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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관음, 최상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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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문 후 세 달 동안 많은 내적 경험과 이해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스승님께 보고드리고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입문 후에 스승님이 나의 지혜의 문을 열어 주셔서 나는 빛을 보고 소리를 들었다. 스승님의 지도와 준수사항을 따르면서 나는 내 안에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는 바로 우주의 위대한 힘이며 창조자와 스승님의 힘으로서, 나는 그 힘 안에서 언제나 보호받고, 자극받고, 지도받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외롭지도 겁내지도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모두 스승님께 바쳤고, 매우 만족하고 근심 걱정이 없다.

매일매일 우주와 생명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이해력을 갖는다. 나의 지혜는 매일 자라서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나 나름대로 명상해 오면서 아무런 내적 경험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관음법문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나는 관음법문이야말로 최고의, 최상의 법문이라는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관음법문이야말로 대단히 짧은 시간 내에 여러분에게 영적으로 대단히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만일 여러분이 관음법문을 계속한다면 확실히 이생에서 해탈할 것이다.


불교는 세상과 분리될 수 없다

내가 내적 경험을 즐기고 있는 동안 내가 속해 있는 명상단체에서는 내적 갈등과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동료수행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하며 그 비판을 널리 퍼뜨리는 반면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몇몇 사람들은 단체명상에 참가하지 않는 어떤 사람들에게 통보했다. 그래서 그 전에는 단체명상 시간에 붐비곤 했는데 지금은 겨우 몇몇 사람들만이 참석하고 있다. 이런 모든 일로 사람들은 대단히 불안해하고 불편해하고 있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할 수 없다. 나는 명상 중에 스승님께 도움을 청하고 단체명상에 계속 참석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나는 자기수양은 두 시간 반의 명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시간 반의 명상은 단지 우리의 업장을 소멸시키고 지혜를 얻고 에너지를 충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하여 매 순간마다 자기수양을 하고 공부에 정진해야 한다.

우리가 명상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직면하는 동안은 우리 자신의 지혜로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으로 분석하고 추론하던 오랜 버릇을 과감히 포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잘 통찰하고 파악함으로써 우리 내면에 있는 자아의 지혜에 의존해야만 한다.

다양한 세상사의 시험과 모든 시련을 통과할 때까지 우리는 자기수양에 어떤 진보도 기대할 수 없다. 불교철학은 인간법칙의 근본을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법칙은 불교철학을 함유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영위 및 관리와 더불어 매일 명상을 병행해야 한다. 항상 우리의 지혜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점검하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한 새로운 과업이다.


자아와 거만함

입문자들끼리 모이게 되면 서로 각자의 경험을 말하고,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내 동료입문자들이 자기네의 경험을 말하는 것을 들으면 모두가 내 수준보다는 낮다. 그래서 ‘내가 최고구나’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내 마음에 떠오르게 된다. 나는 나의 거만함을 억누르려 하지만 그렇게 잘되지 않는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관찰하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보일 기회를 찾은 것이지만 그렇게 해놓고는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스승님께 회개하고, 나 자신을 꾸짖는다. 때로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숨을 구멍이 있었으면 할 때도 있다.

우리 가슴에 아주 조금의 자아나 거만함, 오만이 있어도 3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이 스승님의 가르침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다. 자기반성을 하면서 영혼을 면밀히 살펴보면 내 마음에 아직도 교활한 자아가 집요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스승님의 테이프를 통해 어떤 입문자들의 너무 커진 자아와 오만함을 꾸짖으시는 것을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다. 나는 매우 예민해져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이 잔뜩 흘렀다. 스승님의 테이프를 들으며 메모를 해서, 그것이 나 자신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거듭거듭 읽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실수를 하고 있다. 최근에 단체명상에 참여하고 수행에 관한 질문에 대답해 주기 위해서 관음사자 한 분이 우리 명상센터에 특별히 오셨다. 우리는 그가 매우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기는 해도 그는 달라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우리 명상센터를 방문하기를 학수고대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전혀 배려해 주지 않았다. 그날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우리는 그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전혀 주지 않아서 결국 그는 그의 머리를 내젓기만 했다.

이런 사건에 대해 후에 생각해 볼 때 나는 매우 기분이 안 좋았으며 그렇게 탐욕스러웠던 나 자신을 비난했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주시므로 우리는 스승님을 깊이 흠모하고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다른 입문자와 모든 중생들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스승님이나 동료입문자들을 사랑하고 찬양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현실적으로 우리는 그들을 이용하기만 하고 있다.

