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비디오

채식 요리법 동영상

채식과 영성

건강한 미래

채식과 지구

생명사랑

채식요리

밥/죽/스프

국/찌게/탕

무침/셀러드/김치

볶음/튀김

찜/조림/구이/전

분식/면/빵/과자

별식/음료/차

양념/소스/쨈

채식제품 구입처/식당

파리 이야기



이 이야기는 내가 두 달 전에 잠시 쉬려고 인도에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나는 오랜만에 히말라야 산으로 돌아갔다가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더럽고 위생이 엉망이었지요. 사람들이 강 여기저기에 대소변을 봐서 명상할 만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아주 지독했어요.

어느 곳을 가도 시끄러웠습니다.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가는 곳 또한 온통 저속한 음악들로 떠들썩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거기서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그곳까지 가서 그냥 돌아올 수가 없어 잠시 머물러 보기로 했지요.

하루는 식사를 하려고 식당엘 갔습니다. 혼자서 불을 피우기가 번거로웠거든요. 어디를 가나 채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더 편했지요. 그런데 그 식당에서 나는 창 밖에 퍼져 있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 한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발버둥을 치고 있는 모습이 몹시 불쌍해 보였지요. 당연히 나는 파리를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식으로 창문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어 열 수가 없었어요. 포크와 칼로 애써 봤지만 열 수가 없었습니다. 한 30분 정도를 그렇게 씨름했나 봐요. 마침 길에서 만났던 이탈리아인이 옆에 앉아 있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깟 파리 한마리 가지고 너무 애쓰시는 것 아닙니까?" 나는 말했습니다. "당신에겐 대수로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나 때문에 신경쓰지 마세요."

그는 나에게 파리 목숨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납득시킬 수가 없다는 듯 머리를 가로 저었습니다. 파리를 구하려는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지요. 그가 하고 싶은 말은 파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말했지요. "비록 하찮은 파리라 해도 내 앞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걸 보니 힘 닿는대로 돕고 싶었어요. 파리나 사람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고통받고 있으면 그 고통을 덜어 주어야지요. 그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이 말예요. 내가 이러는 것은 파리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나는 파리가 고통받는 걸 보고 그냥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한 인도인이 다가와 동석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럼요. 여기는 식당이니 누구나 앉아도 되지요.(스승님 웃음)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묻지요?"
"왜냐하면 당신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요?"
그 또한 파리 목숨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나에게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물론 그의 말에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었지요.
"이봐요. 미안하지만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천만 마리의 파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이 작은 파리 한 마리에 그렇게 연연해 하죠?"
나는 말했습니다. "그 파리가 내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수만 마리의 파리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내가 모르는 그 파리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선 뭔가를 할 수 있지요. 당신의 논리 대로라면 세상에는 매일 수천 수만 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걱정하지 않고 왜 우리 자신의 목숨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는 겁니까? 당신의 말 대로라면 우리는 먹지도 말고 죽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자식들에게 밥을 주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에서는 수천의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의 말 대로라면 우리는 왜 우리 자식들을 보살펴야 합니까?"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나를 좀더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난 내가 너무 멍청해 보여 모두들 나를 가르치려 하나 보다고 생각했지요. 난 단지 살려고 발버둥치는 파리를 보고 견딜 수가 없었던 것 뿐인데 말입니다. 그 사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 파리를 구해 준다면 거미의 음식을 뺏는게 아니오?"
"그래요. 맞아요. 하지만 거미는 거기에 없었잖아요."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저 거미줄을 보세요. 이미 찢겨 있고 죽은 벌레들도 그대로 있어요. 거미에게 먹히지 않고 말예요. 거미는 이미 오래 전에 떠난 거라구요. 거미줄에 죽은 벌레가 저렇게 많은데도 그대로인 걸 보면 알잖아요. 그러니 내가 파리 한마리를 구해 준다고 해서 거미에게 해 될 게 없어요. 거미가 있다 해도 이미 먹이가 충분하니까요. 괜히 한 생명을 더 희생시킬 필요가 없지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배고플 때 먹고 필요할 때 가져가면 되잖아요."

결국 그들은 떠났습니다. 가 버렸지요. 그들은 나를 장래가 촉망되는 제자가 아니라 고약한 학생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가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정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일하기가 더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반쯤은 죽었겠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요. 여러분에게 감정이 있다면 내게도 있습니다. 다만 난 필요할 때 어떻게 그것을 조절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을 뿐이며 또한 이러한 것들이 일시적인 기분이라는 걸 압니다. 때로는 살아가기 위해 그러한 감정들을 유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억누르기도 하고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을 가지고 잇어야 합니다. 하늘에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세상에도 있어야 하지요. 만약 내가 너무 높이 있다면 여러분은 내게 다가올 수 없을 것이며, 나 또한 여러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미타경>이라는 불교 경전에서 석가모니불은 서방정토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곳은 경치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크리스탈, 다이아몬드 등 온갖 종류의 보석으로 만들어진 집들과 각종 진귀한 꽃들로 가득합니다. 또한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 외 다른 것도 많아요. 모두가 다 진귀한 것들이지요.

그러나 정토에 대해 말하자면, 거기 사는 사람들은 슬픔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고, 무엇이 고통이고 불행인지를 알 필요조차 없습니다. 거기 사는 천인들이나 부처가 인간의 고통을 알려면 반드시 고통을 느껴 봐야 합니다. 그들의 의식이 항상 정토에만 머물러 있다면 영원히 고통이란 단어를 알지 못할 겁니다. 고통의 의미조차도 모를 겁니다.

따라서 부처에게 고통도 없고 감정도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부처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부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돌을 숭배하는 게 낫지요.

 
   






Copyright © The Supreme Master Ching Hai Media Center. All Rights Reserved *

select count(*) as cnt from gnu_login where lo_ip = '54.196.98.96'

145 : Table '.\gods\gnu_login'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

error file : /bbs/board.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