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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고통에 민감하신 스승님

성인들은 매우 예민하고, 모든 중생과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중생의 고통을 느끼고,
모든 사람과 중생의 고통을 조금씩 겪지요.
절망한 마음의 소리는 고요합니다.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그러나 성인은 들을 수 있지요.

~칭하이 무상사~


글: 한 윤 사저 / 미국 캘리포니아 샌어제이


나는 오래 전에 입문해서 동수들로부터 홍법 초기에 스승님과 함께 지내던 생활이 어땠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우리가 정말로 음식도 안 먹고 하루종일 명상만 하는 탈속의 생활을 했을 거라는 환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 당시 우리의 생활은 매우 단조로웠다. 그래도 내겐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충만했던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스승님에겐 악몽과도 같은 날들이었을 게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 가운데는 꽤 어린 제자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천진함과 무지로 우리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스승님은 최고의 인내심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그건 마치 대학원 교수가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것과 같았다. 무한한 사랑을 지닌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처럼 어려운 일을 떠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 입문해 타이페이 교외에 있는 신티엔에서 스승님과 함께 지내게 된 신참내기 출가자였던 나는 사회적 관습과 습관에 철저하게 물든 사람의 전형이었다. 나는 성질이 고약하고 고집이 세며 무모하고 감정적이며 말을 막 할 뿐만 아니라 남들에 대한 인내심은 손톱만큼도 없고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사치스런 삶만을 꿈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승님은 이토록 부족한 나를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치셨고, 일상의 삶에서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이시며 나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셨다. 스승님은 언젠가 초기의 제자들이 제일 가르치기가 힘들었으며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선 피눈물과 땀방울을 많이 흘려야 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정말 스승님의 말씀 그대로였다!

스승님께 처음 출가했을 때 나는 동수들이 스승님을 부처(깨달은 스승)라고 일컫는 걸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내게 스승님은 평범한 사람, 대 지혜를 가졌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으로 비쳐졌다. 스승님에겐 경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장엄한 부처의 모습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스승님은 털끝만큼도 뽐내는 기색이 없었고 성심성의로 우리를 대하셨다. 처음에는 시자(侍者)도 없이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셨으며, 제자들의 시봉을 받기는커녕 거꾸로 스승님이 제자들에게 봉사하실 때도 더러 있었다. 우리가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를 깜빡 하면 스승님이 대신 빨래를 걷어주셨고, 우리가 이불을 발로 차내고 자면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셨다. 스승님이 맛있는 식사를 마련해 주시는 일도 빈번했다.

스승님은 보통 우리를 "우리 아이들"이라고 다정하게 부르셨다. 그 당시 몇 안 되는 제자들을 아주 극진히 돌봐주셨지만 우리의 버릇을 망쳐놓진 않으셨다. 우리는 매우 기강 있는 생활을 했다. 매일 아침 오후 저녁으로 명상하는 것 외에도 스승님은 우리에게 정원을 가꾸고 채소를 기르게 하셨다. 나는 평생 괭이질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잠깐만 일해도 두 팔이 쑤시고 아팠다. 그래서 핑계거리를 찾아 슬쩍 빠져나가곤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우리는 채소 재배법을 배우는 동안 스승님에게서 문명사회에서 벗어나 있을 때 생존하는 기법도 더러 배웠다. 그것은 스승님이 히말라야에서 수행하실 때 자신을 돌보며 터득한 지혜였다. 스승님은 물질 문명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스승님의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말과 '절대 안 된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승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키셨다.

물론 스승님의 능력은 이런 것들을 훨씬 능가한다. 스승님은 집도 지으실 수 있다. 초기에 우리는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가 있는 땅뙈기에서 살았다. 스승님은 남아 있는 기초와 벽을 활용해서 소박하고 아담한 집을 한 채 지으셨다. 시멘트를 개고, 벽돌을 쌓고,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목재 기둥을 세우고, 대못 망치질을 하고, 배관을 하기까지 모든 일을 스승님이 손수 하셨다. 스승님의 가냘픈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은 건장한 남자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는 스승님 혼자 나무 서까래들을 세우셨다. 못질을 하려면 두 팔을 쭉 뻗쳐야 하는 이런 일은 가장 힘이 센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몇몇 열성적인 제자들이 스승님을 도우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는데, 결과적으로는 도와주느니만 못했다. 스승님이 그 일들을 다시 하셔야 했던 것이다. 사실 제자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옆에서 지켜보다 고작 망치나 가위 같은 연장을 나르거나 못을 가져다 주는 조수 역할을 했다.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그런 하찮은 일조차 우린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스승님의 말을 똑바로 알아듣지 못해서 크기가 안 맞는 못이나 엉뚱한 연장을 갖다 드리곤 했다. 우리는 정말 '가망 없는 케이스'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전능한 스승님을 당해낼 자가 없었다. 얼마 안 가 작지만 정교한 우리의 '백악관'(하얀 페인트를 칠한 집)이 눈앞에 드러났다. 직접 그것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우린 그것이 이처럼 작은 한 여인이 해낸 일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집을 지을 줄 모르면 최소한 간단한 요리쯤은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 당시 우리는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스승님과 거주하는 제자들이 대여섯 명 정도여서 스승님은 우리가 돌아가며 요리를 하게 하셨다. 스승님은 우리가 먹을 줄만 알지 음식을 만들 줄 모르는 '쓸모 없는' 인간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스승님은 한동안 반만 익히거나 너무 짜지 않으면 맹탕이고, 너무 맵거나 신 '견습생 요리'를 '즐기셔야' 했다. 그것이 우둔한 제자들이 스승님께 올린 공양이었다. 요리에 있어서는 가히 예술적 경지에 이른 스승님께 이처럼 형편없는 요리를 드시게 했으니 스승님은 얼마나 고역스러우셨을까! 그렇지만 난 스승님이 음식에 관해 불평하신 건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스승님은 우리가 어떻게 요리를 하든 그저 묵묵히 드셨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숙련될 수 있도록 이같이 엉망인 요리를 감내하셨던 것이다.

