>
      <p> 제자들이 스승님의 사랑을 한껏 즐기고 있는데, 문득 스승님이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으니 반나절 동안은 평범한 관광객이 되어 
        돌아다니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는 고성에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으셨다. 물론 그 초대를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모인 동수 전원이 단체 관광을 준비했다. </p>
      <p>그때 때마침 스승님의 운전기사로 배정된 사형이 리무진을 렌터카 회사에서 몰고 왔다. 그는 스승님이 다음날 도착하시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세차하고 시트커버를 바꾸어 놓을 생각으로 하루 일찍 차를 빌린 것이다. 렌터카 회사 직원이 “방금 세관을 통과해서 
        아직 컨테이너 위에 있는 최신품 메르세데스 벤츠가 있는데 원하시면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제안했을 때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 그가 이전에 그 회사와 거래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원래 최신 차를 빌려 주는 일이 거의 없는 렌터카 회사에서 
        선뜻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아마도 스승님이 많은 어려움을 겪으셔야 하는 걸 동정하시어 신이 스승님을 위해 그 차를 마련하신 
        것이 분명했다! 그 사형은 스승님이 이미 도착하신 줄은 까맣게 모른 채 다음날 스승님을 맞을 준비를 하려고 새 리무진을 몰고 
        호텔로 왔다. 그는 자기가 시간에 딱 맞게 차를 댄 것을 전혀 몰랐다! </p>
      <p>그가 번쩍이는 리무진을 보여 드렸을 때 스승님의 얼굴은 기쁨과 놀라움으로 환히 빛났다. 스승님은 마치 색다른 장난감을 대하는 
        귀엽고 순진한 어린이 같았다. “이 차가 내가 탈 찬가요?” 스승님이 물으시자 운전석에 앉으려던 그 사형이 대답했다. “예, 
        스승님.” 스승님은 너무나 즐거워하셨다. “정말로 근사해요! 너무 멋진 차라 내가 직접 운전하고 싶군요.” 스승님의 아담한 체구가 
        운전석에 파묻혀 마치 운전하는 사람 없이 리무진이 저 혼자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복이 많은 유럽 제자 몇 사람이 이 차에 
        타는 행운을 누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차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p>
      <p> 성 앞에 당도해 차에서 내리신 스승님은 신을 벗은 채 맨발로 오솔길을 걸어 오르시며 맨발로 걷는 게 건강에 좋다고 충고하셨다. 
        동행한 제자들은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되었다. 그때 문득 스승님이 뒤돌아서서 루 사저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왜 아무도 이 멋진 풍경을 찍지 않는 거죠? 일본 관광객들처럼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겠어요.” </p>
      <p>그 말씀에 따라 루 사저가 스승님과 동수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루 사저의 카메라는 단순한 자동카메라였기 때문에 전문가용 
        수동 카메라에 비해 때로 구도 잡기가 어려웠다. 모든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자세를 이리저리 바꿀 때가 많았다. 루 사저가 
        성벽에 가볍게 털썩 기대어 앉는 모습을 보신 스승님이 염려하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조심해요! 넘어갈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스승님! 자세가 안정돼서 안 떨어져요!” 그의 대답을 듣고 스승님은 유머러스하게 대꾸하셨다. “그렇다면 사저가 앉는 
        바람에 성벽이 뭉개지지 않도록 조심해요!”</p>
      <p> 잠시 걸은 뒤에 갈증을 느끼신 스승님이 물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지만 아무도 물통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한 어울락 
        사저가 연락인 가운데 한 사람인 우슬라의 차에 생수가 몇 병 있다고 대답하자, 루 사저가 되돌아가 물을 가져오려고 했다. 그러나 
        스승님은 “그다지 갈증이 심하진 않으니까 나 때문에 물을 가지러 갈 필요는 없어요. 나중에 마시면 돼요.”라며 그를 만류하셨다.</p>
      <p> 유쾌한 시간을 보낸 후 일행이 떠나려 할 때 루 사저는 스승님이 목말라하셨던 걸 기억하고는 생수 한 병을 스승님께 가져갔다. 
        그때는 이미 물을 드신 후였지만 루 사저의 손에 생수 병이 들린 것을 보고 스승님이 물으셨다. “날 위해 가져왔나요?” 루 사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미 갈증이 풀린 상태인데도 스승님은 상냥하게 말씀하셨다. “그 물을 좀 마시고 싶군요.” 스승님은 마개를 
        열고 물을 한 모금 들이키신 뒤 다시 마개를 닫아 돌려주셨다. 그래서 남은 물은 제자들이 나누어 마셨다. 루 사저는 자신의 성의에 
        사의를 표하기 위해 일부러 물을 마시신 스승님의 행동이 참으로 사려 깊다고 생각했다.</p>
      <p> 다음날 스승님은 몇 가지 일을 처리하러 독일인 동수의 집을 방문하셨다. 스승님이 주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루 사저와 또 다른 
        연락인 류 사저가 고추를 아주 천천히 썰고 있었다. 스승님이 소리 내어 웃으셨다. “너무 느리군요. 내가 썰어 볼게요.” 두 
        사저는 스승님이 일류 주방장처럼 숙달된 솜씨로 고추를 재빠르고 정확하게 써는 모습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얇게 썬 고추가 마련되었다! 루 사저의 놀란 표정과 벌어진 입을 보시고 스승님은 “왜들 그렇게 놀라는 거예요? 그럼 내가 
        요리도 하나 못 할 줄 알았나요?”라고 물으셨다. “사실 못 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루 사저의 대답이었다. 큰소리로 웃으시면서 
        스승님은 당신이 탁월한 요리사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요리 솜씨를 발휘할 시간이 없다고 귀띔하셨다. </p>
      <p>류 사저의 남편은 입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스승님과 센터를 돕는 일이라면 늘 성심을 다해 일한다. 이번에 스승님이 스위스에 체류하시는 
        동안에도 일을 도왔다. 그는 스승님의 전용차가 없는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차를 깨끗이 청소하고 가죽 시트커버를 천으로 된 안락한 
        새 커버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어느 날 스승님이 몇몇 동수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 류 사저는 남편이 아주 잘해 주고 스승님의 
        일을 돕는 데도 열성이라고 말했다. 단지 그가 입문을 하지 않으려는 것만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류 사저는 그것이 자신의 수행이 
        좋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다.</p>
      <p> 그 사저의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말에 연민을 느끼신 스승님이 눈시울을 붉히셨다. “나는 당신의 남편이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데 감동받았어요. 그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나요?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좋은 일입니다. 당신을 사랑할수록 나를 더 사랑하는 셈이지요! 입문은 중요하지 않아요.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값진 
        사랑이에요! 왜 그가 입문을 했나 안 했나에 신경을 써야 하나요?” 말씀하시는 동안 스승님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위기가 
        약간 침울해졌다. “눈물 때문에 화장이 엉망이 됐군요. 손질하고 올 테니 계속 이야기를 나눠요.” 스승님이 잠시 자리를 뜨셨다.</p>
      <p> 제자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잠시 후 스승님이 돌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방금 화장실에서 여러분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여러분의 행복에 전염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우리는 항상 함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고, 여러분이 슬플 때 나도 슬퍼지지요. 그 때문에 내가 여러분이 늘 행복하길 
        바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행복해야만 내가 행복하니까요!”</p>
      <p> 또 하루는 루 사저와 류 사저가 스승님의 호텔로 아침 식사를 나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해 보니 이미 스승님이 
        아침 식사를 주문해 놓고 계셨다. ‘우리가 준비한 아침 식사는 불필요한 게 되었네.’ 하고 루 사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아침 식사인가요? 뭔가 특별한 요리를 가져왔어요?” 스승님이 물으셨다. “호텔 식사하고 거의 비슷해요. 다만 우리가 일본차를 
        좀 준비했어요.” 스승님이 약간 실망하셨다. “나는 중국식 아침 식사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죽을 가져왔나 궁금했어요. 
        어쨌든 아니군요.”</p>
      <p> “지금 죽을 준비하기엔 너무 늦었으니 내일 가져올게요.” 류 사저가 대답했다. 그러자 스승님은 “신경 쓰지 말아요. 그냥 
        그런 생각이 좀 든 것뿐이에요. 내일이 되면 아마 먹고 싶지 않을 거예요.”라고 하셨다. “시기가 맞지 않으면 불필요하게 되는 
        일들이 많지요. 내일은 죽을 가져와도 아마 먹고 싶지 않을 거예요.”</p>
      <p> 그런 뒤 스승님은 두 사저에게 함께 아침 식사를 들자고 하셨다. 그런데 두 사저는 앉을 자리가 없어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들이 그렇게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스승님의 마음이 아팠다. “제발 무릎을 꿇지 말고 의자를 갖다 앉아요.” 
        스승님은 서류더미가 쌓여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루 사저는 “아니에요. 스승님의 서류를 제가 옮겨 놓으면 
        나중에 찾기 어려우실 거예요.”라고 했다. 그러자 스승님은 침대보를 하나 걷어내고 “됐어요. 그러면 여기 앉아서 식사하도록 해요.”라고 
        하셨다. “아, 그건 안 돼요, 스승님!” “왜 안 된다는 거죠? 여기 잠시 동안 앉는다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나요? 그런다고 
        죽진 않아요!” “그런 게 아니고 우리가 수행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스승님의 침대에 앉아 스승님의 수면을 방해할까 봐 염려가 돼서요.”</p>
      <p> 스승님은 한숨을 쉬셨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의 자장이 좋고 나쁜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돼요. 나는 여러분의 파장이 좋지 
        않아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요.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에요. 바로 그 마음이 우리를 갈라놓지요. 여러분의 
        마음과 싸우는 것이 정말 싫어요.” 우리의 마음이 우리와 스승님 사이를 갈라놓고 그 사이에 높은 벽을 쌓아 내적인 교류를 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스승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속임수에 능한 우리의 마음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님께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이다. 스승님께는 우리가 어떤 아침 식사를 준비해 왔는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돌처럼 딱딱해진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기회였을 따름이다. 스승님이 스위스에 계시는 동안 스승님의 
        곁에 머물며 스승님께 받은 축복에 감사하면서 루 사저는 스승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을 통해서 그는 
        스승님의 무한한 사랑과 숭고한 내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할 수 있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1:05:00 +0900</dc:date>
</item>


<item>
<title>모스크바 연락인의 보고</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4</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러시아 모스크바(스승님의 유럽 순회강연 회고) </font></p>
      <p>러시아 현지 동수들과 세계 각지에서 러시아로 온 동수들은 스승님의 모스크바 강연을 단 열흘 만에 준비해야 했다. 매우 어려운 
        임무였지만 스승님의 축복과 은총 덕분에 모든 난관이 점차 비누 거품처럼 소멸되었다.</p>
      <p> 우리는 강연 장소로 모스크바 최고의 공연장 가운데 한 곳을 빌렸다. 처음에 그곳 담당자는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다소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스승님의 사진과 뉴스잡지, 다른 출판물들을 본 뒤로 태도가 변해 강연 준비 작업에 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우리는 역경과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스승님의 축복의 힘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p>
      <p> 이런 일을 준비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러시아 동수들은 스승님의 축복과 외국에서 온 다른 사형사저들의 도움 덕택에 성공적으로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 강연 준비를 담당한 관음사자가 도착하자 큰 힘을 얻은 듯했다. 계속해서 지원병들이 확충되었다. 
        다른 관음사자들과 외국 동수들이 낙하산 부대가 내려앉듯 속속 모스크바로 모여든 것이다. 이들 경험 많고 노련한 외국 동수들과 
        관음사자들이 우리 러시아 동수들에게 산 모범이 되었다. 바쁘게 움직이느라 서로 대화하거나 통성명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사랑과 친절, 도움을 주려는 강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모스크바 강연을 준비하고 조직하는 데 그들의 공헌이 매우 
        컸다.</p>
      <p> 짧은 시간 내에 우리는 전단과 광고지, 포스터를 인쇄하고 러시아에서 가장 판매 부수가 많은 신문에 세 차례 광고를 냈다. 
        12일 밤과 13일 아침에는 인기 있는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에 강연 광고를 내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일하느라 너무 바빴고 스승님이 
        언제 모스크바에 도착하시는지 사전에 알지도 못했다. 스승님 또한 여행 스케줄이 극도로 빡빡하므로 공항에서 환영 모임을 갖지 말도록 
        지시하셨다. 스승님은 당신의 생신인 5월 12일 모스크바에 도착하셨다. 아무런 축하 행사도 없었지만 이는 우리에게 크나큰 영광이었다.</p>
      <p> 5월 13일 저녁 7시 30분,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차리신 스승님이 강연장에 모습을 드러내셨다. 강연에 앞서 러시아의 전통 
        꽃과 과일을 스승님께 공양 올리는 시간이 있었고, 그 뒤로는 동료수행자의 체험 발표가 있었다. 두 명의 통역인이 맨 앞줄에 앉아 
        교대로 일했다. 그러나 동수의 발표가 시작되었을 때 잠시 진행이 중단되었고 한 관음사자가 내게 스승님 곁으로 가서 통역을 해 
        드리라고 했다. 그래서 몇 초 후에 나는 스승님의 발치에 가서 앉게 되었다. 정말 꿈만 같았다. 아직도 내가 그토록 가까이에서 
        스승님께 통역을 해 드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너무나 큰 영광이자 기쁨이었다.</p>
      <p> 스승님의 강연은 대중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주었다. 수거한 질문지 중에는 스승님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한 질문지가 
        무척 많았다. 강연장 부관리인은 강연 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북적대는 시장통에서 시작된 스승님의 강연이 모든 청중들을 천국으로 
        올려다 놓고 끝났군요.” 강연 중에 매우 좋은 영적 체험을 가진 이들이 더러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p>
      <p> 강연이 끝난 후 입문식이 있었다. 매우 늦은 시각이라 교통수단도 이미 다 끊긴 상태였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입문식만 
        존재했다. 입문식이 끝난 뒤에 일부의 사람들이 아침까지 강연장에 머물러 있었다. 스승님과의 첫 만남, 그리고 외국의 사형사저들과 
        함께한 우리의 첫 회합은 내 마음속에 영원토록 남아 있을 것이다. 놀랍고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해주신 스승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정말 감사한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59:16 +0900</dc:date>
</item>


<item>
<title>그리스의 한 청중에게서 온 편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3</link>
<description><![CDATA[
<p><font color="#ff6600">♣ 그리스 아테네</font></p>
<p><font color="#68269a">존경하는 칭하이 스승님께,</font></p>
<p><font color="#68269a">어떤 이가 처음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그 사람은 손님으로 간주됩니다.<br />나는 손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기 위해 당신의 강연에 가 보았습니다. <br />그러나 나는 당신이 손님이 아니라 영적인 축제와 꽃다발로 우리를 환영하는 위대한 여주인으로서 그리스에 오셨음을 알았습니다! <br />당신이 우리의 근원을 다시 상기시켜 주셨을 때 나의 가슴은 감동에 젖었습니다. <br />정말 성스런 순간이었습니다! <br />내 가슴속에서 흘러넘치는 이 감격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br />영원하고 위대한 진리와 그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br />스승님을 사랑하고 언젠가는 저도 스승님과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br />그리하여 사랑하는 모든 인류와 우리의 숭고한 비밀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font></p>
<p><font color="#68269a">내딛는 걸음마다 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길!</font></p>
<p><font color="#68269a">빅키 크리스코우 드림</font></p>
<p class="caption" align="right">- 뉴스잡지 104호에서-</p>]]></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52:54 +0900</dc:date>
</item>


<item>
<title>통역인에 얽힌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2</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그리스 아테네</font></p>
    
      <p>스승님의 유럽 순회강연을 준비하는 우리 작업 팀 대부분이 그리스어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아테네 강연을 도울 통역인을 몇 사람 
        고용했다. 그들의 주된 업무는 스승님의 강연을 통역하고 입문 등록 절차를 돕는 것이었으며, 부차적인 업무는 강연 지역에 붙일 
        포스터 내용을 편집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의 크나큰 인내심으로 전심을 다해 일했다. 통역인 가운데 몇 사람은 입문식이 
        끝날 때까지 늦도록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강연과 관련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게 도와준 그들의 열성적인 도움과 지원에 
        고마움을 표했다. 통역인 가운데 한 사람은 이전부터 스승님의 강연을 손꼽아 기다려 온 사람으로 강연 날 드디어 입문을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방편법을 전수받았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48:32 +0900</dc:date>
</item>


<item>
<title>통역인에 관한 또 하나의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1</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이탈리아 로마</font></p>
            <p>스승님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예수의 행적과 인류가 예수께 자행한 일들을 되짚는 매우 감동적인 강연을 하셨는데, 나는 말씀 중에 
        스승님의 얼굴에서 눈물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연을 시작하시면서 스승님은 통역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셨다. 그 말씀에 
        관음사자와 연락인과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우리는 강연 전에 최고의 통역인을 구하느라 무진 애를 썼기 때문이었다.</p>
      <p> 내가 통역인과 면접 날짜를 정하고 있을 때 관음사자가 통역인에게 최소한 강연 전 이틀이나 사흘만이라도 채식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놀랍게도 자신은 여섯 살 때부터 채식을 해 왔다는 것이었다. 또 영적인 용어에 익숙한지를 물었을 
        때도 그는 자신이 지역 신문에 불경에 관한 글을 매주 연재하고 있다고 대답해서 다시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우리는 너무도 기뻤다. 게다가 그는 우리가 연락을 취했던 다른 통역인들보다 낮은 급료를 원하기까지 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45:22 +0900</dc:date>
</item>


<item>
<title>전쟁의 포화가 천국의 불꽃으로 변하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0</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헝가리 부다페스트</font></p>
          <p>부다페스트에서 전단 배포 작업을 막 시작했을 즈음, 우리 중에는 헝가리어로 쓰인 전단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한번은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전단을 읽고 상기된 모습으로 다가와 전단의 첫 줄을 가리킨 후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뭐라 
        했다. 나는 그들의 ‘선문답’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대답 대신 전단에 기재되어 있는 강연 날짜와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그들은 즐거워하며 돌아갔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 중문판 전단을 보고 첫 줄이 ‘천국은 지금, 여기에’라는 내용임을 알았다. 
        당시는 인근 코소보에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라 스승님의 말씀이 그곳 사람들에게 힘과 희망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그토록 
        기뻐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p>
<p>        스승님의 안배로 우리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전단을 배포할 때 자기 
        아들도 입문자라며 우리를 보고 매우 반가워하는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 부인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언제 여기 도착했는지 등을 
        묻고는 우리를 공항에서 데려다 준 사람들 중에 자기 아들도 있었다고 흥분해서 말했고, 그런 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슈퍼마켓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그 여인의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보았다. 얼마나 다정한 어머니인지! 아주 어린 
        소녀 한 명이 우리를 도운 일도 있었다. 그 소녀는 전단을 다 돌린 뒤 견본책자까지 나눠 주었다!</p>
     <p>   한 신사는 견본책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며 2년 전에 스승님의 책을 읽었고 그때부터 스승님을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강연을 
        듣고 입문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는 2백 킬로미터를 달려왔다. 그만이 아니라 그의 부인과 자녀도 방편법을 
        신청했다. 불가리아에서 방편법을 배운 한 남자가 헝가리로 따라와 입문을 받은 일도 있었다.</p>
      <p> 헝가리 사람들은 다정다감하고 친절했다. 전단을 받든 안 받든 그들은 항상 ‘코스조놈’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헝가리어로 감사하다는 
        의미였다. 거리 아래쪽에서 전단을 돌리는 동수들을 또 만나기라도 하면 이미 전단을 받은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전단을 꺼내 보이며 
        정중하게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손에 모두 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전단을 자기 가방 안에 넣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행인 
        가운데 정말 다정다감한 신사가 한 분 있었는데, 그는 우리가 전단을 나눠 주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게 주는 건가요?”라고 
        물어봤다. 우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감사의 표시로 한 동수의 얼굴에 키스를 했다. </p>
      <p>마침내 강연 날이 다가왔다. 시간이 되기도 전에 강연장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와 웅성댔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현관에 많은 견본책자와 뉴스잡지를 준비해 놓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잡지를 받아 
        가려고 했고, 표지에 실린 스승님의 모습이 저마다 달라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져가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강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입문을 신청하고 방편법에 등록했다. 입문에 필요한 사진을 지참해 온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열망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었다.</p>
      <p> 강연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입문 및 방편법 등록처로 모여드는 바람에 약간의 혼잡이 빚어졌다. 우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등록대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신청서를 달라고 했다. 신청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기대와 열망을 품은 표정으로 
        면담을 하려고 몰려들었다. 계율을 지킬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들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p>
      <p> 강연 후에 우리는 모두 늦은 밤까지 계속 일했다. 도중에 갑자기 스승님이 오셨다. 얼마나 놀라운 기쁨이었는지! 우리는 모두 
        스승님을 에워쌌고, 스승님은 크나큰 사랑으로 우리의 머리와 손을 만져 주셨다! 어떤 동수가 스승님께 말씀드렸다. “스승님, 오늘 
        너무 힘드셨지요!” 그러자 스승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거예요. 모든 이들이 열심히 일했지요!” 또 이렇게 
        덧붙이셨다. “우리는 해냈어요! 이번엔 정말 괜찮았어요!” 스승님이 말씀을 마치시자 곧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린 
        모두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내면이 평화로 충만해짐을 느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40:18 +0900</dc:date>
</item>


<item>
<title>진정한 법문을 찾아서 천 마일을 여행하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9</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체코 프라하</font></p>
      
      <p>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입문을 놓친 한 젊은 여인이 입문을 하기 위해서 머나먼 체코 프라하까지 달려왔다. 작업 팀의 동수가 입문하려면 
        오계를 지켜야 하는데 오계를 진실로 이해하는지를 묻자 그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그러나 목소리도 우렁차고 진지하게 오계를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신실함에 깊이 감동했다. 그리고 그가 입문식이 끝난 뒤 축복 음식과 입문증을 들고 행복하게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38:46 +0900</dc:date>
</item>


<item>
<title>새 입문자가 한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8</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핀란드 헬싱키</font></p>
            <p>나는 서른네 살의 독일인으로 홍콩에서 일하고 있다. 8년 전, 살아 있는 스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나는 이런 스승을 
        발견하면 제자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2월 필리핀 팔라완 섬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칭하이 무상사 뉴스잡지 
        90호를 보게 되었고, 그 잡지에 즉시 마음을 빼앗겼다. 홍콩에 돌아온 후 인터넷에서 스승님의 홈페이지를 찾아 거기에 실린 가르침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채식을 빨리 시작할수록 입문을 빨리 받을 수 있음을 알고 그날로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p>
      <p> 내가 3개월간의 정화 기간을 채웠을 때(물론 그 당시에는 방편법 수행을 하고 있었음), 마침 스승님의 유럽 순회강연 일정이 
        공고되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입문하고 싶어서 직장에 휴가를 내고 홍콩 센터 동수들과 함께 일주일 간 유럽으로 떠날 것을 결심했다. 
        우리는 강연이 잡힌 날, 이제 막 자정을 넘긴 시각에 헬싱키에 도착했다. 내 생각에는 우리 그룹의 모든 사람들이 그때까지 스승님 
        뵙기만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유일한 ‘신참’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내게 너무나 잘 대해 줘서 매우 
        편안함을 느꼈다. 강연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 자리였을까? 알아맞혀 보시라! 나는 감히 스승님의 
        자리가 정면으로 보이는 맨 첫 줄 중앙에 앉았다. 가능한 한 최대로 스승님과 가까이 앉은 것이다!</p>
      <p> 스승님의 가르침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과 강연의 성과는 대단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입문 및 방편법 신청대로 
        몰렸다. 입문식이 끝난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다른 한 사형과 명상을 했다. 중생을 해탈시키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승님이 
        겪으시는 고통을 생각하자 갑자기 울음이 왈칵 터져 나왔고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줄줄 흘렀다. 나는 4형제의 맏이로 컸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절대 우는 일이 없었으며 그런 강인한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겨 왔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자신이 내면에서부터 변했으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거나 억눌러 왔던 그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인류를 향한 스승님의 희생을 다시금 떠올리니 
        또다시 울음이 북받쳤다.</p>
      <p> 그 뒤로 나는 몇 개 도시의 강연을 도왔다. 우리가 모두 동일체라는 놀라운 느낌을 경험하게 해준 모든 사형사저들께 감사하고 
        싶다. 스승님, 저를 당신의 제자로 받아 주신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제자의 본분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31:51 +0900</dc:date>
</item>