두 번이나 나는 친구에게 스승님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이때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려고 범부의 마음과 언어를 이용했지만 이는 단지 스승님에 대해 편견을 갖도록 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그들에게 스승님의 책자와 테이프를 주니 그들은 스승님을 즉시 받아들였다.

이것을 통해 나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만일 우리가 스승님의 도구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100% 완벽해야 한다. 만일 아무리 작은 자아라도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다면 이는 스승님의 힘이 사람들에게 100% 전달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우리가 매 순간 스승님의 힘을 만나고 있을 때 또한 우리와 스승님의 힘이 하나가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스승님의 제자이며 도구라는 자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스승님의 사랑의 힘은 놀랍다

스승님을 만나서 입문한 후부터 내 주변 사람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물론 나 자신까지 모두 변했다. 너무나 많은 경이로운 경험들과 사건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서로 다투어 나누었다. 나중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은 그런 경험들을 듣는 것에 익숙해져 아무런 경험이나 변화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내가 입문한 후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시간이 대단히 많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나는 스승님의 책자 6권을 모두 읽고 모든 테이프를 다 듣고 공책에다 정리까지 해놓았다. 나는 가슴에 스승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담았다. 하루하루가 너무 아름답고 평온하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주변이 갑자기 변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탈해야 되는지를 배우거나 책을 빌리기 위해 계속 내게로 온다. 회사로든 집으로든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전에 서로 만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나는 스승님이 갓 입문한 사람들을 꾸짖을 때 하신 말씀을 분명히 기억한다. 만족과 행복에 싸여 너무 열광적으로 사람들에게 스승님의 가르침을 부담스럽게 전하려는 사람들은 크게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항상 일어나는 이런 모든 변화를 겪으면서 나 자신을 살펴본다. 그리고 스승님이 나를 위해 어떤 것을 주시든, 어떤 것을 마련해 놓으시든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는 바로 내가 스승님을 위해 일하는 동안 나 자신을 완전히 잊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이며, 내가 진리와 스승님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방법이다. 나는 이제 전혀 선전을 하지 않는다. 단지 스승님의 소책자나 오디오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을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뿐이다.

스승님의 도구가 되는 동안 나는 스승님의 위대한 자비로운 사랑을 진심으로 느낀다. 가끔 너무 감격스러워서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신비한 불찬가

언젠가 나는 급해서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오른팔에 검은 띠를 두르고 있었고, 매우 긴장되고 초조해 하며 대단히 과속으로 택시를 몰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지나가는 차를 향해 욕을 해대고 있었다. 이를 본 나는 그녀가 사고를 낼까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와 잡담을 나누며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의 어머니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매우 사랑했으므로 그 고통으로 인해 몹시 비통해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디에 계시는지조차 지금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가 어머니를 매우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불찬가 테이프 하나와 약간의 돈을 주고 내렸다. 그녀가 그렇게 비통해 하는데도 여전히 운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돈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불찬가는 칭하이 무상사라는 살아 있는 부처가 부르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이 테이프를 들으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내 전화번호도 알려 주었다.

그로부터 약 반달 후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서 그 불찬가가 너무 좋아 운전하는 동안 매일 듣는다고 말했다. 어느 날 그녀가 시속 90마일로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갑자기 트럭이 나타나 정신이 완전히 나갔고 오직 그녀에게 들리는 것은 불찬뿐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는데, 그때 기어가 앞뒤로 움직여서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후에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불찬가를 듣기 시작한 이후로 그녀는 더 평온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승객이나 주변 사람들과 더 이상 다투지 않았고, 생활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이제 그녀는 불찬가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이틀 전에 그 테이프가 녹음기 속에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아 망가져서 이틀째 테이프를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길을 잃은 듯하고 아무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밤에 자는 동안 그녀는 불찬가를 들었는데 바로 이웃에서 그녀의 불찬가 테이프를 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그 테이프가 몹시 그리워 내게 테이프를 하나 더 복사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불찬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하나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불찬가를 복사한 테이프 2개와 스승님의 소책자를 그녀에게 주면서, 소책자 표지 사진을 가리키며 이분이 바로 스승님, 살아 있는 부처, 칭하이 무상사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책을 들고 스승님이 자기 어머니 같아 보인다고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처음으로 나는 그녀에게 시간이 있을 때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는 후에 다른 녹음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를 준비해서 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스승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물었다.


