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비디오

채식 요리법 동영상

채식과 영성

건강한 미래

채식과 지구

생명사랑

채식요리

밥/죽/스프

국/찌게/탕

무침/셀러드/김치

볶음/튀김

찜/조림/구이/전

분식/면/빵/과자

별식/음료/차

양념/소스/쨈

채식제품 구입처/식당

훌륭한 검둥이

1953년 2월에서 1959년 가을까지 우리 집에서는 검둥이라는 개를 한 마리 키웠었다. 검둥이는 몸집이 건장하고 온몸에 검고 긴 털이 나 있었는데 마치 사납기 그지없는 사자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개가 우리 집 앞에 앉아 있으면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다른 개들도 우리 개를 보면 슬슬 피해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검둥이는 비록 사납게 생겼지만 우리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온순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니 외모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검둥이는 아주 착해서 다른 개와 결코 싸우지도 않았고 사람도 물지 않았으며 작은 동물도 못살게 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그를 좋아하며 결코 없어선 안 될 식구로 여겼다. 검둥이가 죽고 나자 아버지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며 가슴 아파하셨다. "검둥이는 정말 똑똑해서 뒷다리로 서서 여러 발자국이나 걸을 수도 있었단다. 정말 귀여웠지…."

검둥이가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 강아지였을 때 아궁이에 들어가려다 나한테 단 한 번 혼나고 나서는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검둥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때로 내가 저녁 9시가 넘어 들어올 때면 그는 4, 5리나 되는 먼 거리를 달려 마중을 오곤 했다. 한번은 마중을 나와 갑자기 등뒤에 올라타는 바람에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던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 적이 있었다. 그는 그리고도 뒷발로 서서는 앞발로 나를 잡고 계속 키스를 했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주면서 다시는 그렇게 놀래지 말라고 하자 그 후로 마중을 나올 때면 먼저 자기가 온 것을 알린 후 내 주위를 기쁜 기색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검둥이는 내가 나갈 때마다 항상 따라 나와 15리를 배웅하곤 했는데, 내가 가라고 해도 듣질 않았다. 가끔 먹을 것을 좀 주면서 잘 달래면 풀이 죽은 채 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래서 나는 길에 차들도 많이 다니는데 그가 잘 돌아갔는지 걱정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검둥이가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자라면서 많은 고생을 겪은 것이다. 1959년 봄, 중국 전역에 심한 기근이 들어 식량 부족이 심각했다. 많은 가족들이 굶주렸고 한끼 먹고 나면 다음 끼니거리가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와 함께 오래 생활했던 검둥이는 꾹 참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이런 상황'속에선 응석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전과는 달리 밥과 반찬이 남아도, 설령 그 앞에 놓아주어도 먹으라고 하지 않는 이상 결코 먹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작고 낮은 밥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면 그는 조용히 서서 우리가 먹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침을 흘릴지언정 밥상에 달려들어 아무 음식이나 먹진 않았다. 다른 개들의 경우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면 게걸스럽게 먹어댔지만 검둥이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 생각이 깊어서 오히려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또 아무리 배가 고파도 똥이라든가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은 결코 먹지 않았다. 그리고 가난한 주인 곁을 늘 지켰다.

검둥이가 나날이 여위어 가고 용맹스런 기운이 약해지는 것을 보며 나의 부모님은 가슴 아파하셨다. 우리와 함께 고생하는 걸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부모님은 결국 보다 형편이 나은 집으로 그를 보냈다. 그러나 사랑스럽고 가련한 검둥이는 식음을 전폐한 채 계속 우리를 그리워하더니 오래지 않아 또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검둥이는 "개는 가난한 주인을 버리지 않는다"라는 중국 속담을 그대로 증명하며 우리 가족과 함께 고난과 풍파의 세월을 겪었다.

1959년 봄, 아버지는 가족을 가난과 죽음의 위협에서 구하기 위해 고향인 지아오동을 떠나 머나먼 대서북으로 돈벌이를 하러 가셨다. 아버지가 어깨에 큰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자 검둥이는 한눈에 아버지가 오랫동안 멀리 떠나 계시리란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매우 슬픈 모습으로 아버지 뒤를 따라 나섰다. 아버지가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고집을 피웠다. 검둥이가 우리와 함께 그토록 오래 살았어도 말을 듣지 않은 건 그때가 유일했다.

검둥이는 아버지가 마을을 벗어나자 그 뒤를 따르며 다른 성(省)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갔다. 아버지는 검둥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심지어 화를 내며 욕까지 했는데, 검둥이는 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버스에 올라 탄 아버지는 검둥이가 이미 힘도 다 빠지고 했으니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우리 읍에서 다른 성까지는 30리가 넘었는데 자갈길이라 굉장히 길이 안 좋았다. 아버지가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버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검둥이가 아버지 저 뒤편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아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충직하다니! 아버지가 손을 내밀자 그는 아버지의 손에 앞발을 올려놓았는데, 검둥이의 발은 버스를 쫓아오느라고 발바닥이 갈라져 네 다리는 피로 흥건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검둥이에게 짐을 지키라고 하곤 근처의 가게에서 호떡을 2개 사셨다. 아버지는 호떡을 검둥이에게 주려고 하는 순간 그제야 검둥이가 늙었고 이빨도 몇 개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빵을 조각조각 잘라 주며 눈물 어린 손으로 먹여 주었고 검둥이도 또한 슬퍼서 울었다. 아버지가 열차를 올라타자 검둥이는 더 이상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가슴 아프게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기근이 점점 심해져 한동안 아버지 역시 외지에서 고생하시느라 가족을 돌볼 수 없었지만, 검둥이는 계속 이 가난한 가정을 지켰다. 그러다 1959년 가을 어느 날, 검둥이는 우리 집 대문 앞 구덩이에서 굶어 죽었다. 아버지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곤 그를 보통 천상의 나무라고 부르는 참죽나무 밑에 묻어 주시며 검둥이가 천상에 올라가 그 나무와 함께 영원히 살길 기원하셨다. 가난과 기근으로 많은 인명을 빼앗긴 어려운 당시로서는 검둥이의 죽음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검둥이는 우리 가족의 가장 좋은 식구였다. 그는 충성스레 우리를 지켰고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줬다. 우리 온 가족은 그의 고귀한 품성을 소중히 간직했다. 기근이 가장 심했을 때도 그는 결코 음식을 갖고 다투지 않았다.

이 일들은 내가 어렸을 때 실제 있었던 일로 내게 정말 많은 가르침을 시사해 주었다! 우리가 고귀한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충성과 서로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개보다 나을 게 없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신의 창조물은 각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데, 그 중 검둥이의 가치는 말로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검둥이가 죽었을 때 너무나 슬퍼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부모님은 아직도 검둥이를 가슴 깊이 그리워하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으신다. 부모님은 종종 검둥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훈계하시곤 한다. 즉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항상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며 신의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이 우리 가족이 검둥이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Copyright © The Supreme Master Ching Hai Media Center. All Rights Reserved *

select count(*) as cnt from gnu_login where lo_ip = '54.80.87.166'

145 : Table '.\gods\gnu_login'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

error file : /bbs/board.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