<item>
<title>열정적인 슬로베니아 사람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7</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font></p>
      
      <p>슬로베니아 강연에 참석한 슬로베니아 사람들과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매우 정감 있었고 스승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입문 및 방편법 
        인터뷰의 권유에도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는 방편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열정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재활원에 다니면서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한 젊은 여인이 스승님의 가르침에 큰 흥미를 보였고 우리의 
        수고스러운 노력에도 감사를 표했다. 나는 그에게 스승님의 강한 축복이 있으면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영적인 진보를 이룰 수 있고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p>
      <p>다른 지역 주민들도 매우 수용적인 태도로 영적 수행에 관한 의문을 많이 제기했다. 나는 이곳 사람들과 특별한 인연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내 조부모님의 고향이 크로아티아 부근인 데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매우 유사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승님의 도움으로 나는 어린 시절에 배웠던 크로아티아 말을 몇 구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크로아티아 말로 몇 사람에게 
        말을 걸었더니 보다 친밀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p>
      <p> 나를 돕던 동수가 스승님께 통역을 해 드리려고 가 버린 후에 매우 친절하고 명상을 배우게 된 것을 너무도 좋아하던 한 슬로베니아인이 
        그를 대신해 접수대에서 통역하는 일을 맡아 나를 도왔다. 그는 스승님의 축복으로 충만되어 있는 듯 보였고, 나와 더불어 많은 
        수의 방편법 신청자들을 돕는 일이 즐거운 것 같았다.</p>
      <p> 신청자들 가운데는 방편법 전수가 끝난 뒤에 다시 찾아와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류블랴나에서 놀라운 경험을 
        한 후로 나는 언젠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로 돌아가 이 지역에서 스승님의 법을 펴는 것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28:50 +0900</dc:date>
</item>


<item>
<title>‘무아(無我)’의 스승님!</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6</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스웨덴 스톡홀름</font></p>
      
      <p>스웨덴 강연 다음날 스승님이 택시를 타고 스톡홀름 단체명상에 오셨다. 길고 빡빡한 여행 일정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치신 스승님의 
        걸음걸이가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스승님의 육신이 너무나 연약하고 가냘파 보였다. 센터 현관에서 스승님을 맞이할 때 나는 
        호텔에서 물을 끓여 드실 수 있도록 전기포트를 스승님께 드렸다. 스승님은 금방이라도 쓰러지실 것처럼 보였지만 연신 내게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사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내가 보기엔 그저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데도 스승님은 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셨다. 이런 스승님의 겸허한 모습을 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p>
      <p> 센터에 들어오셔서 자리에 앉은 지 1분도 채 못 되었는데 스승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이들을 일일이 축복해 주셨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동수가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스승님은 참을성 있게 그들을 위로하며 껴안아 주셨다. 그 순간 스승님의 얼굴에는 
        자비와 사랑의 미소만이 가득했다. 현관 밖에서 뵌 스승님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p>
      <p> 스승님을 바라보며 이 감동적인 순간을 즐기느라 나는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내가 새로운 경지를 체험했음을 
        느꼈다. 스승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저 여러분의 소아(小我)를 놓아 버리십시오. 그러면 위대해질 것입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22:44 +0900</dc:date>
</item>


<item>
<title>인상적이고 사랑에 찬 에너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5</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아일랜드 더블린</font></p>
           <p>아일랜드 사람들은 매우 다정하고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승님과 
        스승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보이며 우리와 대화를 하고자 했고 강연 홍보물을 받아 즐거이 읽었다.</p>
      <p> 우리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가서 전단을 배포하고 포스터를 붙인 뒤 더블린으로 돌아와 도심지와 외곽에서 같은 활동을 펼쳤는데 
        양 도시에서 모두 호응을 얻었다. 우리 작업 팀은 포스터를 재빨리 붙이는 요령을 터득한 후에 더블린 시를 스승님의 얼굴로 도배를 
        했다. 한 젊은 청년이 깊은 감명을 받은 듯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스승님의 포스터를 한 장 달라고 했다. </p>
      <p>또 한번은 여러 명의 청년들이 다가와서 우리 작업 팀이 어찌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지 경이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몸과 마음과 영혼이 에너지로 충만해지고 스승님의 축복에 힘을 얻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고 알려 주었다. 그 청년들과 우리는 몇 분 간 관음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스승님의 강연에 참석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p>
      <p> 강연 날 나는 방편법 신청자들의 면접을 담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기와 생선, 알코올에 대한 욕구를 극복하고 궁극에는 관음법문에 
        입문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듯했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의 강연도 스승님의 사랑의 힘으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이 스승님의 영혼의 빛으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스승님은 새로 입문한 사람들과 방편법을 배운 사람들에게 
        친히 말씀을 해주셨다. 이런 직접적인 접촉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스승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커 갔다. 강연장을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13:09 +0900</dc:date>
</item>


<item>
<title>평화를 알리는 원형 무지개</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4</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영국 런던으로 가는 길에</font></p>
            <p>6월 7일 우리는 타이항공을 타고 타이베이를 떠나 방콕에 도착한 뒤 유럽 행 비행기를 갈아탔다. 이튿날 아침 우리 비행기가 
        유럽 상공에 진입했을 때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나는 창가 쪽 좌석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특이한 장관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원형의 쌍무지개가 눈부신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무지개 위를 날아가는 그 짧은 동안에도 
        무지개의 휘황찬란한 빛깔이 다채롭게 변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여러 색깔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 광경은 몇 
        분 간 지속되었는데, 비행기에 타고 있던 모든 동수들이 이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를 목격했다. </p>
      <p>항로를 보고 나는 그 시간에 비행기가 전쟁 지역인 발칸반도 상공을 날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런던 강연이 끝난 직후에 
        열린 국제 선삼 중에 스승님은 유럽 순회강연이 끝나던 바로 그 시각에 양국간의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며 우리와 더불어 기뻐하셨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 원형의 쌍무지개가 평화가 도래함을 알리는 신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위대한 수행자는 가는 곳마다 그곳을 축복하고 그곳의 기운을 정화시킵니다.” 한 달에 걸친 유럽 순회강연은 유럽 전역에 
        신의 말씀을 전파했을 뿐 아니라 그곳에 평화와 희망의 미래를 안겨 주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29 Apr 2004 00:02:39 +0900</dc:date>
</item>


<item>
<title>시험과 초월</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3</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영국 런던</font></p><p>
           </p><p>강연 날 청중들이 오후 6시에 입장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오후 4시가 될 때까지는 아무도 강연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업 팀이 두 시간 내에 모든 장식과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작업 팀들은 부담감을 안고 치밀하게 
        강연 준비를 했다. 정각 4시에 정문에 갖다 놓은 물건들이 전부 강연장으로 옮겨졌다. 이미 강연을 마친 두 나라의 작업 팀들이 
        와서 거들어 주긴 했지만, 두 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이 초래한 이 비상사태에선 여전히 인력이 부족했다.</p>
      <p> 시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어서 어디에 화분을 두면 보기가 좋을지 혹은 어떻게 색을 배합해야 돋보일지 등을 세심하게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모든 일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천천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뭔가가 손에 쥐어지면 어디든 빨리 
        갖다 놓아야 했다. 두뇌가 아니라 본능에 의해 모든 일이 행해진 것이다. 그래서 미흡한 부분도 몇 군데 있었지만, 어쨌든 작업 
        팀은 이처럼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 도전적인 과업을 무사히 끝마쳤다. 안도감과 함께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환희에 
        찼다. 이런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일을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8 Apr 2004 23:58:06 +0900</dc:date>
</item>


<item>
<title>살아 있는 동안 신을 만나라</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2</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영국 런던</font></p><p>
            </p><p>정말 굉장한 날이었다! 그날 청중들의 반응을 일부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어떤 종교 단체에서 온 한 회원은 영적인 주제에 대하여 
        그토록 쉽고 간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처음 들어 본다고 말했다. 칭하이 스승님은 진리만을 말씀하시며, 게다가 세계의 모든 종교가 
        설명하고자 하는 이 진리를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신다.</p>
      <p> 독일에서 온 한 여행자는 입문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곧 떠나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상심해 있었다. 그 여인은 칭하이 무상사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이어지는 다음번 강연에 참석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눈물을 글썽인 채 자리를 떴다. </p>
      <p>아시아에서 온 몇몇 사람들은 스승님이 하얗고 눈부신 빛 가운데 계신 것을 목격하고는 모두 그 체험에 압도당했다.</p>
      <p> 우간다에서 온 새 입문자 한 명은 흐느끼면서 자신이 천국을 보았는데 그곳은 난생처음 보는 놀라운 세계였다고 말했다. 그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8 Apr 2004 23:53:13 +0900</dc:date>
</item>


<item>
<title>늦게 핀 꽃</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1</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 런던 국제 선 보고</font></p>
            <p>런던 국제 선에서 받은 붉은 하트 모양의 브로치는 선에서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한 완벽한 상징이다. </p>
      <p>스승님께 처음 축복받았을 때 나는 뜻밖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축복을 받게 되었고, 나는 그것이 정말 놀랍고도 
        멋진 스승님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세 번째로 스승님의 축복을 받았을 때는 스승님은 절대 실수를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스승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세상에 지친 내 마음속에 버티고 있던 마지막 장벽이 눈 녹듯이 녹아 
        내렸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따사로운 봄 햇살에 꽃이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뒤늦게 피어난 꽃. 진실한 사랑에서 멀어진 내 가슴에 
        응어리져 있던 잊혀진 상처에서 피가 흐르듯 눈물이 조용히 두 볼을 타고 흘렀다. 깨끗이 정화되고 새로이 피어난 나의 가슴은 스승님의 
        성스러운 사랑을 흠뻑 들이키고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p>
      <p> 스승님께 감사하는 마음 영원하리.</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8 Apr 2004 23:39:41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을 기다리는 축복 받은 개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0</link>
<description><![CDATA[<br /><p>1997년 우리가 스승님 집을 샀을 당시, 그 집의 전 주인은 우리에게 개 두 마리를 놓고 갔다. 그해 겨울, 집을 개조하고 
        있는 동안 그 개는 강아지를 세 마리 낳았다. 날씨가 매우 추워서 우리는 그들을 개집에서 꺼내 집안에 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가 낯설어서인지 개들은 우리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외부인뿐 아니라 매일 먹을 것을 주는 우리에게도 계속 짖어댔다. 우리는 
        그들을 잡아 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개들은 집 뒤편의 숲으로 도망쳐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p>
      <p>1998년 5월 스승님이 오시기 전날 밤, 그 개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러고는 마치 경호원처럼 밤새 현관을 지켰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스승님이 오셨을 때 개들은 정원에 앉아 조용히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낯선 스승님을 보고도 
        짖지 않다니! 개들은 마치 스승님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처럼 보였으며, 스승님이 손을 흔들어 주시자 매우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을 했다. 개들도 무상사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27 Apr 2004 23:14:26 +0900</dc:date>
</item>


<item>
<title>축복 음식 잡기를 통한 깨달음</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9</link>
<description><![CDATA[<br /><p>1998년 5월 어머니날 바로 전, 한국 영동 센터에서 국제 선오가 열렸을 때 스승님께선 자비롭게도 모든 관음사자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오랫동안 스승님을 뵙지 못한 우리들은 모두 기쁨에 들떴고, 스승님 또한 우리의 갈망을 아시고 강연 후 
        우리를 자주 만나 주셨다. 다정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우리가 외국에서 일하면서 늘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묻곤 하셨다. 스승님은 갖가지 방식으로 당신의 사랑을 전하시며 우리의 갈망을 충족시켜 주셨다. 우리들은 복 많은 아이들처럼 스승님의 
        온화한 사랑 속에 취했다.</p>
      <p>그 잊지 못할 순간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춤과 가피물 잡기였다. 이전에도 우리를 만나실 때면 스승님께서 가피물을 던져 
        주셨다. 하지만 때로는 나누어 가지도록 보내시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대부분 직접 던져 주셔서 다른 동수들과 나눌 필요도 없이 
        잡는 사람이 임자였다. 모두들 온 신경이 스승님 손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피물에만 간 채 열정적으로 ‘몸을 던졌’기 때문에 이 
        게임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났다. </p>
      <p>가피물이 던져지자마자 우리는 늑대처럼 달려들어 낚아채고 움켜잡고 뛰어올랐다. 부스러기조차 남지 않았다. 우리들의 행동은 매우 
        민첩하고 정확했으며, 예의나 체면 같은 것은 머릿속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잠시라도 꾸물거리거나 한눈을 팔면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으니까!</p>
      <p> ‘게임’이 끝난 후 스승님께서는 ‘트로피’의 개수를 세고 있는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가장 많이 받진 못했지만 나는 
        아주 흡족했다. 가피물 잡기에 집중할 때, 나의 집중력은 온갖 잡념과 산란함, 편견들을 가볍게 뛰어넘고 스승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스승님과 하나 되는 느낌을 강렬히 받았는데, 그건 정말이지 천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p>
      <p><br /><span class="topic">서로 사랑의 손을 꼭 잡고</span></p>
      <p>어머니날 공연이 끝난 후 이틀째 되던 날이 스승님의 진짜 생신이었다. 스승님께서 뭘 하고 싶은지 물으시기에 우리는 스승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스승님이 흔쾌히 승낙하시자 우리는 무척 행복했다. 선이 끝난 후 센터에 계속 남아 있던 몇몇 
        동수들도 함께 합세한 가운데 한국 동수들이 먼저 아름다운 노래를 몇 곡 불렀는데, 목소리가 너무 감미롭고 구성져 전문가 수준이었다. 
        연습할 시간이 없었던 터라 우리들의 합창은 엉망이었다. 당황하는 우리를 위해 스승님은 서둘러 단상에서 내려오셔서 대중들과 함께 
        ‘어린 양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네’를 부르셨다. 스승님은 그곳을 한 바퀴 둘러보신 후 다시 자리로 올라가서 쿠키를 드시며 우리와 
        함께 담소를 나누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신청곡도 주문하셨는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스승님이 요청하신 그 어떤 곡도 잘 소화해 낼 
        수 있었다. </p>
      <p>포모사 민속 음악을 몇 곡 부르자 스승님은 우리에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라고 하셨다. 농담하시는 걸로 생각했는데, 스승님은 
        계속 집요하게 요구하시며 어서 춤추지 않으면 가 버리겠다고까지 하셨다. 스승님과 함께 있고 싶고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있는 용기를 모두 끄집어내 춤을 췄다. 춤을 잘 못 추는 동수들은 내면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미처 준비할 
        틈이 없어 관음보를 즉석 소품으로 써서 어떤 이는 머리에 두르고 어떤 이는 허리에 묶어 춤을 췄다.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비록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우리 움직임은 훌륭했고 박자가 척척 맞았다. 어떤 동수들은 치마가 너무 
        길어 춤추면서 계속 밟히는 바람에 스승님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p>
      <p>그날 저녁 스승님은 정말 즐거워하셨다. 노래와 춤으로 사제지간의 사랑이 서로 엮이며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우리에겐 스승님을 
        기쁘게 해 드려 자리에 머무시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자신을 완전히 잊고 머리를 비우면서 스승님의 사랑과 일체가 
        되는 축복을 다시 한 번 누릴 수 있었다. </p>
      <p>스승님과 보낸 시간은 그 어느 때고 스승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하다. 그 선을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임무를 계속했다. 행복한 순간은 찰나에 지나갔지만,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스승님의 감미로운 사랑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가끔씩 
        그날 불렀던 민속 음악의 가락이 귓가에 들려온다. “서로 사랑의 손을 잡고….”</p>
  <p align="center"><img src="../mihwa/em-126.jpg" width="388" height="449" alt="em-126.jpg" /></p>
   <p><br /><span class="caption_2">주: 한국에 계시는 동안 스승님은 사형 사저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영적 진보를 베푸셨다.           지금은 서로 떨어져 있어 함께 했던 너무나 짧았던 그 순간이 마치 꿈결같이 느껴진다. 스승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시를 쓰게           되었다.</span></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27 Apr 2004 00:40:36 +0900</dc:date>
</item>


<item>
<title>천국과 같은 주방</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8</link>
<description><![CDATA[<br /><p>1999년 11월 나는 운 좋게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 선삼에 참가할 수 있었다. 원래 참가할 수 없었던 나는 스승님의 
        놀라운 안배로 주방 팀에 합류해 영적 성장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순조롭게 일하며 내면의 기쁨에 빠졌다.</p>
      <p> 일하는 동안 주방에서 동수들이 선입견과 습관을 내려놓고 무아의 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순간 주방은 내게 천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익숙한 장면을 통해 나는 이 느낌이 내 마음 깊은 곳의 진동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즉 명상과 꿈속에서의 체험이 
        현실화된 것이었다! 계속된 고양감으로 나는 육체에서 정신으로, 다시 순수한 의식의 경지로 올라가다 마침내는 영적 경지로 상승되어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p>
      <p> 세계 각지에서 온 동수들이 그것도 생판 낯선 곳에서 얼마 안 되는 도구와 시설로 갖가지 채소를 훌륭한 요리로 만들어 내는 
        모습이 상상이 가는가?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수들의 무아의 봉사와 협동심으로 이 모든 일을 훌륭히 수행해 낼 
        수 있었다. 모두 온 마음을 다해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도마 위에서 움직이는 역동적인 칼 소리는 용솟음치는 
        온천처럼 좋은 음악이었으며, 그때 느낀 행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아주 평범한 일에도 특별한 보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뜻과 마음이 성실하고 깨끗하며 기쁜 마음으로 헌신한다면 아무리 과정이 힘들어도 최고의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일하는 동안 신발이 다 닳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피곤해도 다음날 새벽이면 온 힘을 끌어 모아 다시 내 자리로 일하러 
        갈 수 있었다. </p>
      <p>내면의 순수함과 천성을 알게 해준 존경스런 모든 작업 파트너들에게 감사하며, 내게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고 자신에 대한 도전과 
        자아를 초월하고자 하는 갈망을 만족시켜 주신 스승님의 안배에 더욱 큰 감사를 드린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26 Apr 2004 23:59:42 +0900</dc:date>
</item>


<item>
<title>육체적 장애를 넘어</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7</link>
<description><![CDATA[<br /><p>1999년 남아공 케이프타운 국제 선은 내게 있어선 첫 번째로 참가한 국제 선이자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캠프장과 눈부시게 푸른 하늘,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 예의바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리고 간간이 터지는 참가자들의 웃음소리들은 
        마치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군을 제대한 후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서 그런지 스승님과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p>
      <p>그러나 가장 흥미로웠던 일은 선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단체명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일어난 사고였다. 과속하던 한 
        학생의 오토바이가 방향을 잘못 잡아 내 오토바이와 정면충돌했는데, 내 왼쪽 발가락이 부러져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때 선 행사를 
        포기하려고 생각했지만 한 동수의 말을 듣고 용기가 생겨 선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일이 중요한지 사소한지는 자신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렸다.” 이 조용하고 엄숙한 말 한마디는 스승님이 그를 통해 전하시는 메시지였다.</p>
      <p> 사고가 난 후 며칠 동안 나는 일상생활에서 상처의 고통에 연연하지 않도록 나를 단련시켰다. 선 행사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스스로 돌볼 수 있길 원했기 때문에 나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고가 난 지 나흘째 되던 날에는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남아공 선 기간에는 아무런 도움 없이 걸을 
        수 있었으며, 심지어 넓은 캠프장 사방을 누비며 캠프장 장식을 도울 수도 있었다! 선 행사가 끝나자 내 발가락은 정상적으로 돌아와 
        평소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선을 통해 스승님은 내게 세상 속에서 천국을 맛보게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육신의 장애 또한 
        극복할 수 있게 해주셨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26 Apr 2004 23:56:30 +0900</dc:date>
</item>


<item>
<title>잠자는 미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6</link>
<description><![CDATA[<br /><p>여러분은 요정 이야기를 믿는가? 나는 입문 전에는 믿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 삶이 바로 동화 속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다. 
        내 이야기는 ‘잠자는 미녀’이다. </p>
      <p>내 이야기는 네덜란드 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해마다 스코틀랜드 고지(일명-하이랜즈)와 오크니제도의 
        역사, 문화 및 야생 생물에 대한 학습 과정의 일환으로 네덜란드 학생들을 인솔해 스코틀랜드를 방문하곤 했다. 그런 학생과 보호자들을 
        이끌고 다니던 중 1999년 6월 5일에는 에든버러에 들르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서는 그날 칭하이 무상사의 대중 강연이 있었다. 
      </p>
      <p>나는 웃음 띤 얼굴로 전단지를 나눠 주고 있던 사람들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그들이 내게도 전단지를 한 부 주었지만 거절하고는 
        그냥 지나가 버렸다. 네덜란드 길더를 영국 파운드로 환전해야 했던 나는 환율이 가장 높은 곳을 찾고 있던 중이라 이 사람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p>
      <p>하지만 이 사람들을 몇 번 지나쳐 오가는 동안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길을 건너려고 
        서 있을 때 다시 한 여성이 내 손에 전단지를 쥐어 주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길을 건너고도 전단지를 버리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쳐다봤는데, 전단지 앞면의 사진에 마음이 끌려 사진 속의 여인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걷는 동안 꼼꼼하게 전단지 
        앞뒷면을 다 읽어 보니 전단지 맨 밑에 “이 전단지를 갖고 계시면 축복을 받습니다.”라고 씌어 있어서 계속 갖고 다녔다. </p>
      <p>나는 그날 칭하이 무상사의 강연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그 전단지를 갖고 다니며 계속 반복해서 읽었다. 
        네덜란드에 돌아온 후 아내에게 보여 줬더니 놀랍게도 그녀 역시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네덜란드 연락인에게 전화를 걸고 
        관음법문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암스테르담 센터까지 두 시간 반을 운전해서 찾아갔다. 우리는 평생 채식을 할 수 있을지 우선 
        3개월 동안 시험해 보기로 결정하곤 견본책자와 비디오테이프, 책 [나는 여러분을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왔습니다]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p>
      <p>채식을 하는 건 걱정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지만 명상이 문제였다. 예전에도 명상에 관한 책들을 읽어 봤었는데, 15분간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서 2시간 반은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1999년 10월에 우리는 암스테르담에서 방편법을 배웠다. 그러자 갑자기 
        명상하기가 쉬워져 30분 명상도 거뜬했다. 우리 내면에서 무언가가 변했던 것이다. 우리가 하루속히 입문하기로 결정하자 연락인은 
        스승님이 11월 20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강연하실 예정인데 거기에 가면 입문할 수 있다고 알려 줬다. </p>
      <p>터키 이스탄불은 매우 멀게 느껴졌으며 큰돈이 들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스탄불 행 항공을 알아봤더니 운임이 엄청나게 
        비쌌다. 거의 포기 직전이었던 나는 문득 부근의 터키 여행사를 생각해 내고는 그곳을 찾아갔다. 거기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가격으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비행기 표와 3성급 호텔에서의 2박이 전부 합쳐 1인당 150달러도 되지 않았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다른 사람은 우리 말을 믿지 않았다. 그의 비행기표 값만 해도 우리의 전체 여행 경비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p>
      <p>우리는 이것이 축복이란 걸 알았지만 더 큰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문식이 우리 내면의 ‘잠자는 미녀’를 깨웠던 것이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이 신의 왕국은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만 깨어날 수 있었다. 입문식은 무료였지만, 그것은 내가 받았던 그 
        어떤 선물보다도 멋진 선물이었으며, 이제는 스코틀랜드에서 전단지를 나눠 주던 동수들이 왜 그렇게 미소를 짓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p>
      <p> 입문한 지 1년이 지난 후 우리는 영혼을 성장시킬 특별한 성탄 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명상을 마친 후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어디 갈 것인지 난 알고 있어.” 아내가 어디를 갈 생각인지 물어 내가 포모사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나 역시 몹시 놀랐다. 우리는 포모사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었고, 그곳에 
        아는 사람도 없는 데다 성탄절을 1주일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반드시 포모사를 가야 한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p>
      <p>그날로 아내는 포모사 행 비행기 편을 알아봤지만 모두 예약되어 어디서도 표를 구할 수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나는 
        계속 우리가 포모사에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캐세이 트래블’이란 여행사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전화를 걸어 포모사 행 비행기 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사 직원이 컴퓨터로 
        조회하는 동안, 아내와 나는 ‘스승님, 이번 여행이 저희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저희가 꼭 가야 한다면 저희를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잠시 후 다시 연결된 직원이 말했다. “표가 2장 있군요.” 그건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던 마지막 표였다!</p>
      <p> 직원이 성탄절에는 포모사 호텔들이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적당한 숙소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해서 호텔 예약은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비행기를 예약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 여행사 직원은 통화를 끝내기 직전 이렇게 얘기했다. “손님, 우리 동료들은 
        당신이 포모사 행 비행기표 2장을 구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답니다. 우리는 몇 주 동안 포모사 행 비행기를 예약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매진된 상태였습니다.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겁니다!”</p>
      <p> 이어서 나는 타이베이 센터에 전화해 우리가 포모사를 방문할 계획인데 숙소를 좀 구해 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기까지였다. 그 다음부터 여행은 포모사 동수들을 통해 저절로 안배되었다. </p>
      <p>우리는 이 여행에서 스승님의 행적을 찾아다녔는데, 방문하는 곳마다 스승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승님은 아름다운 시후 
        센터에, 그리고 포모사 동수들의 마음속에 살아 계셨다. 우리는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내면의 인도에 따라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겨 여행을 계속해 나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멋진 시간을 보냈으며 매 순간 뜻 깊은 경험을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스승님이 주신 가장 멋진 성탄 선물이었다. 그러나 이 선물은 내면의 직관에 의지해 스승의 힘에 대한 완전한 신심으로 행동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p>
<p>        우리는 포모사에서 12일간 머물렀는데, 포모사를 떠날 무렵에는 아시아에 와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직장은 2년마다 
        한 번씩 전근 신청을 할 수 있었는데, 그해는 내가 신청하는 해가 아니어서 전근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나는 전근 신청을 해서 
        받아들여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해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학교에서 너무 많은 교사들을 고용해 두 사람의 전근 지원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기대에 차서 지원했지만 교장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당신은 갈 수 없어요!”</p>
      <p> 우리는 전근을 하거나 못 하거나 상관없으니 우리의 영적 성장에 가장 좋은 길을 열어 달라고 스승님께 기도드렸다. 몇 주가 
        지나 전근 신청 마감일이 되었다. 놀랍게도 본격적인 전근이 발표되기 1주일 전에 교장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전근 신청을 허락했다. 
        나는 신청서의 전근 희망지에 “아시아 어디든지”라고 기입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에 달린 문제였다. 학교측에서는 세계 
        어디든 보낼 수 있었고, 나는 그걸 수용하거나 아니면 직장을 잃어야 했다. </p>
      <p>다시 우리는 스승님께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한 최선의 길을 안배해 달라고 기도했다. 1주일 후 결정이 났다. 포모사를 떠난 
        지 4개월도 되지 않아 일본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p>
      <p> 우리는 스승님의 안배로 이곳 일본으로 오게 된 것에 너무나 만족스럽다. 이곳 센터는 활동이 많아 우리는 봉사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정말 흥미로웠다. 그건 우리가 바랐던, 아니 그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바로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p>
      <p>스승님이 우리 내면의 잠자는 미녀를 깨우기만 하면 그 어떤 불가능한 일도 기적처럼 가능하게 된다. </p>
      <p>후기: 이 이야기는 전에 도쿄 센터의 비디오 강연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이다. 발표가 끝난 후 센터의 두 사저가 2년 전 그날 
        자신들이 스코틀랜드에서 내가 받았던 스승님의 강연 안내가 담긴 전단지를 나눠 줬었다고 내게 얘기했다. 그 중 한 사저는 내가 
        전단지를 받았던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니, 내 손에 전단지를 쥐어 준 사저는 그녀일 가능성이 높다. 그 사저들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행을 했다. 내가 다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일본으로 오게 된 것은 그 전단지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들에게 알려 주기 위한 스승님의 안배임에 틀림없다. 나는 아직도 축복이 담긴 그 전단지를 간직하고 
        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26 Apr 2004 23:50:18 +0900</dc:date>
</item>