명성과 부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언젠가 나는 서예 워크숍에 참석했다. 그곳에는 저명한 예술가들과 서예가들이 모여서 의기양양하게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며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모인 군중에게 차를 접대하기 위해 들락날락하느라 몹시 바빠서 그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
한 후원자의 말에 따르면 그 워크숍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며 그 예술가들과 서예가들은 무척 만족했고 그림이나 서예의 수준도 매우 좋았다고 한다.

그 워크숍에서 서예가 중의 한 사람인 한씨와 나는 영감의 원천과 그 관련된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나중에 내게 전화를 해서는 왜 그렇게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고 그의 가슴이 더 열린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리도 평화스럽고 평온하고 만족했는지를 물었다. 나는 간략히 스승님을 소개했고 책을 주기로 약속했으며 스승님의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려고 우리 집에 그를 초대했다.

그가 그 다음날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말은 별로 하지 않고 바로 비디오테이프를 틀어 주었다. 그는 스승님이 TV화면에 비칠 때 오랫동안 스승님을 쳐다보더니, “진짜 부처님이시구나. 항상 자연스럽고, 낭만적이시고, 손을 올리거나 발을 움직이는 것, 쳐다보는 눈길이 너무 자연스럽고 완전하시구나.”라고 말했다. 그는 스승님이 가르침을 주는 2시간 동안 완전히 집중하며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그는 그 자신을 완전히 잊은 듯했고 스승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넋을 잃은 듯이 보였다.

그는 원래는 테이프를 본 다음 가기로 계획했었지만 무엇인가를 더 원하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그에게 더 있다가 채식으로 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전했다. 나는 그의 모든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해 주었다. 그가 떠날 때 견본책자와 몇 개의 녹음테이프를 주었더니 매우 행복해 했다.

다음날 정오쯤 한씨는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그 테이프들은 몇 번이고 들었고 책은 반쯤 읽었다고 했다. 지금 그는 단지 테이프를 듣고 스승님 책자를 보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제 신문사에서 온 몇 사람이 일본 사람들을 위해 그의 서예에 대해 인터뷰하기를 원했다.

전에는 가슴이 설레였지만 지금 그는 지겹고 불편하게 느꼈다. 명성과 이득은 무의미하고 또한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할 일이 많았지만 전혀 서예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단지 테이프를 듣고 책 읽기만 원했다.

내가 그에게 스승님의 책과 테이프를 더 빌려 주겠다고 말했더니 그는 매우 기뻐하며 다음주에 가져가겠다고 약속했다.

스승님의 사랑은 너무나 방대해서 모든 제자들을 통해서도 퍼질 수 있다. 나는 이런 모든 일들을 나누고 싶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끼지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글로 써서 표현해 보니 더 많이 빠진 듯하다.


내 지혜는 자란다

“禪은 말이 필요 없다.”와 “가슴에 직접 이른다.”라는 문구는 거의 대부분이 선과 불교서적에서 언급되어 온 것이지만 우리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말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가? 단지 관음법문을 수행한 사람만이 아주 단시간 내에 그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작할 때는 몰랐지만 뭔가를 알고자 할 때는 언제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의 전부는 그 일에 집중하는데, 그렇게 하면 바로 이해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내가 할 일은 단지 그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며, 그러면 그를 잘 아는 것같이 보인다. 나는 내가 알고자 하는 일이나 사람들을 파악하기 위해 나의 지적인 힘을 이용하면 바로 답이 떠오른다. 더 이상 나는 내 결론에 이르기 위해 판단이나 측정을 할 필요가 없다. 만일 좀더 복잡한 일에 부딪치면 그때 나는 명상을 하면서 잠시 집중을 하면 영감과 해결책이 떠오른다. 나는 더 이상 외부의 언어나 형식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가끔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점차 좋아지는데 아마 내 지혜가 매일매일 자라기 때문인 것 같다. 가슴에 직접 와 닿는 이 침묵의 선이야말로 얼마나 강력한가. 나는 입문한 지 이제 겨우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 나는 스승님의 힘이야말로 최고이며 상상을 초월한 것임을 믿는다. 스승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나는 몇만 번이라도 이렇게 환호하고 싶다. “만세,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님을 찾았다.” 스승님은 최고의 분이시고 나는 영적 수행이 너무 낮아서 나의 한정된 지혜와 상상으로는 스승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스승님을 이해하려고 애써도 나는 나의 수준으로밖에 스승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스승님은 보잘것없는 제자인 나를 보고 계시며 모든 것을 바라보시며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 뉴스잡지 2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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