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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


우리는 수행을 하면 할수록 덜 심각해지며,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됐어, 괜찮아" 하면서 점점 더 이완되지요. 사람들이 좋고 나쁜 행동을 중단한 게 아니라 우리는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행동에 신경쓰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로부터 오염이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어 점점 더 이완되며, 이따금 가족이나 친구들을 잘 대하지 못하거나 실수를 해도 우리 자신을 용서하고 홀가분해집니다. 일세해탈(一世解脫)이라 함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물질세계의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저기에 묶이고 자기 스스로를 묶게 되므로 하루종일 답답한 기분인 것도 당연합니다. 이런 식으로 매일 살다보면 이런 답답한 분위기에서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해탈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해탈하여 자유롭고 행복해집니다. 걱정스럽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되지요. 전에는 누가 무엇을 하든 참을 수 없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고백하건대 나는 그렇게 해탈하지 못했습니다! (스승님과 대중 웃음) 좀 전에 벌레 한 마리를 밟았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나는 호법에게 "차라리 그 벌레가 죽었다면 그래도 낫겠어요. 그 벌레가 다쳤는데도 말을 못 하니 어디를 다친 지 알 수가 없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 벌레를 젖은 풀 위에 놓고 물을 좀 뿌려 주었습니다. 세례를 베풀면서 좀 낫길 바랬지요. 낫겠지만, 벌레는 다쳤을 때 굉장히 아팠을 겁니다. 어딜 다쳤는지 모르겠어요. 움직이긴 했지만 분명히 다쳤을 텐데 말이에요. 발이나 발톱이 부러졌을 수도 있고, 온종일 매니큐어로 치장했는데 내가 발톱을 부러뜨렸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매니큐어도 칠하고 예쁘게 단장해서 이제 막 모임에 가려고 나섰다가 나 때문에 어딘가 부러졌을 수도 있지요. '탁-'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계속 벌레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정말 해탈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아직 해탈하지 못하고 집착이 남은 것 같군요! (대중 웃음) 그렇지요? 나는 아직 이런 상황에서 해탈하지 못했습니다. 남이 상처를 받으면 나도 상처를 느끼지요. 특히 동물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면 나는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동물은 말을 못하니까요. 우리가 다치면 대부분 병원으로 옮겨져 의사에게 다친 부위를 말해주고 바로 치료를 받으면 바로 낫습니다. 또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으면 고통이 경감되지요. 하지만 동물들은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스승님 한숨) 하지만 이것은 이 세상에 사는 일종의 대가인 셈입니다.

신이 사슴과 곰, 토끼,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단조로웠겠습니까. 신은 우리를 위해, 그리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이 많은 것들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커서 동물이 고통을 받습니다. 그들에게도 영혼과 생명, 감정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이 있어야 활동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치거나 죽을 때 동물들은 이 생명과 신체를 가진 대가로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대가를 치러야만 이 생명과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우리에게 키스하거나 만져도 아무 느낌도 없을 것입니다. 차가운 음료수나 뜨거운 차를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겠지요. 우리는 감각을 통해 이 세상을 즐기고 꽃의 향기와 과일의 단 맛, 차와 음식의 풍미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느낌과 감각을 누리기 위해서는 아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건 동물도 같습니다.

우리는 생생한 그런 느낌을 위해 대가를 치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로봇은 인간과 흡사하게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우리와 거의 비슷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로봇에는 감정이나 감각이 없어서 '맛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태양의 따뜻함이나 산들바람의 시원함, 고통스런 느낌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이 없다면 느낌도 없으며 느낌이 있으면 고통이 따르기 마련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에게 왜 이 세상의 고통을 창조하셨는지 묻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것이 바로 자유와 감각을 갖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야만 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세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동물이 기계처럼 느낌이 없다면, 그리고 우리가 기계와 같다면 아무런 재미가 없을 테지만, 우리가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고통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고통을 좋아하지 않지요. 신이 우리 감각을 마비시킨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즐길 수 없습니다. 수행을 할수록 우리는 운명을 알게 되고 또한 이곳에서의 즐거움을 위해 스스로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느낌들을 얻을 수 있는 이런 도구들이 있으므로 고통이 올 때 그냥 벗어나거나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우리는 돈과 권력, 선택의 자유 등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빠져 버렸고, 그것을 탐닉할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잘 대해주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재능과 돈, 재산을 낭비하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순환합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끝까지 내려가면 아무것도 없이 가난과 병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신에게 자신이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묻습니다. 사실 그건 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뿐입니다. 현재 우리는 내려왔으니 조금 있으면 다시 올라갈 것입니다.

성인, 훌륭한 수행자는 이 세상의 좋고 나쁜 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현재의 찰나만 볼 뿐 과거나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고통스럽고 싫어할 뿐이지요. 그들은 내적인 평온이나 균형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게 됩니다. 더 많이 원할수록 더욱 고통스럽고 싸우게 되며, 더 많이 원할수록 나쁜 짓을 저지르게 되어 살인이나 강도, 싸움 등을 하게 됩니다. 또는 사기를 당하거나 감옥에 가는 등 고통은 더욱 커지기만 할 뿐 거기서 헤어나올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실 이 세상에 좋고 나쁜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으로, 우리가 그런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때로는 고의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즐기는 방식은 모두 이렇습니다.


칭하이 무상사 / 1994. 4. 1-4 홍콩 국제선삼 (원문 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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