<item>
<title>꼬마 마틴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5</link>
<description><![CDATA[<br /><p>어느 날 밤, 뒤뜰에서 계속 들리는 울음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어났다. 창 밖을 내다보니 그 소리는 정원 한구석에서 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보리수나무 아래에 놓인 책과 낡은 옷들이 들어 있는 상자 안에서 검고 큰 고양이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걱정과 놀라움 속에서 나는 이 뜻밖의 ‘선물’을 어찌할 바 모른 채, 그저 고양이를 집에 데려가 물과 
        먹이를 줄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일단 새끼들이 젖을 뗀 다음에는 어미를 포함해 모두 남에게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p>
      <p> 며칠이 지나자 어미는 무슨 까닭인지 새끼들을 낳았던 곳으로 한 마리씩 옮겨 놓았다. 그런데 어미의 건망증 탓인지 새끼 한 
        마리가 남게 되었다. 우리는 당혹스런 가운데 그 고양이를 손님으로 받아들였지만 어떻게 할지,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몰랐다. 스무 
        살인 딸 캐롤라이나는 새끼 고양이를 자기 자식인 양 여기며 ‘마틴’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p>
<p>        처음 며칠 동안 우리는 먹이를 먹여 보려고 애쓰다가 그후로는 캐롤라이나의 안약 병을 우유병으로 삼았다. 아들 레오나르도가 슬리퍼 
        상자를 마틴의 침대로 기꺼이 내주었지만, 마틴은 며칠 동안 계속 긁어 대다가 결국에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 캐롤라이나는 마틴을 
        ‘아들’이라고 불렀고, 마틴도 알아듣고 감사하듯 가르랑거렸다. 마틴은 캐롤라이나의 옷깃 주위까지 기어 올라가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때로 ‘어머니’가 마틴을 들어올려 다정하게 말을 걸면, 그는 작은 팔을 뻗어 그녀와 눈을 맞추며 
        기분 좋게 가르랑거렸다. </p>
      <p>평소에 툴툴거리던 남편도 마틴에게는 잘 대해 주어 ‘마투시나’로부터 마틴을 보호해 주었다. 마투시나는 집에서 기르던 백갈색 
        고양이인데, 그는 새로운 고양이에게 제 자리를 빼앗겼다고 여기곤 마틴을 좋아하지 않았다. 열여덟 살 된 아들 카를로스는 너그러운 
        편이 아닌데도 마틴에게 먹이를 주곤 했고, 자기 기타를 마틴의 안락한 요람으로 내주기도 했다. </p>
      <p>3월 어느 토요일, 입문 후 처음으로 참석한 단체명상 중 눈을 떠서 스승님의 법상을 볼 때마다 마틴의 모습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명상이 끝나자 서둘러 집에 도착해 보니 마틴은 예전보다 조용하고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일요일, 나는 딸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딸은 나를 꼭 껴안고 마틴이 죽었다는 말을 전하며 울부짖었다. 꼭 껴안아 준 내 뺨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마틴을 하얀 손수건에 싸서 관으로 쓸 차(茶) 상자에 넣었다. 딸아이에게 마틴을 떠올리게 할 만한 병이나 수저 같은 물건들을 
        치우다가 나도 모르게 마틴의 몸을 스승님의 사진 위에 올려놓았다.</p>
      <p> 다음날 나는 둘째 아들에게 맨 처음 고양이를 발견했던 보리수나무 아래에 마틴을 묻으라고 시켰다. 오늘 마틴의 무덤 위에 깔린 
        낙엽들을 보며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행복한 시간들이 생각났다. 스승님의 가르침은 정말 기상천외하고 예측 불허하다! 마틴은 20일간의 
        짧은 생애 동안 우리 가족들의 가슴에 가장 아름답고 부드러운 자비의 씨앗을 심어 주었다. 우리에게 이 일은 진정한 삶에 대한 
        하나의 체험이었다. 고맙다, 마틴. 너는 우리 가슴에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거야.</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0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26 Apr 2004 23:32:23 +0900</dc:date>
</item>


<item>
<title>금옥양언(金玉良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4</link>
<description><![CDATA[<br /><p>2001년 12월 플로리다 센터에서의 선사가 끝난 후, 우리들은 12월 30일 새해 전날 밤을 스승님의 처소에서 보낼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p>
<p>        그날 밤, 서재에서의 모임에서 스승님은 다시 한 번 긍정적인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 주시며 앞으로는 항상 긍정적인 언어만 
        사용하길 희망하셨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을 설명할 때 ‘나쁘다’거나 ‘추하다’라는 말을 사용하기보다는 ‘좋지 않다’라거나 ‘보기 
        좋지 않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라고 하셨다. 물론 이 경우에도 ‘않다’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다’, ‘보기 
        좋다’라는 긍정적인 단어도 들어가니, 긍정적인 단어와 부정적인 단어가 절반씩 사용되는 건 그나마 괜찮다고 하셨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실현되고 어떤 생각이든 에너지가 형성되므로 그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p>
      <p>스승님의 간략한 말씀 후, 몇몇 동수들은 스승님께 자신들의 의견과 감사를 표현하기도 했으며, 일부 동수들은 주변에서 발생한 
        실화들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대륙에서 온 한 동수는 고향인 산뚱 지방에 한 살짜리 남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사람을 보면 
        미리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가 동수인지 아닌지를 말한다고 했다. 동수인 경우엔 “이 사람은 불보살이다.”라고 하고 동수가 아닌 
        사람에게는 “이 사람은 불보살이 아니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또 그 지역의 한 동수에게는 대보살이라고 불렀다. 한번은 동수들이 
        벽에 걸린 스승님의 법상을 가리키며 묻자, 아이는 곧바로 “그분은 아주아주 위대한 보살이에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수행이 높다고 
        생각하던 한 비입문자가 “나는 보살이니?”라고 묻자 “당신은 보살이 아니에요.”라고 답해서 그는 대단히 실망했다. 그러나 나중에 
        입문하고 나서 물어보러 왔을 때 “당신은 보살입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 얘기를 들으신 스승님은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라고 말씀하셨다.</p>
      <p> 다른 한 동수는 ‘금옥양언’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며 자신의 입은 매우 영험해서 어렸을 때부터 감히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번은 시후에 열린 망고들을 보고 먹고 싶었지만, 시후 장주들에게 모든 것은 신의 것이니 누구든 망고를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마음속으로 “만약 망고가 내 손에 떨어진다면 훔친 것이 아니니 먹을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망고 하나가 떨어져 손으로 굴러 들어와 그는 망고를 먹을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산에 놀러 갔을 때 홍시가 가득 열린 것을 보고는 “이 감들은 신의 것이니까 떨어지면 먹어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즉시 몇 개의 감이 나무에서 떨어졌다. 아이와 함께 감을 줍고 보니 모두 멀쩡해서 먹을 수 있었다. 스승님은 
        이 이야기에 “당신은 좋은 생각을 과일을 훔치는 데만 사용하는군요.”라고 말씀하셨다.</p>
      <p> 사제간의 유머러스한 대화를 들으며 함께 자리했던 동수들에게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스승님 처소에서 보낸 아름다운 시간은 
        즐거운 웃음소리와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어느덧 지나갔고, 밤 12시가 넘자 스승님은 우리를 달콤한 꿈나라로 데려갈 한없는 
        사랑을 남기신 채 서재를 떠나셨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모든 동수들에겐 정말 잊지 못할 밤이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26 Apr 2004 23:30:13 +0900</dc:date>
</item>


<item>
<title>신의 완벽한 안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3</link>
<description><![CDATA[<br /><p><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ss-a.gif" width="50" height="42" alt="ss-a.gif" /><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end.gif" width="19" height="15" alt="end.gif" /><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sw1-title.gif" width="489" height="53" align="middle" alt="sw1-title.gif" /><br /></p>            <div align="center">         <blockquote class="big">               <p class="indent" align="left">이 이야기는 196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 여동생이             여름방학을 틈타 시카고에서 일하게 되자, 남편은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중국인 동창인 리양 씨에게 그녀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 인연으로 우리 두 집안간에는 정이 싹터 훗날까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어울락에 있던 리양 씨의             약혼녀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포모사로 왔을 때에는 내 친정 아버지께서 주례를 서게 되셨다. 나는 이때 그들 부부를 처음으로             대면했다.<br /><br />            결혼식이 끝난 후 우리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리양 씨 부부는 미국의 동부 해안에서 살다가 나중에 샌프란시스코             부근으로 이사를 했고, 우리는 줄곧 미국 중서부에서 살다 LA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우리 두 가족은 연락을 자주 하진             못했지만, 서로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지냈다. LA에서 지진이나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리양 씨 부부는 전화로             안부를 물어 오곤 했다. 그들 부부는 둘 다 천성적으로 조용한 성품이었으나 우리 두 집안은 따스한 우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br /><br />            1994년 여름, 채식을 장려하기 위해 스승님께서는 산호세에 채식식당을 내시고 동수들과 많은 손님들을 만찬에 초대하셨다.             참석 인원이 워낙 많아서 주차장에 대형 천막을 세우고 모두들 조용히 앉아 스승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하신             스승님은 모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농담을 던지셨다. "세상에! 만찬장이 아니라 군부대             같군요!" 그 후에 스승님이 일주일 후 '로맨틱한' 만찬에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br /><br />            그 전에 나는 산호세에 살고 있는 절친했던 고등학교 동창의 두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었다. 그들은 자기 언니의 50번째             생일 축하 깜짝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다른 많은 친구들도 초대를 받았다. 리양 씨 부부도 올 것이란 소리를             듣고 오랜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나 역시 기쁘게 승낙했다. <br /><br />            항공권을 예약하기 전 어떻게 생일 파티장에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스승님이 우리를 위해 두 번째 만찬을 여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두 행사가 같은 날에 겹치게 되었는데, 묘한 것은 생일 파티는 오후에, 스승님의 만찬은 그             이후 밤에 열린다는 것이었다. 또 여동생의 친구가 태워다 주겠다고 해서 교통편도 해결되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안배였다!             떠나기 전 어느 날, 명상을 하다가 리양 씨 부부를 스승님께 데리고 가야겠다는 내면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난 그             부부의 종교적 성향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단순히 두뇌가 만들어 낸 생각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br /><br />            행사가 열리던 당일, 나는 정오 전에 생일 파티에 도착했다. 모두들 정신없이 바쁘게 준비하고 있어서 낄 틈이 없었던 나는             방에 들어가 명상하고 있다가 손님들이 도착해 시끌벅적해지자 나왔다. 방문을 열고 나온 순간, 문 밖에 서 있는 리양 씨             부부를 발견했다.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리양 씨가 먼저 물었다. "유잉 씨, 명상을 하신다면서요? 제게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모든 것이 신의 안배였음을 깨닫고 즉각 대답했다. "오늘             여기 온 건 바로 '당신' 때문이에요...... " 내가 스승님을 알게 된 경유를 차근차근 말해 주자, 리양             씨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날 오후 내내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나눴던 대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br /><br />            나중에 리양 씨 부부는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스승님의 만찬에 참석했다. 분위기는 대단했다. 바비큐도 있었고, 스승님도             굉장히 기분이 좋으셨다. 스승님은 법문도 하시고 이야기도 들려주시더니, 나중에는 노래까지 함께 부르셨다. 사람들이 입문을             청하자 스승님은 기꺼이 허락하셨다. 리양 씨 부부도 입문에 마음이 쏠리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바로 입문하도록             재촉하지 않았다. 우선 스승님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먼저 스승님의 책을 읽어 보라고 권유했다.             다음날 리양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전날 밤에 바로 입문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는 말에, 나는 우선 방편법부터             수행해 보라고 제의했다. 그럼에도 그는 전화할 때마다 3개월 동안 기다리기가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평생을 기다렸는데, 겨우 3개월을 기다리지 못한단 말이에요?" 물론 그의 갈망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br /><br />            나중에 해준 이야기지만, 리양 씨는 수년 동안 계속 진리를 찾아 왔으며, 다른 수행단체에서도 수행을 해봤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포기하고 매일 신께 참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스승님의 책을 읽었을 때, 비로소 그는 신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제자들이 준비되었을 때 스승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경우에 너무 잘 들어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br /><br />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신의 세심한 안배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리양 씨 부부와 우리 가족의 20여 년에 걸친             우정, 리양 씨와 내 여동생, 부모님과의 관계, 스승님의 두 번째 만찬, 그리고 생일 파티의 시간 등 이 완벽한 시간과             장소, 사람의 안배는 오직 전능한 신만이 가능한 일이었다!<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end.gif" width="19" height="15" alt="end.gif" /><font color="#009999"><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st-b.gif" width="203" height="35" alt="st-b.gif" /></font></p>          </blockquote>      </div>      <blockquote>        <div align="center" class="indent">          <p align="right"><font color="#009999"> <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st-b.gif" width="203" height="35" alt="st-b.gif" /></font></p>        </div>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3호에서-</p>   </blockquote>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26 Apr 2004 00:28:27 +0900</dc:date>
</item>


<item>
<title>기도의 응답, 바나나 꽃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2</link>
<description><![CDATA[<br /><p align="center"><img height="67"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sw2-title.gif" width="460" align="middle" alt="sw2-title.gif" /></p>
<p></p><img height="268"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sw2-1.jpg" width="187" align="left" alt="sw2-1.jpg" /><br />뉴저지 센터에 단체명상이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 시간에 한 장주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동수들과 나눠 먹으면서 재료가 뭔지 맞혀 보라고 했다. 기름에 잘 튀겨낸 듯한 그 맛은 영락없이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생선의 맛이었다. 100% 채식이면서 바깥 사람들에게 채식을 추천하기에 적당한 음식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동수들은 치즈다, 발효두부다, 두부다 하며 온갖 재료를 들먹였지만, 정작 재료가 밝혀지자 모두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재료는 일종의 작은 바나나 꽃이었던 것이다!<br /><p></p>
<p class="indent" align="left">누구나 즐기는 이 맛있는 채식 음식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이 식품을 만든 사람은 한 어울락 동수인데, 그는 원래 대단히 가난해서 가족들을 부양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명상 중에 스승님께 성심으로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고, 그러자 화신 스승님이 빛으로 나타나 "시장에 가서 작은 바나나 꽃을 찾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br /><br />스승님의 지시에 따라 다음날 시장에 간 동수는 과일 장수들이 바나나를 줄기에서 잘라내고는 꽃봉오리를 줄기와 함께 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버려진 꽃봉오리를 몇 개 주워 와 시범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보니 매우 신선하고 특별한 맛이었다. 자신을 얻은 그는 버려진 바나나 꽃을 더 많이 주워다가 맛깔스런 채식 음식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 밑천도 들지 않는 장사는 많은 손님들을 끌어 모았고, 그 지역의 대형 식당에서도 특별 주문이 들어왔다. </p>
<p class="indent" align="left">몇 년 만에 그는 수입이 늘어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동수는 또 바나나 꽃봉오리의 껍질을 맛있는 채식 생선의 재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 실제 경험을 동수들에게 들려주며 우리의 전능하신 스승님은 제자들을 영원히 보살피신다고 힘을 북돋아 주곤 한다. </p>
<p>나중에 그는 이 특식을 북미로 수출했다. 그래서 오늘날 아시아 식품을 파는 미국의 슈퍼마켓에서는 '바나나 꽃'을 물으면 바로 이 제품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img height="15"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end.gif" width="19" alt="end.gif" /></p>
<blockquote></blockquote>
<div></div>
<blockquote>
<div class="indent" align="center">
<p align="left"><font color="#009999"> </font></p>
<p align="right"><font color="#009999"><img height="35"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st-b.gif" width="203" alt="st-b.gif" /><img height="35"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news_img/news133/images/st-b.gif" width="203" alt="st-b.gif" /></font></p></div></blockquote>
<div align="center">
<blockquote>
<p class="caption" align="right">- 뉴스잡지 133호에서-</p></blockquote></div>]]></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26 Apr 2004 00:24:02 +0900</dc:date>
</item>


