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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스승님은 항상 나의 손을 잡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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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모콘이 나와서 채널서핑(channel-surfing)은 미국에서는 매우 인기 있는 오락이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채널서핑을 하다가 여태껏 들어본 중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비록 잠시 내 주의를 끌기는 했어도 채널서핑 때문에 그때는 그녀를 지나쳐 버렸다. 며칠 후 그녀는 다시 나의 주의를 끌었다. 며칠 후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마침내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체념하고 귀를 기울였다. 즉각개오의 법문을 통해 내 자신을 구제하는 방법을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그녀는 칭하이 무상사였다.

몇 주 후 나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여행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동양의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 여행의 목적은 내 삶의 방식을 영원히 바꿀지도 모를 스승으로부터 입문을 받기 위해서였다.

서부 텍사스의 농업지역에서 태어난 앵글로색슨 족의 여성으로 남부 침례교의 전통 속에서 성장하여 서구적 사고체계가 확고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는 즉각 진리라는 것을 깨달아서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게 고착된 옛 믿음의 찌꺼기를 가볍게 치워버리고 돌아보지 않았다. -이것은 아주 쉬웠다- 그리고 나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전혀 다른 우리 몇몇 여성들은 생소한 나라, 태국으로 날아갔다. 마침내 호텔에 도착하여 몇 시간 머물다가 입문을 받으러 치앙마이로 다시 떠났다. 입문식이 끝났을 때는 아주 늦은 시각이었다. 우리는 방콕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놓쳤다. 설상가상으로 그날이 국왕 생일이어서 다음날 가는 비행기 좌석도 매진되었다. 우리는 홀로 칫솔 하나조차 없이 낯선 나라에서 어쩔 줄 몰랐다.

중국 여인, 필리핀 부인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세 사람이 자정이 지난 텅 빈 건물에서 아무 희망 없이 서성이고 있을 때 나는 내 결정이 확실하고 올바른 것이었는지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불쑥 포모사의 젊은 중국여자 동수가 나타나서 방콕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때마침 우리를 태워줄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안락하고 에어컨이 설치된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동안 모든 면에서 우리를 돌보아 준 그 동수에게 감사하고 있다. 다음날 나는 그 동수에게 어떻게 치앙마이에서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를 묻자 그녀는 단지 ‘스승님의 힘’이라고 응답했다. 며칠 후 방콕의 단체명상에서 나는 스스로 ‘스승님의 힘’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 이방인을 고향으로 이끌어 줄 구원자를 찾았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런 까닭에 나는 예전의 생활방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쉽게 내던졌는데 그것은 전혀 희생이 아니었다. 나는 기꺼이 이 세상에 나를 묶어둔 속박을 풀어버리고 우리가 왔던 머나먼 나라로 가기 위해 스승님의 손을 꼭 잡았다.

- 뉴스잡지 4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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