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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르실거야

아버지를 구한 의롭고 용감한 어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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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제자/ 포모사 시후 센터

<스승님의 어린 시절 실화>

우리는 여러 위인들과 성인들이 어린 시절 시련과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지혜와 자비심을 발휘해서 그것을 극복했는지 이야기나 기록을 통해 배운다. 이 이야기는 스승님이 아홉 살쯤 되었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이 본보기를 통해 함께 배우자.

스승님은 어울락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친은 의술이 뛰어난 의사로 다른 의사들이 못 고치는 병을 잘 고쳤다. 또한 자비심이 많아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치료비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병이 나으면 직접 기른 사탕수수, 고구마, 채소를 가져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곤 했다.

스승님의 모친은 자상하고 현명하며 근면했고 일을 빨리 해냈다. 그녀는 가족을 돌보는 일 외에 사업도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온 집안은 풍족하고 안정된 생활을 꾸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스승님의 부친이 정치 활동에 관련되었다고 억울하게 고발되어 조사를 받기 위해 감금되었다. 조사관이 수차례 조사한 결과 아무런 혐의도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부친은 석방되지 않고 감옥에 계속 있게 되었다.

그때 스승님과 모친은 음식을 장만해 면회 가서 그를 위로하곤 했다. 상처를 입은 채 갇혀 있는 부친을 보자 스승님은 한없이 슬펐다. 스승님은 의술로 사람을 구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스승님은 집으로 돌아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부친은 죄가 없으며 억울한 희생자라고 말하곤 했다. 그들이 별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스승님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과 정의를 위해 싸우고 말하는 용기를 지녔음을 보여 준다.

그 당시 임신 중이던 모친이 출산하게 되었다. 불행히도 그때 그들은 사기를 당해 돈을 모두 잃게 되었다. 게다가 모친은 출산 후 산후 조리를 하지 못해 합병증이 생겼다. 배에 물이 차고 부어 통증이 심했지만 다른 의사에게 치료받을 돈도 없었다.

스승님은 아홉 살의 나이에 병든 모친과 갓난아이를 돌보는 일 외에도 시장에 식량을 사러 다녀야 했다. 돈이 부족했으므로 스승님은 매일 야채만 조금씩 살 수밖에 없었다. 살기가 아주 힘들었다.

사흘째 되던 날 모친은 통증이 너무 심해 신음하고 있었는데 갓난아이를 돌봐 줄 사람마저도 없었다. 게다가 집에는 돈도 없고, 자신은 어리고, 부친은 자유로운 몸이 아니어서 스승님은 이대로 가다간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당시 부친은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더 큰 교소도로 보내졌다. 굳은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선 스승님은 작은 체구에 차멀미를 해 가며 여러 번 차를 갈아탄 후에 겨우 그곳에 당도했다.

스승님은 정문 수위에게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부친은 죄가 없으니 석방시켜 달라고 교도소장에게 애원할 수 있게 그를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수위는 스승님의 딱한 처지를 듣고는 동정심이 들어 교도소장에게 말해 볼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만 자꾸 흐르고 스승님은 너무나 걱정된 나머지 마침내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부친을 석방시켜 달라고 부탁하게 교도소장을 만나게만 해 달라며 소란을 피웠다. 때마침 지나가던 교도소장이 스승님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교도소장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작고 귀여운 어린 소녀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이 어린 소녀는 부친이 억울하게 교도소에 있으며 모친이 위독해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있고 사흘 전에 태어난 어린 동생을 보살필 사람도 없는데 자기는 아직 너무 어리다고 말했다.

스승님은 교도소장에게 부친만이 가족을 돌볼 수 있으니 제발 풀어 달라고 애원했다. 젊고 친절한 교도소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깊이 감동했다.

아홉 살밖에 안 됐지만 혼자서 먼 거리를 여행할 만큼 용기 있는 먼지투성이의 소녀를 바라보며 그는 “너의 아버지를 즉시 이리 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교도소장은 부친의 학자다운 용모를 보고는 기록을 살펴본 후 자신들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즉시 부친을 풀어 주며 24시간 동안 집에 돌아가 가족을 돌봐 주고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교도관이 농담으로 부친이 돌아올 때까지 스승님이 대신 남아 있어야 한다고 하자 스승님은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여기 있어도 소용없어요. 너무 어리거든요. 그리고 저는 어머니와 동생을 돌봐 주러 집에 돌아가야 해서 여기 있을 수 없어요.” 교도소장은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며 스승님이 부친과 함께 집에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훌륭한 의술을 지닌 부친이 집에 돌아와서 곧바로 모친의 병을 치료하자 병세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부친은 집안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는 시간에 맞춰 교도소로 돌아갔다.

며칠 후 부친은 갑자기 무조건 석방되었다. 정당하고 자비로운 교도소장을 기억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승님의 부모는 갓난아기의 이름을 ‘광트룽(光忠)’*이란 교도소장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스승님이 어린 나이였지만 부모에 대한 순수하고 신실한 효성과 용기를 지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승님은 사람들과 천국을 감동시켜 교도소장이 신의 훌륭한 도구가 되게 했고, 이로써 스승님의 가족이 재결합하여 밝은 미래를 살 수 있게 했다.

*광트룽은 남자 이름이다. 특히 어울락에서 이 이름은 남자 이름이어서 여자에게는 짓지 않는 이름이다. 마치 미국에서 존(John)이 남자 이름인 것과 같다. 스승님의 부모가 교도소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어린 딸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이다.

- 뉴스잡지 5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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