<item>
<title>만물동일체(萬物同一體)</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1</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lt;초창기 사제간의 이야기&gt;</font> <br /></p>
      <p>만물과 동일체인 스승님은 모든 중생의 기쁨과 슬픔을 똑같이 느끼시며 아무리 작은 중생의 아픔도 못 보신다. 다음의 일화를 통해 
        일상 중에 자연스레 나타난 성인의 애정 어린 세심한 보살핌과 무한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p>
      <p><font color="#CC3366">*첫 번째 이야기*</font>
        <br /><span class="topic">장작 속의 작은 생명까지</span></p>
      <p>시후 센터 주위의 산림에는 죽은 나무와 마른 나뭇가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물을 끓이고 밥을 할 때 가스는 
        거의 쓰지 않고 불을 지피곤 했다. 어느 날 스승님은 한 장주가 장작불을 지피자 바로 달려와 불속에서 나무를 끄집어내라고 말씀하셨다. 
        “어찌 이리 조심성이 없나요? 불 피우기 전엔 반드시 나무 속에 벌레나 작은 생물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말했잖아요. 특히 개미는 
        대나무나 나무 구멍에 숨는 걸 좋아하니 각별히 주의하세요.”</p>
      <p> 스승님은 중생들이 불속에서 고통스러워하자 바로 그 고통을 느끼셨던 것이다.</p>
      <p><br /><span class="topic">다섯 번째 제자</span></p>
      <p>스승님이 예전에 머무셨던 감나무 정원의 감이 붉게 익어 가자 스승님은 제자들에게 감을 따라고 하시면서도 “다 따지 말고 몇 
        개는 새들을 위해 남겨 두라.”고 특별히 당부하셨다. 새들은 우리 주방에도 자주 찾아왔는데, 스승님은 우리에게 매일 새들에게 
        줄 신선한 물 한 사발과 쌀밥을 조금씩 준비해 두라고 지시하셨다. </p>
      <p>스승님이 시후에 계실 때 한번은 “석가모니불에겐 비구, 비구니, 남자 재가자, 여자 재가자 등 네 무리의 제자가 있었지만, 
        나에겐 다섯 종류의 제자가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다섯 번째 제자는 바로 수시로 찾아오는 새들과 떠돌이 개, 
        풀을 뜯어먹으러 종종 담을 넘어오는 이웃의 소와 양, 닭과 같은 동물들이었다. </p>
      <p>사람들만 스승님 곁에 붙어 있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동물들도 스승님을 보면 좋아해서 스승님이 각국을 다니시며 강연하시거나 
        잠깐씩 그 지역에 머무실 때면 이 ‘다섯 번째 제자들’이 스승님을 찾아와 딱 붙어 떨어지지 않곤 했다. </p>
      <p><br /><span class="topic">간절한 외침에 응답하시다</span></p>
      <p>어느 날 스승님과 우리는 시후 센터 근처의 산에서 이야기하고 웃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스승님이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셔서 우리도 덩달아 모두 멈춰 섰다. 스승님은 대나무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두드리시며 뒤에 있던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조심해요. 
        여기 나비가 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비는 길 한가운데 앉아 꼼짝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만물과 동일체이신 스승님과 
        마주쳐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눈먼 코끼리 떼’에게 짓밟혀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p>
      <p>또 하루는 산을 거닐던 스승님이 갑자기 그 자리에 없던 장주의 이름을 부르셨다. 나중에 이 일을 그 장주에게 알려 주자 그녀는 
        그제야 상황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원래 그녀는 텐트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스승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했는데, 스승님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 순간 위험한 고비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p>
      <p><br /><span class="topic">천리만리도 듣는 스승님</span></p>
      <p>한번은 스승님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시고 나는 바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채소에 물을 주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어 콸콸 물이 
        흐르는 와중에 나는 조그맣게 대중가요를 흥얼거렸는데, 물소리 때문에 내 노랫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멀리 부엌에서 
        스승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불은 안 외우고 엉터리 노래나 부르고 있다니!” 나는 그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 먼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스승님의 귀는 두렵기 짝이 없다!</p>
      <p> 사람들마다 각자 고유한 진동과 자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스승님께 입문한 후에는 우리가 떠올리는 사소한 생각이 방출하는 ‘뇌파’도 
        스승님께 불편을 끼친다. 스승님은 마치 거대한 수신기처럼 늘 온갖 방향에서 오는 신호를 수신하신다. 그래서 스승님 곁에 있으면서 
        잠시라도 우리의 마음이 도(道)에서 벗어나면 스승님께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p>
      <p>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면의 소리는 우리를 더 높은 세계로 데려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면에서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높아질수록 우리는 더욱 분명히 이해할 것이며, 마침내 우주의 그 어떤 구석도 모두 보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만물동일체가 되어 그 어떤 중생과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칭하이 무상사/ 1993. 10. 18. 일본. 원문 중국어. 비디오 
        No. 382)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우리 각자가 ‘만물동일체’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
      <p><font color="#CC3366">*두 번째 이야기*</font><br /><span class="topic">수정세계의 밤</span></p>
      <p>어느 날 밤, 스승님은 시후에 있는 유리집 앞에서 [나르빠 수행 이야기]를 읽어 주시기로 했다. 우리는 스승님의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영문판 정장본을 보고 오늘도 근사한 밤을 보내게 되리란 걸 알았다! 평상시 스승님은 이야기를 읽어 주실 때 사전을 
        찾는 일이 매우 드물었는데, 그날 밤은 특별히 시자에게 사전을 가져오도록 지시하셨다. 그 책은 밀교 경전을 번역한 책이라 전문 
        용어가 많아서 스승님은 우리에게 책을 읽어 주시기 전에 미리 번역해 보시는 등 매우 신경을 써 주셨다. 나르빠는 티베트의 위대한 
        요기인 밀라레빠의 스승으로 구도 당시 온갖 굴욕과 시험을 거쳤는데, 스승님의 뛰어난 이야기 솜씨로 이 전기집은 원본보다 수천 
        배나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절정으로 치달았고, 우리 마음은 모두 고대 티베트를 떠돌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p>
      <p>스승님이 이야기를 마치셨을 때는 밤도 한참 깊어 밤이슬이 촉촉이 내려 있었다. 스승님은 모두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건네신 후 
        다시 유리집에 들어가 계속 책을 읽으셨다. 사면이 모두 큰 유리로 되어 있어 ‘유리집’이란 이름이 붙은 이 작은 건물의 창에는 
        이슬이 방울방울 수없이 맺혀 있었다. 거기에다 스승님의 가냘픈 형체를 아련하게 비추는 스탠드의 불빛이 금빛으로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수정세계에나 나올 법한 꿈결같이 아름다운 장면이었다!</p>
      <p><font color="#CC3366">*세 번째 이야기*</font><br /><span class="topic">쉼 없이 일하시는 스승님</span></p>
      <p>스승님은 밤에 일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밤이 되어 만물이 정적 속에 잠자고 떠들썩한 분위기도 차츰 가라앉고 모두들 꿈나라로 
        갈 때 성인은 또 다른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p>
      <p>한번은 스승님께서 한 여자 장주에게 당신 방에 와서 자라고 이르셨다. 다음날 그 사저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어서 모두들 궁금해했다. 알고 보니, 스승님이 전날 밤 그녀에게 많은 일을 지시하셨는데, 그 내용들을 떠올리느라 그런 것이었다. 
        우리가 왜 필기구를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자러 가는데 필기구가 필요할 줄 누가 알았겠어?” 하고 대답했다. 그 일 이후, 
        우리는 스승님이 주무시러 간다고 말씀은 하셔도 실은 주무시지 않고 쉼 없이 밤새도록 일을 계속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p>1993년 세계 순회강연을 위해 포모사를 떠나시기에 앞서 스승님은 타이베이 국부기념관에서 훌륭한 강연을 하시며 포모사 사람들의 
        사랑과 갈망을 들어주셨다. 강연 전날 밤 스승님은 갑자기 시후의 보물정에 보관되어 있던 [장자]가 필요하단 전갈을 보내셨다. 
        말씀을 전해 온 사람은 가능한 한 빨리 그 책을 찾아 타이베이로 보내 달라고 했다. 다음날, 스승님의 강연 주제는 ‘노장(老莊)과 
        천상의 음악’이었다. 그후 스승님은 인도네시아에 가셨을 때도 노장에 관한 주제로 말씀을 계속하셨다. 스승님과 있을 때는 이렇게 
        즉흥적인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p>
      <p>또 언젠가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내가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자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참에 전화벨이 울렸다. 티베트의 
        게룩파를 창시한 쫑카파 스승에 대한 책을 찾는 스승님의 전화였는데, 시계를 보니 한밤중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 시간에도 스승님이 
        아직 책을 읽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자 내 졸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p>
      <p><font color="#CC3366">*네 번째 이야기*</font><br /><span class="topic">스승님의 노트</span></p>
      <p>한번은 스승님의 책장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는데, 작은 루스리프 노트 한 권이 내 눈길을 끌었다. 아무렇게나 노트를 펼쳐 보니 
        스승님의 우아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몇 줄만 보는데도 너무나 강력한 힘이 느껴져 감히 자세히 읽을 생각을 못 하고 황급히 
        노트를 덮었다. 그 노트는 정말 소박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은 쓰는 사람도 별로 없는 그런 노트였는데도 스승님은 귀중한 영감을 
        기록하는 데 사용하셨다.</p>
      <p> 스승님은 정말 단순한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 제자들은 오히려 너무 복잡하고 부자연스러워 스승님을 보필할 때 스승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종종 놓치곤 한다. 한동안 대중 강연을 하실 때 스승님은 휴지를 뽑아서는 그것을 일러 ‘지혜 주머니’라고 농담하신 적이 
        있었다. 사실은 우리가 스승님께 노트를 드리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밤에 영감이 떠오르면 스승님은 휴지에 적어 두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시로 영감을 기록하기 위해 스승님의 침대 옆에는 언제라도 글을 적을 수 있도록 조그만 손전등이 준비되어 있다. </p>
      <p>어느 날 스승님께서 우리 사무실을 들르셨다가 내 책상에 놓인 노란색 포스트잇을 보시고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마냥 
        기뻐하시곤 갖고 가셨는데, 나중에 외국에 나가실 때도 갖고 나가셨다. 이 편리한 포스트잇이 사무실에서 사용된 지는 제법 오래되었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스승님께 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스승님이야말로 가장 필요하신 분인데도 말이다!</p>
      <p> 우리는 또 스승님 방에 달력을 두는 것도 잊곤 해서, 스승님은 종종 전화로 오늘이 며칠인지 물으셔야만 했다. 스승님은 천의나 
        천상의 보석, 만세등을 디자인하실 때도 겨우 몇 가지 색의 펜으로만 사용하시고 수정액도 없기 일쑤였지만, 밤늦게까지 일하시면서도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변변찮은 도구를 사용하시곤 하셨다. 우리는 온갖 색깔의 펜들을 갖고서도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반면, 위대한 디자이너인 스승님은 단지 몇 가지 색만으로도 온 우주를 그려 내신다!</p>
      <p><font color="#CC3366">*다섯 번째 이야기*</font><br /><span class="topic">재미있는 우리 스승님</span></p>
      <p>어느 날 오후, 시후는 마치 비가 올락 말락 무덥고 우중충했다. 그 와중에 우리들은 조용히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무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스승님의 주방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여자 장주들이 영문도 모른 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곧이어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와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웃음소리가 난다는 건 아무 일 없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은 스승님이 누군가에게 폭죽을 몇 발 쏘시게 하고는 “폭발 소리에 무서웠는지” 
        우리에게 물어보라고 시키신 것이었다. 장난기 많은 스승님 덕분에 우리는 모두 유쾌한 마음이 들어 음침한 분위기를 일시에 날려 
        버렸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un, 25 Apr 2004 23:56:43 +0900</dc:date>
</item>


<item>
<title>동물 역시 신의 도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0</link>
<description><![CDATA[<br /><p>나는 매일 새들이 지저귀고 꽃 냄새가 물씬 피어나는 산속에서 신선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산에는 사랑스런 동물들도 
        많지만 뱀들도 많이 산다. 처음 뱀을 봤을 땐 매우 무서워했지만 얼마 후에는 익숙해져 뱀을 봐도 먼저 지나가도록 내버려두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뱀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p>
      <p> 어느 날 나는 친구와 얘기를 하면서 스승님을 따라 몇 년 간 수행하면서 여러 면에서 진보하였고 또 자신감도 생겨 침착하고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끝에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뱀은 무서워.”</p>
      <p>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문 밖 돌벽에 작은 독사가 한 마리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순간 겁에 질려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는 잡을 생각도 못 한 채 물릴까 봐 무서워하며 뱀이 스스로 가 버리길 바랐다. 그러나 내가 밖으로 외출해야 했을 때도 뱀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몇 시간 후 집에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집에 들어가 잘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마침내 큰마음 먹고 자루와 가는 대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뱀을 잡는 방법은 길고 가는 막대기로 뱀을 들어올려 자루에다 
        넣는 것이다. 그런 후 다른 곳에다 풀어 주면 된다.) 다행히 돌아와 보니 뱀은 사라지고 없었다.</p>
      <p> 또 한번은 다른 산에서 잠시 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밤 방에 들어와 불을 켜 보니 두 마리의 독사가 방 안에 있는 것이었다. 
        그 집은 산비탈에 붙은 벽 쪽에 수도관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었는데, 거기에 구멍이 생겨 수도관이 보였다. 그 구멍이 보기 흉해서 
        얇은 나무판자로 덮어 놓긴 했지만 구멍을 완전히 메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뱀이 그 판자의 틈새로 들어왔던 것이다. 내가 
        들어오자 뱀은 다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나무판자가 외부에서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을 뿐 방에서 밀고 나갈 수는 없게 되어 있어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때 판자 뒤에서 다른 뱀의 꼬리가 보였다. 아마도 친구의 탈출을 도우려고 온 것 같았다. 나는 무서워 
        식은땀이 나고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얼른 짐을 챙겨 뛰어나와 다른 곳에서 잠을 잤다.</p>
      <p> 다음날 뱀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웃이 뱀이 완전히 가 버렸는지 확인해 주려고 우리 집에 왔다. 그녀는 고무장갑을 끼고 
        고무장화를 신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들고 서랍장과 테이블을 샅샅이 뒤집어 보는 등 아주 세심하게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구멍을 막고 있는 얇은 나무판자를 들어올리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우리에게 혀를 날름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간 크게도 
        판자를 치우고 아무렇지도 않게 뱀을 쳐다보았다. 반면 나는 무서워서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판자 주위로 뱀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많으니 구멍을 완전히 막아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판자에 못 치는 것을 도와주었고 또 접착제로 
        단단히 봉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침착한 태도에 감동받았다. 매사를 세심하게 처리하는 천성이 그녀를 용감하게 만든 것 같았다.</p>
      <p> 얼마 후 원래 살던 집으로 다시 옮겨 온 후, 한동안은 예전에 문 앞에 보이던 뱀의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마을을 
        떠나 있을 때, 나는 친구에게 그 뱀에 대한 얘기를 하며 그게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뱀 허물이 바깥쪽 벽에 붙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뱀은 아마도 내 말을 듣고는 직접 행동으로 대답해 준 것 같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p>
      <p> 집 주위를 둘러보니 비로 인해 진흙으로 된 옹벽에 아주 많은 구멍들이 생겨나 있었다. 뱀들이 살기에 딱 맞게 생겨서 나는 
        시멘트로 그 구멍들을 막기로 했다. 우선 석회를 발라 혹시 그 안에 살고 있을지 모를 작은 동물들이 이사 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랬더니 정말 그날 밤 문 밖 물통 옆에서 작은 초록 뱀이 나타났다. 뱀의 꼬리를 본 순간 나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 컴퓨터를 
        방충문 가까이 놓고 스승님의 강연 MP3를 틀어 놓았다.</p>
      <p>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나 불을 켜 보니 뱀은 아직도 밖에 있었다. 뱀은 머리를 컴퓨터 앰프를 향한 채 쭉 뻗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컴퓨터에선 이란 선칠(禪七)에서 스승님이 동수들과 함께 부르신 불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참 동안 뱀은 꼼짝 
        않고 있어서 죽은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살아 있으면 불빛이나 사람의 인기척이 조금만 나도 도망치기 때문이다. 불찬이 
        끝나고 동수들이 체험을 발표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뱀은 사라졌고, 나는 그때 뱀이 죽은 게 아니라 불찬을 들으며 삼매에 빠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뱀도 아주 사랑스럽고 대단히 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p>
      <p>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마치 그 뱀들은 텔레파시가 있는 것처럼 내가 멀리서 한 말도 알아들었으며, 내가 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타나곤 했다. 영락없었다! 스승님도 이전에 말씀하시길, 동물 역시 우리의 진보를 돕기 위한 신의 도구라고 하셨는데, 
        나는 이번에 정말 그렇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뱀에 얽힌 경험은 내게 나 자신이 무서워하는 존재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8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un, 25 Apr 2004 23:43:24 +0900</dc:date>
</item>


<item>
<title>성인의 마음, 성인의 행동</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9</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lt;초창기 사제간의 이야기&gt;</font></p>
      
      <p>아직 공개적으로 법을 펴기 전 초창기에 스승님은 타이베이 교외 신디엔에 있는 황량한 별장에서 한동안 머무르셨다. 당시 우리는 
        그 별장을 싼 값에 빌려 깨끗이 청소한 후 단체명상 장소로 이용했다.</p>
      <p> 어느 날 나는 스승님과 위층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래층에서는 입문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시자가 
        입문식을 위해 스승님을 모시러 위층으로 올라왔다. 그때 스승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은 사람들을 입문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지요.” 이 귀중한 말씀은 내 가슴속에 그대로 새겨져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이렇게 자신을 깨우치곤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을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상황을 살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그 즉시 해야 한다.’</p>
      <p> 시간이 흘러 제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별장이 점차 협소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선(禪)에 참석한 동수들을 위해 스승님께서는 임대 
        기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비탈진 곳에 버려져 있던 창고를 보수하셨다. 창고를 함께 보수하면서도 나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좀 
        있으면 이사 가야 할 텐데, 뭐 하러 이 일에 시간과 돈과 노동력을 낭비해야 하지?’ 스승님은 그 즉시 나의 의문을 아시고는 
        혼잣말로 말씀하셨다. “사람들마다 이사 갈 때가 되었는데 왜 이곳을 보수하느냐고 묻는데, 그건 선을 할 장소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수리한 장소를 나중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게 뭐가 어떻습니까?”</p>
      <p> 나는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방망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인의 마음과 범부의 마음은 이렇게도 다른 
        것이다! 성인의 마음은 매우 단순해서 현재, 주어진 시간에 살며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뿐 보통 사람들처럼 그런 복잡한 
        분별심이 없다. [금강경]에서도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應無所住而生其心).”라고 했다. 스승님의 생활과 언행은 
        가장 훌륭한 살아 있는 경전으로서 제자들에게 무궁무진한 이로움을 가져다주신다! </p>
      <p>창고 수리가 끝났을 때 이상하게도 제자들은 그 내부가 너무 누추하다면서 아무도 그곳에 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스승님이 
        별장의 방을 제자에게 주시고 그곳으로 이사하셨다.</p>
      <p> 그 당시엔 재정적으로 어려워, 스승님은 차(車)를 살 여유가 없으셨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이 되면 스승님은 산을 
        걸어 내려가 다시 버스를 타고 타이베이 완화 지역의 사형 집에 도착해 법문을 하시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고생을 견딜 수 
        없었던 시자는 항상 불평을 해댔다. 그러자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가자들은 일하느라 바쁘니, 우리가 좀더 고생하는 게 
        낫습니다.” </p>
      <p>한번은 강연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도중 길옆에 버려진 목판을 발견하신 스승님은 그것을 주워다가 깨끗이 닦은 다음 그 밑에 
        두 개의 의자를 받치셨다. 그러자 버려졌던 그 목판은 멋진 식탁으로 새롭게 변신했다!</p>
      <p> 평상시 스승님은 시간이 있기만 하면 제자들에게 방석을 만들어 주시거나 가끔은 요리도 해주시면서 당신이 우리의 스승이라고 해서 
        높다는 티를 털끝만큼도 내지 않으셨다. 만약 누군가가 스승님이 제자들로부터 이익과 명성을 바란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크나큰 
        오해다! </p>
      <p><br /><span class="topic">스승님 주위를 세 번 돈 말벌</span></p>
      <p>어느 날 오후 휴식 시간에 몇몇 제자들이 스승님 처소 앞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말벌 한 마리가 거미를 꼭 
        물고 놔주지 않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말벌을 쫓아 보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혼란스런 광경을 보신 
        스승님이 무슨 일인지 보기 위해 건너오셨다. 상황을 파악하신 후 스승님은 말벌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거미와 무슨 인과가 있다고 
        해도 그를 놓아주어야 해!” 놀랍게도 그 말벌은 마치 스승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것처럼 그 즉시 거미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스승님 
        주위를 세 번 돌더니 날아갔다.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의 주위를 세 번 도는 것은 옛날에 부처님께 큰 공경을 표하는 하나의 예절이었다. 
        말벌조차도 살아 있는 깨달은 스승을 알아보다니,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지 않은가!</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un, 25 Apr 2004 23:41:09 +0900</dc:date>
</item>


<item>
<title>1993년 하와이 ‘칭하이 데이’ 선포식에서 일어난 기적</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8</link>
<description><![CDATA[<br /><p>매년 10월 25일이면 산호세 센터의 동수들과 가족들은 칭하이 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올해도 모두 모여 경축하고 
        있는데, 에드가 사형이 1993년 하와이 국제 선과 칭하이 데이 선포 경축행사 전후로 겪은 기적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었다. </p>
      <p>당시 하와이 국제 선에 참석한 동수들이라면 선 행사장이었던, 푸른 언덕과 숲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식물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곳엔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p>
      <p>선 행사 기간 중에는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려 온 세상을 깨끗이 정화시켜 주었고, 동수들은 스승님의 무한한 축복에 잠겨 영혼이 
        정화되는 고양감을 느꼈다. 선이 끝난 후, 칭하이 데이 선포식이 있으니 정장을 하라는 지시를 받은 동수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이 촉박해서 모두들 비로 인해 진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닦을 겨를도 없이 서둘러 정장으로 갈아입었는데, 신데렐라가 공주로 
        변신하듯 눈 깜짝할 새에 말쑥한 신사, 숙녀가 되었다. </p>
      <p>하지만 에드가 사형과 그 일행은 렌트한 차를 잃어버려 행사에 참가할 기분이 아니었다. 렌트한 차를 선 행사 첫날 작업 팀에게 
        빌려 줬는데, 선이 끝난 후 작업 팀이 돌려준 차는 원래의 그 차가 아니었다. 차를 찾아 공원 곳곳을 뒤지던 그들은 어떤 관음사자를 
        만나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 차를 타고 같이 파티에 참석하자고 초대했다. 그래서 일행은 관음사자의 
        차를 타고 우선 한 집에 들러 정장을 갈아입은 후 경축행사가 열리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p>
      <p>이런 소동 끝에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동수들과 손님들이 자리를 다 차지한 상태였고, 호법들이 행사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입장을 막는 바람에 문 앞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조금 뒤 빈자리가 나서 모두들 성대한 파티에 참석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무슨 이유인지 테레사 사저만 자리가 없어서 혼자 문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공연 
        대기자 중 한 사저가 다가와 그녀에게 구두를 바꿔 신자고 부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저는 새로 산 흰 구두가 너무 작아 
        발이 굉장히 아팠던 참이었다. 발의 통증이 공연에 지장을 줄까 봐 걱정이 됐던 그녀는 스승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마침 흰 구두를 신고 있는 테레사 사저를 발견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바꿔 신은 신발은 서로에게 딱 맞았다. 물론 테레사 사저는 
        나중에 행사장에 들어갔다. 스승님께서 이 사저를 뒤에 남겨 놓으셨던 것은 다른 사저를 돕기 위한 안배였던 것이다. </p>
      <p>파티가 끝난 후 에드가 사형은 일전의 그 관음사자를 찾았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형과 그 일행은 자신들의 차를 
        찾는 ‘임무’를 다시 시작했다. 그들은 작업 팀이 차가 있는 곳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자정이 지나자 대다수 동수들은 연회장을 떠났고, 일행은 돌아갈 방법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들이 
        잃어버린 차가 호텔 문 한쪽에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차를 몰고 온 사람을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혹시나 해서 차 문을 열어 보니 다행히 잠겨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비상 열쇠까지 차 안에 있는 게 아닌가! 순간 그들은 스승님의 
        축복과 보호가 늘 함께함을 깨닫고는 감사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p>
      <p>우선 차를 찾긴 했지만 그 차를 몰고 온 사람이 차가 없어진 걸 알면 걱정할까 봐 에드가 사형 일행은 감히 차를 몰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명은 차를 지키고 나머지는 운전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호텔을 샅샅이 뒤졌으나 짐을 꾸리고 있는 사저들만 몇 
        명 있을 뿐, 그 차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들은 그 차를 타고 호텔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일행은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그 누구도 행사 전에 옷을 갈아입었던 집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그들은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p>
      <p>얼마간 차를 운전하고 가던 에드가 사형은 문득 저 멀리 앞의 차 한 대가 계속해서 자신들과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운전자가 동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자 사형은 그 차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러다 잠시 후 에드가 사형의 차가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에 들러야만 했는데, 놀랍게도 앞서 가던 그 차도 주유소에 들르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아니나다를까 
        우리 동수였고, 운전자도 마침 하와이 동수였다! 더욱더 놀라웠던 것은 그들도 우리가 옷을 갈아입었던 바로 그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스승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길을 안내할 동수들까지 정확히 안배하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그마한 그 집에 무사히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는 그 동수의 차를 따라 선 행사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p>
      <p>그런데 공원에 도착해 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차를 몰고 다른 입구를 찾고 있던 참에 차 한 대가 잠긴 문 앞에 섰다가 그들처럼 
        돌아 나오다 도랑에 빠지는 게 보였다. 에드가 사형과 동수들이 황급히 차에서 내려 도와주러 가 보니 그 차 역시 동수의 차였다. 
        모두의 힘을 모은 끝에 차를 겨우 꺼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차 주인이 밤에도 열려 있는 유일한 입구를 알고 있어서 세 
        대의 차는 바로 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밤 단 몇 시간 새 잇달아 일어났던 많은 기적들로 인해 에드가 사형과 다른 동수들은 
        무소부재하신 스승님이 항상 곁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40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un, 25 Apr 2004 23:33:54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의 정교한 안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7</link>
<description><![CDATA[<br /><p>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몇 차례의 국제 선에 참석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여러 센터를 방문하고 또 많은 동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딜 가나 동수들은 마치 친 가족처럼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는데, 사실 내게 있어 동수들은 모두 관음법문이라는 포근한 한 지붕 
        아래 있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p>
      <p>나는 몇 년 전 스승님을 따라 어울락 난민 캠프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난민 캠프에 있던 동수들이 제3국으로 이주하는 
        데 필요한 번역과 서류 작업을 도왔는데, 그때 만난 동수들을 나중에 우연히 만났을 때 일부는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p>
      <p>당시 난민 캠프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어서 강제송환이 될 운명에 처한 난민들은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배에 탄 사람들처럼 불안하고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런 그들에게 있어 스승님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러나 어떤 단체의 강한 압력으로 인해 난민 동수들을 
        제3국으로 이주시키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정문을 통해 캠프에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후문이나 심지어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가기도 했고, 대개는 캠프 경비원의 감시 아래 동수들과 단 몇 분만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p>
      <p>우리는 서류 작업을 계속하긴 했지만 희망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어울락 난민들의 절망적인 마음을 그대로 느낀 나머지 
        때로는 힘이 쭉 빠져 며칠씩이나 침대에 누워 지내며 먹을 수도, 맡은 일을 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것을 여실히 체험했던 것이다. 많은 난민들이 폭력과 강압에 의해 본국으로 송환되는 것을 보고 나서는 우리도 결국 슬픔과 절망을 
        안고 캠프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p>
      <p>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국제 선에 참석하고 여러 센터를 방문할 때면 묘한 일이 일어났다. 한때 필리핀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등지의 난민 캠프에 살았던 많은 동수들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어울락으로 강제송환 된 후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는데, 지난날을 함께 얘기하다 보니 그 모든 얘기가 꿈만 같았다. 그들이 어울락에 도착한 후 미국 대사관에서는 
        ‘갑자기’ 그들의 신청을 재심사하겠다고 결정하곤 다시 인터뷰를 했다. 단, 이미 정식으로 서류 신청을 한 난민들만 심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스승님은 그 수년 전부터 이 서류 작업을 추진하도록 지시하셨었는데, 당시 우리들은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았다. 그러니 그것이 이 동수들을 미국으로 건네주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p>
      <p> 현재 많은 센터에서 어울락과 기타 동남아시아에 있는 많은 난민 동수들이 미국으로 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동수들은 
        모두 이전에 강제송환 되었거나 난민 캠프가 폐쇄되고 나서 현지에 남게 된 사람들이다. 이제야 나는 스승님의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이며, 스승님의 무한한 힘이 깃들면 그 어떤 일이든 그것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4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24 Apr 2004 12:52:28 +0900</dc:date>
</item>


