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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행복감은 수행에 커다란 진보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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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또 다른 우주에서 온 존재’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읽었다. 그 책의 주인공은 양자라는 중국태생의 어린 소녀이다. 그 소녀는 자기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한 우주계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겨우 열 살 밖에 안 된 이 어린 소녀는 어려서부터 물체를 투시할 수 있었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다. 이 소녀는 천문학적 법칙과 우주적 현상들에 대해서 체계적인 분석까지 해보여서 많은 중국 천문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양자의 아버지인데 그는 중국에서 건강과 의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저널리스트였다. 그 책의 ‘영혼의 양식’이라는 장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었다.

어느 날 양자가 아버지에게 기쁨에 겨워 말하기를 자신의 수행에서 ‘결정적인 장애’를 돌파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7살 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어떻게 ‘수행’이니 ‘결정적 장애’니 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 있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너는 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다리를 꼬고 앉아 명상을 하거나 어떤 다른 수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수행에 커다란 진보를 얻을 수 있었지?”

아버지의 물음에 양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들어 보세요! 사람마다 자신만의 수행 방법이 있는 거예요. 나의 방법은 ‘재미있게 노는 것’이지요. 그것을 통해 수행의 진보를 이루는 거예요. 왜 아빠가 수행에 진보가 없는지 아세요?”

“모르겠는걸! 왜 그렇지?”

“문제는 아빠가 노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예요! 아빠의 사고는 지금 매우 불행해요. 즐거움은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한 수행에서 꼭 필요한 양식이에요. 아시겠어요? 아마도 아빠는 더 잘 먹고 마시는 것, 그러니까 음식물에서 영양을 섭취하는 것만을 생각하시겠지요. 틀렸어요! 음식물에서 나오는 영양은 단지 육신만을 지탱시켜 줄 뿐이에요. 아빠의 영혼은 즐거움, 기쁨을 진정 필요로 한다고요!”

양자는 마치 범부에게 가르침을 주는 무소부재의 최고의 성인처럼 열정적이고 단호하게 말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아이의 말 속에는 지혜와 철학적 진리가 가득 차 있었다. 기공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가라앉혀야 한다. 그래야만 즐거움과 평화를 얻게 된다. 만약 마음이 고요하지 않다면 어떤 수행도 시간낭비일 뿐이다. 기공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자의 원신(元神)을 단련하는 것이다. 이 원신 - 인간의 영혼을 키우는 자양분은 무엇인가? 나는 거기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양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관음보살님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지요? 그녀가 궁극의 진리를 얻기 직전 최후의 며칠동안 그녀는 마음속에 극도의 행복감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어요! 즐거움은 그녀의 수행이 그렇게도 빨리 진보할 수 있도록 했던 본질적인 요소였지요. 그런데 아빠의 마음은 글을 쓰는 일, 이일 저일로 온통 가득 차 있어요.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지요. 들어보세요. 아빠가 화를 낼 때마다 아빠의 수행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아요. 오직 즐거움만이 아빠를 영생으로 이끌 거예요! 내 말을 기억하세요. 항상 행복해야 한다고요! 행복이요!”

양자가 말을 하는 동안 마치 칠판 앞에서 학생들에게 수업하는 선생님처럼 젓가락으로 벽을 가볍게 두드리곤 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 아이는 문밖으로 달려 나가 또다시 노는 일에 열중했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이들은 일방적으로 사회로부터 제약을 받는다. 웃지 마라! 이것 가지고 놀지 마라! 얌전히 굴어라! 엄숙해라! 품위 있게 행동해라! 그래서 웃고 떠들고 뛰노는 우리의 순진무구하고 사랑스러운 천성은 어린시절부터 일찍 억압당하고 우리가 다 자랐을 때에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다행스럽게도 이 천성이 약간은 남아 있겠지만 우리가 여전히 그것을 꾹꾹 억누르고 있어서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스승님을 따르던 초기시절에 스승님께서 반은 농담으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너의 그 엄숙한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네가 없는 데로 가서 안거하고 싶다니까.”

실제로 우리가 웃을 수 없을 때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 재미있어 하고 웃고 즐기는 다른 이들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재밌지?” “왜 저렇게 크게 웃고 떠들지?” “이빨을 온통 드러내놓고 웃다니, 수행자로서의 수치가 아닐 수 없어!” “먹을 때는 웃어서는 안 돼.” “우스꽝스럽게 얘기하지 말고, 위엄 있게 말해야 되는데!” 등등 아주 많은 비판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웃고 노는’ 천성을 질식시키는 이와 같은 속임수를 계속 사용할 것이고 운 좋게도 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약간의 천성마저도 되풀이해서 압살하려 할 것이다. 오로지 모든 이들이 그들의 천성을 다 잃어버렸을 때만이 우리는 만족할 것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아기와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아기들은 “이-아-우!”같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옹알거릴 수 있다. 아기들은 깔깔대고, 뒤뚱거리고, 울고, 손짓발짓 온갖 몸짓을 다해서 여러분을 당혹스럽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아기들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 왜? 실제로 우리는 즐거운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한 순진무구하고 꾸밈없는 순수한 우리의 천성을 항시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아기들은 배고프거나 못마땅할 때 큰 소리로 울어버리고, 피곤하면 달게 자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웃고 싶을 때는 웃어버린다. 우리는 아기들을 통해 이러한 감각을 재발견할 수 있어서 잠시나마 우리의 영혼이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님께서 항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영적 진보를 이루려면 마치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행복해져야 한다.”

위의 책에서 인용한 글을 통해 나는 영적 진보와 ‘행복과 웃음’의 긴밀한 연관을 깨닫게 되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스승님과 함께한 모든 날들 동안 스승님은 고통을 감내하시면서도 항상 우리에게 웃음을 상기시키셨고 ‘고뇌에 찬 붓다’나 ‘엄숙한 붓다’가 되려는 것을 말리셨다. 이런 이유에서 스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노는 것을 즐기셨다.

스승님은 ‘너희가 놀 때는 온 마음을 다해 놀아라. 웃을 때는 마음껏 웃어라. 엄숙해야 할 때 엄숙하고 일해야 할 때는 진지하게 일하라. 그때마다 상황이 요구하는 적절한 행동을 취하라. 단 전심전력을 다해 집중해서 하라. 만약 너희가 일상생활에서 이런 습관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자연히 명상할 때도 더 집중을 잘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스승님의 충고는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이야말로 영적 진보의 비밀이 아닐 수 없다!

- 뉴스잡지 50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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