스승님이 제자들을 단련시킨 방법은 이러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두려워할수록 스승님은 더욱 우리가 그 일을 하게 하셨다. 그건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한 때 타이페이 교외에 있는, 큰 거미들이 많이 사는 언덕에서 살았다. 도시 출신인 나는 전에 이렇게 징그럽고 혐오스럽게 생긴 커다란 창조물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스승님 방에서 스승님의 강연 대본을 읽고 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거미 한 마리가 등장했다. 스승님은 거미를 잡아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빈 컵을 하나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컵을 하나 들고 와서 스승님께 드렸다. 내가 두려워하는 걸 보신 스승님은 마음을 바꿔 컵을 내게 건네시며 나보고 거미를 잡으라고 하셨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스승님의 지시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성스러운 이름들을 다 외고, 낼 수 있는 용기를 전부 다 끌어 모아, 떨리는 손으로 그 곤충을 컵에 집어넣었다. 그때는 정말 무서웠지만 이런 훈련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곧 나는 이런 일에 아주 능숙해져서 더 이상 거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스승님은 때로 아주 엄격한 방식으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약점에서 결코 달아날 수 없었다. 하지만 무력한 동물을 다룰 때는 매우 인자하고 자상하셨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한번은 뱀 한 마리가 문틈을 통해 집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다들 안절부절 못했다. 그때 누군가 자루가 긴 빗자루를 들고 와서 뱀을 양동이에 쓸어 담아 내다 버리려고 했다. 자루가 긴 빗자루여서 손을 다칠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들의 안전만을 생각했지 뱀을 고려하진 않았다. 우린 계율에만 집착하여 뱀을 다치지 않게 밖으로 몰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승님은 뱀에게 자비심이 없다고 우리를 꾸중하셨다.

뱀은 매우 민감해서 빗자루로 양동이에 쓸어 담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스승님은 설명하셨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뱀이 놀라 기를 쓰고 도망가려고 몸부림치다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 하셨다. 수행자들이 동물의 감정에 어찌 그리 무감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승님은 한 제자에게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자루를 가져오게 한 다음 그것을 뱀 가까이 놓으셨다. 뱀이 자루 속으로 천천히 기어 들어간 뒤에 우리는 주둥이를 단단히 묶고 자루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 뱀을 풀어주었다. 뱀을 자상하게 배려하시고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시는 스승님에게서 우리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 하나의 사건은 양명산 센터에서 발생했다. 한 사형이 철사로 나무를 동여맸는데, 이를 보신 스승님이 즉시 그 사형에게 철사를 풀라고 하시고 다시는 어느 누구도 철사로 나무를 감지 말라고 지시 하셨다. 스승님은 그렇게 하면 나무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 가운데 이런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은 없었다. 사실 스승님이 지적하시기 전에는 나무가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우린 나무를 베지만 않으면 나무에게 충분히 잘해 주는 것이라고 여겼고 나무에 철사를 감는 일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보통 사람과 깨달은 스승의 차이다. 보통 사람의 사랑은 자신의 관점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무디고 도량이 좁다. 하지만 깨달은 스승의 사랑은 '만물동일체(萬物同一體)'라는 사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주적 공감대 안에서 세심하게 배려하는 자비심으로 넘친다.

이 두 사건이 있은 후에 나는 인간의 사랑이 동식물이 겪는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섬세하고 민감한 수준까지 발달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전에는 동물을 죽이지 않고 식물을 베지 않는 것만으로 자비심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거기에는 그들의 감정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나의 자비심이 스승님의 것만큼 깊어지진 못했어도 그것이 내겐 하나의 기점이 되었다. 내게 귀감이 될 만한 스승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무척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을 지 모른다. 아마도 그랬다면 나의 자비심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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