<item>
<title>살아 계신 스승을 만났어도</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6</link>
<description><![CDATA[<br /><p>스승님이 포모사에서 가르침을 펴시던 초창기엔 고정된 명상 센터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강연을 청하면, 스승님은 늘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는 출가승과 재가 제자들을 데리고 강연장에 오셨다가 강연이 끝나면 숙소로 다시 돌아가곤 하셨다.</p>
      <p> 1987년 5월 타이난의 한 절에서 스승님께 사흘 동안 설법해 주시길 청했다. 이 사흘간의 강연은 타이난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스승님이 핵심을 찌르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열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으며, 강연 2, 3일 만에 엄청난 인원이 입문을 신청했다. </p>
      <p>타이난 강연이 끝난 후 일행들은 스승님을 모시고 포모사 북부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몰았다. 신잉을 지날 무렵 갑자기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차를 정비소로 견인할 수밖에 없었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스승님은 사람들을 데리고 길옆에서 고금을 
        연주하며 불찬을 부르셨다. 그러는 동안 몇몇 정비공들이 다가와 불찬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스승님은 불찬 악보를 나눠 주시며 한 
        소절씩 불러 주셨다. 그때 어떤 사람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몇 번인가요?” 하고 스승님께 여쭙자 이에 그의 동료들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자 그 사람이 다시 보충해서 물었다. “스승님, 이번 주 ‘올 해피 복권’은 몇 번이 
        될까요?”</p>
      <p>** ‘올 해피 복권’은 십수 년 전에 포모사에서 유행했던 불법 도박의 하나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4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24 Apr 2004 12:50:36 +0900</dc:date>
</item>


<item>
<title>초창기 시절 스승님에 얽힌 기억</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5</link>
<description><![CDATA[<br /><p>&lt;사제지간의 성스런 사랑&gt;</p>
      <p>1985년 10월 2일, 이날부터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날 스승님은 타이베이 용산사의 주지인 혜인 스님의 청을 받고 
        신도들을 대상으로 설법을 하셨다. 그날 저녁 절에 갔을 때 나는 참 스승이 설법하러 오신 것은 꿈에도 모른 채 갈색 법복을 입은 
        자그마한 비구니가 관음보살께 배불하는 모습만 보았을 뿐이었다. 내 눈 속에 그녀의 우아한 모습이 들어온 순간 내 가슴과 영혼이 
        모두 떨리면서 잠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배불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귀하고 경건하여 바로 부처님이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반면 다른 사람의 절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부처님이 저만치 도망가는 듯했다. 나는 혜인 스님의 소개를 듣고서야 
        칭하이 스승님이 그날 처음으로 법문을 하러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p>그날 스승님은 영어와 중국어를 병용하셨는데 강연 내내 청중들이 웃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당시 ‘이 스승께서 
        제자를 받으실까?’ 하는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전날 관음보살에게 화를 내며 “제겐 저를 이끌어 주실 살아 계신 
        스승이 필요해요!” 하고 요청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다음날 스승님께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p>
      <p>네이후에 있는 스승님의 거처를 알아낸 나는 즉시 길을 물어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물어물어 가면서 길을 
        잃어버리기를 수차례, 하지만 결국 나는 스승님이 계시는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신개발지구로 많은 집들이 번지수도 적혀 
        있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길을 잃고 오도 가도 못할 때마다 누군가 ‘때마침’ 나타나 길을 알려 주곤 했다. 나중에 나는 그것이 
        나를 도우러 오신 스승님의 화신임을 알게 되었다. 훗날 들어 보니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그녀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하셨단다. </p>
      <p>당시 스승님이 계신 곳에서는 선삼이 진행 중이어서 입문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원래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승님은 
        내가 멀리서 찾아왔으며 만약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선이 끝난 그 다음날 새벽에 있을 입문식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하시곤 관대히도 입문 전날 밤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다음날 입문식 동안 나는 다양한 내적 체험을 즐기면서 
        ‘와! 정말이네! 스승님이 말씀하신 건 전부 다 있네!’ 하고 생각했다. </p>
      <p>스승님의 처소는 산허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국지적인 소나기가 빈번하게 내리곤 했다. 그래서 단체명상을 하러 나설 때는 날이 쨍쨍하다가도 
        스승님의 처소에 도착할 무렵엔 큰비가 쏟아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우산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을 한 벌 
        더 챙겨 가지고 가야만 했다. 태풍을 만났을 때는 스승님을 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더 강렬해지곤 했는데, 한번은 스승님이 
        ‘채식 삼계탕 속에 든 닭’ 같은 우리 모습을 보시곤 마음 아파하시며 말씀하셨다. “밖에는 태풍이 난리인데, 여러분은 정신이 
        나간 것 같군요.”</p>
      <p> 자비로운 스승님은 무슨 물건이건 대중과 나누는 것을 잊는 법이 없으셨다. 때로는 우리가 집으로 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급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면 스승님은 발코니에서 우리를 불러 사랑이 가득 담긴 축복 음식을 비처럼 뿌려 주셨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가피물을 잡으며 스승님의 사랑에 마음이 훈훈해지곤 했다. 길 끝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아직까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시는 스승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p>
      <p>스승님의 처소가 멀었던 탓에 매일 단체명상에 올 수 있었던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나는 그곳까지 오는 데 길에서 네 시간을 
        보내야 했고 때로는 스승님과 30분밖에 명상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몇 시간은 내 평생 동안 가장 보배로운 순간이었다. 
        명상이 끝난 후 스승님은 우리와 함께 바닥에 앉아 깨달음이 가득한 즐거운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다. </p>
      <p>행복했던 시간들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법이다. 스승님은 비자가 다 되어 포모사를 떠나 출국하셔야 했다. 한번 가시면 6개월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우리 동수들은 열심히 단체명상을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스승님의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릴 뿐이었다. 
        스승님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우리는 새가 되어 스승님께 날아가지 못하는 게 한이었다. 어느 날은 나 혼자 스승님의 처소를 청소하러 
        갔는데, 문을 여는 순간 탁자에 놓인 스승님의 가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스승님이 나타나신 것 같았다. 그 순간 그리움이 북받쳐 
        올라 나는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계속 생각했다. ‘스승님! 도대체 언제라야 돌아오시나요?’ 마침내 인도에서 돌아오신 스승님은 
        도착하자마자 물으셨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끔 누가 그렇게 통곡을 한 거지요?”</p>
      <p> 스승님께서 외국에 계시는 동안 우리는 스승님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스승님이 이전에 안거하셨던 길상사를 
        알아내 찾아갔다. 그곳을 찾아갔을 때 우리는 이 절이 정말 고요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지긋한 그곳의 보살님은 스승님의 
        이름을 듣자마자 즉시 그곳 사람들도 스승님을 대단히 그리워하고 있다면서 스승님이 그 절에 계시는 동안 얼마나 부지런히 수행하시고 
        겸손하셨는지 말해 주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본채 뒤쪽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곳에 있던 것은 벽돌로 지은 
        허름한 작은 집이었다. 세면대조차 벽돌 몇 장으로 대충 지은 그 집이 바로 살아 계신 깨달은 스승이 안거하며 수행했던 선방이었던 
        것이다. 자비로운 스승님, 중생들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위해 이토록 고생하셨군요!</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43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24 Apr 2004 12:48:34 +0900</dc:date>
</item>


<item>
<title>안성맞춤이었던 상자</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4</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FF6600">&lt;해외 홍법 이야기&gt;
</font></p>  
   <p>1993년 스승님이 처음으로 오스트리아에서 강연하실 때 스승님의 유머와 재치는 모든 청중들에게 활기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대중을 즐겁게 만드시는 스승님의 방법은 우리 범부의 상상을 뛰어넘는다.</p>
      <p> 스승님의 강연은 항상 강연장의 청중과 상호 교감을 나누는 자연스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여서 스승님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또 다른 방법으로 강연을 순조롭게 진행하셨다. 스승님은 청중들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지 
        알기 위해 당신께서 강연 며칠 전에 미래 시점의 강연일로 올라가 말할 내용을 기록해서 돌아오신 후 독일어와 불어로 번역하고 오자 
        등을 퇴고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고 쉬우면서도 유창하게 말이 전해지도록 밤새 수고하신다고도 하셨다.</p>
      <p> 1993년 순회강연 동안 우리는 때로 단상의 탁자 위에 천으로 감싼 작은 상자를 두곤 했는데, 사실 이 상자는 스승님의 강연용 
        친필 원고를 꽂아 두는 책꽂이 용도였다. 그 작은 상자는 아주 안성맞춤으로 계속 별 탈 없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오스트리아 
        강연 당일, 스승님께서 강연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셨을 때 강연대 근처에는 나를 비롯한 두세 명의 시자가 서 있었다. 사회자가 
        말하는 동안 스승님은 나를 보시곤 천으로 감싼 그 상자를 가리키시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로 고개를 흔드셨다. 그러곤 즉시 다른 
        것으로 대체하라고 지시하셨다. 너무 돌발적인 상황이라서 나는 어디 가서 알맞은 대체물을 찾아야 할지 몰라 초조한 마음에 애가 
        탔다! 마음이 다급해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어서 결국 내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종이 상자를 찾아 천으로 싸고는 시자에게 
        주며 탁자 위에 있는 상자와 맞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자는 극도로 긴장한 모습으로 “모두 다 쳐다보는데 정말 이 일을 해야 
        해요?” 하고 물었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용감하게 앞으로 나갔다.</p>
      <p> 그녀가 종이 상자를 탁자에 올려놓자 스승님의 몸이 얼굴 빼고는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 스승님은 그 상자를 통해 청중들을 보시며 
        어렵사리 강연을 이어 가셨다. 이 기상천외한 일로 인해 청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스승님 역시 쓴웃음을 지으시며 
        달리 어쩔 도리가 없지 않느냐고 농담 삼아 말씀하셨다. 당초 강연장 분위기는 무거웠다. 손님들도 매우 엄숙했고 말이다. 그러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화기애애하고 가볍게 바뀌었다. 그러나 단상 밑에 있던 나는 웃을 정신이 아니었다. 대중 앞에서 스승님을 당혹스레 
        만들다니 정말 큰 실수를 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대충 봐도 상자가 너무 크다는 
        건 누구라도 알 텐데 그걸 탁자 위에 놓다니! 안 되겠어! 저 상자를 내려오지 않으면 안 돼. 스승님의 모습도 엉망이고 나중에 
        비디오 팀의 사형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p>
      <p> 그래서 나는 시자에게 상자를 다시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터라 다시 강연 탁자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상자를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손으로 상자를 꼭 눌러 못 가져가게 하셨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스승님은 
        이런 기발한 방법으로 강연을 끝까지 진행하셨고, 청중들은 그 사건 이후 계속 유쾌해했다. </p>
      <p>알고 보니 사람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편안하고 이완할 수 있도록 스승님이 한바탕 코미디를 하신 것이었다. 그 강연 동안 높고 
        아름다운 자장이 오래도록 감돌았으며, 스승님은 고아한 영적 가르침을 전해 주시는 것 외에 천진하고 낭만적인 감정과 기쁨의 기운을 
        모두에게 가져다주셨다. 스승님은 이렇게 이 세상 사람들이 즐겁고 편안해지도록 늘 마음을 쓰신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43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24 Apr 2004 12:39:24 +0900</dc:date>
</item>


<item>
<title>격리를 안거로 삼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3</link>
<description><![CDATA[<br /><p>“만일 당신이 정말 ‘운 좋게도’ 격리되면 밥은 내가 갖다 줄 테니 걱정 말아요!” 농담처럼 한 이 말이 생각지도 않은 사스 
        발생으로 현실화되고 말았다! 어떤 병원에서 일하는 동수들이 사스로 인해 격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많은 동수들은 솔선해서 다방면으로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 힘껏 노력했다. 스승님의 은총 덕분에 우리는 실용품과 축복 음식, 음료수 등을 간호사들에게 순조롭게 
        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소리 없이 진행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러분은 어느 수행 단체 소속이기에 이처럼 
        용감하게 들어왔나요?” 하고 자꾸만 물어서 우리가 칭하이 무상사의 수행 단체란 게 알려지게 되었다. 얘기를 들은 간호사들은 매우 
        감동하며 스승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말 절묘했던 것은 우리가 기증한 물건의 양과 간호사들이 원한 양이 꼭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스승님의 사랑과 은총은 언제나 이처럼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p>
      <p> 동수들은 곤경과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최대한 낙천적으로 받아들이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길 좋아한다. 그래서 사스로 인해 이런 
        상황을 겪게 되었어도 동수들은 이를 병원에서 ‘안거’ 중인 사형사저들에게 도움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매우 영광스런 기회로 생각했다. 
        수행자들의 시각은 일반인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격리’도 수행을 위한 ‘안거’로 여긴다. 이 안거 중에는 감히 누구도 
        방해하러 올 수 없고 여러분 또한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전국 각지의 동수들이 한데 합심하여 헌신적인 마음으로 
        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면서 실로 큰 감동을 받았다. 비록 이런 모습이 수행자로서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긴 하지만 스승님께서 늘 
        하셨던 말씀이 새롭게 생각난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돕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엄마’의 은혜에 감사드린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4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24 Apr 2004 12:36:53 +0900</dc:date>
</item>


<item>
<title>마음속의 스승님과 함께 사스(SARS)와 싸우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2</link>
<description><![CDATA[<br /><p>   <font color="#FF6600">&lt;한 백의천사의 증언&gt;</font></p>
      <p>나는 2003년 2월 9일 입문한 홍콩 동수로 홍콩의 큰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입문한 지 한 달 후 홍콩은 사스 때문에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사태는 내게 인생의 가치와 간호사의 일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감사의 
        마음도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스승님의 가피를 몸소 체험하며 그 광대한 힘을 목격할 수 있었다. </p>
      <p>사스가 발발했을 때 나는 동료들이 한 사람씩 사스에 전염되는 것을 보며 마음이 괴로웠다. 여태껏 간호사로 20년간 근무하면서 
        이 일 때문에 죽음의 위험에 처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환자를 최대한 잘 보살피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서 회복되길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사스가 가장 기승을 부리던 무렵에는 병원의 의료진들 모두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해 이 ‘전장’에서 쓰러졌거나 기운이 소진돼 계속 일할 수 없는 사람들 대신 사스 병동에서 일할 사람을 재배치해야 했다. 
        하지만 사스에 대항해 힘겨운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내 마음속엔 두려움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었다. 스승님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무사하고 안전하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중생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이 ‘백의의 천사’ 일을 주신 신께 
        정말 감사했다. 사람들이 관심과 보살핌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점에 이 일을 통해 그들에 대한 스승님의 사랑과 은총을 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p>
      <p>많은 의료진들이 사스에 감염되고 동료들의 사기가 떨어졌을 때 나는 스승님께 우리 모두가 쉬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드렸다. 그랬더니 정말 감사하게도 4월 초 의료진을 위한 ‘마음을 키우는 방’이란 공간이 생겼다! 그 내부에는 
        많은 영성 서적과 음악이 비치돼 있었고 또 ‘고요의 별관’이란 명상을 위한 공간도 있었다. 이 번잡하고 부산한 홍콩에서, 그것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병원 안에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살찌울 작은 ‘정토(淨土)’가 생기다니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p>
      <p> 또한 채식의 이로움을 알고 있던 나는 이 투쟁의 기간 동안 의료진들이 채식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스승님께 기도드리고 
        이를 위해서 병원 관리 위원회 측에 의료진을 위해 채식 메뉴를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스승님의 은총 
        덕택에 병원 측에서는 흔쾌히 내 의견을 받아들여 매 끼니마다 채식 음식이 나왔다. 스승님은 나의 채식을 줄곧 반대하던 열두 살짜리 
        딸에게도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딸아이가 2주 전 느닷없이 “엄마, 오늘부터 채식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물었을 
        때 정말 감개무량했고 스승님의 사랑과 자비로움에 한없는 감사를 드렸다!</p>
      <p> 스승님의 보살핌과 보호로 인해 홍콩은 마침내 사스와의 전쟁을 끝내게 되었다. 용감하게 싸우다 순직한 병원 의료진들은 신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천국으로 돌아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입문한 후 석 달 동안 스승님의 은총 속에서 나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했으니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에 나의 체험과 스승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자 한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4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24 Apr 2004 12:34:06 +0900</dc:date>
</item>


<item>
<title>단체명상의 이로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1</link>
<description><![CDATA[<br /><p>수행에 있어서 나의 최대 분투는 단체명상에 가는 것이었다. 단체명상에 가기 싫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 참석을 못한 이후로 나는 
        스승님께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명상 중에 스승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 그 이유를 알고 이런 
        마음을 극복하게 해 달라고 말이다.</p>
      <p>명상을 많이 한 후에도 결단력과 확신이 부족한 나는 결국 스승님을 직접 뵈러 가기로 결심했다. 스승님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나를 영국 선 행사에 참가시켜 주셨다. (나는 기적과 같은 상황을 겪은 뒤 간신히 선(禪)에 갈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왜         선 행사에 가려는 강한 충동을 느꼈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나는 스승님께서 내게 베푸시는 사랑         때문에 고질라에게 잡아먹히려다 구출된 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나는 안전한 느낌, 정화된 느낌 ,행복한 느낌이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단체명상에 가겠다고 스승님께 약속했다. 스승님께서 내게 주신 메시지가 너무도 우렁차고 분명하며 사랑으로 가득해서 빠져나갈         구실을 찾을 수 없었다.</p>      <p>내게 일었던 저항감은 내가 배워야 할 내면의 교훈이었다. 우리 각자를 향한 스승님의 숭고한 사랑 덕분에 나는 이 교훈을 멋지게         배웠다. 그래서 이젠 단체명상에 가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고 100마일을 운전해야 하는 것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나는 단체명상에         참가하려는 나의 노력 그 자체에서 생겨난 축복의 힘만으로도 노력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속에 자갈처럼 자리했던         저항감이 치워졌다. 그러므로 그것이 자라 바위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승님의 도움에 감사드린다.</p>      <p>스승님께서 우리 수행에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이롭지 않은 건 말씀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성장을 도와주는 축복이 늘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가 배우는 교훈들조차도 사실은 축복인 것이다. 우리가 수행에서 진보할수록         축복은 더욱 커진다. 우리가 칭하이 무상사의 제자라는 사실은 정말 굉장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단체명상에 가는 건 우리 자신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동료수행자들을 돕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갈등을 경험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힘찬 격려가 되어 그들 스스로 그런 갈등을 쉽게 극복할 수 있길 바란다.<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1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4:03:09 +0900</dc:date>
</item>


<item>
<title>믿을 수 있어요</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0</link>
<description><![CDATA[<br /><p>나와 내 아내는 최근 남아공화국 헤르마누스에 갔다왔는데, 그때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유기농법 공동체인 캠프힐 빌리지에 살고 있는 
        아들을 방문했다. 1999년 12월 하보님 캠프장 근처에서 열렸던 케이프타운 국제선에 참가했었던 사람은 아마 지금도 캠프힐에서 
        공급했던 빵 맛을 기억할 것이다.</p>
      <p>내가 캠프힐을 방문했을 때 알게 된 몇몇 사실들을 아래에 적었다. 그것들은 그리 놀랄 만한 것들은 못된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하는         스승님이 늘 가르치시는 점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p>      <p>이른 아침 우리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마침 캠프힐의 책임자는 어디 가고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장남인 마크(18세)가 있었다.         그에게 하보님을 찾는 다른 방문객들도 있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예, 하지만 같은 류의 사람들은 아니에요."         호기심이 강하게 일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p>      <p>그의 모친은 국제선 기간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있다는 걸 알았지만, '우리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매우 조용하고         예의바르게 처신하며 평화의 기운을 내뿜기 때문에 전부 합해서 백 명도 안 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밤이든 낮이든 고함소리라든지         시끄러운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크가 집으로 돌아온 날은 선 행사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는 선행사가 남기고 간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랐다! 캠프장이 티끌하나 없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p>      <p>"뭐라 설명할까요, 전반적인 분위기랄까요? 긍정적인 에너지, 평화로운 느낌, 고요하고 안정된…… 뭐 그런 거라고 해두지요.         어떻게 묘사해야 할 지를 모르겠네요. 정말 좋았어요. 불행히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대략 6주         동안 우리는 매우 행복하고 평온하고 만족스러웠다는 겁니다. 개들마저도 말을 더 잘 듣고 얌전하게 굴었죠. 우리는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마음 푹 놓고 잤어요. 그 6 주 동안 어머니는 닭고기나 다른 육류를 전혀 드시지 않았고, 담배도 평소보다         훨씬(1/3 이하) 적게 피우셨죠. 지금도 여전히 전보다는 담배를 적게 피우시고, 가끔 닭고기를 한 조각 드시는 정도예요. 우리         모두 스승님의 책을 읽었는데, 뭔가 달랐어요. 정말이에요. 우린 그걸 느낄 수 있었어요."</p>      <p>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습니까? 예, 물론 그럴 겁니다! 그것이 사실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의 스승님이 늘 우리에게 하시던         말씀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집중해서 열심히 수행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신 그 말씀 말입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1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4:01:49 +0900</dc:date>
</item>


<item>
<title>깨달은 스승의 존재에  감사하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9</link>
<description><![CDATA[<br /><p>나는 스승님이 히말라야에 계실 때 그곳 거처에서 반시간 거리에 있던 도서관에 대해 얘기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스승님은 
        매일 아침 간단한 마른 음식을 준비해서 도서관까지 걸어다니곤 하셨다. 때때로 피곤해지면, 길가의 적당한 곳에 천을 깔고 차파티(인도의 
        납작한 빵)를 꺼내어 놓고, 길가에서 뽑은 야채를 눈을 녹인 물로 씻어 그 위에 소금을 뿌려 식사 준비를 하곤 하셨다. 이렇게 
        차파티와 야생 야채, 소금으로 만든 샌드위치는 스승님의 풍성한 식사거리가 되었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해 눈을 녹여 드시곤 하셨다. 
        스승님의 머리 위에는 흰 구름이 몇 점 떠있는 파란 하늘이 있었고, 그 하늘은 높은 산봉우리들을 더욱 푸르게 하였으며 산꼭대기의 
        모자처럼 얹혀있는 눈을 더욱 하얗게 보이게 했다. 또한 스승님의 발 밑에는 땅 밑에서 자랄 기회를 엿보고 있는 작고 파란 새싹들이 
        있었고, 멀리서는 산길을 따라 힘들게 올라가는 순례자들의 신을 찬양하는 진실한 노래 소리가 희박한 공기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스승님이 우리를 위해 그 찬가를 콧노래로 불러주시면, 우리는 스승님의 은방울 같은 달콤한 목소리에 취해 우리가 있는 곳이 이 
        세상인지 천국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p>
      <p>스승님은 가끔 이야기나 우화들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신다. 그 중 하나는 러시아의 짜르(황제) 피터 이야기였는데, 그는 조선         기술을 배우기 위해 평민으로 변장해 유럽으로 갔다. 그 곳에서 그가 추방했던 러시아 범죄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돌아갈         조국도 친척도 없었으며 생활도 몹시 어려웠다. 그들을 도와 함께 일하다가 공부를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갈 때가 되자, 황제는 그         죄수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들은 물론 돌아가고 싶지만 황제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황제는         그 범죄자들에게 "나는 황제의 친구이니 나와 함께 돌아가면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자신도 우리와 같은 평민 처지이면서 무슨 수로 황제의 용서를 구한단 말인가?" 하며 황제의 말을 불신한 채         계속 남아있기를 고집했다. 반면 "좋은 사람같은데 우리를 속일 리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다른 사람들은 조국으로         돌아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p>      <p>수세기 동안 이와 비슷한 일들이 큰 스승들에게 일어났다. 중생들이 무지와 깊은 선입견에 가려있었기 때문에 스승들은 자신이 신이         아닌, 신의 친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 여(女) 수행자가 명상 중에 매우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그녀의 스승이 신인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삼매에서 깨어나자 스승에게 불평을 했다. "스승님은 평범한 일반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천국에 가서 보니 스승님이 바로 신이었어요! 스승님은 저를 계속 속이셨군요." 그녀의 스승은 대답했다. "미안하다.         그러나 내가 사실대로 얘기했다면, 넌 믿지 않았을 거야!" 부지런히 명상을 해야만 우리는 스승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스승의 위대함이 밝혀지면, 스승에게 해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p>      <p>인도에 많은 제자들이 따르던 유명한 스승이 있었다. 그로 인해 그는 그를 불신하는 다른 스승들로부터 질시를 받아 곤란을 겪곤         했다. 어느 날 인도의 왕자가 병으로 죽자, 왕은 모든 유명한 의사들의 도움을 구했으나 왕자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사악한 무리들은         왕에게 이 깨달은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 스승은 그들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정중히 거절했다. </p>      <p>"당신의 신이 가장 높고 당신은 그 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했으니, 당신이 그 신에게 기도하면 분명 우리를 도와줄 것이         아니오!" 깨달은 스승들은 보통 신통력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 스승은 그것을 드러낼 것을 계속 강요 당했다. "좋습니다.         내가 하든 안 하든 당신들은 나를 죽일 테니 하지요!" 하고 그 스승은 신에게 기도했다. "이 아이를 당신의         자비와 사랑의 힘으로 되살리소서!" 하지만 왕자가 여전하자 왕과 모든 사람들은 그 스승에게 그의 힘을 증명하도록 계속         강요했다. 결국 그가 "이제 내가 명하나니 그대는 일어나라"고 말하자 왕자가 소생했다. 사람들은 분개하며 왕에게         이간질을 했다. "폐하, 저 자의 오만함을 보십시오. 신의 힘으로도 왕자님을 살리지 못했는데, 저 자의 말 한 마디로         왕자님이 살아나셨습니다. 이는 자기가 신보다 위대하다고 알리는 것으로써 신성에 대한 모독입니다. 마땅히 처형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처형할 것을 주장했고, 그 스승은 살점을 하나 하나 베이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p>      <p>깨달은 스승들은 모두 큰 고통과 시련을 겪는다. 그들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내려와 죽음의 상황에 자신을         내던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석가모니불은 모함을 받고 돌팔매질을 당했으며, 다른 많은 큰 스승들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그래서 깨달은 스승들이 이 땅에 와도 우리가 그들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의 이익을 위해 그들 자신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중생을 가르치기 위해 혹독한 시련과 무거운 짐을 지신 채 우리에게 당신을         따라 배울 기회를 주신 용감하신 우리 스승님께 더욱 감사할 뿐이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0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4:00:41 +0900</dc:date>
</item>


<item>
<title>천상의 기술로 신성의 모임을 준비하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8</link>
<description><![CDATA[<br /><p>최근 몇 년 동안 스승님은 전 세계 무수한 나라를 돌며 대중강연을 하시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시다. 이번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순회강연에 포모사가 포함된 것은 우리에게 정말 대단한 영광이었다. 동수들이 5월 5일의 소중하고도 드문 이 행사를 애타는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오웬 센터는 강연을 주관하게 된 것을 엄청난 축복으로 여겼다. 작업팀에 참여하는 모든 동수들이 커다란 
        열정과 헌신으로 고된 준비작업에 동참했으며, 웅대한 예술작업과 목공작업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지역동수들은 놀라운 창조를 직접 
        목격했다. 강연날이 다가오자 포모사 전역에서 동수들이 이 웅장한 행사를 도우려고 타오웬 센터를 찾아왔다. 이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p>
      <p>타오웬 동수들은 마치 축제를 준비하듯 센터를 말끔히 치우고 아름답게 꾸며서 작업팀들에게 좋은 작업환경을 제공했다. 목공팀은         우선 무대에 배경그림을 떠받칠 일곱 개의 기둥을 세웠다. 그런 다음 몇몇 동수들이 튼튼한 천으로 이 기둥들을 각각 고정시켰다.         강연장(포모사 최대 실내경기장)이 엄청나게 컸기 때문에 이 기둥들은 높이가 9미터나 되었다. 그 후 다섯 명의 사형들이 타오웬         센터 지하에서 칸막이를 날라다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주방 앞 공터에 세웠다. 3단 작업대가 두 명의 화가, 타이베이 예술팀         사저들을 위해 세워졌다. 몇몇 동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 사저들은 캔버스를 적시고 배경 색을 칠하고 7개의 캔버스를 연결시켜         그림을 그렸다. </p>      <p>이 두 사저는 단 5일만에 가로 세로 크기가 각각 3미터, 9미터인 칸막이 7개를 모두 완성시켰다. 그런 뒤 그들은 외국 강연         준비를 돕기 위해 해외로 나갈 계획이었다. 그들은 완전한 헌신과 집중으로 일했으며 종종 자정이 될 때까지 일을 계속했다. 그들의         헌신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동안 목공팀은 강연장 입구의 아치와 연단, 거대한 뒷배경 구조물을 완성시켰다. 연단을 세우기 위해         그들은 신중하게 치수를 재고 합판을 적당한 크기와 모양으로 자른 뒤 그것들을 타오웬 센터 지하실에 조립해 두었다. 그랬다가 강연이         임박했을 때 그 합판들을 다시 분해하고 따로따로 포장해서 강연장으로 운반했다. 그들은 그것들을 강연장에서 다시 조립한 뒤 칠을         해서 강연장에 세웠다. 이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p>      <p>4월 23일 연락인들이 각 작업팀의 책임자 및 팀원들과 현장답사를 위해 강연장에서 만남을 가졌다. 포모사 최대의 실내경기장인         타오웬 현 체육관은 굉장히 커서 동문에서 서문까지 걷는 데만 5분이 걸렸다. 좌석은 지층과 1층, 2층에 마련되어 있었고, 회의실,         리허설룸, 화장실, 분장실은 지하에 있었다. 강연장에 도착하자마자 수석 코디네이터가 각 작업팀의 업무와 인원배치, 책임범위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강연장 개관도를 담고 있는 작업계획서를 제공했다. 그래서 모든 작업팀원이 자신의 업무를 쉽게 파악하고 작업환경에         금방 친숙해질 수 있었다. 타오웬 센터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그들은 강연장으로 다시 돌아와 좀더 상세한 계획을 짰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연락인 모임에서는 인원과 물자, 차량배치가 논의되었다. 연락인들은 그 자리에서 포스터, 프랭카드, 전단을 지역별로         할당했다.</p>      <p>일찍이 스승님께서 포모사에서 행한 강연 가운데서 2000년 5월 5일의 강연만큼 거대한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은 없었다. 포모사의         지역센터들은 최대한 많은 동수들을 강연 준비작업에 동참시켜서 포모사인들이 깨달은 스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준비된 영혼들이         이 생에서 해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였다. 4월의 마지막 두 주 동안 동수들은 광고와 포스터 작업에 총력을 쏟았다. 그들은 신문과         TV, 버스에 광고를 내고, 전단을 돌리고, 거리에 포스터를 붙이고, 붐비는 거리에 프랭카드를 걸고, 고속도로를 포함한 몇 군데에         전광판을 설치하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강연을 홍보했다.</p>      <p>동수들은 팀을 짜서 주변 지역을 돌며 포스터를 부착하였다. 그들은 좀더 빨리 일을 끝마칠 수 있도록 사람이 붐비고 교통이 혼잡한         곳은 피했다. 그렇지만 종종 늦은 밤까지 일을 해야 했다. 동수들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끈기로 다가올 스승님의 강연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일부 열성적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우리를 도왔다. 그들의 신심에 감동한 동수들은 어서         빨리 이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p>      <p>5월 2일에서 5일 사이에 열정과 사랑으로 넘치는 많은 동수들이 자신의 일거리를 가지고 타오웬 센터에 속속 도착했다. 그런         뒤 그들은 자발적으로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일부는 강연장 전체를 돌며 장식하는 작업을 했다. 주 입구에서 예술품 전시장까지,         그런 뒤에는 경서유통처와 천의 및 천상의 보석 전시장, 보도안내처, 입문등록처 등이 그들의 손길로 꾸며졌다. 그리고 다른 일부의         사람들은 무대 뒤에서 강연장을 쓸고 닦고, 지층에 추가로 의자를 배치하고, 발코니에 TV 세트를 설치하고, 전선을 배치하고,         연단에 카페트를 깔고, 연단 위와 주변에 화분과 나무를 날라다 놓고, 무대배경을 위한 기둥을 세우고, 연단 양쪽으로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는 등의 일을 했다. </p>      <p>수백 명의 입문자들이 강연날 안내 업무를 보려고 준비했으며, 합창 단원들은 자신들의 공연을 예행 연습했다. 또 많은 이들이         대형 그림을 연단 위로 운반하고 세우고 조립하는 일을 도왔다. 그 작업은 많은 인력과 운반 차량뿐 아니라 입문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정력과 끈기를 필요로 했다.</p>      <p>5단으로 되어 있는 연단은 푸른 잎이 풍성하고 다채로운 꽃들이 만발해 있는 많은 나무와 화초들로 장식되었다. 어떤 나무들은         너무 커서 건장한 여섯 명의 남자들이 들 것 장비를 사용해 운반해야만 했다. 5단 연단에 세워진 화분과 나무들은 전부해서 천여         그루나 되었다. </p>      <p>고된 일이었지만 동수들의 완벽한 협동작업으로 썰렁하고 너저분했던 강연장이 단 하루 반나절만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천상의 정원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은 강연이 끝난 뒤 모든 것을 원상 복구하는 작업이었다. 동수들은 단 세 시간만에 강연장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시켰다. (물론 쓰레기는 말끔히 치운 상태였다.) 이러한 사실은 수행을 하면 모든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전능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었다.</p>      <p>타오웬 센터는 스승님의 강연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즉시로 주방팀을 조직했다. 주방 자원자들은 몇 번에 걸쳐 회합을 갖으며         업무를 분담하고 요리솜씨가 좋은 동수들에게 조리법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일단 일이 시작되자 주방팀의 모든 동수들은 최선을         다해 다른 작업팀 동수들에게 제공될 맛난 음식들을 많이 준비했다. 그들은 쉬고 잠 잘 시간이 극히 부족했지만 기쁨 마음으로 요리를         해야 음식 맛이 더욱 좋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늘 지복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잡담을 금하고 항시 오불을 외웠다. 그리고         주방에는 스승님의 불찬이 항시 울려 퍼지며 모든 음식에 가피를 내렸기 때문에 음식 맛이 더욱 좋을 수밖에 없었다. 주방 일을         하면서 동수들은 사심 없이 헌신하는 정신, 일을 더욱 신속하고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p>      <p>강연 전날이 되자 수적으로 크게 불어난 작업팀의 식사준비를 돕기 위해 다른 센터의 주방팀들도 이들에게 합류했다. 주방팀은 강연         당일에 새입문자와 작업팀들을 위해 수천 개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그들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느낀 이들은 새입문자들만이 아니었다.         스승님께서도 그들의 노력에 깊은 인상을 받으셨다. 주방을 둘러보러 오셨을 때 스승님은 샌드위치를 하나 맛보셨다. 스승님은 "이게         뭐죠?"라고 물으신 후에 포모사 방언으로 "정말 맛있네요, 정말 맛있어요!"라고 감탄을 하셨다. 이         말씀에 주방팀들이 얼마나 신이 나고 행복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p>      <p>5월 5일 강연날, 강연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동수들은 경기장 둘레의 복도를 따라 채식음식대를 설치했다. 많은 손님들이         강연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맛난 채식들을 즐거이 맛보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강연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정교한 스승님의 그림에 쏠렸다. 많은 사람들이 스승님의 작품에 매혹되었으며 오랫동안 전시장에 머물며 작품들을 감상했다.</p>      <p>강연장 왼편에는 언론사와 방송국 기자들을 위한 안내석이 마련되었고 그 위 계단에는 스승님의 장수램프 전시장이 꾸며졌는데, 난초와         여러 꽃들이 은은한 램프의 불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였다!</p>      <p>경서유통처에서는 벽에 걸려 있는 스승님의 대형사진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이 사진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천의 전시장에 전시된 스승님의 의상들은 동수들의 정교한 배치작업 덕분에 그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빛을 발했다. 천상의         보석 전시장에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끈 작품은 최근에 제작된 '천룡젓가락받침대'였다.         비길 데 없는 세공술과 독특한 스타일, 다기능적인 특색을 갖춘 이 작품은 최근에 패밀리 콜렉션에 새로 추가되었다. 게다가 이들         전시장에는 스승님의 강연 비디오가 연신 상영되어 목마른 영혼들이 감로수에 목을 적시고 여러 생 동안 막혀있던 자신의 지혜를 열었다.         지복과 평온 속에서 사람들은 스승님의 사랑의 바다에 푹 잠겼다!</p>      <p>6시가 되기도 전에 손님들과 동수들이 강연장 안으로 물밀 듯 몰려들었다. 그날 저녁에는 사저들이 전통의상으로 우아하게 차려입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들이 그날 2만여 명의 참석자들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그날의 행사는 저녁 7시 스승님의 생애를 간략히 보여주는         비디오가 상영되는 것을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이 짤막한 비디오는 세계적인 영적 스승인 우리 스승님에 대한 청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세 명의 동수들이 나와 구도와 수행의 여정에서 자신들이 체험한 것들을 발표했다. 동수들의 체험담이         끝나자 곧이어 타이난, 타이베이 합창단이 나와 '칭하이(淸海)' 등의 영적인 노래들을 불렀다. 그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강연장         전체에 울려 퍼지며 청중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p>      <p>뛰어난 중국고전음악 연주가 있은 후에 드디어 포모사 동수들이 수년 동안 그리워했던 우리의 자애로운 어머니, 스승님께서 강연장에         모습을 드러내셨다! 강연장을 아름답게 꾸민 것에 감명을 받으신 스승님께서 정말 아름답다는 찬사의 말을 하셨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등장하시는 스승님의 모습이 젊고 행복해 보였다. 그날 스승님은 몸소 디자인하신 천의 가운데서 긴치마 정장을 골라 입고         나오셨다. 스승님은 반은 뛰다시피하며 매우 활기차게 강연장으로 들어오셨다. 그런 뒤 강연장을 돌며 청중들과 포모사 동수들을 만나셨다.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스승님을 뵙지 못했다. 스승님께서 모든 이들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인사를 하시자 청중들이         열렬한 답례를 보냈다. 강연장은 활기로 넘쳤다.</p>      <p>이어서 연단에 오르신 스승님은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꽃 공양을 받으셨다. 스승님은 크게 감격해하시며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스승님께서 당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하시자 청중들은 다시 한 번 열렬한 박수를 보냄으로써 스승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강연이 끝난 후에 질의응답 순서가 이어졌다. 중국과 포모사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스승님은 양국이         성심으로 대하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다시금 확언하시며 더 많은 사람이 수행을 할 때 상황이 크게 호전될 것이라고         하셨다. </p>      <p>강연이 끝난 뒤 그날 밤늦게 타오웬 센터에서 입문식이 있었기 때문에, 스승님은 그날 센터를 방문해서 축복을 주셨다. 스승님은         이번 강연이 최고로 훌륭하고 성공적인 강연이었다고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스승님은 또 센터에서 스승님을 위해 마련한 임시 숙소를         보고 매우 흡족해 하셨다. 포모사 동수들의 신심에 큰 감명을 받으신 스승님은 시자에게 당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스승님은 당신이 머물던 방 거울에 짤막한 메모를 남기셨다. 스승님의 축복과 많은 사람들의         단결된 노력으로 이 신성한 모임은 가장 아름다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성대히 막을 내렸다.<br />        "사람들의 성심이 스승님을 눈물짓게 하였습니다."<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12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51:01 +0900</dc:date>
</item>


<item>
<title>자신을 완전히 놓고 신의 도구가 되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7</link>
<description><![CDATA[<br /><p>하루는 천 사형이 우연히 타오웬 센터를 들렀는데, 때마침 센터에는 강연준비작업을 맡고 있는 사형이 있었고, 그는 포모사 타오웬 
        현 체육관에서 열리게 될 스승님의 강연을 위해 거대한 연단을 세우고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는 작업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천 동수는 직업이 목수였기 때문에 아마도 이 두 사람이 센터에서 만난 것은 신의 뜻이거나 놀라운 스승님의 안배인 것 같았다. 
        천 동수는 기꺼이 그 임무를 떠맡았다.</p>
      <p>그러나 타이베이 예술작업팀의 리 사저에게서 연단과 스크린 설치작업에 관한 설계안을 받았을 때 천 사형은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얇은 판지를 써서 이처럼 거대한 연단을 제작하는 일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판지를 사용해서 실제의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마치 머나먼 나라의 동화처럼 느껴졌다. 그때까지 천 사형은 주로 가구나 쇼윈도우를 제작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그는 이         작은 도면의 그림을 어떻게 하면 수천 배나 큰, 실제의 사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계속해서 리 사저나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사형과 상의를 하며 며칠 간 머리를 짜냈지만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 지 여전히 막막했다.</p>      <p>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깨달았다. 연단은 신성한 강연의 초점으로서 두뇌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고 더군다나 일 개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자 하나의 영상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는 꽃과 나무들로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고 그 중심에 스승님의 무한한 사랑과 지혜를 상징하는 폭포가 흐르는 연단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연단의         양 측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이 비전은 신의 은총이고 스승님의 축복임이 분명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이 비전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조용히 전체 풍경을 마음에 새겼다.</p>      <p>작업을 하는 중에 그의 마음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그는 "어떤 일을 하든 마음이 평화로우면 그 일은 옳은 겁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하신 스승님의 말씀을 기억했다. 천 사형은 또한 자신을 완전히         놓고 신의 도구가 된다는 것의 의미와 "시간이 없을 때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말의 참뜻을 이해했다.</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12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49:48 +0900</dc:date>
</item>


<item>
<title>당신의 전능한 사랑이 모든 것을 구합니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6</link>
<description><![CDATA[<br /><p>2000년 1월 24일 내 생일에 나는 극적으로 교통사고를 당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를 구하신 신의 축복과 놀라운 안배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감격에 겨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 사고가 있기 오래 전부터 스승님은 나로 하여금 꿈에서 그와 같은 
        상황을 여러 번 예행 연습하게 하셨고, 이런 말씀까지 하셨다. "일단 이 재난에서 벗어나면 커다란 축복을 받을 것이다."</p>
      <p>나는 너무도 순진해서 이 무시무시하고 악몽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꿈에서 일어났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 사고로 몸은 심한 부상을 입었고 차는 진흙에 처박힌 채 꼼짝도 안 했지만 내 마음은 시종일관 평온했다. 내가 앰뷸런스에         몸을 실은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 당시 간호사들은 나의 맥박을 감지하지 못했다. 병원으로 급히 실려간 뒤 나는         곧 안면수술을 받았다.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마치 조각그림 맞추기를 하는 것 같다고 농담했다.</p>      <p>48시간에 걸친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의식이 또렷했다. 너무 의식이 명료해서 단 한 순간도 잠을 자지 못했다! 수술이         끝나자 동수들이 한 사람씩 나를 찾아왔다. 매일 내 방에는 웃음소리가 끝이지 않았고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한 달 동안         입원해 있었는데, 마치 그 기간이 휴가기간 같았고, 나는 아주 빨리 회복되었다.</p>      <p>병세가 회복되어 가고 있던 지난 1월, 나는 명상 중에 천막 안에서 타오웬 센터를 축복하시는 스승님을 뵈었다. 스승님은 전통한복을         입고 머리에 크고 둥근 모자를 쓰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렇지만 타오웬 센터에는 널찍하고 안락한 홀이 있는데 왜 스승님께서         임시 천막 안에서 작업팀과 말씀을 나누고 계신지 의아했다. 4월에 스승님께서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순회강연의 일환으로 타오웬에서         대중강연을 여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신의 안배와 축복을 인식했다. 이 웅장한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타오웬 센터는         그 지역의 모든 동수들을 동원했으며, 나 역시 주방팀의 일원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직장에 나가지 않고 강연 준비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었다!</p>      <p>센터에 임시 주방이 세워진 후에 나는 내가 꿈에서 보았던 임시 천막이 주방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스승님이 쓰고 계셨던         크고 둥근 모자는 주방팀이 쓰는 모자였다. 타오웬 강연이 끝난 후에 스승님께서 몸소 센터를 방문하셔서 임시 주방에서 만든 샌드위치를         맛보셨다.</p>      <p>이번 일을 통해서 나는, 우리가 대중에게 봉사하려고 생각을 할 때는 천국의 은총으로 온갖 도움을 받고 모든 방면에서 신의 완벽한         돌보심을 받는다는 걸 깊이 자각했다. 한 예로 일전에 나는 시후 센터에서 있었을 때 집으로 돌아갈 교통편이 없어서 차가 한 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다리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곧 타오웬에 사는 한 사형이 내게 다가와 집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그가 차를 한 대 새로 샀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날 저녁 그들 부부는 자신들이 쓰던 차를 내게 주기로 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경이로움과 신을 향한 감사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p>      <p>스승님의 일을 할수록 깨달음이 더욱 깊어갔다. 그리고 자부심과 겸손함이 머리카락 한 올 차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스승님은 나로         하여금 도전적인 상황들을 겪으며 자신을 놓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스승님의 사랑에 찬 영감으로 변화되는 기쁨을 누리면서 나는         완전한 지복에 싸였다. 매 순간이 너무도 아름답고 진실 되어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이런 최고의 지복 안에서 나의 정신은         늘 새롭게 태어났다. 때로는 고된 업무와 시간과의 싸움에서 오는 스트레스, 엄청난 압박감, 무거운 책임감 등으로 저하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기도는 늘 스승님의 응답을 받았으며 스승님의 지칠 줄 모르는 축복의 힘 덕분에 우리는 다시금 활력을 얻었다.         자비로운 어머니 스승님, 늘 저를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과 내면의 힘에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전 오래 전에         죽었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을 돌보고 구해 주신 것은 바로 스승님의 전능한 사랑이었습니다.</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12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48:44 +0900</dc:date>
</item>


<item>
<title>모든 중생에겐 불성이 있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5</link>
<description><![CDATA[<br /><p>1987년 어느 시원한 여름 오후, 신실한 동수들의 간청을 승낙하신 스승님께서 몇몇 입문자들과 함께 센터에 적합한 부지를 찾기 
        위해 지룽의 산악 지역을 둘러보시러 오셨다. 돌아보고 오는 길에는 지는 해가 스승님과 동수들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고 
        그 지역 지주 소유의 닭과 양들을 비롯한 가축들이 멀리 희미하게 보였다. </p>
      <p>그런데 우리가 농장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뒤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소린지 궁금해 돌아보니 희미한         햇살 속으로 개 한 마리가 조금 열려진 문과 사람 키의 반쯤 되는 울타리 뒤에서 뒷다리로 선 채 앞발로는 애원하듯 낑낑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개는 스승님이 쳐다보자 더 심하게 낑낑거렸는데 어찌나 그러는지 우리는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을 흘릴 뻔했다.         스승님이 잠시 다정히 달래자 개는 진정되었다. </p>      <p>보통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 같은 낯선 사람을 보면 짖기 마련인데, 그러지 않고 이 고해 속에서 구원해줄 스승님을 알아본 것은         그 개의 내면에 있는 불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소중한 기회를 놓치기 힘들었던 게 아닐까.</p>      <p>우리는 계속 지나가다가 이보다 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목장에 이르렀을 때 한 무리의 양떼가 마치 국가행사 때 군대         서열하듯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스승님을 바라보며 맞이했던 것이다. 더 재미있는 점은 양들의 시선이 스승님이 발을 옮길 때마다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양들이 살아 있는 스승의 눈과 마주치기만 해도 해탈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p>      <p>우리가 떠날 때 그들이 스승님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에서 우리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석가모니불이 깨닫고 나서         맨 처음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신 것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개나 양조차도 살아 있는 스승을         알아보는데 하물며 사람이 이런 스승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br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19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47:26 +0900</dc:date>
</item>


<item>
<title>영적인 동물친구 개!</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4</link>
<description><![CDATA[<br /><p><span class="selection_2">개는 인간의 충직한 친구로서 개의 영웅적인 행동에 대한 이야기도 수없이 많이 
        전해온다. 하지만 개가 매우 영적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깨달은 스승의 높은 진동과 밝은 자장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승의 방문을 예견하기까지 한다. 이번 호 '이야기 세상'에서는 스승과 개의 교감에 대한 재미있고 가슴 훈훈한 이야기를 
        몇 편 소개한다. </span><br /></p>
      <p><br /><br /></p><p class="topic" align="left"> 스승님 주위를 맴도는 개 </p>      <p class="caption"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 1992. 5. 17. 포모사 시후 (원문 중국어)       </p>      <p> 선이 시작된 이후 지난 몇 일 동안, 개 한 마리가 매일 내 집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그 개는 매번 일곱 바퀴를 돕니다.         일곱 바퀴를 돌고 나면, 혀를 내밀며 더위를 식히다가 다시 또 돌기 시작하지요. 매일 이렇게 도는데, 나는 그 개가 도대체 하루에         몇 바퀴나 도는건지 모르겠어요. 그 개는 내가 안 보이면 짖어대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기가 참 괴롭지요. (스승님께서 개 짖는         소리를 흉내내심)(스승님과 대중들 웃음) </p>      <p>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도 나를 보지 못하면 짖는데, 상황에 따라 음 높이가 틀립니다. 지쳤을 때는 "오우!" 하고 낮은 소리로         짖고, 지치지 않았으면 "멍! 멍!" 하고 높은 소리로 짖습니다. (동수: 그 개는 인도 개인가봐요.) 인도 개는 부처 주위를         맴돌지요. 난 처음에 그 개가 배고픈 줄 알고 먹을 것을 주었어요. 하지만 배고픈 게 아니었어요. 아니면 어떻게 배고픈 개가         하루 종일 그렇게 맴돌 수 있겠어요?</p>      <p>그 개는 내 집 주변만 돕니다. 또 아주 절도있게 행동해서 함부로 뛰거나 하지 않고, 일정한 경로를 따라 돕니다. (스승님이         손으로 흉내내심) 그리고 다섯 바퀴 째 돌다 지치면 2분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죠. 일곱 바퀴를 다 돌았을 때는 좀 더 오래         쉽니다. </p>      <p>내가 가끔 개에게 "됐어, 이제 그만 돌아!" 하고 말하는데도, 개는 내가 계속 돌라고 한 줄 알고 계속 돕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개는 아주 근엄한 자세로 호법을 섭니다. 이상하게도 그 개는 내 집 주위만 맴돌다가 그 일이 끝나면 내려가지요.         사저들은 그 개가 길 잃은 개라고 생각해서 멀리 쫓아내려고 했었지만, 그 개는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내 집으로 뛰어들어왔지요.         쫓길 때마다 개는 뛰어 올라와서는 아직 충분히 돌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돌곤 했습니다. 장주들이 쫓아내려고 하면, 개는         그냥 그들을 노려보기만 했지요. </p>      <p>(장주: 제가 호법을 섰을 때 개를 쫓아내려고 하니까, 저를 물려고까지 했어요. 얼마나 사납던지요!)</p>      <p>당신을 물려고 했단 말이에요! 정말이에요? 그 개가 다 돌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쫓아낼 수 있겠어요? 그 개의 습관을 몰랐군요.         그 개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려 했을 거예요. "당신도 그냥 호법 중의 한 사람일 뿐,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1급 호법,         나는 3급 호법, 그러니 우린 다를 게 없어요." (대중 웃음)</p>      <p>그 개는 매번 일곱 바퀴를 돌고 항상 정해진 길로 다니는데, 호법을 서 본 사람들은 잘 알 겁니다. 마치 땅에 줄이 그려진         것처럼 매일 같은 길을 걸어다녔어요. 그리고 내 집 주위만 돌 뿐, 다른 곳은 가지 않습니다. 어쩌면 티베트의 개일지도 모르겠어요.         티베트 사람들도 부처 주위를 원을 그리며 맴돌거든요. 개가 지난 며칠 동안 다른 곳에도 가지 않고 다른 짓도 하지 않고, 매일같이         주위를 맴돌기만 하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또 시끄럽게 굴지도 않죠. 날 볼 수 없을 때만 짖지요. (스승님이 개 짖는 모습을         흉내내심) </p>      <p>마치 나에게 "스승님, 제가 왔어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예요. (동수: 스승님께 왔다고 보고하나 봐요) 보고는 이미 충분해요.         그래서 난 "이제 더 이상 보고하지 마. 난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하지 않아" 하고 말했어요. 그는 날 볼 수 없을 때만 짖었을         뿐 시끄럽게 짖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리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어요. 내가 보이면 짖지 않아요. 하루에 한 번 보는 걸로         만족하는 것 같아요. </p>      <p>처음에 개가 내 방문을 지나갈 때는 내가 거기 있는지 보려고 들어오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날 보려고 문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그냥 집 주위만 맴돌지요. 계속 돌고 또 도는데, 매번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는 내려가서 쉽니다. </p>      <p class="topic" align="left"> 순례에 나선 개 </p>            <p>스승님이 우리에게 당신 주위를 일곱 바퀴씩 맴도는 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실 때,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가(柯) 사형이 말했다.         "전에 스승님이 신쭈에 오셨을 때, 저희 집에 머무셨는데, 그 때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서너 마리 개들이 우리 대문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어요. 그들은 하루종일 가지도 않고 그 문에 앉아 있었죠. 주변의 개들은 제가 다 아는데, 그 개들은 본 적도         없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도 없었어요. 쫓아내려고 해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거기에 앉아 있었어요. 심지어는 스승님이 외출하시고         난 후에도 문에 앉아 스승님을 기다렸지요. 마치 스승님이 돌아오실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p>      <p></p>      <p align="left"> <span class="topic">스승님께 절하는 개</span></p>      <p> 2000년 5월 한국 영동센터에서 국제선을 끝마치신 후, 스승님은 잠시 일본에 머무셨다. 스승님 처소의 한 이웃은 큰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개는 늘 그 집 문가에 앉아 있거나 주변을 돌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스승님이 나오시는 모습을 보면 즉시         절을 하듯이 배를 땅에 대고 엎드렸다. 물론 스승님의 시자를 볼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p>      <p align="left"></p>      <p class="topic" align="left"> 스승님을 기다리는 축복 받은 개들 </p>      <p align="right"> <span class="caption">한국 서울, 오 미경 사저</span></p>      <p> 1997년 우리가 스승님 집을 샀을 당시, 그 집의 전 주인은 우리에게 개 두 마리를 놓고 갔다. 그 해 겨울, 집을 개조하고         있는 동안 그 개는 강아지를 세 마리 낳았다. 날씨가 매우 추워서 우리는 그들을 개집에서 꺼내 집안에 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가 낯설어서인지 개들은 우리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외부인 뿐 아니라 그들에게 매일 먹을 것을 주는 우리에게도 계속 짖어댔다.         우리는 그들을 잡아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개들은 집 뒤편의 숲으로 도망쳐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p>      <p>1998년 5월 스승님이 오시기 전날 밤, 그 개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는 마치 경호원처럼 밤새 현관을 지켰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스승님이 오셨을 때, 개들은 정원에 앉아 조용히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낯선 스승님을 보고도         짖지 않다니! 개들은 마치 스승님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처럼 보였으며, 스승님이 손을 흔들어 주시자 매우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을 했다. 개들도 무상사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46:08 +0900</dc:date>
</item>


<item>
<title>산중기담(스승님의 사랑이 일구어낸 기적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3</link>
<description><![CDATA[<br /><p><span class="Question">스승님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 중 하나는 타이쭝의 산중에서 있었던 일로 이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span><br /></p>
      <p>이야기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승님은 공개 강연을 하시지 않아 제자들의 숫자도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스승님은         타이베이 근교의 신디엔 도장에서 머물던 우리에게 외부적인 문제가 생겼으니 즉시 짐을 싸서 떠나라고 하셨다. 평소 우리는 10분         이내에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동작이 느리면 뒤에 남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스승님의 훈련은 군대 훈련보다도         더 효과적이어서 손놀림이 둔한 나이 많은 출가승들도 충분히 따라갈 정도였다. </p>      <p>우리에겐 작은 트럭 한 대만 있었을 때라 스승님이 조수석에 앉고 다른 제자들은 짐들과 함께 적재함에 몸을 싣고 어렵사리 출발했다.         출발 당시 어디로 갈 건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타이쭝의 외곽을 지나 어떤 버려진 산장 옆을 지나려는데 스승님이 갑자기 우리에게         그곳을 살펴보라고 하셨다.</p>      <p>그곳은 소유권 문제로 반쯤 짓다 만 산장이었는데, 잡초만 무성했다. 물, 전기도 없고 사람이 살지 않아 황량해 보였다. 그         집을 둘러보다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외딴 곳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출가승들을 이상히 생각하곤 말을 걸어왔다.         채식을 하는 일관도 신자인 그는 우리가 머물 곳이 없다는 걸 알고는 당분간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애써 권했다. </p>      <p>알고 보니 그는 어떤 산장의 관리인으로 관리인 사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 사택에는 물과 전기가 있었는데, 마침 다른 볼 일로         집을 비우게 되어 우리에게 일주일 정도 빌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빌라'에 짐을 풀게 되었다. 스승님께서         꼭 방값을 주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린 당연히 거저 살지는 않았다.</p>      <p>그곳은 말이 좋아 산장이지, 사실 수많은 모기를 제외하곤 별 다른 게 없었다. 마침 한여름이라 모기 부대는 기승을 부리며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내 평생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 집은 2층으로 되어 있어 남자들은 아래층에서 자고, 스승님은 2층에 있는 유일한         방에서, 여자들은 스승님 방에 딸린 작은 거실에서 지냈는데, 사실 스승님 방도 문 없이 바로 거실로 통하게 되어 있어서 모기의         공격을 막을 순 없었다. </p>      <p>우리는 무수한 모기떼에게 물리지 않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침낭으로 감쌌다. 더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밤새 모기떼에게 파티를         열어 주는 것보단 나았다. 더 참기 힘들었던 건 폭격기를 연상시키며 윙윙거리는 모기들의 단조롭고 지루한 소리였다. 그때 방에서         나오다가 우리들의 이상한 모습을 보신 스승님이 이렇게 더운 날 왜 미이라처럼 몸을 싸매고 있냐고 물으셨다. 이유를 말씀드리자         스승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당신 방엔 모기가 한 마리도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확인하러 바로 스승님 방에 올라가 봤는데,         정말 모기의 '모'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모기들은 우리들만 물고 스승님에게는 감히 접근도 하지 않은         채 존경을 표했던 것이다. 나중에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는 그 자신의 업장이 없어서 모기에게 물릴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중생들의 업장을 짊어졌을 때에만 그 업장의 냄새로 모기에게 물리게 된다는 것이다.</p>      <p>그날 밤 우리는 모기들의 폭격음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잠을 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들 무렵에는 그 성가신 소음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스승님께 모기들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스승님의 신통이 정말 큰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스승님은 웃으시며 유리잔을 몇 개 가리키며 이 잔들이 바로 신통이라고 말씀하셨다. 밤중에 일어나신 스승님은 모기들에게 물릴까         꽁꽁 싸매고 있는 제자들의 불쌍한 모습을 차마 그냥 볼 수가 없어 그 찻잔으로 모기들을 잡아 바깥으로 내보냈던 것이다. 스승님이         거의 2백 마리 되는 모기들을 내보내셨으니 우리가 편히 잘 수 있었던 게 당연했다. </p>      <p>며칠 후 우리는 타이쭝의 산장을 떠나 근처의 이름도 모르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작은 트럭은 거친 길 위에서 덜컹거리며         춤을 추었다. 몇 군데서는 굵은 나뭇가지들이 길을 막아 길이 끝난 것처럼 보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스승님은 계속 가라고 지시하셨고,         그곳을 지나자 신기하게도 길이 나왔다. 하지만 소심한 제자들은 이런 모험들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더 큰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외진 산간이라 길이 좋지 않은 데다 좁기도 해 통과하기가 힘들어서 트럭은 몇 번이나 낭떠러지를         끼고 산 쪽에 바짝 붙은 채 간신히 통과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목숨이 오락가락 했다. 물론 스승님의 축복으로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p>      <p>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을 때 한 농부를 만나게 되었다. 이 두번째 만남 역시 믿을 수 없는 우연의 일치로 그 역시 채식주의자였던         것이다. 농부가 산중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을 쓰라고 해서 찾아간 오두막은 아무런 살림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 집의 앞부분은         지붕도 없었는데 여자 출가승들이 거기서 자고 스승님은 뒤쪽은 작은 창고에서 주무셨다. 처음에 스승님은 지붕 없는 곳에서 주무시려고         했는데 제자들의 강한 권유로 포기하셨다. </p>      <p>잠자리가 편한지 염려하신 스승님이 여러 번 물어보시자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미 수많은 모기떼들의 공격을 경험한 지라 고요하고 시원하며 모기들도 없는 오두막에서 잠자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처럼 느껴졌다.         또 마루에 누워 밤하늘의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마치 대지의 왕국에 와있는 것 같아 정말 감격스러웠다!</p>      <p>다음 날 아침, 나는 우리가 자던 사방이 지붕이 없어서 밤새 내린 이슬로 젖어있는 데 반해, 우리 침낭과 그 주위는 그대로         말라 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는 이 불가사의한 일의 연유 역시 알 수 있었다! 광친 노스님(고행으로 유명한 포모사의 스님)이         밤새 바깥에서 명상을 하면 그와 그의 주변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았다지만, 우리는 아직 그렇게 수행이 높은 것도 아니었으니, 이         현상은 우리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이 일을 스승님께 바로 말씀드리자 스승님은 웃으시며 우리가 밤새 이슬에 젖을까 염려했더니         이런 신통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설명하셨다. 스승님은 이슬이 내리지 않도록 기도하거나 주문을 외우신 게 아니다. 그저 제자들의         건강을 염려했을 뿐인데,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적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이건 모두 스승님의 '함이 없이         하는' 기적이었다. </p>      <p>우리는 산중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스승님께 평소 훈련받았던 야생 생활 능력을 응용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타이쭝 산중 여행은         단조로웠던 내 인생의 캔버스에 오색 찬란한 무지개를 그려 넣으며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꿈은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이번 산중 경험으로 그 마음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었다.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43:45 +0900</dc:date>
</item>


<item>
<title>행복의 빛</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2</link>
<description><![CDATA[<br /><p>5년 전 나는 예쁘고 통통한 남자 아이가 내게 와 껴안으며 "안녕, 엄마, 제 이름은 쾅하이예요"라고 소개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미안하구나, 엄마는 너무 바빠 너를 키울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는 계속 내 주위에서 놀았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 쾌활한 작은 소년이 매우 그리워졌고, 꿈에서 계속 보기를 원했다. <br /></p>
      <p>그로부터 몇 달 후, 동수인 나의 동서가 임신을 했고 태중에 있는 아이가 남자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동서에게 그 아이가         분명히 내가 꿈에서 본 행복해 보이는 얼굴에 통통한 뺨을 가진 아이일 거라며 머리카락이 없는 동자승처럼 생겼다고 말해 주었지만,         동서는 처음에 믿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애는 내 생일에 태어났고, '쾅하이(행복의 빛)'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생김새도 내가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또 아이의 부모들이 일 관계로 낮에는 내가 그를 돌보게 되었다. <br /></p>      <p>쾅하이는 지금 4살 반이 되었다. 그는 이름처럼 행복한 소년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 부부를 "엄마, 아빠"로 부르며 우리를         통해 스승님을 알고 심지어 입문에 대해서도 묻곤 한다. 켈리포니아 프레스노에서 스승님을 처음 뵙고서는 왜 두명의 사촌들은 입문증이         있는데 자신은 없는지 매우 궁금해했다. 우리가 상황을 설명해주자 그는 반입문을 하기까지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br /></p>      <p>2001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쾅하이는 다음 날 우리가 플로리다로 간다는 것을 알고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자기 아버지에게         스승님께 드릴 글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 메시지는 "스승님, 사랑해요!"라는 글이었다. 이제 4살 반인         그 아이는 우리와 함께 있을 때면 스승님과 신에 대해 종종 묻곤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스승님의 비디오와 불찬 테이프를 보고         들으라고 격려해 준다. 이런 것들을 통해 스승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쾅하이는 동수들과 있을 때는 매우         순수하고 지혜롭다. 하루는 그에게 "왜 채식을 하니?"라고 묻자 그는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채식을         하라고 가르치셨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개와 고양이도 사랑해야 해요."라고 대답했다. <br /></p>      <p>아이의 육체와 영혼을 잘 돌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승님이 말씀하셨듯이 부모 스스로 아이들의 훌륭한 모범이 되어야         한다. 자녀를 키우는 법을 포함해 우리 생활 모든 측면에서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2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39:42 +0900</dc:date>
</item>


<item>
<title>신의 완벽한 안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1</link>
<description><![CDATA[<br /><p>이 이야기는 196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 여동생이 여름방학을 틈타 시카고에서 일하게 되자, 남편은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중국인 동창인 리양씨에게 그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인연으로 우리 두 집안간에는 정이 싹터 훗날까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어울락에 있던 리양씨의 약혼녀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포모사로 왔을 때에는 내 친정 아버지께서 주례를 
        서게 되셨다. 나는 이 때 그들 부부를 처음으로 대면했다.<br /></p>
      <p>결혼식이 끝난 후, 우리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어 리양씨 부부는 미국의 동부 해안에서 살다가 나중에 샌프란시스코 부근으로         이사를 했고, 우리는 줄곧 미국 중서부에서 살다 LA로 이사오게 되었다. 우리 두 가족은 연락을 자주 하진 못했지만, 서로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지냈다. LA에서 지진이나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리양씨 부부는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곤 했다.         그들 부부는 둘 다 천성적으로 조용한 성품이었으나 우리 두 집안은 따스한 우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br /></p>      <p>1994년 여름, 채식을 장려하기 위해 스승님께서는 산호세에 채식식당을 내시고 동수들과 많은 손님들을 만찬에 초대하셨다. 참석         인원이 워낙 많아서 주차장에 대형 천막을 세우고 모두들 조용히 앉아 스승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하신 스승님은         모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농담을 던지셨다. "세상에! 만찬장이 아니라 군부대 같군요!"         그 후에 스승님이 일주일 후 '로맨틱한' 만찬에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br /></p>      <p>그 전에 나는 산호세에 살고 있는 절친했던 고등학교 동창의 두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었다. 그들은 자기 언니의 50번째         생일 축하 깜짝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다른 많은 친구들도 초대를 받았다. 리양씨 부부도 올 것이란 소리를 듣고 오랜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나 역시 기쁘게 승낙했다. <br /></p>      <p>항공권을 예약하기 전 어떻게 생일 파티장에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스승님이 우리를 위해 두 번째 만찬을 여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두 행사가 같은 날에 겹치게 되었는데, 묘한 것은 생일 파티는 오후에, 스승님의 만찬은 그 이후         밤에 열린다는 것이었다. 또 여동생의 친구가 태워다 주겠다고 해서 교통편도 해결되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안배였다! 떠나기 전         어느 날, 명상을 하다가 리양씨 부부를 스승님께 데리고 가야겠다는 내면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난 그 부부의 종교적 성향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단순히 두뇌가 만들어 낸 생각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br /></p>      <p>행사가 열리던 당일, 나는 정오 전에 생일 파티에 도착했다. 모두들 정신 없이 바쁘게 준비하고 있어서 낄 틈이 없었던 나는         방에 들어가 명상하고 있다가 손님들이 도착해 시끌벅적해지자 나왔다. 방문을 열고 나온 순간, 문 밖에 서 있는 리양씨 부부를         발견했다.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리양씨가 먼저 물었다. "유잉씨, 명상을 하신다면서요? 제게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모든 것이 신의 안배였음을 깨닫고 즉각 대답했다. "오늘 여기 온 건 바로 '당신' 때문이에요......"         내가 스승님을 알게 된 경유를 차근차근 말해주자, 리양씨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날 오후 내내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나눴던         대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br /></p>      <p>나중에 리양씨 부부는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스승님의 만찬에 참석했다. 분위기는 대단했다. 바비큐도 있었고, 스승님도 굉장히         기분이 좋으셨다. 스승님은 법문도 하시고 이야기도 들려주시더니, 나중에는 노래까지 함께 부르셨다. 사람들이 입문을 청하자 스승님은         기꺼이 허락하셨다. 리양씨 부부도 입문에 마음에 쏠리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바로 입문하도록 재촉하지 않았다.         우선 스승님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먼저 스승님의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다음 날 리양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밤에 바로 입문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는 말에, 나는 우선 방편법부터 수행해 보라고 제의했다. 그럼에도 그는         전화할 때마다 3개월 동안 기다리기가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평생을 기다렸는데, 겨우 3개월을         기다리지 못한단 말이에요?" 물론 그의 갈망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br /></p>      <p>나중에 해준 이야기지만, 리양씨는 수년 동안 계속 진리를 찾아왔으며, 다른 수행단체에서도 수행을 해봤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포기하고 매일 신께 참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스승님의 책을 읽었을 때, 비로소 그는 신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제자들이 준비되었을 때, 스승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경우에 너무         잘 들어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br /></p>      <p>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신의 세심한 안배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돌이켜 보면, 리양씨 부부와 우리 가족의 20여 년에 걸친         우정, 리양씨와 내 여동생, 부모님과의 관계, 스승님의 두 번째 만찬, 그리고 생일 파티의 시간 등 이 완벽한 시간과 장소,         사람의 안배는 오직 전능한 신만이 가능한 일이었다!<br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3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37:25 +0900</dc:date>
</item>


<item>
<title>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0</link>
<description><![CDATA[<br /><p>1989년 출가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운이 좋게도 스승님을 모시고 몇 개국을 다닐 기회를 얻었다. 나는 아주 운이 좋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매우 초조하고 두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누군가를 돌보고 보좌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과보호 속에서 살아왔다. </p>
      <p>그런 내가 이제 갓 출가하여 요리나 빨래를 하는 등 일상사를 처리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는데, 완전무결하고 꼼꼼하고 고상한 스승님을         보좌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내가 스승님의 시자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 가운데 하나였다.</p>      <p> 그러나 그날이 되자 스승님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염원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스승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하려는         나의 열망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 스승님이 행하시고 받으시는 노력과 고충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의 이런 노력과 고충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이었다! </p>      <p> 오랜 생각 끝에 나는 자신의 많은 부정적인 면들을 없애고자 하는 염원 때문에 내가 스승님의 시자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 염원 때문에 나는 출가했다. 그리고 출가하기 전에 이런 결정이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기 위해 일부러 몇 달을         기다리기도 했다. 내가 혐오하는 부정적인 성격들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출가하는 것임을 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는 기분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출가를 하자 곧바로 스승님이 나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나의 소망을 이루게         도와주신 것이다.</p>      <p> 이미 발을 내딛은 이상 나는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출가승단에서 어느 정도 훈련을 거쳐서 좀더 나아진 후에 스승님의 시자로         불려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실제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 좀더 나아진 후에는 더 이상 스승님의 시자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실들로 짐작해보건대 스승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시자를 두시는 것이지 결코 당신         자신의 안락이나 즐거움을 위해 그러시는 것이 아니다.</p>      <p> 1990년 외국에서 머물던 어느 날, 스승님과 나는 산책을 하던 중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한 평범한 노인을 만났다. 나는         그다지 그 여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스승님은 손을 내밀며 괜챦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 여인은 힘없이 뒤뚱거리며 오랫동안         굶었다고 대답했다. 스승님은 팔을 부축해서 그를 가까운 식당으로 데려가시더니 햄버거와 튀김 감자, 음료수 등을 주문하셨다. </p>      <p>그러나 식당주인은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 여인보고 어서 떠나라고 하였다. 전에 여기서 구걸했던 것이 분명했다. 스승님이         단호하게 '이 사람은 나의 귀한 손님입니다'라고 하시자, 식당주인은 어쩔줄 모르는 기색으로 사과했다. 스승님은 식사 대접 후에도         햄버거를 몇 개 더 사서 그에게 주셨다. 그 여인은 힘이 없어서 말도 잘 못했지만 무척 고마워하였다.</p>      <p> 스승님이 사주신 햄버거는 채식햄버거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스승님의 즉각적이고 단호한 행동은 이전에 좋은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나를 괴롭히던 갈등을 대번에 없애주셨다. 때때로 버스에서 다른 사람에게 좌석을 양보할 때면 주위의 시선을         끌까봐 두렵고 불안했었다. 그 당시 나는 부정적인 사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p>      <p>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다. 사람들은 악을 행할 때는 의기양양하면서 선을 행할 때에는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이는 지옥에 갈 배짱은 있으면서 천국에 갈 용기는 없는 것과 같다.<br />        어쨌건 이 사건으로 난 내 몸에 들러붙어 있던 더러운 흙먼지를 털어 낸 것 같았다. 스승님이 일을 처리하시는 것을 잘 관찰하면         빨리 배울 수 있다. 말이 필요 없이 곧바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그를 통해 스승님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스승님은 우리 전생의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실 뿐 아니라 친히 모든 방면에서 산 모범이 되어 주신다.</p>      <p class="subject_2" align="center"><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bar/imges/pa02d.gif" width="437" height="12" alt="pa02d.gif" /></p>     <p class="topic" align="center">가슴속 사랑의 등불을 밝히다</p>      <p>1991년 필리핀 화산폭발 직후, 우리는 필리핀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긴급 원조요청을 받았다. 이에 스승님은 즉시 남녀 출가제자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논의하셨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웠다. 스승님은 밤을 꼬박 세우면서 활동계획과 세부사항을         논의하셨다. 구호활동에 인정 있는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신문광고도 내기로 결정했다. </p>      <p> 스승님은 항상 신속하게 행동하시고, 우리들에게도 신속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하신다. 스승님과 함께 일하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 된다. 그런데 스승님이 일을 하시는 방식은 내가 익숙해져 있던 외부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서         지체없이 순식간에 광고와 관련자료가 준비되었다. 나는 스승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내가 매우 자애롭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너무 시간이 촉박하여 스승님은 출가승들을 그곳으로 당장 보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하셨다. 나도 파견대의         일원으로 가게 되었다.</p>      <p> 때마침 필리핀은 한창 더울 때였다. 마닐라 외곽지역, 온 고장이 화산재로 뒤덮여 있었다.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광경이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생필품과 구호품을 구입하여 그 물품들이 이튿날 재해지역에 전달될 수 있도록 포장하는 일을 했다.         우리는 곧 어느 장군의 도움으로 공군기지의 실내체육관을 빌려 거기에 구호물자를 보관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수송시간을 줄이고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공군부대에서 구호물자를 지키도록 군인을 한 명 보내주었는데, 처음에 그는 우리를 그다지 존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외국인인 우리가 잠 한숨 제대로 못 자며 밤새도록 구호품을 포장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재해지역으로 구호품을 나르고         또 날이 어둑해질 때 돌아와서는 쉬지도 못하는 것을 지켜보았다.</p>      <p> 얼마 후 인근에 사는 군인 가족들이 와서 우리가 물품을 포장하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서로 친밀감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마닐라로 떠날 수 있었다.         거기서 스승님께 전화로 그 동안의 성과를 보고 드렸다.</p>      <p> 우리는 한밤중에 체육관에서 철수했다. 그때 경호군인이 취침을 하고 있어서 내가 그를 깨우러 갔다. 우리가 떠난다고 알려주고         문단속을 일러주기 위해서였다. 막 깨어난 그는 눈을 뜨자마자 나의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별빛이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나는 곧 스승님의 사랑이 그의 영혼 깊이 스며들어 그로 하여금 마음속 깊은 감사의 표시를         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나는 사랑의 발로에서 이 구호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군인의 변화를         통해 마음속 사랑의 등불이 밝혀짐을 느꼈다. 지금 나는 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등불로써 광명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을 비출 각오가         되어 있다. 이 일은 오랫동안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p>      <p>        만약 스승님이 구호팀으로 나를 파견하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또 이기심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좁은 세상에 안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일로 나는 분명히         알았다. 우리가 성심과 의로운 행동으로 중생의 마음에 밝은 등불을 켤 수 있다는 것을.<br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2호에서-</p>
      <br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34:32 +0900</dc:date>
</item>


<item>
<title>대자비</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9</link>
<description><![CDATA[<br /><p>1986년에 스승님은 대만 근해의 펑후 섬에 있는 어울락 난민수용소를 방문하셨다. 수용소에서 출발하여 긴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스승님은 갑자기 택시기사에게 방향을 돌려달라고 하셨다. 길가에 누워 있는 개를 보시고자 했던 것이다. 스승님은 그날 아침 
        수용소로 가시는 길에 그 개를 보셨다. </p>
      <p>그래서 개가 괜찮은지 알고 싶으셨던 것이다. 택시에서 내리신 스승님은 개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자 개는 간신히 생기 없는         눈을 떴다. 개는 움직이지도 짖지도 못했으며 무척 고통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택시기사에게 조심스럽게 개를 차 뒷좌석에         싣게 하셨는데, 기사의 손이 피로 얼룩진 것으로 보아 개가 심하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은 무척 걱정하시며 가능한 한         빨리 수의사를 찾아가자고 하셨다. 이리저리 돌며 마침내 동물병원 하나를 찾아냈는데 공교롭게도 수의사가 왕진을 나가고 없었다.</p>      <p> 수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스승님은 개의 이마를 적셔주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개를 안심시키셨다. 개가 물을 조금 먹고 조용히         누워 있더니 약간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 스승님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한 택시기사는 자진해서 수의사를 데려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뒤 수의사를 데리고 돌아오는 중에 수의사에게 사랑에서 우러난 스승님의 행동을 들려주었다. 수의사는 도착하자마자 개의 상태를         살폈다. 그 개는 깊은 내상을 입고 있었는데 차에 치인 것이 분명했다. 가슴은 부어 올라 있었고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수의사가 주사 두 대를 놓자 개는 곧 의식을 되찾았다.</p>      <p> 다음 문제는 이 개의 보금자리를 구해주는 것이었다. 거리로 되돌려 보내진다면 굶주릴 가능성이 높았다. 스승님은 개와 고양이를         많이 기르고 있는 어울락 난민수용소로 개를 데려다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 스승님은 또한 개가 계속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수의사의 전화번호를 받아놓으셨다. 스승님의 진심 어린 사랑과 친절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를 감동시켰다. 수의사는 친절하게도         치료비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스승님은 난민수용소로 되돌아가시기 전에 그 수의사에게 치료비 대신 줄 과일을 사셨다.</p>      <p> 아무도 개의 주인이 어울락 난민수용소에 있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날 개 주인은 자신의 형을 만나러 공항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개가 그를 뒤쫓아오다가 어떤 차에 치었다. 당시에는 개를 돌봐줄 시간이 없어서 개를 길 한편으로 옮겨놓고         그냥 떠났는데 공항에서 돌아와보니 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우리가 개를 수의사에게 데리고 간 후였을 것이다.)</p>      <p> 개를 주인에게 되돌려주고 스승님은 안도의 숨을 쉬셨다. 식당에 들어서자 택시기사가 사람들에게 스승님의 자비와 사랑 어린 보살핌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다. 스승님이 택시기사에게 식사대접을 하려고 하자 기사는 사양하면서 기름 값만 조금 받았다. 그는 친절하게도,         오전 내내 쉬지 않고 개를 나르고 얼룩진 뒷좌석을 힘들게 청소하면서도 불평 한마디하지 않았다. 그래도 스승님은 기사에게 사과를         하고 과일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신의 선물입니다."</p>      <p>        나중에 스승님은 동수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급박하게 필요할 때는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일분일초라도         지체해선 안 됩니다."</p>      <p class="topic" align="center"><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bar/imges/train02c.gif" width="451" height="37" alt="train02c.gif" /></p>      <p class="topic" align="center">지혜로운 자비</p>      <p>1986년 7월의 어느 날, 어떤 동수가 부리가 빨갛고 작고 귀여운 하얀 새를 발견했다. 그는 스승님께 그 새를 데려와 축복해         주시길 청했다. 그런 뒤 새를 풀어주었다.<br />        새장문이 열리자 새는 하늘로 날아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왔다. 새는 스승님의 손등에 살며시 앉더니 우리가 아무리         날려 보내려고 해도 날아가지 않았다. </p>      <p>새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신 스승님은 새에게 먹이와 물을 주시고는 살그머니 숨으셨다. 스승님을 찾지         못하자 새는 제자들에게로 다가왔다. 스승님은 음식을 치우고 그 새에게 너무 가까이 있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         몇몇은 그 새를 되돌려 보내기 어려워했다. 스승님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아시고 설명해 주셨다."새가 인간에게         익숙하게 놔두면 어떤 사람이 쉽게 새를 잡을 것이고, 그러면 새는 새장 안에 갇혀 영영 자유를 잃게 될 것이다. 진정한 자비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br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32:30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이 반쪽 피해자인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8</link>
<description><![CDATA[<br /><p>나는 지난 9월 22일 스승님과 추석명절을 보내기 위해 플로리다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9월 21일 포모사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나는 그때 내가 지진으로 가장 심한 피해를 입은 위츠 산악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칠흑 같은 어둠과 완전한 정적 속에서 언덕 아래로 바위들이 구르고 산사태가 난 흙더미 위로 나무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이따금 들을 수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이처럼 일순간에 재난을 당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게다가 난 아직 스승님을 만나 
        뵙지도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무상하다'는 것의 의미가 '때를 놓쳤다'는 것의 의미임을 알았다.</p>
      <p> 일생에서 가장 길었던 밤을 지새운 뒤 날이 밝자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삽이나 곡괭이 등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연장을 총동원해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가까스로 근처에서 산길 하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식수와 전력공급이 차단되고         통신체계가 망가진 상태였다. 점차로 우리는 인적이 끊긴 곳에 갇혔다는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p>      <p> '괜찮아.' 나는 생각했다.'우선 휴식부터 취하자!' 꿈결에 오토바이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한 동수가 재난구호에 대한         스승님의 지시와 배려를 전하려고 충싱 신(新)마을에서 위츠와 풀리까지 먼길을 달려온 것이었다. '스승님'이란 말에 눈물이 흐르고         심장이 고동쳤다. </p>      <p>나중에 구조작업을 하면서 나는 힘들 때마다 스승님의 지시사항을 떠올리곤 하였다. '스승님께서 재난구조에 온 힘을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시금 힘이 나곤 하였다. 길이 얼마나 험하고 밤이 얼마나 깊든 나는 구조작업이 늦어질새라 잠시도 늑장을         부리지 않았다. 그러면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다시 새 힘이 솟으며 마음이 훈훈해지곤 했다! 스승님이 바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단지 그분의 도구였다. 스승님과 하나된 느낌은 정말 너무도 근사했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p>      <p> 구조작업을 하는 중에 정말 감동적인 사건이 있었다. 지진이 발생한 날 저녁 9시였다. 한 남자가 라디오에서 재난소식을 듣고         혼자 밖으로 나가 식수와 빵, 일회용 식기 등을 구입한 뒤 구호식량을 가져다주러 치아이에서 풀리까지 차를 몰고 온 것이다. 길은         멀고 도로는 매우 험했다. </p>      <p>나는 그의 열정과 희생정신에 정말 감동하였다! 나는 그가 구호식량을 나눠줄 수 있도록 재난민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그를 안내하였다.         약간 부끄러운 듯 한 나이든 여인이 내게 물었다. "혹시 채식빵도 가지고 계신가요? 난 채식주의자예요." 그의         질문에 나는 '신이 모든 것을 돌보신다'는 말을 퍼뜩 떠올렸다. 바로 내 손에 채식빵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재난을 당한 순간에도         그 여인은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품위 있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 여인이 성자가 아니면 누구일까?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17:08 +0900</dc:date>
</item>


<item>
<title>움직이지 않는 책장</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7</link>
<description><![CDATA[<br /><p>'거대한 진동'이 있기 직전 나는 책상에 앉아 이젠 거의 손재주가 없어진 점토 빚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우리는 플로리다 추석행사 
        때 전시대를 세우고 점토공예품들을 전시할 계획이었다. 손꼽아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날짜가 다가왔다!</p>
      <p> 갑자기 땅이 크게 진동하자 테이블 위에 있던 점토 상(像)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쓰러졌다. 그리곤 캄캄해졌다! 나는 신도 신지         못한 채 있는 힘을 다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보니 내가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뜰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집         맞은 편에선 큰 바위들이 아래로 구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공포심을 자아냈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난 정말 겁먹고 있었다.       </p>      <p>동시에 나는 낡은 건물 5층에 사시는 부모님 걱정을 했다. 한 분은 걷는 게 불편하시고 다른 한 분은 지병을 앓고 계셨다.         부모님의 안전이 몹시 걱정되었다. 내게 날개가 있어 당장에 그분들께로 날아갈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하지만 걱정해도 아무         소용 없었다. 결국 날이 밝았다. 이웃에 사는 한 가족이 산을 내려갈 채비를 하기에 그들과 동행하며 하산 길을 찾았다. 그때         내 마음은 당장이라도 난토우로 달려가 부모님을 뵙고 싶은 심정이었다. </p>      <p> 관음 수행자가 사랑하거나 염려하는 사람은 모두 돌봐주겠다고 약속하신 스승님의 말씀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부모님의         집이 부분적으로 파손되긴 했지만,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을 안 뒤에 나는 안심하고 구조대에 합류하였다.</p>      <p> 우리 집은 쉬에리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집에 전기가 다시 들어온 뒤에 살펴보니 모든 가전 제품들이 여전히 작동하였다.         또 놀랍게도 바닥에서 140㎝ 높이에 있는 나무선반이 여전히 건재하였고 그 위에 있던 모든 것, 즉 스승님의 가피물, 접시,         천상의 보석, 스승님의 머리카락과 다른 물건들이 고스란히 제자리에 있었다. 게다가 현관이 부서지고 철제 침대가 넘어지는 와중에도         스승님의 비디오 테이프와 오디오 테이프, 경서를 넣어둔 2미터 길이의 나무책장은 여전히 무사했다.</p>      <p>        스승님, 우리를 위해 온갖 고충을 당하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진정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말 듣기에도 지치셨다면 제 가슴 속 깊은 곳에 스승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겠습니다.<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7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16:00 +0900</dc:date>
</item>


<item>
<title>특별한 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6</link>
<description><![CDATA[<br /><p>그날 밤은 정말 특별했다. 그날 밤 나는 한 사저에게서 한 다발의 사랑스런 '공작꽃'을 받았다. 그런 뒤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혼자서 은밀한 즐거움을 누렸다. '이 얼마나 여유있고 낭만적인 삶인가!' 온 집안이 새집처럼 훤해졌다. 나는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 조용하고 낭만적인 저녁 한 때를 즐겼다. 신의 사랑과 축복이 나를 에워쌌다.</p>
      <p>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내가 아기요람 속에서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삼매에 들기 전에 '자장가'를 들은 기억은         없지만. 나는, 내가 진동을 느끼는 게 아기 때의 체험을 되살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요람이 점점 거세게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께서 장난을 하시는 건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갈 때가 된 것일까? 하지만 스승님이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는데! 내가 너무 깊은 잠에 들어 메시지를 듣지 못한 것일까?'</p>      <p> 얼마안가 나는 공포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그 순간엔 눈을 감고 지혜안에 집중하며 스승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진정         지금이 가야할 때라면 우리 모두가 평화와 은총 속에서 떠날 수 있기만을 바랐다. 한바탕 진동이 있은 후 좀 잠잠해지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롱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쓰러졌는데 내가 누워있던 소파에는 아무 것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밖으로 기어         나오니 맞은편 욕실과 주방이 무너져 있는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난 집안으로 돌아와 다시 소파에 누웠다. 그 뒤 또 한차례의         격렬한 진동이 있었다. 낭만적이던 감정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 관음을 했다.</p>      
      <p>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목이 말랐다. 물을 찾으려고 기어올라 왔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누워있던 작은 방만 빼고 
        집 건물 전체가 붕괴되어 있었고, 출구도 막혀 있었다. 어떻게 나갈지를 몰라 두려움이 생겼다. 그때 이웃에 사는 사저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디 있는 거예요? 우린 모두 광장에 모여 있는데, 왜 거기에 숨어 있죠?" 그 말을 듣고 난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맞아! 왜 나는 지진이 났을 때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을 못했을까?' 그토록 위급한 상황에서 난 오직 명상할 생각만 
        했었다. 스승님이 내내 나를 지켜주시지 않았더라면 이 둔한 제자는 재난에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14:43 +0900</dc:date>
</item>


<item>
<title>재난에서 한 집만 무사하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5</link>
<description><![CDATA[<br /><p>우리 아버지는 흙으로 지은 전통가옥에 살고 계셨다. 지진이 났을 때 이웃집들은 전부 무너졌는데 아버지의 집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전혀 피해가 없었다. 이웃 사람들은 우리 가족 전원이 성인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신이 우리 집을 지켜주신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이가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모든 집들은 다 벽이 허물어졌는데 아버지의 집만이 건재하였다 한다. 지진이 한 집만 건너뛰고 
        이 일대의 모든 집을 무너뜨린 것이다!</p>
      <p>        내 집은 약 100ｍ 높이의 나즈막한 언덕에서 10ｍ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지진의 영향으로 그 언덕 전체가 이동을 했다.         언덕이 자리를 옮기는 통에 근처에 있던 집들이 왕창 무너져 내려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또 몇 군데는 땅이 심하게         솟기도 했다. 그렇지만 언덕은 우리 집과 2ｍ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기적적인         사건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믿기 어려울 것이다.<br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7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3:12:06 +0900</dc:date>
</item>


<item>
<title>항상 신을 기억하라</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4</link>
<description><![CDATA[<br /><p>자연서식지 복원, 동물보호소 방문, 병원 응급실에서의 자원봉사 등을 다 해봤지만 진리를 나누는 일 이상으로 의미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스승님의 중동 및 아프리카 순회강연 때 나는 처음으로 작업팀에 합류해 일을 했다. 경험 있는 동수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내겐 하나의 특권이었고 매우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p>
      <p> 터키에서는 어디를 가나 주민들이 전단을 나눠주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차를 대접해 주곤 하였다. 터키 사람들의 진심어린         호의는 신(알라)에 대한 그들의 깊은 헌신과 하루에 다섯 번 거리 전역에 울려 퍼지는, 신께 올리는 그들의 기도에서 기인한 듯하였다.</p>      <p> 이스탄불은 회교사원, 성곽, 궁전들로 아름답게 장식된 오래된 바닷가 도시다. 아름다운 주변환경과 친절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천국을 다시 일깨웠고 우리가 그곳에 온 목적을 더 깊이 새기도록 하였다.</p>      <p> 우리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또 다른 지진이 발생했는데, 지진이 발생하기 전날 스승님이 관음사자에게 전화를 하셔서 '어려운         때일수록 신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셨다. 지구횡단 여행을 하시는 중에도 우리를 세심히 돌보시는 스승님께 경외심이         들었다. 스승님은 모든 이들 앞으로 전화와 이 메일을 보내주셨는데, 이러한 스승님의 사랑이 우리를 충만케 하였다. </p>      <p>스승님은 또 건강에 관한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그 중에는 '길거리에 있는 동물들을 만지지 마라'(광견병 등의 전염병에 걸렸을         지도 모르기 때문)는 사항도 있었다. 바로 전날 새끼고양이를 만졌던 나로서는 이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모든         걸 아시고 이토록 철저하게 우리를 돌보시는 스승님이 놀라울 따름이다.</p>      <p>        스승님의 강연소식을 알리는 것 말고도 내게는 스승님이 필요로 하실 경우를 대비해 터키역사에 대해 간략히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주어졌다. 유럽 강연에서 보여줬듯이 스승님 혼자서도 능히 그 일을 해내실 수 있다는 점을 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스승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한껏 고양되었다. 스승님께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는 건 대학에서 리포트를 쓰던         일과는 달랐다.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숨어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A학점 리포트를 썼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참다운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br />        신의 일을 통해 신을 직접 알게 하신 스승님께 감사드리고 싶다.</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8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58:48 +0900</dc:date>
</item>


<item>
<title>이집트 새 입문자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3</link>
<description><![CDATA[<br /><p>어려서부터 만성천식을 앓았던 어느 이집트 입문자가 겪은 기적적인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다. 하루는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발작이 
        나서 그 사저는 숨도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너무 늦은 시각이라 의사를 부르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그만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그 사저는 어머니에게 "엄마, 잠시 명상하고 나면 괜찮아질 거에요"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과연 
        명상을 하고 나니 곧 회복되었다. </p>
      <p> 그 사저의 어머니는 고위 공무원인데, 최근에 수행에 너무도 열심인 딸을 걱정한 나머지 통찰력과 예언력을 지닌 어느 회교 지도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당신은 딸이 칭하이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         이롭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딸의 신실한 수행과 지계(채식)로 그의 어머니 역시 가능할 때마다 채식을 하며 스승님의         가르침을 배우게 되었다.<br /></p>      <p><br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8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57:5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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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스승님의 모습에 감동하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2</link>
<description><![CDATA[<br /><p>더반 강연에 참석한 프란시스 저지라는 여인은 강연이 끝난 후 스승님께 전화를 드려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 여인은, 강연이 
        너무 훌륭하고 강연장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강연이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말을 못하고 그냥 울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강연장에 도착해서 입구에 서 있던 동수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자신이 따스하게 환대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뒤 그 여인은 천상의 의상을 보고 마침내 스승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에 대해 스승님께 감사드리고 싶다고 
        했다. </p>
      <p> 이보네란 이름의 여인은 꿈에 빨갛고 노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다음날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후에 더반 시내를 걷다가         그는 꿈에서 봤던 그 여인을 포스터에서 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라고         소리쳤다. 그런 뒤 그는 포스터에서 스승님의 강연 소식을 발견하고는 그 즉시 강연에 참석해서 입문할 것을 결심했다.<br /></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8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56:4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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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우리는 모두 신의 자녀들이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storyw&amp;amp;wr_id=1</link>
<description><![CDATA[<br /><p>케이프타운 국제선은 11월 30일 정오쯤 막을 내렸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이곳에 좀더 머물며 세계종교회의에 참가할 동수들을 
        호텔로 수송할 버스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오후 늦은 시각에 많은 동수들이 각자의 짐을 들고 도로 옆에서 배정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p>
      <p> 짐이 많은 남아프리카 출신의 한 흑인 동수가 남은 짐을 가방 안에 쑤셔넣느라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몇몇 어울락         동수와 중국 동수들이 그에게 가서 빈 상자에 짐을 넣고 단단하게 묶은 다음 트럭에 싣는 것까지 도와주었다.</p>      <p> 그 사형은 동수들의 도움에 감격한 나머지 주위에 있던 동수들에게 한국, 어울락, 중국과 모든 아시아 나라 동수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제선에서 동수들이 이렇게 잘해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자신을 도와준 아시아 동수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가방 안에 있는 카메라를 꺼내려 했는데, 버스가 출발하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그 순간 그 자리에는 인종간의 장벽은         사라지고 순수한 사랑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동수들간의 사랑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p>      <p> 이 광경을 보기 바로 직전에 나는 선 장소 근처에 있는 해변에 갔었다. 산과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자연경치가         무척 장엄하긴 하였지만, 나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산도 바다도 해변도 아니고 바로 우리 동수들과 모든 인류 안에 내재해 있는         사랑임을 느낄 수 있었다.</p>      <p>12월 1일, 버스 기사들과 가이드들이 자원해서 종교행사에 참석하려는 우리를 도왔다. 그들은 무료로 우리를 행사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들과 대화하는 동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형제자매라 불렀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형제자매로 불러야         한다. 출신지역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문화적 배경이 어떻고 피부색이 어떻든, 우리는 모두 신의 자녀이니 한 형제자매인 것이다.<br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8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55:2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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